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령으로 말하라 (행 2:4~11) - 언어, 혀

  • 잡초 잡초
  • 483
  • 0

첨부 1


성령으로 말하라 (행 2:4~11)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왕이 병이 들었습니다.  의사는 세상에서 보기 드문 병이어서 암사자의 젖을 먹어야만 낫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암사자의 젖을 구하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영리한 사람이 사자가 있는 동굴 가까이에 가서 사자 새끼를 한 마리씩 어미 사자에게 넣어 주었습니다.  열흘쯤 지나자, 그 사람은 어미사자와 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의 병에 쓸 사자의 젖을 조금씩이나마 짜낼 수가 있었습니다.  왕궁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자기 몸의 각 부분이 서로 말다툼을 하고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은 이 일에 대하여 몸 안에서 어느 부분이 가장 중요한 일을 했는가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발은 자기 아니었더라면 사자가 있는 동굴까지 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눈은 자기가 아니었다면 볼 수가 없어서 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손은 자기가 아니면 사자의 젖을 짤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혀가 하는 말이 '만약 내가 말을 할 수 없었다면 너희들은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몸 안의 각 부분들이 모두 나서며 '뼈도 없고 아무 소용도 없는 조그만 것이 건방지게 굴지마'하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러자 혀는 ‘이 일에 누가 제일 중요한지 너희들에게 알려 주마’라고 말했습니다.   이윽고 그 사람이 왕 앞에 엎드려 젖을 내 놓자 왕이 '이것이 무슨 젖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느닷없이 '네, 개의 젖이옵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체의 모든 부분이 중요하지만, 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약3:5-8)

이처럼 혀가 중요하기에 하나님은 처음 인간을 만드실 때 말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새 창조, 즉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성령이 오신 순간에도 가장 먼저 성도들의 말부터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면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그 가운데 우선적으로 말부터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것을 알려줍니다.  성령이 오셨습니다. 

바람처럼 강림하셨습니다.  그러자 무엇보다도 말이 달라집니다.  과연 당시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그들은 어떤 말을 하게 되었을까요?


첫째는 감동을 주는 말입니다.

본문은 지난주에 살펴본 것에 이어 성령강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순절 날 이 땅에 최초로 성령이 오셨습니다.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사모하고 기다리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정확한 때가 되자 강하고 급한 바람 같은 성령이 충만한 은혜로 임했습니다.  본문을 포함한 2장과 사도행전의 전반부는 성령이 오시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알려주는 말씀들입니다.  놀라운 변화가 왔습니다. 그 가운데 우선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사도들의 달라짐입니다.  특히 베드로가 달라졌습니다.  그의 달라짐을 대표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2장 14절부터 이어지는 그의 연설, 설교입니다.  

설교는 곧 말로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우선적인 변화는 말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그가 전에는 보여주지 못한 것이 나타납니다.  성경에 대한 박식한 지식은 물론이고, 말의 겸손함이 배어 있고, 설득하는 힘이 있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한마디로 말의 감동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증거가 있습니다. 설교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음과 옷을 찢으며 ‘우리가 어떻게 할꼬’ 하며 회개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세례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날에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숫자가 삼천이 넘었다고 증명합니다.  한 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회개시키고, 세례까지 받게 한 것은 놀라운 감동이 아니면 될 수 없는 일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을 했고, 그 말은 들은 모든 사람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이 성령이 오시면 달라지는 모습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말이 달라집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말을 하게 됩니다.  상처를 주는 말이 아니라, 지적하고 정죄하고, 수군거리고, 비방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영혼에 오래 남을 깊은 감동을 주게 하는 것입니다.

분명 말에는 감동을 주는 말이 있고, 그렇지 않은 말이 있습니다.  기분 좋은 말이 있고, 그렇지 않은 말도 있습니다.  많은 말을 들어도 감동이 없는 경우가 있고, 짧은 말을 들어도 깊은 감동을 주는 말이 있습니다.  의도를 갖고 하는 말이 말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잘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그저 아무 의식 없이 그냥 한 말인데 듣는 사람에게 큰 상처가 되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말의 힘이 있고, 영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동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감동을 주는 말이 우리 가운데 넘치도록 풍성해야 합니다.  감동을 주는 말이 어떤 말이겠습니까?  힘을 주는 말입니다. 

