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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가져야 할 소원 (왕하 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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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져야 할 소원 (왕하 2:7~11)


30-50대의 남자들에게 이런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이 만약 로또에 1등이 당첨되면 뭘 하고 싶습니까?” 이런 저런 대답을 모았더니 1위가 이혼하겠다는 겁니다. 그동안은 돈이 별로 없어서 지금의 저 아내와 살지만 돈만 많으면 좀 더 예쁘고 젊은 여자와 살겠다는 심보 아닙니까? 

사람은 나름대로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성도들 중에 그런 소원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내가 로또 1등만 당첨돼 봐라. 내가 니하고 이혼하겠다. 이런 마음...사람들은 나름대로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있지만 말 못할 소원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또 대외발표용 소원도 있습니다. 예수 믿는 분이 그런 소원이 많습니다.

집사님, 성도님 소원이 뭡니까? 예, 저는 돈버는 것도 관심없고, 잘되는 것도 관심없습니다. 그저 예수님 잘 믿는게 소원입니다. 이런 대외발표용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원을 가지고 사십니까? 예수믿는 것은 소원 성취를 위해서 믿는게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 좋은 소원가지고 그 소원을 하나님의 은혜와 나의 수고와 노력으로 이루어가는 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팔자고치고, 만사형통하고, 안되는 것도 되고, 병고치고, 시집장가 잘 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건 예수 믿으면 부산물로 주시는 것이기도 하지만,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이 새로운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가운데서 성령의 역사하심가운데서 이루어가는 것이 그게 예수 믿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원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갑니다. 그러나 달려가지만 어떻습니까? 나중에는 참 허무합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까? 얼마나 많은 콤플렉스에 시달립니까? 그래서 그런 것들을 채우기 위해서 사람들은 그 스트레스와 콤플렉스를 어디서 보장받기 위해서 이런 저런 일들을 하는 것이 우리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나 사실 바르고 열심히 살면서 그 삶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길을 열심히 달려갈 수 잇다면 그게 행복입니다. 저는 저의 교회 성도들에게 자주 그런 말을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 믿고 정말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합니다. 성경에도 행복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것은 세상이 말하는 행복과는 다른, 차원이 다른 하나님이 주신 진짜 행복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열심히 믿음의 스승을 따라서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사입니다. 엘리사는 참 좋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엘리사의 스승이 누굽니까?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참 어두운 시대에 혜성같이 나타나서 하나님께 아름답게 쓰임받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서 수많은 이적과 일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엘리야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었지만 그 중에 엘리사라는 열심히 특심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따르기를 작정하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이것저것 재지 않고 앞만보고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처음 엘리야가 그를 부를 때 소 스물네마리를 다 팔아서 사람들에게 다 나눠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 다 버리고 따라 갔습니다.

믿음 좋은 사람의 특징은 내가 이 길을 가겠다고 결심을 하면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우직스럽게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엘레사의 스승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사역을 다 마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가 되었습니다. 길갈에서 엘리야가 벧엘로 떠나려고 합니다. 그 때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를 따라갑니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결단코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엘리야가 이제 됐다. 너는 이제 이곳에 머물러 있어라. 이만큼 따라왔으면 되었다고 하니까 따라가겠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어서 엘리야는 엘리사를 따라오게 합니다. 그 다음 벧엘에서 여리고로 옮깁니다. 그래도 따라갑니다. 오지말라고 해도 따라옵니다. 어쩔 수 없이 거기까지 오는 걸 허락합니다. 요단으로 가려고 하는데 또 따라가려고 합니다. 왜 이런 간절함이 있었겠습니까? 스승이 오지말라고 하는데도 끝까지 따라가려는 간절함이 있었겠습니까/

엘리사의 마음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스승 엘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셨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믿음의 본을 보인 종이였기에 엘리야를 따라가는 길이 단지 스승을 따라가는 길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서 엘리야는 그에게 이런 요구를 합니다. 니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니 소원이 무엇이냐? 그러자 당신에게 영감을 갑절이나 내게 주십시오라고 합니다.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원하나이다. 

