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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엡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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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엡 1:1~7)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1. 시작하면서

오늘부터 당분간 매주 에베소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자 합니다. 이유는 에베소에서 거의 3 년 동안 제자훈련 목회를 하며 대성공을 거두었던 바울의 기록을 사도행전에서 보면서 이 에베소 교회를 향한 바울의 또 다른 진정성을 이 편지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는 과거 난센스 성경 퀴즈 문제로 자주 등장했던 문제인데 “아이가 없는 가정을 위한 바울의 편지는?” 하는 물음에서 유명해진 성경입니다. 난센스란 말대로 전혀 다른 의미이긴 합니다만, 이 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써서 보낸 편지로써, 우리 믿음의 공동체는 세상과 다른 “새로운 사회”(The New Society)로 세워져 가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 “교회론”의 교과서 같은 성경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진보와 보수의 대결로 가치관의 혼돈 속에 있습니다. 저마다 새로운 사회를 주창하는데, 금번 에베소서를 통하여 진정한 “새로운 사회”가 무엇이며, 그 일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새로운 사회 구현을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발견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2.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에서 먼저 주목을 끄는 단어는 “성도”란 낱말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우들을 향하여 “성도”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사도행전이나 복음서에는 거의 “제자”란 말로 칭하던 것을 바울의 서신서 대부분에서 그 말 대신 “성도”(the saints)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대체로 공통된 설명은 이렇습니다. 

먼저는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구원의 문제인데, 즉 모든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는 “이신득의” 신학에서 시작된 것이란 이해입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자는 이미 구원 받은 자로써 의롭게 되었기에 성도란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거룩한 행실을 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졌기에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호칭인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이방세계로 퍼져가면서, 특히 헬라세계에서는 철학자들의 문하생을 일컬어 제자라고 불렀는데, “예수의 제자”란 말이 하나의 철학 학파를 이루는 것으로 오해받을 우려가 있어서 그 말대신하여 종교적인 용어로 “성도”를 택하였다는 설명입니다. 

더구나 성도란 용어는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할 당위성을 내포하는 낱말로 적절한 호칭이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도입니다. 예수님의 철학을 배우는 학생이 아니라 그 분의 은혜를 입고 그 분의 삶을 본받아 살아가려는 성도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제자로써 그 분의 온전하심 같이 우리도 온전해지려는 거룩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신실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 1:28)

제자훈련의 목표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종교 기능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인격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능력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인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우들을 성도라고 불렀습니다.


3.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편지에서 머리 부분은 상대에게 인사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인사말의 대부분은 곧 축복입니다. 바울도 대부분의 편지에서 축복을 하고 있는데 곧 은혜와 평강을 비는 축복문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이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란 말입니다. 즉 축복의 출처에 대한 분명한 언급입니다. 이전 유대인들의 편지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란 축복문이 흔히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기에 붙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은혜와 평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부터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 독생자를 보내심으로 은혜와 평강이 온전해졌다는 것을 분명히 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죄로부터 자유를 얻지 못하면 은혜와 평강은 충분치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이것이 분명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부터 흘러내리는 은혜,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넘치는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빕니다.     


4.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바울은 이어 찬양시를 쓰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며 시작하는데, 그 핵심은 곧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이란 말은 당시 세계관으로써 천사들과 엘로힘 하나님이 거처하는 최상층을 의미한다고 보입니다. 바울이 언급한 “셋째 하늘”일 것입니다. 그 세계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았다는 것은 곧 그 세계의 존재로 격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격상됨이 곧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심”(5절)입니다. 다윗은 미리 이렇게 감사의 노래를 올렸습니다.    

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 8:4-5)

우리가 여기서 깨닫는 것은 새로운 사회 곧 참된 교회의 구성원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자들로써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길은 3절에서부터 7절까지 5번이나 “그리스도 안에서”(혹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란 제한적 규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얻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결단코) 천국을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모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5. 창세 전에 택하심으로

우리는 에베소서를 시작하면서 오늘 끝으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곧 “선택과 예정”입니다. 바울은 “창세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택하시고 예정하셨다는 것을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4,5절). 새로운 사회는 곧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서 시작되고 섭리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엔 사람의 의도와 계획은 전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사람의 꿈도 비전도 새로운 사회를 이루는데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창세전이란 말은 모든 존재의 이전이며 그 존재들이 어떤 의도나 능력을 갖기 이전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가장 깊은 복음이 내재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은 사람의 그 무엇도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로지 그 분이 나를 택하시고 예정하사 오늘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얻게하시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6절)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찬송하며 삽시다. 주님이 베푸신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말입니다. 찬송은 성도와 교회의 생명력입니다. 찬송이 없음은 곧 신령한 생명이 병든 것입니다. 찬송합시다.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내 죄의 권세 깨뜨려 그 결박 푸시고
이 추한 맘을 피로써 곧 정케하셨네 (찬 23장 1,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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