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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이란 (히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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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히 11:1~3)
 
 
1. 믿음이 무엇인가? 

성도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믿는다’, 혹 ‘믿음을 가졌다’고 할 때, 그 말의 뜻은 무엇이며, 여러분은 어떤 의미로 그 말을 사용 하시는지요?

사실 이 ‘믿음’이란 말만큼 그리스도인들에게 친숙한 용어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이 저와 여러분의 존재 그 자체와 연관을 가진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란 우리의 신분, 우리의 일상생활 그 자체와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신자’, ‘예수쟁이’, ‘기독교인’ 등으로 부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도의 삶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는 말이며, 성도가 어떤 행동을 하면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바로 이 ‘믿음’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믿음’이라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나 여러분의 생활과 결코 떼어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성도들에게 ‘믿음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믿음에 대해서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입니다. 다시 한 번 여쭤볼까요? 믿음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나름의 답을 가지고, 오늘 본문이 이 질문에 대하여 답하는 것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2. 히브리서가 말하는 믿음

1) 히브리서의 메시지

히브리서는 다른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힘들어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권면하는 편지입니다. 저자가 이 편지를 적어 보낸 이유는 이 서신서를 받고 있는 주 대상자인 유대 기독교인들이 삶과 신앙에 있어서 위기, 고비를 맞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믿은 그들은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끊임없는 유혹과 협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이단을 믿는다고 집안에서 쫓겨나고, 마을 공동체로부터 쫓겨나고, 사업을 하던 사람은 더 이상 그 사업을 못하도록 방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격식과 형식이 뚜렷한 유대교에 비해 오직 은혜로만 주님께 나아가는 기독교가 유대인들인 그들에게 맞지 않아서 갈등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갈등 속에는 유대인의 율법에 비해서 아직 기록된 복음이 없다는 것, 유대인들에게는 동물 제사와 회당에서 드리는 공적인 예배가 있었지만 기독교는 아직 그런 것들이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것 등이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했으나 핍박과 함께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하여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받고 있었던 것이죠. 이런 유대인 성도들에게 히브리서 저자는 기독교 복음이 유대교보다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면서 기독교 복음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히브리서를 적었습니다. 

게다가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은 로마정부로부터도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미미하던 핍박은 점점 더 심각해져가고 있었는데요. 바로 그 중심에 네로 황제가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쓰고 받을 당시도 상당히 어려웠지만, 얼마 후면 네로 황제의 광기에 젖은 엄청난 박해가 교회와 성도들에게 몰아닥칠 것이기 때문에 저자는 미리 그에 대비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적어 보낸 것입니다. 즉 히브리서 저자는 로마의 박해를 받고 있던 유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는 믿음 위에 견고하게 서서 그 유혹과 핍박에 맞서 싸울 것과, 복음을 잘 간수할 뿐 아니라 그 복음을 전파하라는 권면을 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기록한 것입니다. 복음을 바로 알고 제대로 믿으면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려 한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진 저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기독교의 핵심이요 그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이 숭배하고 그들의 신앙의 핵심으로 여기는 ‘천사들’, ‘모세’, ‘대제사장’ 등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히브리서 전반부에서 증명합니다. 예수님은 천사처럼 영적인 존재인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인간이 되사 죽음을 맛보신 영원한 구속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라는 것을 설명합니다(1,2장). 천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분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지도자요 율법 전달자인 모세의 리더십과 충성을 논하면서(3,4장) 예수님은 모세보다 더 탁월하신 지도자시며 그의 충성 또한 모세와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설명합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아론과 같은 대제사장보다 우월하심을 증명하여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우월성을 설명합니다(5:1-10:18).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충성하신 결과, 인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누구든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살면서 그 영광을 누리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인간 대제사장으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상을 통해서 히브리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믿음은 그 믿는 대상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믿는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가 말하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시며, 그가 어떤 일을 하셨으며, 그가 일하신 결과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바로 알고 그 지식 위에 확고히 서는 것’입니다.

