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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조용한 기적 (요 2:1~11) - 가나 혼인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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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기적 (요 2:1~11)
      
EBS의 다큐 프로를 보니까 잡지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하기 때문에 잡지를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잡지 판매율이 매년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잡지 산업이 생존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판매 부수를 늘릴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표지에 유명 연예인의 사진을 싣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타임지든 뉴스위크든 연예인을 표지 커버에 실으면 판매율이 높아지고 그리고 연예인의 신상에 대한 기사를 실으면 사람들이 사서 본다고 합니다. 어느 연예인이 어느 연예인과 사귀다가 깨졌다느니, 누가 누구의 결혼식에 참석했다느니, 이런 것을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이라크 전쟁에서 찍은 사진은 500불밖에 주지 않지만 예컨대 안젤리나 졸리, 이런 연예인이 걸어가면서 커피를 마시는 사진을 찍으면 그건 100만 불짜리 사진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누가 누구와 커피를 마시면서 길을 걸어가는 것은 전혀 뉴스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사람들이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그런 것을 읽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골치 아픈 이라크 전쟁이니, 고유가니, 이런 것에 대해서 읽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잡지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게 포장돼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별게 없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대중의 무관심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대중문화라는 것이 사람들을 무지하게 만들고 무관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우려를 할 수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예수님은 이천년 전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사도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고 교계 지도자들에게만 하신 말씀도 아니고 또 지식인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고 모든 사람, 남자든 여자든 모든 종류의 사람, 적어도 예수 믿는 사람 모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이런 것은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것이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에 대하여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의 나라와 남의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이냐? 내가 신앙 잡지를 구독하고 교계 뉴스에 대해서 밝아야 되는 것이냐? 그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는 일은 멀리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를 이곳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에 두신 목적은 이곳에서 하는 일이 있고 이곳에서 믿음의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대한민국 교회를 이곳에 세우셔서 싸움과 죄악의 참혹한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회개하고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고 이곳에서 우리가 믿음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은 이곳에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의 의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마리아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왜 가톨릭 신자들이 마리아에게 기도를 하느냐? 그것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직접 아뢰는 것은 어렵지만 마리아에게 아뢰면 마리아의 청탁을 예수님이 거부할 수 없지 않겠느냐, 오늘 본문에서도 마리아의 청탁을 예수님이 들어주신 것처럼 마리아에게 고하면 예수님이 그것을 들어주실 것이다, 이 생각에서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이 비롯된 것입니다마는 그런 식으로 하면 언제 하나님 아버지에게 구하겠습니까. 

