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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디를 바라보십니까? (민 21:4∼9) - 불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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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바라보십니까? (민 21:4∼9)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행진을 거의 끝내고 가나안 땅에 접근하기 시작할 무렵의 일입니다. 에돔 족속이 사는 땅을 바로 통과하면 가나안 땅이 아주 가깝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에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서 우리를 좀 에돔 땅으로 지나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그저 큰길로만 지나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돔 왕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사신은 재차 간청했는데 에돔 왕은 다시 거절하고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진을 막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에돔은 이스라엘과 형제 족속입니다. 이삭의 두 아들 가운데 큰아들인 에서의 후예가 바로 에돔 족속이고 둘째 아들인 야곱의 후예가 이스라엘입니다. 이 둘이 형제 족속인데 에돔은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매정하게 굴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먼 길을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백성 사이에서 불평이 생겼고 원망이 터져 나왔습니다. “지금까지의 고생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 먼 길을 돌아가야 되는 거야?” 하고 마음이 심히 좋지 않았습니다. 4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길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상하니라‘의 뜻은 히브리어 '카차르'를 번역한 것인데 '짧다'라는 뜻입니다. 즉 마음이 짧아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에 여유가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안목이 좁아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고 안목이 좁아지니 매사에 분노가 생기고, 조그만 일에도 참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저 멀리에 있는 골인지점을 보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고통 때문에 화가 나고 신경질이 나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게 된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까지 광야의 먼 길을 잘 참고 걸어 왔습니다. 이제 사람 사는 곳에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환경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조금 돌아가게 되었다고 불평을 하고 원망을 합니다. “모세,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냐? 이런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느냐? 나이가 많아지더니 예전과 같지 않구나! 죽을 쑤는구나!” 이런 식으로 말을 했을 것입니다.

5절 뒷부분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라고 불평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는 광야를 잘 견디며 행진해 왔습니다. 사실은 지금보다 이전이 물이 더 없었고 먹을 것이 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광야행진 코스를 따라 순례를 하다보면 아주 황량하기 그지없다가 오늘 이 일이 있었던 지점부터는 그래도 푸른 풀과 나무들이 조금씩 보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삼스럽게 불평을 합니다. 마라톤 선수가 마라톤 코스를 잘 달려와서 거의 끝 부분, 40Km쯤 되는 곳에 와서 코스가 험하다고 불평하며 기권하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상하면 불평이 나오고 은혜를 배신하게 됩니다. 5절 끝부분을 보면 백성들은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라고 불평을 했습니다. '이 하찮은 음식'이란 만나를 말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만나가 얼마나 고마운 것입니까? 또 만나가 처음 내렸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광야에서 수백 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바로 만나입니다. 

그런데 그 만나를 이제 '하찮은 음식'이라고 부르며 자신들이 싫어한다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파하셨을까요? 40년간 공짜로 자기들의 처자식들을 먹여주었는데, 그 만나가 없었다면 다 죽고 말았을 텐데... 이제 와서 자신들이 마음이 상하니까 이전에 먹었던 만나를 우습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마음이 상하면 멀리 보지 못하고 그저 눈앞에 보이는 조그만 어려움 때문에 불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상할 때에는 빨리 마음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계속 불평과 짜증이 나오고 이전에 받았던 은혜까지도 쏟아버리고, 그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위험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의 상한 것을 풀고 멀리 볼 줄 알았다면 에돔 왕이 에돔 땅을 통과하지 못하게 한다는 말을 들을 때 “허허, 오백 년 전쯤에 우리 조상 야곱이 에돔의 조상 에서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권을 빼앗은 일이 있는데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보응을 받네 그려. 하는 수 없지. 좀 돌아가지!”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상하니까 지금 당장 자신이 당하는 고통만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내다보지를 못했습니다. 그 결과 불뱀들이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와 사정없이 백성들을 물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불뱀은 광야에 살고 있는 독사들을 이렇게 표현한 것인데 이 뱀들은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뱀들에게 물리면 붉은 반점이 생기며 불에 타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며 죽기 때문에 불뱀이라고 부릅니다. 성지순례 할 때 광야를 통과하는데 광야에는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글거리는 햇볕, 풀 한포기 없는 산, 가끔가다가 보이는 광야의 풀,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여행 가이드가 이런 말을 합니다. "낮에는 이렇게 아무 것도 없지만 밤이 되면 독충들이 나오고 전갈이 나오고 독사들이 나옵니다. 어디 숨어 있다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불뱀들은 밤에 더 판을 칩니다. 우리 마음이 상하여 어둠이 찾아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불뱀이 나타나 콱 뭅니다. 우리는 지금 불뱀들이 우글거리는 광야를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때 불뱀에 물리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한 마음을 빨리 회복시켜야 합니다. 좋은 음식을 드시든지, 운동을 하시든지, 목욕을 하든지...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므로 짧아진 마음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장의 어려움만 보지 말고 멀리 내다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7절입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러분, 독사에게 물리면 특효약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생활에서 불뱀에게 물리면 즉효약이 있습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게 했습니다. 그 놋뱀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즉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면 불뱀에게 물린 아픔이 치유된다는 것입니다.

