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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기념] 우리의 소원 (겔 37: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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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원 (겔 37:16~17)

 
16. 인자야 너는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다른 막대기 하나를 취하여 그 위에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고 
17.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 설교말씀 

오늘은 육이오가 일어난지 58년이 된 날입니다. 두 이념으로 갈라진 한 민족은 거의 60여년 동안 정말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민족은 한 민족이요 한 나라요 동일한 문화와 동일한 종교를 가졌고 특히 동일한 믿음을 가진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던 평양이 한사람의 야욕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파괴와 질병을 남긴 불행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250만 명이 사망하였다. 80%의 산업시설과 공공시설과 교통시설이 파괴되었고, 정부 건물의 4분의 3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으며 가옥의 절반이 파괴되거나 손상되었다. 미군은 약 54,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이는 베트남 전쟁 때보다는 약간 적은 수이지만 훨씬 짧은 시기를 고려한다면 많은 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평양신학교를 계승한 사람들이 손양원, 주남선, 한상동 목사님을 위시한 고신교단의 태동이 되었습니다. 그 이외에도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북에서 남으로 피난을 오기도 했습니다. 이 땅에 복음이 처음 들어온 곳도 북한의 국경지역입니다. 그런데 이 북한이 하루아침에 얼어붙은 동토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오늘 37장 1-14절에 나오는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와 같은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나가 되고 어떻게 이 말씀을 통하여 분단의 위기를 극복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이시기는 진실로 연합이라는 단어가 절실합니다. 참으로 간절하게 여겨집니다. 통일, 연합---온세계가 연합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연합이 아니라 분열과 다툼입니다. WTO라는 큰 연합체를 만들고 UN이라는 큰 세계연합을 만들어 평화를 구하지만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 가운데 유독 남북이 나누어진 한반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작고도 보잘것없는 나라를 전쟁가운데 침략가운데 보호하심을 감사드려야 합니다.  

세계가 위기라지만 이 작은 나라에 주신 잠재력과 축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축복을 통해 오늘 말씀에 비추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두 막대기를 취하여 각각 그 막대기에 이름을 새기라고 합니다(37:16). 한 막대기에는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함”(즉 남왕국)이라고 써야 하고 다른 막대기에는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속함”(즉 북왕국)이라고 써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 막대기에 유다에게 속함/ 요셉에게 속함 이라고 적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이때까지 이렇게 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에브라임은 요셉의 작은 아들로 북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북왕국은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남왕국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두 막대기들을 함께 붙여서 한 막대기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연합의 상징적 명령입니다. 연합하라는 행위에 대한 명령입니다. 

민수기17:6-10에 보면 각 지파의 방백들이 갖고 있던 지팡이들이 하나님 앞에 놓여지고 아론의 지팡이가 선택되어 제사장직의 권위를 부여받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가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둘을 하나로 합치라고 합니다. 이 본문에서 나오는 하나 ‘에하드’라는 말이 열 번이나 나옵니다. 분열되지 않은 상태로 되돌려놓겠다는 하나님의 새로운 약속입니다. 

1) 하나님의 왕권을 회복하심입니다. 

 이 말씀은 분열된 남과 북을 하나로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것은 약속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가 되게 하는 약속을 몸으로 몸소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백성들에게 보여주게 합니다. 두 막대기를 잡고 붙여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증거하게 합니다. 선언하게 합니다.  그 한 임금 다스리는 나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24절 말씀에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연합은 다윗과 같은 섬김의 지도자를 세워 그 영향을 받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섬김의 종을 통한 왕권의 회복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왕권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높여드리는 섬김의 도가 편만한 나라로 회복하게 하심입니다. 그 어떤 특별한 왕이 나타나서 정치를 잘 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정사도 움직여 가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다스리십니까? 이 연합은 영적인 연합체 속에 하나님 중심적인 삶의 나라로 만들어 가신다는 의미입니다. 그 연합체를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심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서 역사하시기 원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진정 그의 백성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길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에게 순종함으로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위함입니다. 고통과 절망, 핍박과 굶주림에 묶인 우리의 민족의 상황을 우리가 바라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정한 자비와 긍휼과 만지심이 그 땅에 진실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이땅에 충만하여져서 하나님이 스스로 역사하시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드러나고 우리가 이끌려고 하는 의지를 완전히 죽여야만 합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완고한 사람이었습니다. 애굽에서 온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백성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섬김의 종이 되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오히려 대답하기를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찌라 내 부친은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였으나 나는 전갈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왕상12:14)

이로 말미암아 나라는 결국 나뉘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책임은 멍에를 가볍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정한 순종이 하나님의 왕권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남과 북이 나누어진 이 땅에 진정으로 하나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소원의 하나님의 왕권, 주권의 회복인줄 믿습니다. 