영감이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영감은 히브리말로는 루아흐, 하나님의 숨결, 하나님의 영이라는 뜻입니다. 그 영감이 엘리야게 얼마나 충만했겠습니까? 그 영감의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갑절이라는 말은 신명기 21장에 의하면 하나의 관용적인 표현으로 장자의 몫이라는 표현입니다. 갑절이나 있기를 원한다는 것은 내가 장자의 몫을 받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영과 혼과 육의 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히브리서 4:12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육, 우리의 육신을 말합니다. 동물도 가지고 있는 몸, 피부를 말합니다. 혼은 이성을 말합니다. 이건 인간만이 가진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이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도덕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안믿는 사람은 여기 까지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자녀삼으시고 구원받은 사람은 영이 있습니다. 그 영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세례를 받고 그 때부터 우리는 성령이 내주하시는 영의 사람이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거듭난다. 다시 태어난다. 살아있다록 합니다.

영이 죽은 사람은 아무리 살아있어도 아무리 생생하게 아무리 체력을 자랑해도 그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죽은 사람입니다. 저는 바라기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은 다 영이 살아있는 진짜 산 사람인줄 믿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영이 살아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우리는 어디다 투자를 많이 합니까? 이 육에 돈을 많이 습니다. 얼굴 고친다고, 몸 고친다고 돈을 얼마나 많이습니까? 여자들은 화장한다고, 몸이 좀 뚱뚱한 사람은 흙이 좀 더 붙어 있는 것이고 날씬한 사람은 흙이 좀 덜 붙어 있는 것인데 이 육에 얼마나 투자를 많이 합니까? 그것 좀 잘보이게 하려고 온 몸을 똥으로...루뷔똥 있잖아요. 그렇게 한다고 뭐가 좋아지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어느 부분이 가장 소중한지 알고, 내가 어느 부분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어느 부분에 더 건강하고, 어느 부분에 더 살찌우기를 원하는가하는 관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기력한 교인하고, 일찍 남편이 돌아가신 할머니하고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건 영감이 없다는 겁니다. 사람은 그 관심사에 따라서 기도제목이 달라집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대로 따라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스승이 갔던 바로 그 길,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하나님이 뜻하신바대로 순종하는 바로 그 길, 그 길에 그는 열심히 특심이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우리 모두에게 본이 되는 아름다운 소원을 드디어 말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참 불쌍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현재 세계의 CEO중에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사람을 꼽으라면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애플 컴퓨터의 스티븐 잡스 회장일 것입니다. 그 회장은 경영의 귀재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보다 경영면에서는 더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특징은 훌륭한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스카웃한다는 겁니다. 코카콜라 회사의 존 스카치 사장이 뛰어나요. 미국 전체를 관장하는 사장인데 아주 뛰어난 실력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애플 컴퓨터의 스티븐 잡스가 그를 스카웃하려고 무지 애를 섰습니다. 최고의 연봉과 좋은 대우를 제시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그 귀한 일생을 설탕물이나 팔면서 낭비하겠소. 이왕이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인생을 투자해보지 않겠소.” 이 말에 존 스카치가 감동을 받아 코카콜라를 떠나 애플로 갔습니다. 

