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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전(殿)에서(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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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殿)에서(전5:1-7)

프랑스의 루이 14세(Louis XIV) 때입니다. 주일이 되면 루이 14세는 왕족과 가족들을 거느리고 프넬론 대주교의 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교회는 항상 붐볐습니다. 대주교는 교인들을 시험해 볼 생각을 합니다. 교인들이 예수 때문에 오는지 왕에게 보이러 오는지 알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대주교는 왕이 교회를 나간 후에 "다음 주일에는 왕이 못 오십니다" 라고 광고를 했습니다. 다음 주일입니다. 왕과 왕족들이 교회에 왔는데, 교인들은 하나도 없고 대주교만 있습니다. 루이는 깜짝 놀라며 "교인들이 다 어디에 갔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때 대주교는 대답합니다. "아무래도 교인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폐하를 만나러 오는 것 같습니다. 폐하께서 못 오신다 했더니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현대를 예배 위기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란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부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감사하며 찬양하며 높이는 것입니다. 예배는 감동이 있어야 하며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입으로는 고백하지만 온전히 경배하는 마음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인 교회들이 무능하게 전락되고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립됩니다. 영이 소생합니다. 염려와 근심으로 쌓여 있던 마음들이 자유하게 됩니다. 육체의 질병이 치유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殿)은 성전을 의미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장소입니다. 솔로몬은 최초로 성전을 건축한 사람입니다. 그는 성전 건축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일을 회상하고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헛됨을 알고자 하는 자들과 피조물 속에서 쓸데없이 행복을 구하려고 하는 자들을 성전으로 보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에게서 실망을 당하게 될 때 우리도 눈을 창조주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전에서 기도할 때 들으십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희생을 드릴 때 받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무엇을 우선하십니까? 사람과의 만남이 우선입니까? 사람과의 대화가 우선입니까? 사람과의 교제가 우선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1장 12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예수께서는 마가복음 7장 6절에서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즉 몸 따로 마음 따로 하는 형식적인 예배는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는 자가 지킬 원칙들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전에서는


첫째로 삼가해야 

보스톤의 고든(A. J. Gordon)목사는 능력있는 유명한 설교자입니다. 어느 날 설교를 준비하다 잠이들어 책상에 엎드려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주일날 교회는 의자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며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 가운데 30세 정도의 낯선 사람에게 자꾸 시선이 끌립니다. 그는 예배가 끝난 후 그 낯선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낯선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고든 목사는 안내위원들에게 그 낯선 사람을 아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안내위원이 말합니다. "그 사람요, 알고 말고요. 그 사람은 예수라는 사람입니다". 그 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 후 고든 목사는 회중 가운데 항상 예수께서 계신다고 믿고 설교하였습니다. 교인들도 예수를 중심에 모신 것으로 믿고 세상적인 것들을 삼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자 예배는 역동적인 예배가 되었고, 교회는 많은 선교사업을 하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여기의 '삼가다' 라는 말은 원어로 '솨마르' 입니다.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 라는 뜻입니다. 철저하게 지키고 보존하라는 의미입니다. 즉 '네 발을 삼가라' 는 것은 영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지키고 보존하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만남이 사라진 예배는 헛된 예배입니다. 영적 만남을 위해 하나님의 전에서 경거망동한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신중하고 거룩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예배 외의 다른 목적으로 가는 발을 삼가 해야 합니다. 오로지 하나님께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일에 치중해야 합니다. 귀로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경청하여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궤뚫어 보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말씀을 들어도 사랑을 못 느끼겠고 위로도 못 받겠고, 가책도 못 느끼겠고 찔림도 없습니까? 그리하여 회개와 결단도 없이 일어나는 예배가 아니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모세를 통해 주시는 말씀이지만, 그 말씀 앞에서 떨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대로 시행하지 않는 것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전에서 다른 일은 삼가고 오직 말씀을 듣는 일만이 목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하여 인간적인 것들을 삼가야 합니다. 영적인 가치들을 지켜나가는 일에 더욱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기도해야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Juan Carlos Ortiz) 목사의 '기도(Prayer)' 라는 책에는 충격적인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우리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우편물처럼 취급당합니다". 이메일(E-mail)을 보면 쓰레기 같은 메일이 수도 없이 날아옵니다. 그래서 읽어보지도 않고 지워버립니다. 바로 스펨 메일(Sperm Mail)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나라에서 이렇게 취급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하나님 나라에서 소중하게 읽혀지는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절대로 쓰레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른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이는 예배자의 기도에 대한 자세입니다. 단순히 기도와 말만을 짧게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함부로' 와 '급한' 마음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것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성을 다해야 하며 기도한 대로 살려는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길게 하고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실수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는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정성을 다한 간결하고 경우에 맞는 말은 은쟁반의 금사과처럼 아름다우며 사람의 마음을 열며 서로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무슨 일에 힘을 쓰고 계십니까? 혹 우리는 하나님의 전을 인간의 말만 무성한 강도의 굴혈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리챠드 포스터(Richard J. Foster)는 '기도(Prayer)' 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상처를 받으신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지 않은 채 먼 거리에서 일방적 요구를 할 때 하나님께서 상처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떼쓰며 간청할 때 상처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것은 외면한 채 무조건 많은 것, 무조건 큰 것만을 요구할 때 상처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기도가 아닙니까? 기도로 인한 하나님과 정상적인 교제는 최상의 행복입니다. 기도는 길이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서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길이보다 깊이를 보십니다. 짧은 기도라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드리는 기도는 감동이 있습니다. 뜨거움이 있고 간절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인간적인 말만 일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기도를 드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경외해야

1955년 쉰 살이 넘은 나이에 흑인 최초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관중을 열광시키며 감동적인 노래를 부른 여자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로 마리안 앤더슨 (Marian Anderson)입니다. 공연 후 기자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녀는 하늘을 응시하더니 이렇게 대답합니다. "견디기 어려운 일에 부닥칠 때마다 언제나 제 시선은 고난과 부활의 주께로 향했지요. 그때마다 주님은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고 말씀하셨어요." 그녀는 어려서부터 인종과 피부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불행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녀의 믿음은 고난을 이기게 하였고 더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세상일에 지나치게 분주함과 무분별한 언사는 신앙의 정도(正道)에 걸림돌이 된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분주하게 도모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중요하고 급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보다 먼저 되거나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우상을 치워 버려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만 경외해야 합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선이십니다. 가장자리가 아니신 중심이십니다. 하나님 먼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형통합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섬기면 놀라운 복을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함이 생명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영혼이 잘 되는 길이요, 범사에 잘되는 길이요, 건강하게 되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아십니까?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죄는 안 보이고 자랑할 생각, 생색낼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으니 광고 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세리는 하나님 앞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두려웠습니다.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죄를 바라보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기도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드렸던 세리의 기도를 받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무엇을 향하고 있습니까? 하나님만 경외하며 신앙생활 하십니까?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 주시는 힘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예배가 회복될 때 삶의 회복이 시작됨을 믿고 바르게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드림으로 응답의 문이 열려지는 하나님의 전에 거하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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