2) 교회의 회복입니다.

이스라엘의 두 나라를 유다와 에브라임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솔로몬이 예루살렘이 성전을 세우고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성전을 세웁니다. 이 성전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입니다. 전능의 하나님 ‘엘로힘’ 모든 것을 이기시고 모든 것을 보호하시고 모든 것을 새롭하시며 창조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이 성전이 예루살렘과 벧엘과 단과 나누어졌습니다. 서로가 자신의 하나님을 사모하며 나아갔지만 결국 산당이 생겨나고 우상과 다른 신들의 제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처럼 성전의 의미는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이 성전의 의미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제사가 이 성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한 성전에서 예배하는 동일한 제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정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제사는 연합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고 예배하는 하는 모든 것이 성전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소망하고 바라는 연합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래서 요즈음 일부 신학자들이 자유주의 교회들은 교회가 연합해야 하는 근거를 무시한 채 연합에만 초점을 두고 강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연합은   장소적이고  인위적이며 인간중심의 연합이 아니라 영적인 연합입니다. 즉 하나님의 향한 예배의 하나 됨입니다. 진실한 예배의 일치,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의 증거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서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종들이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진실한 예배자들의 연합입니다. 예배입니다. 삶입니다. 

그리스도 우리의 참된 성전이심을 믿습니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이 가리켰던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가 몸소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행함의 회복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우리의 회복은 성전 가운데 충만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출40장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가운데 드러내는 것입니다. 모든 선한 일이 교회로부터 시작되고 이루어가는 역사를 보게 해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정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우리의 삶이 우리의 소원이 되길 축원합니다. 이 소원이 갈라진 이 땅의 남과 북을 하나로 묶을 줄 믿습니다. 


3) 거룩성의 회복입니다.

마지막으로 거룩성의 회복입니다. 36장으로 돌아가서 보겠습니다. 구약의 정함과 부정함을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정결함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절대주권 앞에 우리가 하나가 됨이 회복된다면 그 전능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피로 교회를 사시고 머리되셔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본다면 우리는 성부 성자의 두 사역위에 공통적인 모습 동일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곧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의 통치는 곧 공의입니다. 모든 것의 올바름, 완전함, 영원함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는 다스림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은 흠없고 티없는 제물이 되셔야 합니다. 그가 드린 완벽한 단번의 제사가  우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본문 23절에 회복의 근거와 연합의 조건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모든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케 한즉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이 거룩성의 회복은 단순한 죄로부터 돌아섬이 아닙니다. 오늘 겔36장 15절에 보면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이 정결함은 십자가에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맡기는 것입니다. 정화의 작업입니다.  우리의 어떤 삶에도 그 무엇에도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고백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결단입니다. 정결한 피에 우리의 온 몸을 잠기는 우리의 결정적 순간, 기회들입니다. 증언이며 이 놀라운 일에 대한 나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이에 상응하는 뒤따라오는 회복이 완전으로 채우시는 성령의 회복입니다. 성령의 충만입니다. 성령의 바람으로 충만케 될 때 우리의 소원은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을 남과 북이 하나되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 이시간 영적 이스라엘인 한반도의 남과북을 하나되게 하실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케 되는 회복이 있을 때 가능할 줄 믿습니다. 

100년전 장대현교회와 산정현교회를 비롯한 성령의 불길의 중심이 평양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 불길의 역사가 다시 재현될 때 다시 남과 북은 하나가 될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의 때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분열의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도 아니며 역사적인 문제도 아니며 더구나 경제적인 문제도 아닙니다. 믿음의 문제임을 믿습니다. 이 민족을 위해 우리의 한방울이 피와 눈물이 필요한 시대인 줄 믿습니다. 하나됨을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을 알아가는 실천하는 우리의 작은 섬김이 이 민족을 하나되게 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소원 통일 이룰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중앙동교회 성도여러분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노래를 아시지요? 이 노래의 제목은 우리의 독립이라는 노래가사가 통일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남이나 북이나 이 노래를 많이 부릅니다. 이 노래의 주제는 통일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그러나 어떻게 통일이 되어야 될지는 이 노래가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겠다. 내가 이 일을 내 백성을 통해 할 것이다. 약속하십니다. 복음으로 다시 회복하실 줄 믿습니다. 성령의 바람으로 하나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이 일에 우리의 관심과 우리의 기도가 쉬지 않고 이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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