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지금 여기에서 감사하라 (욘 2:1~10)

  • 잡초 잡초
  • 404
  • 0

첨부 1


지금 여기에서 감사하라 (욘 2:1~10)


요나서를 통하여 계시하신 하나님은 한 마디로 “사랑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이 특별히 택하신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입니다. 주전 8세기 초반, 이스라엘 여로보암Ⅱ세가 통치하던 때입니다. 북쪽 앗수르가 주전765년과 763년 두 차례에 걸쳐 발생한 역병으로 인하여 국가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무렵 하나님께서 요나를 불러 말씀하십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욘1:2)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3:4)

북쪽의 큰 나라 앗수르는 이스라엘의 주적으로, 항상 큰 위협이었습니다. 
‘적국의 수도가 죄악으로 망한다는데, 굳이 내가 가서 망한다고 선언해야하나?’

이렇게 생각한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탓습니다. 요나가 탄 배가 큰 풍랑을 만납니다. 뱃사람들은 풍랑의 원인이 된 요나를 제비뽑아 바다에 던집니다. 그 순간 배를 맴돌던 큰 물고기가 요나를 통째로 삼켜버립니다. 

오늘 읽은 성경은 바로 이 상황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본문은 분명한 사실을 전해줍니다.  

요나의 이야기 전체 시나리오를 쓰시고, 연출까지 하고 계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 
요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하셨습니다. 
요나를 직접 부르시어 니느웨로 가라 명령하십니다. 
다시스로 도망하는 요나의 탄 배에 큰 풍랑을 일으키십니다. 
범인을 가려내는 제비뽑기에서 요나가 걸려들게 하십니다. 
바다에 던져지는 요나를 물고기가 통째로 삼키도록 하십니다. 
회개하며 통회하는 요나를 육지로 토하도록 물고기에게 명령하십니다.
요나를 다시 니느웨로 보내어 멸망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요의 선포를 듣고 회개하는 니느웨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사람을 만드시고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다스리십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아주 주도면밀하십니다.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데 한점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사는 세상에 되어지는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라고 하십니다.  

로마서12:2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요나서를 통하여 하나님은 소중한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은 반드시 이루시며, 우리에게 명하시는 말씀을 순종함이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본문으로 들어가서 요나가 지금 큰 물고기 뱃속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봅시다. . 


1.기도하고 있습니다.(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께 기도하여”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기도원입니까? 성전입니까? 작은 골방입니까? 혹시 일터나, 가정이나, 자동차 안에서 하십니까? 혹시 기도하시기 위하여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혹시 특별 기도를 위하여 기도원에 가시듯 기도를 더욱 집중적으로 하시기 위하여 요나처럼 물고기뱃속으로 들어가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하여튼 요나는 지금 물고기 뱃속에 있고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자기가 가는 길을 풍랑으로 막고 자기를 던져 물고기 뱃속으로 던지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차렸습니다.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가는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요나는 이 모든 일들 속에서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깊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있습니다. 

요나가 기도하는 큰 물고기 뱃속을 생각해봅시다. 그곳은 인생의 최악의 장소입니다. 
“고난 받는 곳입니다.”(2)
“스올의 뱃속입니다.”(2)-무덤의 깊은 곳, 죽음의 현장 같은 곳이라는 뜻입니다. 
“깊음 속 바다가운데입니다.”(3)
“주의 목전에서 쫓겨난 곳입니다.”(4)
“산의 뿌리까지 내려간 곳입니다.”(6)
“땅이 빗장으로 오래도록 막은 곳입니다.”(6)
“그 곳에서 영혼이 대단히 피곤하여졌습니다.”(7) 영혼이 탈진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는 삶의 정황이 어디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해도 요나보다 더 어려울 수는 없습니다. 요나의 감사기도는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감사기도를 드리지 못할 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자리가 어디든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삶의 현재가 힘드십니까? 
하나님은 요나를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요나도 하나님을 바라보았는데 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느냐?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 때문에 괴롭습니까? 
주님은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을 용서하여주시기를 기도하는 스데반을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스데반도 용서하였는데 왜 용서할 수 없느냐? 

혹시 중한 병을 치유하여 주실까 걱정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동안 중한 병을 앓은 사람을 고쳐주신 사건을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   