한국에서는 코카콜라가 별로 인기가 없다고 들었는데 미국에서는 콜라가 음료수가 아니라 거의 물처럼 마십니다. 일대 회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사람의 몸 속에, 혈관속에 피가 아니라 콜라가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대 회장은 우리의 경쟁상대는 펩시도 아니고 다른 음료수도 아닙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물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이 모든 세상의 인류의 물보다 콜라를 더 많이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며 섬짓한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들 소원대로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애플 컴퓨터의 말대로 설탕물이나 만들어 파는 사람들도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그 목표에 대해서 열정이 뛰어나다는 겁니다.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처절하리만큼 냉철하고도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설탕물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수 물을 나눠주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어떻게 이 샘물들을 나눠줘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마시는 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이 샘물을 사람들에게 잘 나눠주고 잘 마실수 있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영적 목표를 세우고 이런 영적 목표를 향해서 함께 달려가고 ‘하나님 나로 하여금 이 영원한 샘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이 영원한 샘물을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 이 샘물을 마시지 못해서 갈증을 느끼고, 무엇을 먹어도 목마른 이 세대에 영원한 샘물이신 예수 그리스도 잘 전하는 일에 내가 좀 더 쓰임받기를 원하고, 좀 더 풍성하고 맑고 깨끗한 샘물을 나눠주기를 원합니다.’ 이런 소원가지고, 이런 열정가지고 기도하며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열심을 바칠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인줄 믿습니다. 돈 많이 버는 것이 전부입니다. 조금 편리하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살다보면 점점깨달아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다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전부다 예수 잘 믿고 싶어합니다. 예수 잘 믿고자 하는 바램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제대로 잘 안됩니까? 왜 다른 사람들, 잘 믿는 사람들 간증 들면 괜히 위축이 들고, 스스로 쪼그라드는 생각이 듭니까? 하나님의 영이, 성령의 역사하심이 내게 충만하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충만한 삶, 그렇게 쉬운 삶이 아닙니다. 엘리사가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원합니다라고 할 때 엘리야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야 너 그것 참 좋은 소원가졌구나! 역시 엘리사답구나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에 보면 네가 참 어려운 것을 구하는도다라고 합니다.

내가 성령충만하게,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주의 영이 이끄는대로 성령의 소욕을 이루는 삶이 쉽지만 않다는 것입니다. 참 만만치 않은 세상아닙니까? 우리 세상을 사는 것이 쉽습니까?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죽으면 다 천국갑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천국은 우리 인생의 목표가 아닙니다. 천국은 우리 인생의 최종 목적지이지 우리의 목표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고, 이 땅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하는 것이고, 이 땅에는 아직도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어리섞은 사람들에게 참 진리가 무엇이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아버지께로 올 수가 없다는 이 진리를 선포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공중권세를 잡은 자들에게 붙들려 있는 이런 안타까운 심령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광명의 빛으로 비춰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요 우리의 사명입니다.

많은 경우 그저 예수님 이렇게 믿다가 천국가면되지. 만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으니까 하나님 나 구원하지 않으면 하나님 손해지 라고 하며 산다면 참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불가운데서 건져낸 것과같은 참 부끄러운 구원밖에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영이 충만한, 영성이 충만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깨끗하고 순결한 영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엘리야는 힘들 때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영성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엘리사는 그런 영성을 받기를 원했고, 그 영성의 갑절이나 더 있기를 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젊은 청년시절에 낙산이라고 하는 곳에 친구들과 함께 여름에 캠핑을 간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머리가 잘 정리가 되었지만 그 때는 제가 굉장히 장발이었기 때문에 꼭 예술하는 사람처럼 보였나 봅니다. 어느날 해변가를 걷고 있는데 어떤 한 사람이 날 좀 보자고 하면서 자기를 시를 쓰는 사람인데 자기가 쓴 시가 있는데 거기에 곡을 붙여달라는 겁니다. 저는 음악도가 아닙니다라고 해도 내가 딱보니까 당신은 음악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자기 시를 하나 읊어줍니다. 그런데 그 읊어 주던 시가 아직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시입니다. “산위에 오르면 구름 가는 소리 바다에 나가면 파도치는 소리 거리에 나가면 사람 가는 소리 두 눈을 감으면 세월 가는 소리.” 

그런데 저는 그 시가 떠오를 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 우리가 산위에 오르면 구름 가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바다에 나가면 파도치는 소리를 들을 수있고, 거리에 나가면 사람 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좀 민감한 사람은 두 눈을 감으면 세월 가는 소리는 들을 수 잇을 지언정 우리가 주님의 소리를 듣는 귀가 좀 둔감하여 지지는 않았을까? 