2) 10장 마지막과의 관계

이런 히브리서의 전체 주제와 더불어 오늘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히브리서는 그 전반부에서 예수님은 천사보다 더 뛰어나신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이 되셔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의 인도자로서 충성을 다한 것 이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에서 최고의 충성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뿐 아니라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심으로서 온전한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늘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고, 또 영원하고 무한한 하늘의 기업과 이 땅의 기름진 것을 누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 모두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이루신 일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결과, 우리가 누리는 것들이 이렇게 많다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저자는 그 답을 10장 38절에서 구약의 선지자 하박국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에 관한 교리를 설명한 후, 그 교리를 믿는 성도의 실제 생활에 대한 너무나 적절하고 훌륭한 결론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놀라운 일들을 우리를 위하여 해주셨으니, 우리는 그 주님과 주님이 하신 일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 11장은 10장 38,39절의 확대, 혹은 그 예를 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히브리서 전반부에서 우리가 믿어야할 것들을 말하고, 11장부터는 그것을 믿는 성도의 생활을 말하면서 그렇게 살았던 신앙의 선배들의 예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아주 중요합니다. 10장까지의 말씀과 11장 4절 이하에 나오는 내용을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말하고, 그 예수를 믿는 믿음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 믿음으로 살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하는 바로 그 중심 자리에 오늘 본문이 있다는 면에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3. 믿음은 ‧‧‧

자, 그러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라고 말합니다. 성경학자 Delitzsch는 ‘여기에 제시된 믿음의 정의보다 더 완전하고 더 정확하고 더 적절한 정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믿음의 정의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지요.

1) 바라는 것들의 실상(ΰποστασις; 實狀, 혹 實體), 혹은 확신

첫째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라는 것들”이란 성도의 신앙의 대상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10장 35절부터 39절까지에서 ‘미래의 상(償), 약속의 성취, 그리스도의 재림’ 등이 성도가 바라는 것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적으로 볼 때 “바라는 것”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모든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그 약속을 그대로 이루실 전부를 말합니다. 따라서 믿음이란 성도가 바라는 것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성도들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이 “실상(ΰποστασις)”이라는 말은 2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 첫 번째가 ‘확신’입니다. 즉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인데, 성도가 꿈꾸고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이 그대로 될 줄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이 그대로 될 줄로 확신하여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핍박과 고난의 폭풍이 불고 주님의 약속의 성취가 멀어져 보여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는 것입니다. 

둘째로 “실상(ΰποστασις)”이라는 말은 ‘실체’ 혹은 ‘바라는 것 그 자체’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 약속, 그리고 미래에 있을 일을 이미 소유한 현재의 것으로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즉 현실적으로 볼 때는 꿈에 불과하고, 미래에 그대로 될 지 안 될 지도 알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실재다, 현실이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를 들면, 믿지 않는 남편이나 자녀가 교회에 나오도록 기도해 왔고, 하나님께서 그대로 들으실 줄로 믿는다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직 교회 나오지 않는 남편이나 자녀지만 기도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되게 하실 줄로 믿는다면, 그들을 구원받은 백성으로, 교인으로 생각하십시오. 또 어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두고 기도했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줄로 믿는다면, 기도한 그 사람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을 이루어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미국의 어느 마을에서 가뭄이 하도 심해서 마을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기도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기도 하는 내내 “비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도 모여서 똑 같이 기도회를 열었고, 그때도 그들은 “비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회가 끝나갈 때 쯤, 정말 그들이 믿고 구한 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가 오자 사람들은 집으로 들로 가려고 했는데, 다들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우산이나 비옷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우산을 쫙 펴들고 비 속으로 가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동네의 일곱 살짜리 어린 소녀였습니다. 그 동네에서 제대로 된 믿음을 소유한 것은 그 일곱 살짜리 소녀 하나 뿐이었던 것이죠.