혹시 가정적으로 힘들어서 이혼의 상처와 아픔으로 힘들어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은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이 다섯 번의 결혼을 실패하고 여섯 번째 기회를 생각하고 있는 여인의 일을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그를 용서하시고 새 삶을 살게 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중보자가 되게 하셨는데 왜 너를 새롭게 하지 못하겠느냐?
누구라도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형편에서도 감사하지 못할 형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계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히틀러는 유대인들 600만 명을 학살하였습니다. 그 때, 그 죽음의 수용소에서 끝까지 죽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 관한 정신과 의사들의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의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생지옥 같은 곳에서 무슨 감사할 것이 있겠나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들의 체험에 의하면 그 속에서도 감사할 일들은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좁은 뜰을 거닐다가 예쁜 조약돌이 보이면 그걸 주워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중히 간직하였습니다. 또 어떤 이는 뚱보 감시원이 당번이 되면 ‘오늘은 좀 편하겠구나.’ 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쪼개진 판자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면 햇빛을 주신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오늘 하루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조약돌을 주울 수 있는 밝은 눈을 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심지어 마른 빵 한조각과 멀건 국을 배급해 주는 동료죄수에게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감사할 이유를 알고 감사하는 자만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삶에서 놀라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감사하는 자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신체와 정신 속에 평화와 기쁨이 생김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2.내면의 건강이 중요합니다.  

요나서2:4입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요나의 기도를 들어보면 지금, 자신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쫓겨난 신세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는 한없는 슬픔과 아픔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주님의 성전을 바라본다는데 있습니다. 

요나서2:2, 7절을 보십시오.   
“내가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믿음의 사람은 비참해진 상황에서 포기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계속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이런 용감한 믿음의 사람을 사무엘상17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와 대치하고 있는 사울의 군대는 전세가 대단히 불리하였습니다. 적장 골리앗이 나타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욕하며, 자신을 상대할 자는 나오라고 하지만 그를 대적할 사람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무렵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님들을 면회 왔던 다윗이 골리앗의 무례한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나가 말합니다. 
“그를 인하여 낙담하지 마십시오.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삼상17:32)

다윗은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갑니다.”(40)
다윗이 블레셋 장군 골리앗에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처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게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17:45-47) 

전쟁의 승패는 사람의 지혜나, 군대의 숫자나, 무기의 성능에 있지 않습니다. 내면의 자아가 얼마나 강하냐에 달려있습니다. 내면의 자아가 강한 사람은 어떤 상황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내면의 자아는 믿음에서 강해집니다. 
결국은 인생은 믿음의 싸움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강한 믿음이 있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따라 역사하십니다. 
이 내면의 자아를 강건하게 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예수님은 환자들을 고치실 때에 먼저 믿음을 강건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되는 원리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배하는 모습을 대단히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전지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낱낱이 들으시며 최상의 것으로, 가장 적절한 때에 응답하시기 위하여 충분히 준비하시는 여호와이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삶을 앞서가시어 모든 싸움을 싸우시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하시는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자녀 둘을 키운 애비로써 자녀들에 대한 저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나를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묵상합니다. 자녀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부족해서, 힘이 없어서, 자녀들에게 다하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위하는 애비의 사랑의 간절함이 있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7:11에서 애비의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최근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피상적으로 느끼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면서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용서하시되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의 간절함과 애틋함을 헤아리지 못한 송구함이 있습니다. 

파스칼은 1654년을 자신을 위한“은혜의 해”라고 말합니다. 
그 해 11월 23일 월요일 밤10시 반경부터 12시 반경까지 회심의 경험을 하고 나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철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이삭의 하나님이시며, 야곱의 하나님! 
확신, 확신, 기쁨, 평화,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 
내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 Deum meum et Deum vestrum. ( 요20:17) 
하나님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 안에서 가르쳐진 방법에 의해서만 발견될 수 있습니다. 
인간 영혼은 위대합니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나이다.’(요17:25)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나로 하여금 당신께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지 않게 하소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

사랑하는 여러분, 
요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 쫓겨났으나,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물고기 뱃속, 무덤에 내려간 것 같은 처지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이르렀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요나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요나의 영혼은 아직도 강건합니다. 
골로새서4:2에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3.감사 속에 변화가 있습니다. 

“~ 때문에 하는 감사” 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그리스도인들의 감사입니다. 요나의 감사기도는 이런 중심의 감사입니다.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자신을 다시 붙들어주시고 다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고마웠습니다. 그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나서2:9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영혼의 기운이 다 꺼져가는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목소리로 제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러면서 한 가지 서원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내 생명을 살리신다면 주님의 명령을 지키겠습니다. 니느웨로 가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살기위해서가 아니라, 이만큼해도 감사한데 만약에 살려주신다면 그리하겠다는 서원입니다.  

요나가 그렇게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십시오.
요나서2:10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명령하셨습니다. 
“요나를 저 육지에 토하여라.” 
요나가 육지에 토하여 졌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이 변화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과 관계되는 사람들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일에 좋은 결과를 기대하십니까? 

이제,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분명히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감사하십시오. 
불편한 그 일, 그 환경, 그 사람 때문에 받고 있는 모든 스트레스를 감사함으로 날려버리십시오. 

지금 당신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그 곳에서, 그 일로 인하여, 그 사람으로 인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우리의 사람의 정황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동안에 하나님은 우리가 잠자는 사이에도 일하십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사방에서 돕는 사람들의 손길을 움직이십니다. 
막힌 담을 허십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