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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행을 축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창 2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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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축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창 21:8~21)


오늘 아침거울보고 오셨지요. 안보고 오신 분계신가요? 거울을 볼 때마다 참으로 신기하다 하는 생각이듭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더러우면 더러 운대로 깨끗하면 깨끗한 대로 화장을 하면 화장한대로 벗으면 벗은 대로 입으면 입은 대로 보여 줍니다.

거울은 솔직합니다. 거울에는 수정이 필요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거울입니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그대로 보여 주고, 추한 것은 추한 그대로 보여 줍니다.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에서 성경을 우리 인생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말씀 속에 들어가면 내 영적인 모습이 다 들어 납니다. 

오늘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거울에 비쳐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위대한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그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인격으로도 자기 조카에게 양보할 줄 아는 덕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은 한편으로 아브라함의 약점을 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거울입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75세가 되었는데도 자녀가 없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하나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려 하십니까? 저는 아직 무자하오니 제 상속자는 이 다메섹의 엘리에셀입니다. 제게 씨를 주시지 아니하셨으니 제 집에서 자란 사람이 제 후사가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합니다. 이것이 당시의 규례요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니다. 네 몸에서 난 사람이 네 후사가 될 것이니 저기 하늘을 쳐다보라. 저 수많은 별들을 네가 셀 수 있느냐? 이제 네 자손이 그와 같이 많아질 것이다. 하시는거예요. 그런데 그 말씀을 아브라함이 그대로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의 위대함입니다. 7 0이 넘은 할아버지더러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 하면 믿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무런 의심 없이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것도 자녀가 수십 명이 되어서 그럴 가능성이 보여 질 때라면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고, 딸이고 하나도 없습니다. 나이도 젊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귀하여서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믿기 어려운 것 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믿는 것 누가 못 믿습니까? 내가 다 이해할 수 있고 납득이 되는 것 누가 믿지 못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믿지 않아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믿습니다. 해야 믿음이지요. 

창세기 16장으로 가면 아브라함의 85세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10년을 기다렸는데 소식이 없습니다. 더욱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생리적으로 출산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는 두 부부는 이런 생각을 해 냅니다. 우리는 자식을 날수 없으니 애급에서 데려온 몸종 하갈을 통하여 자식을 낳아 보자는 것입니다. 뿌가 여기에 합의가 됩니다. 그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흔히 행하는 풍습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도 아니고 인간으로서 당연한 생각입니다. 누구든 그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자식이 하나라도 있어야 하늘의 별을 만들던지 바다의 모래를 만들던지 할 것 아닙니까? 보통사람으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한차원이 높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믿음이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 때문에 약속을 주시겠습니까? 처음부터 아무나 데려다 씨를 받아서 하늘의 별처럼 되라 하셨겠지요. 아브라함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1프로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실수 하고 맙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을 보면서 참으로 놀라운 것은 사람은 실수 하지만 하나님은 그 부분을 채우십니다. 사람은 일을 저지르지만 하나님은 수습하십니다. 사람은 넘어지지만 하나님은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넘어지면 넘어지는 대로 실수하면 실수 하는 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만들어 가십니다. 아브라함도 세우시고 실패의 자리도 다 청소하시고 약속은 약속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을 때 86세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으로 사라를 통해 아들 이삭을 낳을 때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사랑이 자연히 이삭에게 쏠립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이스마엘이 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괴롭힙니다. 이 모양을 본 사라의 마음이 평안치 못합니다. 

이전에는 자식이 없어 하갈이 난 자식도 귀하다 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귀하디 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웃게 하시도다. 하면서 좋아 했습니다. 더욱이 약속의 자식입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종이 난 자식에게 괴롭힘을 당합니다. 참을 수 없습니다. 드디어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언뜻 우리 하나님은 적자의 하나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적자의 편에 서시고 적자를 도우시고 적자만 축복하지 서자의 편에는 외면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은 그 생각을 버리게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적자의 하나님만이 아닙니다. 우리하나님은 서자들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편을 가르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주의이름을 부르는 자는 사랑하십니다. 

세상에는 적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있고 서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으로는 이스라엘은 적자요 이방인은 서자인 것 같습니다. 경제적으로는 가진 자는 적자요 없는 자는 서자인 것 같습니다. 지식으로는 배운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학교별로는 인류학교와 지방학교출신이 있습니다. 지역으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있습니다. 서울로는 강남권과 강북권이 있습니다. 

서자의 아픔이 있습니다. 양반집에서 태어나지 못한 서자의 아픔이 있습니다. 인류대학을 나오지 못한 서자의 아픔이 있습니다. 강남권에서 살지 못하는 서자의 아픔이 있습니다. 배우지 못한, 가지지 못한, 힘이 없는 서자의 아픔이 있습니다. 적자는 기득권자들 같습니다. 저들만의 교만이 있습니다. 서자를 내어 쫒으면서도 그들의 아픔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들만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들 만을 위한 하나님이요 그래서 축복도 자기들만 축복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오늘성경이 분명히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삭의 하나님이지만 또한 이스마엘의 하나님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보세요 하나님이 이스마엘에게도 똑같이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리라 약속하십니다. 역사를 통하여 중요한 것을 배워야 합니다. 

보세요 하나님은 이스라엘도 이스마엘도 잘못하면 징계를 합니다. 그러나 잘하면 축복해 주십니다. 중요 한것이 무엇입니까? 누가 적자냐가 아니고 누가 하나님 편에 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적자는 하나님 편에 선자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편에 서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도 떠나십니다. 하나님 편에 서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집을 떠나서 브엘세바 들판에서 헤매는 사이에 떡과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더 이상 한발자국도 나아 갈 수가 없습니다. 물 한 방울도 없는 사막에서 가져온 물이 떨어졌으니 죽는 길 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하갈은 자기가 낳은 아이가 목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이스마엘이 쓰러진 곳에서 ‘살 한바탕’ 쯤 떨어진 곳에서 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통곡을 해 봐도 들어줄 사람이라고는 단 한명도 보이지 않는 모래밭 광야였습니다. 그들은 울다가 지치면 기진하여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그들의 사정을 들어줄 사람이 보이지 않는 광야에서. 하갈의 통곡을 들으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하나님. 하나 님이 하갈의 통곡소리를 듣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어쩌다가 들은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눈을 떼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어 하갈에게 물으십니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하나님이 몰라서 묻습니까? 다 알고 묻는 것입니다 알고 물으심은 도와주시겠다. 는 것이고 하나님이 너의 도움이라는 뜻입니다. 너의 의지할 집은 아브라함의집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길의 도움도 아브라함집이 아닙니다. 

나라가 여러분을 도울수 있는것이 아니고 대통령이나 정치가가 여러분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돈 많은 부자들이 여러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여러분을 도울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 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살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의지 할 곳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믿을 분은 하나님한 분밖에 없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곡을 기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한숨을 기도로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모든 것을 맡길 때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주신분이 우리 아버지요 하나님이십니다. 

보세요 통곡하는 그들에게 샘을 보게 하셨습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샘이 기도 하고 나니 보입니다. 이것이 축복이요 기적입니다. 기도 하지 않으면 곁에 있는 축복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물 한 그릇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먹어도, 먹어도 그치지 않는 샘을 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답답한 인생살이에서 목이 말라 갈증 난 인생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샘물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불행을 축복으로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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