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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독교의 사람들은 (눅 3: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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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사람들은 (눅 3:7~17) 


누가복음 3장은 예수님께서 탄생하고 난 뒤 30년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난 후 또 다시 세례요한의 이야기를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고 그 세례요한은 하나님 말씀을 아주 강력하게 전했다는 말씀과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의 말씀을 듣고 회개했다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반인은 물론 당시 기득권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세리들과 군인들, 경찰들까지도 회개를 했고, 이를 본 수많은 사람들이 수백 년간 기다려온 메시야가 바로 세례요한이라고 생각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어서 그러나 이 위대한 요한이 뜻밖에도 감옥에 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누가복음이 시작되는 1장과 2장에 이어서 3장에서도 그 주인공으로 세례요한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전히 세례요한에 대해서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이 어떤 책인가를 보았습니다. 누가복음은 기독교는 어떤 종교인가를 소개하는 책으로 하나님께서 의사 누가를 통해서 쓴 책입니다. 또 다시 3장에서도 세례요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누가복음 3장에서 하나님께서 기독교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시는가를 보아야합니다. 누가복음 3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먼저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는가? 어떤 사람을 높이고 어떤 사람을 뛰어나게 하시고 어떤 사람의 뒤를 그렇게 힘있게 밀어주시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3장을 봅니다. 세례요한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얼마나 권위있게 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는 세례 받으러 온 사람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조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7-9절)라고 강력하게 말했습니다.

별 것 아닌 사람이 이렇게 강하게 말했지만 수많은 유대인들이 그 앞에서 엎어졌습니다. 그들은 세례요한에게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10절) 라고 물었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11절)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의 권위와 권세를 얼마나 높여주셨는지 모릅니다. 요즘 세무서 다니시는 분들은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 세무서 다니는 사람들은 좀 달랐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도 3·40년 전만 해도 다들 잘 살았습니다. 그러니 2천 년 전에는 어떠했습니까? 이런 분들이 세례요한 앞에 엎어진 것입니다. 또 군인들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군인들은 경찰의 역할도 같이 했으니 얼마나 권세가 있었겠습니까? 그와 같이 권력 있는 사람들이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14절) 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없이 높여주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상당히 힘 있는 사람들 전부다 세례요한 앞에 엎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세례요한뿐만 아니라 세례요한의 아버지와 어머니까지도 높여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세례요한을 왜 그렇게 존귀하게 높여주시며 세례요한 뿐만 아니라 그 부모들까지도 높여주시는 것일까요? 이를 위해서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이야기의 흐름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과 2장에서는 세례요한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은 곧 어느 틈에 예수의 이야기로 바뀌어 이어졌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잉태,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하였고 어떻게 성장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참 좋아하는 말인 키가 자람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사랑스러워져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3장은 세례요한의 강력한 활동이 전개됩니다. 세례요한이 강하게 말씀하고 그 앞에 많은 사람들이 엎어지고 회개하는 것을 말씀하고 예수님 이야기로 또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세례주는 사람과 세례받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겠습니까? 아무래도 세례주는 사람이 받기 마련인데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21-22절).. 

세례 주는 사람이 아니라 세례받는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어서 23절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족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은 예수님과 세례요한이 출생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아주 신통한 안목으로 예언의 찬양을 하였는데 그 찬양을 가만히 보면 자기 아들 세례요한을 향해서 노래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초점은 예수님에게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아들 출생 후 한 찬양도 가만히 보면 내 아들은 이렇게 위대하고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그 까닭이 내 아들은 뒤에 오실 분을 섬길 자로 세워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다는 찬양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내 아들이 어떤 분의 종으로 세워주셔서 감사하다는 찬양을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세례요한이 주연같이 보이지만 사실 세례요한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 초점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세례요한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조연이라도 한없이 높일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조연 축에 들지 못하는 엑스트라라고 할지라도 예수를 알리고 예수를 전하는 사람은 한없이 높인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례요한이 이것을 얼마나 잘 감당했는가를 본문 15절부터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백성들이 기다렸지만 하나님은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선지자를 보내주시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세례요한이 하는 일을 보고 이 분이 바로 메시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이 자기를 메시야라고 생각하자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16절)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높여주셨고, 그 세례요한 때문에 그 어머니, 아버지를 높여주셨습니다. 만약 아들과 딸이 있었다면 그들까지도 높여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존귀하게 하고 높여주십니까? 어떤 사람을 위대하게 하시고, 어떤 사람을 일어서게 하고 어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을 이루게 도와주십니까? 바로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역사상 항상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 위대한 영도자 모세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 모세를 돕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수종자 즉 하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여호수아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들어간 회막 앞에서 손들고 서있던 사람이 여호수아였습니다. 