옛날에 말씀하셨던 그 주님의 음성, 엘리야에게 말씀하셨고, 엘리사에게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은 없어졌습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은 그 시대나 지금 시대나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귀가 어두워져서 우리의 영적인 귀가 자꾸만 먹어져 가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뉴스 소리에 잔득 귀를 기울이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어디 좋은 정보 없을까? 건강 정보, 생활정보, 주식 정보 이런대만 우리가 너무 귀를 기울이다 보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점점 어두워져서 동일하게 하나님은 말씀하시는데 그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잇습니다. 세월가는 소리는 듣고 있지만 주님의 음성은 못 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사야 50:3절에 말씀하신대로 학자의 귀가 되셔서 주님의 음성 잘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의 다른 소리 잘 못들어도 괜찮습니다. 뉴스 좀 놓쳐도 괜찮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세미한 음성, 얼마나 귀한 음성입니까? 

꽃가지에 내리는 가는 빗소리 가만히 귀기울이고 들어보세요. 너희들도 이꽃처럼 마음이 예뻐라. 우리가 어릴 때 불렀던 어린이 찬송가 가사처럼 그 찬양속에서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면 얼마나 복된 귀이겠습니까? 물론 말씀을 증거할 때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한문제를 놓고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묵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문제를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혹 자녀의 성적을 놓고 반복적으로 묵상하고 계시면 그 결과는 걱정만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반복적으로 생각하십시오.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참 꿀송이보다 더 달고, 정금보다 더 귀한 그 진리들이 내 속에서 내 삶을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내가 염려하고 걱정하던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심을 말씀속에서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이미 내 기도가 응답되었다는것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깊은 영적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속에서 하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가져야 할 소원은 어떤 소원이겠습니까? 지금보다 훨씬 강하게 다스리시고 지배하여 주시옵소서. 나를 그냥 두지 마시고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까지 간섭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영의 사람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말이나 뜻이 지배되는 곳이 아니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여가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성령의 인도하심을 사모하십니다. 여러분 바쁘십니까? 요즘 바빠서 성경 볼 시간이 없고,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만큼 더 바쁜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님 그렇게 바쁘셨습지만 여우도 굴이 있고, 새들도 깃들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곳이 없도다라고 하실 만큼 바쁘셨지만 주님은 새벽 미명마다 나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틈나는 대로 하나님의 교제를 미루지 아니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더욱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기 위하여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 음성듣기 위하여 엎드립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의 자아, 나쁜 것들, 쓸데 없는 것들, 다 비어주시고, 그 속에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혹 이런 부담을 가지시는 분이 있습니까? 설교를 할 때 기도 많이하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기도하러고 하면 할 말도 없고, 하나님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여러분 그런 갈등을 느껴 보신분 있습니까? 미국에는 한국의 드라마들이 나옵니다. 사극이 케이블 TV에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1.5세 2세들은 우리 말이 서툴러서 영어 자막이 나옵니다. 사극에 영어 자막이 나옵니다. 영어 자막을 보면 재미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하 성은이 만극하옵니다.” 뭐라고 자막이 나오냐면 “Thank you" ”전하 통촉하여주시옵소서“라는 말은 I'm sorry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땡큐라고 할 말이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있는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아임 쏘리하고 싶지. 내가 미안한 것을 다 알아, 내가 잘 살려고 했지만 노력했지만 예수 잘 믿으려고 했지만 순간 순간 너에게 다가 오는 유혹, 세상의 물결이 무서워서 잠깐 나를 피했다고 생각하지. 너 지금 아임 쏘리하고 있지. 내가 다 알고 있지. 이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뭐라고 중얼거려도, 하나님은 진실한 그 뜻을 다 알아주실 줄 믿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7년전에 911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 때 세계가 놀랄 일이었습니다. 제가 있는 도시, 저의 교회 4층에 올라가면 그 쌍둥이 빌딩이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맨하튼입니다. 저는 그 날 오후 내내 그 건물이 불타는 것을 망연자실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911사태가 일어난 얼마후에 워싱턴 백악관에서 미국의 의원들이 모여서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 빌리그레함 목사님께서 설교하셨습니다. 그 설교를 잠깐 소개하고 싶습니다.

