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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재림을 준비하라 (롬 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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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을 준비하라 (롬 13:11~14)

지난 주일에는 재림의 징조를 살펴봤습니다. 영적인 징조, 자연계의 징조 그리고 국제정세로 본 징조를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종말을 이렇게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초만원 극장 밖에서 불이 났습니다. ‘불이야!’ 소리를 지르면 많은 사람이 넘어져 발에 밟혀 죽게 될 아비규환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한 배우가 공연을 멈추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차분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지금 밖에서 불이 났습니다. 여러분이 한꺼번에 뛰어나가면 모두 죽습니다. 출입구는 뒤와 좌우에 하나씩 있습니다. 출입구 가까이에 있는 분부터 차례로 나가시면 좋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관객은 그의 말이 연극의 일부인 줄 알고 박수를 치며 웃고 떠드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상황이라고 아무리 소리를 쳐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연기가 스며들어 오고 불길이 순식간에 극장 안을 뒤덮었습니다. 이미 때는 늦고 말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롯의 사위들은 심판의 메시지를 농담으로 여기다가 망했습니다. 종말의 징조가 왔다는 말을 농담으로 흘려보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과 종말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는 몇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육체적인 재림입니다. 이때에 영적인 재림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떤 이단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영적인 재림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신 몸 그대로 재림하십니다. 

둘째는, 가시적인 재림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으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확실하게 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장 7절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여기에서 각인의 눈은 모든 사람의 눈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보게 됩니다. 

셋째는, 갑작스런 재림입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시기에 예수님은 갑자기 재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성도는 언제나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넷째는, 영광스러운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지극히 초라했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지극히 영광스럽습니다. 이때에 받으실 예수님의 영광은 저 밝고도 빛난 태양보다도 더욱더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다섯째는, 단 한 번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오직 한번뿐입니다. 더 이상의 재림은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재림에 관한 날은 언제나 단수이지 복수로 사용된 단어는 없습니다. 재림의 날은 오직 그날입니다. 단 한 번의 재림에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영생의 축복과 영벌의 심판으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마 25장에 보면 세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첫 번째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가 나옵니다. 신랑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참석하지만 신랑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던 미련한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주인이 맡긴 달란트로 열심히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남긴 두 사람은 주인에게 칭찬을 받게 되지만 주인이 맡긴 달란트를 묻어두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준 한 사람은 책망을 받게 됩니다. 

세 번째는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이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들을 돌아보며 주님을 섬긴 양편에 선 사람들은 영생에 들어가지만 이 세상에서 지극히 작은 자들을 섬기지 못하여 주님을 섬기지 못했던 염소편에 선 사람들은 영벌에 들어가게 됩니다. 

마 2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신랑, 주인,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이 땅에서 준비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성그룹은 이제 한국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세계 일류 기업이 되었습니다. 세계의 주요 경제지들이 삼성의 경영전략을 앞을 다투어 조사 보도하고 있습니다. 전자 업계의 부동의 1위를 고수해 오던 일본의 소니가 손을 들었고 삼성을 배우겠다고 삼성과 본격적인 경쟁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제 세계인들이 한국은 몰라도 삼성은 알 정도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했습니다. 그 원인에 대해 국내외 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연구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삼성식 경영비결에 대한 내용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첫 손가락에 꼽는 성공비결은 소위 “준비 경영”이라는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그룹 핵심간부들에게 늘 주문하는 말이 있답니다. “5년, 10년 뒤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그래서 그룹 전체는 미래를 내다보고 그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있답니다. 그리고 늘 경고하는 말이 있답니다. “지금 잘 나간다고 자만하지 말라” 그래서 그룹 전체는 늘 위기의식 속에 사로잡혀 있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집니다. 5년 뒤 10년 뒤를 내다봐야 합니다. 더 나아가 주님 만날 그날을 바라봐야 합니다. 종말을 준비하고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럼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1. 신부단장을 해야 합니다. 

주님은 신랑이고 우리는 신부입니다.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단장을 합니다. 드레스도 맞추고 목욕도 하고 머리도 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로 준비를 하듯이 성도들도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럼 신부단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합니까?