이 여호수아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높여주셨습니까? 요단을 건너갈 때 요단강 물을 마르게 하셨고, 적과 싸울 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으면 이길 것 같아 하나님께 기도하자 해가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거의 하루 동안 해가 지지 않은 사실은 소설이나 신앙고백적인 수사표현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가 아닌 세계 역사, 자연역사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전쟁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우박을 쏟아 부어 적을 물리치게 해주셨습니다. 이런 은혜를 어떻게 해서 주셨습니까? 여호수아도 직접 하나님 일을 했지만 그 전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세에게 충실한 종이 되어 그를 돕고 섬기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람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섬겼던 사르밧 과부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한 끼분 음식으로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섬기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기근 때문에 고통스러워할 때 그 집의 양식은 떨어지지 않게 해주시는 복을 부어주셨습니다. 자기가 직접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돕고 섬기고, 자기 생명 대신 하나님의 종을 살리려고 했던 그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존귀하게 해주시고 살려주시고 힘을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꼭 큰일을 할 것이 아닙니다. 꼭 내가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앞에 내 이름이 나오고 큰일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방향성이 문제입니다. 내가 하는 일, 내 생각, 내 하는 말들의 방향이 어떤가를 보십니다. 하나님을 알리고 예수를 알리고 예수를 전하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앞에서 하든, 뒤에서 하든 하나님께서 높여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를 섬겼던 부부가 있었는데 이 부부는 피곤한 엘리사를 챙겨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 집에 얼마나 큰 복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이 집의 가장 절박하던 소원을 이루어주셨고 나중에 이스라엘에 난리가 나서 집과 다른 재산을 잃어버렸을 때 이들이 힘쓰고 애쓰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자동적으로 모든 재산을 다 찾는 복을 주셨습니다. 이들 부부가 하나님의 일을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엘리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했던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존귀하게 챙겨주신 것입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엘리사를 챙겨준 것은 방향이 하나님이었습니다. 위대하고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의 일을 향하고, 예수를 향할 때 하나님께서 그를 귀하게 세워주신 것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늘 하나님의 종인 나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하나님의 종 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 거처할 곳이 제대로 없었습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가 이 하나님의 종을 상당 기간 챙겨주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들 부부를 기독교 역사상 위대한 기독교의 지도자로 이 부부를 세워주셨습니다. 역사의 주인이고 인생의 주인이고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자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향만 제대로 하면 됩니다. 꼭 과거에 했던 것만도 아닙니다. 앞으로 할 사람이기만 해도 하나님께서는 챙겨 해주십니다. 세례요한은 아직 잉태되기도 전에 그 아버지 어머니를 위대하게 해주셨고 세례요한을 위대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이 앞으로 하나님을 전하고 예수를 전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면 되겠습니까? 그 아이들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아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여길,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하나님께서 챙겨주실 사람으로 만들어 가면 됩니다.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세례요한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가정을 어떻게 꾸며나가야 하겠습니까? 헛발질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축구할 때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공 한 번 제대로 차지 못하고 골 한 번 제대로 넣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평생 죽으라고 힘쓰고 애를 쓴 야곱이 나중에 내 나이 일백삼십이나 험악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야곱은 사랑하는 여인을 아내로 얻기 위해 14년 동안 고생했습니다. 온갖 재주를 다부려 얻었지만 그럼에도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방향이 잘못되어서 그렇습니다. 방향을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함을 받을 자녀, 우리 가정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헛발질 하지 마십시오. 평생 힘쓰고 애쓰고 난 뒤에 이 모든 것이 헛것이라고 말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세례요한을 통해서 얼마나 분명하게 보여주십니까? 하나님을 섬길 자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두 번째 말씀하시는 바는, 하나님께서는 왜 세례요한, 엘리야, 모세와 같은 사람들을 존귀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들 모두 위대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 사람들을 존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높이고, 예수를 높이고 예수를 전하는 그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잘 보아야합니다. 모세가, 엘리야가, 엘리사가 그리고 세례요한이 얼마나 잘 감당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보신 것처럼 세례요한은 내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실 그 분이야말로 진짜 여러분들을 구원할 메시야 구주라고 말했고 모세는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의 4백년 노예살이에서 해방시켜주었을 때 끊임없이 하나님만 이야기하였습니다. 