<참 끔찍한 사건이고, 충격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필요함을 고백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나라가 세워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더욱 절실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이해해야 합니까? 지금까지 수많은 질문을 받아왔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런 비극과 고통을 허락하셨는지 솔직히 저 자신도 만족할만한 대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거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 일로 생명을 잃은 많은 수가 천국에 가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곳은 영광스럽고 다시 오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피랍된 비행기들이 쌍둥이 빌딩으로 돌진하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건물들은 미국의 부와 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상층부분이 파괴된 그 건물들은 그 무게 때문에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밑에 기초가 된 암반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세운 최고의 빌딩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암반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어떤 것이라도 무너질 때가 되면 무너지게 됩니다. 날아갑니다. 그러나 만세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주님이 우리의 반석이 되시고 그 주님이 나의 요새가 되시고, 나의 산성이 되시는데 뭐가 부족하며 뭐가 두렵습니까? 그 주님이 내게 주시는 능력과 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으로 인하여 내가 가지는 영광이 우리를 붙드는 능력이 됩니다. 미래를 보는 힘입니다. 그리고 모든 장애를 뛰어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도 사람들은 뭔가 하나를 잃어버리면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같이 착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좀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부도나다고 포기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젊은이는 대학 입시에 실패한 것에 비관하여 인생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꽤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랑을 실패한 것 때문에 평생토록 이성을 저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하나가 아니라 둘, 셋, 다 잃어버려도 하나님만 내게 계시면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렇게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제가 깨닫은 것 살다보면 왜 어려운 삶이 없겠습니까? 왜 힘든 일어 없겠습니까? 왜 살다보면 한 순간 눈물골짜기를 통과 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을 겪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주시라고 하시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잘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시련은 있어도 시련의 현장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기에 우리는 그 손 붙들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영성, 영감,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엘리사가 엘리야를 졸졸 따라 다니면서 끝까지 따라 다니면서 그에게 요구했을 때 엘리야가 어렵다고 말하면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네게서 어떻게 취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안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불말과 불병거를 데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특이한 죽음을 보지 않고 갔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왜 엘리야가 다른 사람들은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맞이했지만 엘리야는 하나님의 뜻이 한 가지 알 수 있는 이유는 엘리사에게 엘리사가 구했든 바로 그 갑절의 영감을 응답해주신다는 증표로써 엘리야를 데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하는 자에게 표적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소원이 있습니까? 여러분 어떤 것을 바라고 계십니까? 갑절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영적 비상에 걸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아까 장로님 기도하시는 가운데 이 나라를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미국에 있으면서 이 광우병 소식을 많이 들었습니다. 미국 교포들은 소고기 아무런 염려없이 자유롭습니다. 저도 그의 날마다 소고기 먹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이 유혹하는 사탄은 예수 잘 믿고, 예수 믿는 것을 당당하게 밝히는 대통령을 사탄이 얼마나 싫어하겠습니까? 확 눌러놓아야 그들이 즐거워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런 장난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관점이 다 다르겠지만 영적으로는 그렇다고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인 비상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감성이나 이성은 날로 발전하지만 영성은 날로 퇴보해 가는 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갑절이나 더 악하여서 설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무장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 우리에게 갑절이나 더 되는 갑절의 영감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갑절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갑절의 성령충만을 주시옵소서. 내가 이전보다 배나 더 충성하게 하시고. 내가 이전보다 배나 더 은혜가 필요합니다. 더 많이 섬기기를 원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소원 가지고 믿음의 거장이 되길 원합니다. 

내게 지금까지 은혜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목사님을 통해 많은 지도를 받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이것을 바탕으로 갑절의 은혜를 더하시고, 열심을 더하시고. 사랑을 더하셔서 하나님, 앞으로 남은 인생은 갑절의 은혜로, 갑절의 능력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런 소원 함께 가지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이 엘리사를 쓰셨던 것처럼 귀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능력있게 사용하시는 귀한 도구들로써 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힘차게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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