성경적인 신앙은 아버지께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믿음을 강조하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에게 계시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죄가 있는 사람이든, 자격이 없다고 염려하는 사람이든, 죄인이든, 처음 믿은 사람이든, 누구든,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고 하나님에게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이 들어주실 줄 믿으라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골자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에게 기도할 정성이 있는 사람은 아버지에게 구하면 됩니다. 할렐루야! 마리아에게 기도할 정성이 있는 사람은 아버지에게 구하면 들어주실 줄 믿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 결혼잔치는 남의 잔치입니다. 마리아의 집안 일이 아닙니다. 마리아의 혼사가 아닙니다. 마리아의 일이 아닙니다. 남의 일입니다. 손님으로 초청받은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든 망신을 당하든 그것은 결국은 남의 책임이고 남의 일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것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포도주는 언젠가는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시고 마시면 언젠가는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마는 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너무 일찍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잔치가 끝난 다음에 떨어지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 잔치가 진행 중인데 벌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건강이 다하게 돼 있고, 언젠가는 우리가 누리는 것이 한계에 봉착하게 돼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일찍 그것이 닥치면 그것은 우리에게 큰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정부도 어차피 대통령이든 정권이든 그들의 인기는 떨어지게 돼 있지만 너무 일찍 문제가 발생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너무 일찍 문제가 발생됐습니다. 일을 해 보기도 전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 정부의 위기인 것 뿐만이 아니고 국가적인 위기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가 현재 대통령을 찍었든 안 찍었든,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든 아니든 간에 일단 그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이상 정부에게 생긴 문제는 국가의 문제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이것이 마리아의 가문의 문제가 아니고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리아는 여기에 대해서 염려하고 그리고 예수님에게 이 문제에 대해 청원합니다. 이 순간 마리아는 예수님을 자신의 아들로서 대한 것이 아니고 메시야로서 대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아들로서의 예수님은 어떻게 할 수가 없지만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마리아가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에게 고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퉁명스럽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여인이여’ 어느 아들이 어머니를 여인이라고 부르겠습니까마는 이것은 그 당시의 언어문화입니다. ‘여인이여 이 일이 내가 여기에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예수님 말씀에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예수님 말씀이 옳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일은 예수님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이 혼사집 주인의 실수이고 그 사람의 책임입니다. 이 일을 가지고 예수님을 귀찮게 하는 것은 사실은 정당하지 못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면 물을 마시면 되고 물이 떨어지면 집에 가면 됩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적어도 잔치는 잔치가 되어야 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내세를 믿고 천국을 믿고 또 우리의 소원을 하늘나라에 두지만 현세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세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만약 병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고쳐달라고 했을 때 어차피 사람은 죽게 돼 있는데 나중에 죽느냐 지금 죽느냐에 차이가 있는 것이지 어차피 죽을 인생 그렇게 건강과 생명에 연연하느냐고 말씀하신다면 거기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사람은 죽게 돼 있고 예수님도 그 사실을 아시지만 병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물리치지 않고 다 불쌍히 여기고 고쳐주셨습니다. 어차피 죽을 인생, 언젠가는 다시 병들어 죽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주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생을 긍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일을 부인하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혼인잔치에서 너무 일찍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마리아는 그것을 체념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아뢴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를 대변합니다. ‘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맞는 얘기에요. 사람들이 염려하고 하나님께 구하는 많은 일들은 실제로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일들입니다. 우리의 잘못 때문에 생긴 것이고 우리의 부족함 때문에 생긴 것이고 하나님 나라와 상관이 없는 것들을 우리가 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소원과 우리의 기도 제목들을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사실 하나님과 별로 상관이 없는 일에 대하여 우리가 염려하고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은 당신과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것을 권념하시고 도와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를 대변하고 마리아의 말은 신심(신앙심)을 대표합니다. 인간의 신앙은 반드시 진리의 잣대만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라는 것은 엄격합니다. 거기에는 국물이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진리의 잣대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잣대로 의하면 천국에 들어갈 사람, 여기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죄인이고 다 흠이 많고 하자 투성이에요. 진리의 잣대만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진리와 신심이 만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신심과 진리가 만나고 어떻게 보면 진리가 신심에게 양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내가 하겠습니다 하고 승낙하지는 않았지만 마리아는 미리 하인들을 준비시킵니다. ‘무슨 말씀을 하든지 그대로 하라’ 이것이 믿음이에요. 주님의 응답이 아직 오지 않았지만, 주님의 뜻을 우리가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성품과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미리 응답받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이 한 걸음 더 앞서 나가는 것입니다. 불신의 사람은 불평하고 현재 문제를 인식하고 지적하는 것은 잘 할지 모르지만 진짜 믿음의 사람은 문제를 제시하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앞서 나가서 하나님이 응답하실 줄 믿고 미리 응답을 받을 준비를 하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 올라갈 때 그가 한 말이 ‘하나님이 당신의 산에서 예비하시리라’ 여기에서 ‘여호와 이레’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예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예비하신다 라는 것을 고백한 것처럼 그래서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그래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십니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이 공항 세관을 통과하는데 ‘트렁크를 열어주십시오.’해서 열었더니 거기에 물병이 여러 개 있더래요. 그래서 ‘이게 뭡니까?’ ‘성지에서 가져온 성수입니다.’ ‘그래요?’하고 세관원이 그것을 열어서 손가락으로 맛을 보더니 ‘성수 좋아하시네, 이건 술인데요?’ 그랬더니 ‘아!!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기적은 조용히 일어났습니다. 아주 조용히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마리아와 그 물을 길어간 하인들 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이렇습니다. 마리아가 이건 내 일이 아니다,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다 하고 모른 척 할 수 있었습니다. 그냥 떠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잔치에 손님으로 초대받은 이상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의 위기를 남의 탓으로 몰면 끝입니다. 누가 잘못했기 때문이고 내 일이 아니라고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배에 타고 있는 한은 우리의 일입니다. 잘 돼도 우리의 일이고 잘 못돼도 우리의 일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문제를 지적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첫째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고, 
둘째는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있고 
셋째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문제 지적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죄의 문제, 인간의 도덕적인 문제, 영혼의 문제, 누구든지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건 노력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것은 우리의 죄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기도하게 하시는 것은 세상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것이 해결 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이제 누구를 탓하고 원망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우리의 눈을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들어 위를 바라봐야지요.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다. 우리나라를 도울 수 있는 분도 결국은 하나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은 조용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겉으로 봤을 때는 우리나라가 잘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요. 나라는 좁고 자원은 없고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잘 될 만한 이유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망하지 않고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잘 될 수 있을 것을 믿는 이유는 우리의 도움이 하나님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지금까지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이 포도주에 대한 사실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9절 말씀에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알지 못합니다. 이 도움이 어디서 왔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누구만 아느냐?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사람만이 압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릅니다. 이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하게 됐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물 떠온 하인들만 압니다. 일하는 사람, 섬기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수고하는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은 모릅니다. 

그래서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취하면 안됩니다. 취하면 판단력을 상실하니까.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나님은 지혜가 다하지 않고 하나님에게는 아이디어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숨겨놓으셨을 수 있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습니다. 더 좋은 포도주를 하나님이 예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해야 됩니다. ‘하나님,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하나님, 지혜가 떨어졌습니다. 기쁨이 떨어졌습니다. 내가 피곤합니다. 내가 곤고합니다. 하나님 도와주옵소서.’ 그럴 때 차라리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축복이 되어서 더 좋은 포도주, 더 좋은 일, 이 민족을 위하여 더 좋은 길을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그것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고 구해야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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