용기를 주는 말,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이요, 들으면 들을수록 행복해지고 기뻐지는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말을 생각해야 합니다.  때론 연구하고, 찾고, 훈련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감동을 주는 말이 가장 크게 나타나는 곳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가정의 현장입니다. 물론 교회도, 사회도, 이웃도 감동을 주는 말이 풍성해야 하겠지만 가정에서부터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남편을 감동시키는 아내의 말이 있습니다.  아내를 기분 좋게 하는 남편의 말이 있습니다.  부모를 감동시키고, 자녀에게 힘을 주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서로에게 감동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 좋고, 오랫동안 생각이 나고, 유쾌하고, 힘이 생기고, 기쁨이 되는 그런 말을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성령이 오신 믿음의 사람으로 인자한 말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천국의 말입니다.

본문 4절을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것이 당시 성령이 오신 자에게 보인 귀한 모습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기를 시작했다고 강조합니다. 성령이 오시니까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합니다. 이것은 자기의 말이 아닙니다. 자기의 의도가 아닙니다.  성령이 감동을 주어 말하게 합니다.

계속되는 5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절기를 지키기 위해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그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몰랐지만, 그들은 자기의 방언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말하는 사람들이 각국의 언어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각국에서 온 사람들은 자기의 방언으로 들었을 뿐입니다.  물론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떤 말을 했을까요?  그들은 다른 방언으로 말한 것입니다. 

당시 성도들이 쓰던 언어는 적어도 3개가 있었습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방언이란 말은 곧 그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한 이런 언어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의 말은 한마디로 천국의 언어라고 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천국의 언어가 방언입니다. 성령이 오셨을 때 그들은 천국방언을 말했습니다. 세상의 말이 아닌 천국의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세계에서 통용되는 천국의 말입니다.  그들은 성령을 따라 천국방언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국방언은 어떤 말일까요? 물론 영적으로는 지금 우리가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 방언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말하면 천국방언은 하나님의 교회와 그 속에서 믿음생활하며 사는 성도들이 세상에서는 잘 듣지 못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밖에서는 잘 듣지 못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기도합시다, 은혜 받았습니다.’ 등이 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천국방언입니다. 그 언어를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방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힘내세요,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이것이 천국방언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지금 여기 우리의 공동체에서, 이런 천국방언을 얼마나 하십니까?  혹 이런 말을 최근에 한 적이 언제입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가야 경험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임하는 순간부터,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신 이후부터 하나님의 나라, 천국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천국을 저기에서만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서도 맛보고 누리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성령과 함께 천국방언으로 살아가는 모임과 공동체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 어떤 것보다도 말의 힘, 혀의 힘을 아는 믿음의 사람들이기에 성령으로 말하는 현장에서 우리는 천국을 배웁니다.  나도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도 경험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천국방언이 중요합니다.  ‘사랑해요, 고마워요, 힘내세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바로 이런 말이 오가는 현장에서 천국을 경험합니다. 

반대로 지옥이 무엇입니까?  저기에서만의 지옥이 아니라 여기에서도 지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말 대신에 미움이 가득하고, 고맙다는 말, 감사하는 말 하지도 못하고, 힘을 주기는커녕 날마다 힘을 빼고, 미안한 마음도 없고 책임도 없고 양심도 가책도 없는 곳, 용서하지 못하고
속으로 독을 품으면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살아가는 곳.. 바로 그곳이 다름 아닌 지옥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천국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옥입니까?  여러분은 입을 열 때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천국방언으로 사람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실망시키고 하나님을 실망시키고 있습니까?  성령이 오시면 말이 달라집니다. 말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는 방법입니다.  

세계 권투계의 전설적인 인물로 남아 있는 ‘무하마드 알리’라는 권투선수가 있습니다. 권투 역사의 기록을 남기고, 엄청난 돈을 벌고, 모두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권투 경기에 나설 때 마다 꼭 명언을 남기곤 했습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 소련 전차처럼 쳐들어갔다 프랑스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오겠다,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같이 하겠다.’  등등 많은 말을 하면서 경기에 임했습니다. 그가 나중에 은퇴할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매 경기마다 승리의 반은 주먹이었고, 나머지 반은 말에 있었다.’  

인생의 승리, 신앙의 승리는 곧 말의 승리입니다. 말이 실패하면 인생도 실패요, 신앙도 실패일 것입니다. 그런 마음과 자세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해야 합니다.  감동을 주는 말, 천국의 말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이미 오셨고, 계속해서 우리 가운데 충만함으로 임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이번 한주간도 말의 승리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