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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장로들 (약 5:13~18) - 일꾼, 중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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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장로들 (약 5:13~18)
  
평소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교회를 멀리하고 교회와의 인연을 믿지도 않고 또 신앙적인 것을 찾지도 않지만 병이 들면 누구를 부르겠습니까? 병들어 누웠을 때 누가 찾아와주면 위로가 되겠습니까? 고독하고 근심이 될 때 누구를 의지할 수 있겠습니까? 제 자신이 목사이지만 가족 중의 한 사람이 입원했을 때 제일 반가운 사람은 역시 목회자입니다. 목회자기 찾아와 주어서 기도를 해주는 것이 어느 누구보다도 더 힘이 되고 반가운 것을 저는 경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목사가 너무 바빠서 병자를 심방할 수 없다면 그것은 너무 바쁜 것입니다. 목회자가 본인이 가지 못하면 부교역자라도 보내야 되고 누군가는 교회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심방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도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누군가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찾아오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병들어 누웠을 때 청할 대상이 있는 사람은 복된 것입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이 되었을 때 엄마들이 부르지요. 돌아갈 집이 있는 아이들은 행복한 것입니다. 돌아갈 집이 없는 아이는 고아에요.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 황혼이 왔을 때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것이지만 아무데도 돌아갈 곳이 없고 아무도 그를 찾아주지 않고 기억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로 비참하고 소외되고 고독한 인생이요 영혼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의 고독은 친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인간의 사랑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배우자도 도와줄 수 없는 것이지만 이것은 영혼의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영혼 속에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을 찾아야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 이외에는 도와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에 ‘너희는 나에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르짖어야 됩니다. 부르짖으면 주님이 응답하십니다. 응답하시는 것뿐만 아니고 우리가 알 수 없는 크고 비밀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대통령에게 항의하지 말고 청와대에 항의하지 말고 정치인에게 항의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부르짖어야 됩니다. 하나님에게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이 민족을 위하여 크고 비밀한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부르짖어야 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시고 모세에게 능력을 주시고 권세를 주시고 이 민족을 권고하신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사람의 역할이 있고 사람의 능력이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 위에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이 도와주셔야지요. 옛 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해결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 민족의 소망은 재벌 기업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명의 유능한 정치인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특정 산업에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앞으로도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에게 두어야 될 것입니다. 

  왜 우리나라가 그동안 근면하고 부지런하고 희생할 줄 알고 또 내일의 행복을 위하여 오늘을 인내할 수 있었던 민족이, 그런 과거가 있는 민족이 이제는 내일 일보다는 지금의 만족과 당장의 응답과 지금, 나도 남들처럼, 모두가 이런 식으로 지금 당장의 흡족을 요구하게 되었습니까. 이런 식으로 요구하게 되면 누군가는 희생해야 되는데, 누군가는 인내해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인내가 없이는 믿음이라는 것이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인데 바라는 것이 있다는 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얘기이고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이고 인내해야 믿음의 열매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범사의 모든 일에 때가 있고 철이 있는 것처럼 민족과 나라에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와 장소가 있는데 그러므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정신적인 자산입니다. 정신적으로 풍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민족이 술렁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외적인 한두 가지 사건 때문이 아니고 이 민족의 마음이 평안하지 못한 것이 문제에요. 마음이 행복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교육을 개혁하고 경제가 발전한다고 해결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각자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과 화목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한 법을 배워야 됩니다. 

  강 같은 평화, 샘솟는 기쁨, 바다 같은 사랑, 이것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고 현실입니다. 이것은 신비한 역사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게서 생수의 강이 솟아나리라’ 할렐루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납니다. 생수의 강,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교회의 장로들이 기름을 바르며 주의 이름으로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기름이 뜻하는 것은 성령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예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능력이 따른다는 얘기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장로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장로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장로는 첫째로 무엇보다도 교회의 장로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교회의 장로’입니다. 다시 말하면 장로들은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이고 교회를 위하는 사람이고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고 교회의 믿음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교회의 장로입니다. 목사는 있다가도 떠나갈 수 있습니다. 임기가 끝나든 세상을 떠나든 다른 곳으로 옮기든 목회자는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로와 그 가족은 교회를 지켜야 됩니다. 