  1) 믿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결혼을 앞둔 신랑과 신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믿음이 전제된 상태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상대를 믿을 수 없는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상대를 믿으니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눅 18:8에 보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주님을 만날 사람들에게서 다른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보십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목적은 악한 영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에게는 심판을 위함이고, 우리들에게는 구원을 위함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다른 것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벧전 1:9에 보면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나 그 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듯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도록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히 11:6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2)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재림을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롬 13:11에 보면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는 말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깨어 있는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철야기도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영적인 레이다를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계12:12에 보면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고 말합니다. 말세지말에는 마귀의 역사가 더 강해집니다. 왜냐하면 마귀도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라도 타락시키려고 합니다.     

  3)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마 25장에 보면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중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했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고 준비된 기름도 떨어져서 결국은 혼인잔치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준비한 기름은 성령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행 1장에 보면 제자들이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를 묻자 주님께서는 그것은 제자들이 알바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언제 주님이 임하실지 알려고 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은 신앙생활의 동력이십니다. 기계가 동력이 없이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성령님의 역사 없이 영적인 신앙생활은 불가능합니다. 재림의 준비 즉 신부단장 역시 성령의 역사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4)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자동차가 달리기 위해서는 기름을 넣어야 하며 기름을 넣기 위해서 주유소에 들려야 하는 것처럼 성도가 신부단장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데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주의 제단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히 10:25에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라고 말했습니다. 모이는 것도 습관이고 모이기를 폐하는 것도 습관입니다. 가만히 보면 예배를 잘 나오는 사람은 언제나 잘 나옵니다. 반대로 예배에 잘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나 예배 참석을 잘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모이는 것이나 모이지 않는 것이나 다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히 10:25에 보면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후에 “오직 권하여”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자구만 모이라고 잔소리를 해야 합니다. 셀가족 중에 교회에 잘 안 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자꾸만 모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교우 중에 교회에 잘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도 자꾸만 모이자고 해야 합니다. 

히 10:25에 보면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말씀합니다. 재림이 가까워질수록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모이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5)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롬 13:12절에 보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결혼식 전에 드레스를 입는 신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신부는 드레스를 입기 위해서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야 합니다. 아무리 자기가 입던 옷이 좋더라도 그 옷을 입고 그 위에 신부 드레스를 입는 신부는 없습니다.
어둠의 일을 벗자는 말은 악한 행실을 버리자는 말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자는 말은 예수로 옷 입자는 말입니다. 롬 13:14에 보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2. 하늘의 상을 준비해야 합니다.

신부단장은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입니다. 결혼을 앞둔 처녀로 비유하면 결혼식 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상을 준비하는 것은 주님 재림 이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앞둔 처녀로 비유하면 결혼식 이후의 결혼 생활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계 22:12에 보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혼수준비는 신부측에서 돈을 들여서 하지만 영적인 혼수준비는 신랑되신 주님이 다 예비하시지만 이 땅에서 신부인 우리들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하늘의 상급이 결정된다면 우리는 좀 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1) 주어진 달란트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마 25장에 보면 달란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깁니다. 각자의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깁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주인이 준 돈을 감추어둡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과 결산을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두 달란트를 더 가지고 옵니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에게 잘했다고 칭찬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에게 자기가 받은 한 달란트만 내놓습니다. 그는 두려움 때문에 달란트를 활용하지 못했고 받은 것만을 주인에게 내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책망합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서 열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줍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진리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모든 사람에게는 크든지 작든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달란트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사명과 사역에 맡는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둘째, 달란트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묻어두는 것은 주인의 심판을 받게 되는 무서운 죄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가 가진 능력이 작다 할지라도 그 능력으로 주의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주인이 오기 전의 생활에 상급과 칭찬이 달렸다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맡은 종과 두 달란트 맡은 종은 주인이 오시기 전에 이미 상급을 받을 준비와 칭찬을 들을 준비가 끝난 것입니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주인이 오시기 전에 이미 저주를 받을 준비와 책망을 들을 준비가 끝난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열심히 사용해서 주님 오실 때 칭찬과 상급을 받기를 바랍니다. 비록 받은 달란트가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열심히 사용하십시오. 