엘리야, 엘리사는 당시 왕과 왕비 모두 바알과 아세라 신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상항임에도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여러분들 눈에는 아합이 왕인 것 같지만 아합이 왕이 아닙니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비 한 방울 내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왕, 우리의 신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많은 신들이 있습니다. 의지할 곳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힘있는 사람을 의지하고, 돈있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건강, 권력에 의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엘리사는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를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없이 높여주셨습니다. 그들이 끊임없이 주장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을 줄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왕에 존귀하게 되었든지 혹은 어떤 것을 이루었든지 혹은 어느 정도 괜찮게 되신 분들이라면 잘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신 까닭입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종도 여러분이 존귀하게 되었다면 더 존귀하게 되어야하고 괜찮게 되었다면 더 괜찮게 되어야 하고 이루었다면 더 이루는 것이 소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나에게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셨는가를 잘 알기만 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주신 존귀함이나 성취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주실지 모릅니다. 

세 번째 말씀하시는 것은 그렇다면 기독교의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입니다. 인생은 짧고 시간도 모자랍니다. 그렇다면 그 할 일 많은 것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단 한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은, 기독교의 사람들은 예수를 전하는 그것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인들은 가만히 있어도 얼마든지 높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 다른 것 필요 없습니다. 여기저기 뛰어다닐 필요 없습니다. 예수를 높이십시오. 하나님을 높이십시오. 예수를 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작년에 세계적인 영화제인 깐느 영화제에서 우리나라 한 여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알지만 저는 사실 그 여배우의 이름도 처음 들었고 얼굴도 그때까지 잘 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연이라는 영화배우가 깐느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 세계적인 대배우가 된 비결에 대해서 썼는데 그 중에 하나 내 가슴을 친 것이 있습니다. ‘전도연은 오랫동안 사이드잡 즉 다른 일에 고개 돌리지 않고 본질에 충실했었다’ 는 말이었습니다. 이 타이틀을 보고 바로 이것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말은 ‘전도연은 광고에 많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도 고심했을 것이다. 한 살 한 살 나이는 들고 어리고 예쁜 후배 여배우들은 자꾸 나오고 인기가 있다고 해도 얼마나 갈지 모르는 이런 상황이면 대개는 잘 나갈 때 뭐라도 해놓고 보자는 식이 되기 싶다. 그러나 전도연은 본질로 승부를 걸었다’ 라고 이어졌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감동스러운지 모릅니다. 연예인인데도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또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은 올해 크게 보상받았다.’ 가슴에 와 닿는 말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기독교인들이 그리고 기독교회가 가슴에 새겨야할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빨리 한 몫 챙기려고 하고, 빨리 무엇을 이루려고 본질보다 자꾸 다른 쪽으로 가려고 하고 바둑의 정석보다는 변칙을 배우려고 합니다. 무슨 운동을 해도 정식으로 배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점수를 따려고 하는데 그래서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은 기독교의 본질적인 일, 교회의 본질적인 일, 이것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예수를 높이고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모든 정성을 다해서 예배를 드리고 아직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너희들은 너희들이 할 일만 하라 스스로를 자꾸 높이려고 하지 말고 잘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무엇을 성취하려고 하지 말라 그건 내가 할 일이다. 너희들은 너희들이 할 일만 하고 너희들을 높이는 것은 내가 하겠다’ 우리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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