요르단에 가면 느보산이 있습니다. 모세가 마지막으로 올랐던 산입니다. 이곳에는 모세를 기념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모세 기념교회가 있고 그 교회 안에 모세의 무덤이 있습니다. 물론 가짜 무덤입니다. 모세가 묻힌 곳을 아는 사람은 하나 사람도 없는데(신34:6) 모세를 기념하기 위해 하나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밖에는 방향판이 있습니다. 여리고, 사해, 이런 곳들을 향해 화살표를 해놓고 몇 Km라고 거리를 적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놋뱀 조형물이 서 있습니다. 그 놋뱀 조형물을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모세를 기념하는 다른 것들도 많이 있는데, 예를 들면 광야행진을 이끌던 지팡이나 십계명 돌판 같은 것도 있는데, 왜 놋뱀을 만들어 세웠을까요? 이 놋뱀은 다름 아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14절과 15절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어떤 독사에 물렸어도 그 독이 제거되고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캐나다 병원에 보면 이렇게 뱀이 지팡이에 매달인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는 바로 오늘의 본문 성경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모르는 분들은 “아니, 병원에 왜 이런 징그러운 뱀을 걸어놓는 거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 바라본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앙망'(仰望)이라는 독특한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즉 '우러러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앙망이라는 말이 여러 군데 나오는데 대표적인 것은 이사야서 40장 31절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러분, 여호와를 우러러 바라보면 새 힘을 얻습니다. 여러분, 지금 어디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마음이 상하여 조금 돌아가게 되었다고, 지름길을 놓치게 되었다고,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상한 마음을 빨리 풀고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가 135장 ‘갈보리 산 위에‘ 이 찬송은 미국 사람들이 가장 애창하는 찬송가 중의 하나입니다.

이 찬송을 작사하고 작곡한 분은 조지 버나드(George Bennard 1873∼1958)라는 감리교 목사님입니다. 그 분은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1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역경을 이겼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조지 버나드 목사님이 십자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묵상하는데 처음에는 험한 십자가만 생각났습니다. 그 험한 십자가를 바라보면 광야의 고생길만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십자가에 대해 묵상하는 가운데 1913년 어느 날, 집회를 인도하는데 십자가를 통한 구속의 의미가 바르게 새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펜을 들어 쓴 것이 바로 이 찬송가입니다. 
3절 가사를 보시기 바랍니다. 

『험한 십자가에 주가 흘린 피를 믿는 맘으로 바라보니 
나를 용서하고 내 죄 사하시려 주가 흘리신 보혈일세 
최후 승리를 얻기까지 주의 십자가 사랑하리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험한 십자가 붙들겠네』 

여러분, 십자가를 믿는 마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십자가가 여러분을 고통에서 자유케 할 것입니다. 그 십자가가 마음의 평안을 회복시키며, 또 다시 감사와 기쁨의 마음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때때로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더구나 이 외국 땅에서 마음이 상할 때의 고통은 더욱 심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그리고 눈이 짧아지고 시야가 좁아져서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은혜를 잊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계속 광야를 지나면 불뱀에 물려 고통을 겪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음이 상할 때 위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최후 승리 얻기까지,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 십자가를 사랑하며,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아가는 중에 영육간에 치료를 받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가나안 땅에 도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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