무슨 말입니까? 비 오기를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정말 비를 내리실 것을 믿었다면, 그들은 그 믿음대로 비가 올 것에 대해 대비를 해야 했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믿고 구한 것을 그대로 이루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믿고 구한 그것이 여러분에게는 사실이고 현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2)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두 번째로 오늘 본문은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 혹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보지 못하는 것들”, 혹 ‘보이지 않는 것들’이란 창조, 하나님이 과거 이루신 일들, 지난 역사, 영원한 생명,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등등을 말합니다. 그리고 신자 된 우리의 부활, 새 하늘과 새 땅 등 미래의 사건들까지 포함하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그의 능력 및 ‘하늘에 있는 것들’도 포함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은 믿음은 바로 이렇게 볼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증거’란 보여줌으로써 확신시킨다는 뜻입니다. 법정에 내놓아도 인정받을 만한 확실한 증거재료를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믿음은 환상이나 실체가 없는 그림자가 아닙니다. 어떤 것에 대해 자신이 그것을 확인한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확인시켜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불신자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이고 초자연적인 것들이고 신비적이고 미신적이며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것들일지라도, 믿음의 사람은 그것을 실재로 현실로 분명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리고 자신이 믿는 그대로를 체험한 후에, 그것을 세상을 향하여 증거자료로 제시할 수 있는 것,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성도는 보지 않았지만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압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이요, 세계의 시작이요, 인류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이 시작에 대한 논의는 인류 시작으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으며 그 답도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세계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인간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역사의 시작은 어떠한가?’... 이러한 가장 기초적이고 원시적인 질문에 대해 본문 말씀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매, 즉 명령하시자 무에서부터 만들어졌으며, 이것을 신자는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3). 우주, 천사 등 영의 세계, 온갖 동식물을 비롯한 자연의 세계, 지상과 해양과 저 하늘, 그리고 인간과 인간이 사는 공간 등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재료 하나 들이지 않고 오직 말씀으로 말이죠. 이런 우리의 믿음에 대해 불신자들은 뭐라고 말합니까? 그들은 우리의 믿음이 ‘지혜, 지식’과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를 “아무 것이나 쉽게 믿는 바보들”이고, 무식하고 모자라다는 말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들,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하고 체험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잖아, 그럼 없는거네?’ ‘뭐, 그렇겠지... 믿든지 말든지...그래도 나는 믿을래.’ 이런 태도가 아닙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구요? 자,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시고 살아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요? 자, 증거자료가 여기 있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이렇게 외치고, 그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이러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에 대해서와 주님의 복음에 대해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 바로 이것이 믿음입니다.

3) 신앙의 선배들이 가졌던 믿음(2절)

신앙의 조상들, 곧 창세 이후 모든 신앙의 인물들은 바로 이러한 믿음으로 살았고, 그러 했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은 아주 길게 믿음의 선배들에 대한 것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늘 본문이 말하는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들의 믿음이 그대로 되어 세상을 향하여 “이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제시할 증거는 얼마나 되는지요?


4. 온전한 믿음의 사람

말씀을 맺겠습니다. 신자 자신과 그의 생활은 모두 믿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시며, 그가 하신 일은 무엇이고, 그가 하신 일의 결과 신자에게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그 사실 위에 바로 서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장차 될 일 즉 바라는 것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그것을 사실로,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시고 약속하신 것들이 비록 눈으로 확인할 수 없고 장차 이루어질 미래의 것들일지라도, 그 모든 것들이 실재함과 그대로 될 줄을 확신하는 것이고, 이미 소유한 현재의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한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 없으며 육신으로는 도무지 풀 수 없는 것들을 보고 체험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신앙의 선배들이 바로 이러한 믿음으로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고 이러한 믿음을 가진 그들을 기뻐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더 많은 증거를 보여 주심으로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주님은 본문이 말하는 바로 이러한 믿음 위에 여러분이 서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바른 믿음 위에 여러분이 굳게 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현실이 되고, 볼 수 없는 것들이 여러분으로 인하여 볼 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죠. 이러한 믿음을 가진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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