저희 교회가 역사가 아직 짧기 때문에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만약 교회 역사가 오십년, 팔십년, 백년, 이렇게 되면 그동안에 목사님들이 여러 번 바뀝니다. 그러나 장로와 그 가족은 그 교회를 자기의 집으로 생각하고 자기의 가정으로 생각하고 그 교회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섬기는 사람의 권세가 어디에 있느냐? 개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고 교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장로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둘째, 교회의 장로는 고난당한 사람, 병든 사람을 찾아가서 기도하고 위로하고 섬기는 사람입니다. 저희 아버님이 장로님이셨는데 제가 젊었을 때 한번은 저희 아버님이 어머님께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는 심방하는 장로가 아니고 행정적인 장로다.’ 아마 당신의 아들이 장차 목사가 될 줄 알았다면 그런 말씀은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방하는 장로와 행정적인 장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성경적인 장로는 둘 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스리는 일도 하지만 성도들을 심방하고 그들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섬기고 위하여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장로입니다. 

세 번째로 성경적인 장로는 기름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기름은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 다시 말하면 장로는 성령의 능력을 알고 성령을 체험하고 성령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병자를 찾아가서 기도할 때 그것이 하나의 형식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예식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 기름 바르는 것이 기름 바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함께 하셔서 기도가 응답되고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도우시는 증거가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 뿐만이 아니고 경건의 능력을 소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다고 형식은 부인하지 않아요. 제도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제도와 형식과 전통과 규례가 다 필요합니다. 야고보도 그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교회와 교회의 장로 제도와 심방과 또 성례와 이런 모든 것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진실한 능력이 함께 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형식도 갖춰야 되지만 실질적인 영적인 능력이 함께 역사해야 됩니다. 형식도 있어야 되지만 내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교회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찾아갈 때는 거기에 하나님이 같이 가십니다. 마치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찾아가신 것처럼, 베드로의 집에 찾아가셔서 장모를 고쳐주신 것처럼 예수님이 함께 심방하신 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장로는 팀웍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 ‘교회의 장로를 청하라’하지 않고 ‘장로들을 청하라’ 복수입니다. ‘elders of the church -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다시 말하면 장로는 독불장군이 아니요 함께 일할 줄 알고 합심할 줄 알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교회에 덕이 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에는 독불장군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하나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역사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시간에 함께 성전으로 올라가다가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이방인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너희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내가 함께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부가 함께 기도할 때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가족이 함께 기도할 때 더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민족이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 민족을 권고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사람을 나눠지게 합니다. 부부를 나눠지게 하고 교회를 나눠지게 하여 그들이 합심하지 못하게 하고 함께 모이지 못하게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이름으로 모일 때 거기에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틈을 타려고 합니다. 부모와 자식의 틈을 타고, 또 나라의 지도자와 국민들의 틈을 타고, 백성과 백성의 틈을 타고, 부부간의 틈을 타고, 목사와 교인 사이의 틈을 타려고 하는 것이 마귀에요. 이것이 마귀의 전력입니다. 

창세기 3장에도 뱀이 하나님과 하와 사이의 틈을 타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것은 전형적인 시험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궤계를 알고 거기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간에 다툼이 일어나고 섭섭한 일이 생길수록 이것은 마귀의 역사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그럴 때일수록 더 모이기에 힘쓰고 더 같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하고 승리를 고백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인권운동을 할 때 사람들이 즐겨 불렀던 가스펠이 있는데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come, We shall overcome someday - 우리는 승리하리라 극복하리라' ‘내가 승리하리라’하지 않고 ‘우리는 승리하리라 우리는 극복하리라’ 

이것은 선포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것뿐만 아니라 입으로 시인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툼이 일어나거나 이럴 때일수록 더 모이기에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고 승리를 확인하고 이것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길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저희 교인들 중에 장로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저희 교회에 좋은 분들을 많이 보내주셔서 앞으로 훌륭한 장로가 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말씀드린 것들을 유념해야 될 것입니다. 교회의 장로이기 때문에 교회를 아끼고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어야 되고 그리고 섬기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서 예수님이 사람들을 찾아가신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찾아가고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됩니다. 그리고 기름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 성령과 동행하고 성령의 능력을 아는 사람이어야 되고 그리고 독불장군이 아니고 함께 일하고 교회에 덕을 세울 수 있는 팀 플레이어야 됩니다. 

저는 아무리 교인이 믿음에 열심이 있고 아무리 그래도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는 사람보다는 같이 일하고 서로 화합할 수 있는 분을 눈여겨봅니다. 거기에 중요한 기준과 잣대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찾는 일꾼이 되고 교회, 하나님의 나라, 나아가서 민족을 위하여 귀중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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