  2) 영혼구원에 힘을 써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대학교수 생활을 하셨는데 시험을 보다보면 기가 막힌 학생들이 있답니다. 교수님이 낸 문제는 지우고, 자기가 스스로 문제를 내서 해답을 달기도 한답니다. 정답을 달지만 성적 안 나갑니다. 왜냐하면 교수님이 원하는 문제와 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비슷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내준 문제는 지워버리고 자기가 문제를 내고 자기가 답을 답니다. 하늘의 상이 가장 큰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증거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단13:3에 보면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을 증거 해서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는 일은 하늘에서 상이 가장 큰 일일만큼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여기서 한 생명은 영혼을 말하는 것이지 육신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육적 생명을 구원하는 일도 귀하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육신의 생명은 살려도 다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죽습니다. 단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영혼을 살려야 합니다. 영혼은 한번 살려놓으면 영원토록 살아 있습니다.  

지역전도에 동참합시다. 한 사람이 세 사람의 전도 대상자를 정합시다. 그리고 기도하고 그들을 만납시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선교에 동참합니다. 

  3) 선한 일을 많이 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 땅에서는 축복으로 하늘에서는 상급으로 갚아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럼 선한 일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주님을 섬기는 일이 선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주님을 섬기는 일은 어떤 일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섬기는 일이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마25장에는 양과 염소의비유가 나옵니다. 최후의 심판대에서 사람은 두 부류로 갈라집니다. 오른쪽에는 양들이, 왼쪽에는 염소가 있게 됩니다. 양과 염소를 나누는 기준 중에 하나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들을 얼마나 돌보아주었느냐 입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일이 주님에게 한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들입니다. 특히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이 아주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둘째, 주의 종을 섬기는 일이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다. 마 10:40-42장에 보면 제자들을 사역의 현장으로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성경에 보면 주의 종을 잘 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계산해 주셨습니다. 왕상 17장에 보면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남은 가루로 하나님의 종인 엘리야를 섬깁니다. 그 결과 가루통의 가루가 다하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셋째, 교회를 섬기는 일이 선한 일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내 몸을 섬기는 것은 나를 섬기는 것이듯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히 3:5,6을 보면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 종으로 신실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신실했다고 말씀합니다. 모세와 주님이 교회에 충성할 만큼 교회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시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주님이 오시면 영생과 영벌의 심판이 있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 때문에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에 들어가도 상급은 각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부단장을 하고 상급을 준비해야 합니다. 

미국 코넬 대학의 실험실에서 행해진 실험이야기입니다. 개구리 한 마리를 차가운 물이 담긴 켑에 넣었습니다. 켑 밑에는 1초에 화씨0.017도씩 물이 데워지도록 된 불꽃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온도의 변화였습니다. 온도가 서서히 높아졌기 때문에 개구리는 온도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켑에서 뛰어 올라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구리는 태평스럽게 앉아 있었습니다. 온도는 점점 1초에 0.017도씩 올라가는데 개구리는 여전히 켑 속에서 빠져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두 시간 반쯤 지난 뒤 개구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개구리는 뜨거운 물에 삶아 져서 죽어 있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죽은 것입니다. 자기가 죽어 가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그대로 삶아진 것입니다. 

말세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이와 비슷합니다. 세상에 젖어들어 시대를 분별 못하고 살다가 그대로 죽음을 당하게 된다면 이것은 영적으로 굉장히 비참한 일입니다. 깨어서 신앙생활을 합시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신부단장하시고 하늘의 상급을 준비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손양목사님이 지은 복음성가중에, '주님고대가'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기를 사모하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제목이 '주님고대가'입니다. 이 복음성가를 부르시면서 하나님 앞에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도록 합시다. 

♪ 1.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2. 고적하고 쓸쓸한 빈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3. 먼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해, 
머리들고 멀리멀리 바라보는 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4. 내 주님 자비한 손을 붙잡고 면류관 벗어들고 찬송부르면 
주님계신 그 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5. 신부되는 교회가 흰옷을 입고 기름준비 다해 놓고 기다리오니 
도적같이 오시마고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6.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 주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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