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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혼의 촛불, 예수 그리스도 (마 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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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촛불, 예수 그리스도 (마 9:9~13)

요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놓고서 상황이 점점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의 한 달이 넘게 평화적으로 이어져 오던 촛불 문화제가 5월 하순으로 들어서면서 서서히 가두시위로 변하더니 어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인파가 발 디딜 틈도 없이 서울광장에 모였다고 그럽니다.

청와대 부근인 청운동에서는 대학생들이 기습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연행되는 바람에 서울광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연행자를 구하러 가자!"고 외치면서 한때 분위기가 술렁거리기도 했나 봅니다.몇 백 명, 몇 천 명 단위로 모이던 것이 이제는 만 명, 이만 명, 사만 명, 팔만 명…

어제는 10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서울 도심으로 몰려들었었답니다.

전국 각 지방에서도 무려 100여 곳에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와 시위가 벌어졌다는 대요.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은 청소년과 대학생은 물론 회사원과 자영업자들까지, 그리고 중·노년들까지 거의 모든 연령층이 시위에 가담한 것인데요. 아기 엄마들도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서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젯밤 11시가 넘으면서 시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청와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는데, 효자동과 삼청동, 청운동 세 곳에만 4만명의 시위대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민들의 구호는 주로 "협상무효 고시철회"였었는데 경찰이 가스 분말기와 물대포를 쏘면서 시위대의 구호가 격렬해지기 시작했답니다.“위험하면 적게 먹으면 되지 않느냐?”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그러는 거냐?”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다” “청소년들의 놀이문화가 없어서 그러는 거다” “불순세력의 선동에 놀아나는 것이다” “괴담의 진원지를 색출하겠다” “반미 친북 세력의 농간이다” “마귀들의 꼼수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항복해서는 안 된다.” “국민 중에는 반역자도 있고... 금치산자도 있다.” 이런 발언들이 오히려 국민들을 더 분노케 한 것 같습니다.

1999년에 수도권 시장 출신으로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델라루아가 생각이 납니다.

델라루아 대통령은 보수 우익을 표방했던 정치인이었습니다. 

델라루아 대통령은 일자리 창출을 제 1과제로 내세웠고요, 5%의 경제성장과 함께 교육개혁을 공약했었습니다. 이 사람도 역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지향해서 노동법을 개정하고 외국계 기업의 요구들을 많이 받아들였었는데요. 

친미성향의 경제학자와 교수들이 늘 그의 주위에 포진해 있었습니다. 델라루아 대통령은 당선 초반에 50%를 상회하는 엄청난 국민 지지율을 기록했었는데 불과 두세 달 만에 20% 초반으로 지지도가 급락을 했습니다.

대통령이 서민들의 삶을 외면했기 때문이었는데요. 

그 결과 아르헨티나의 주부들이 냄비를 들고서 거리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냄비시위'였는데요 우리로 치자면 ‘촛불시위’ 같은 거겠죠?

하지만 대통령은 주부들의 시위를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주부들이 뭘 아느냐? 집에서 밥이나 하고 애나 보지 뭣 하러 거리로 나오는 거냐?’ 그랬다는 겁니다.

그러는 동안 시위는 점점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성난 민심을 달래려고 하기보다는 시위 진압을 경찰에 맡겨서 단속을 강화했고요, 시위대는 물밀듯이 대통령궁으로 몰려갔습니다. 
결국 시위대를 막지 못한 경찰은 급하게 기마경찰을 투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다섯 명이 사망하는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다급해진 대통령은 군부에 진압을 요청했는데 군부에서는 적군도 아닌 우리나라 국민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데 병력을 투입할 수는 없다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2002년 12월에 대통령은 사임을 하게 되었고, 대통령궁 옥상에 대기시켜 놓았던 헬기를 타고서 어디론가 도망을 쳤다고 그래요. 우리나라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죠?

촛불 집회는 예전에 과격했던 폭력시위문화를 청산하고 국민들의 의사를 평화적으로 표현하는 아주 좋은 문화입니다.

촛불이 얼마나 연약해 보입니까?
‘훅~’불어버리면 아무 힘없이 꺼지고 마는 것이 촛불이잖아요?
그렇지만 그토록 연약해 보이는 촛불이라도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는 희망의 상징이요, 평화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그 촛불을 누가 사주었느냐 따지고 말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촛불이 있습니다.
그 촛불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예요.

오늘 말씀의 제목이 바로 ‘영혼의 촛불, 예수 그리스도’잖아요?
아무리 평화롭게 시위를 한다고 해도 자칫 잘못하면 촛불이 화염병으로 비화되고 변질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의 촛불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을 의지하고 그 분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해 드리기만 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마태복음 9장 9절에서 13절까지 그리고 18절에서 26절까지, 두 곳을 봉독해드렸는데요.

우리 시골 사람들은 저 서울 사람들처럼 촛불을 들고서 거리로 뛰쳐나갈 일도 없겠지만, 진정 우리가 의지하고 주장해야 할 것은 ‘오직 예수’ - 우리 영혼의 촛불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 한 분 뿐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의 촛불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을 건데요.
  

첫 번째 우리 영혼의 촛불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우리 죄인들을 부르시는 분입니다.

본문 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요즘 말로 하자면 세무서 앞을 지나가시다가 세무 공무원 하나가 세무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를 부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좇으라!’ - ‘나를 따라와라!’ 그 말씀이죠?
그 한마디에 세리 마태는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마태가 뭘 좀 잘 몰라서 예수님을 따라나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같으면 안 따라 갔을 것 같아요.

따라나서서 뭔가 좀 비전이 보이고, 희망이 보여야 따라나설 것 아니겠어요?
예수님은 지금 죽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물론 당장 죽으실 것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본 동네 가버나움을 출발해서 결국에는 예루살렘으로 십자가를 지러 가시는 길이었거든요.

그 길이 한 3년 걸리게 됩니다마는 그 분을 따라나섰다가는 정말 세상 말로 ‘재미’볼 게 하나도 없으신 그런 분이셨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나를 좇으라!’는 말씀 한마디에 선뜻 따라나서는 것을 보면 마태라는 그 사람 정말 어디 누구 하나 의지할 곳 없는 딱한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그 당시에 세리라는 직업은 아주 천시 받던 직업이었습니다.

요즘에야 세무 공무원이 빽도 있고, 돈도 벌고, 안정적인 직업이고…
그래서 그거 못해서 죽을 때까지 고시 공부만 하다가 마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런데 그 당시에 세리들은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천대받는 직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오죽하면 몸을 파는 창녀들과 같은 취급을 받았을까요?  

그렇지 않겠어요?
남의 나라에게 나라 빼앗겨버리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내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자기 동족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 나라에 갖다가 바쳐야 하는 일을 했으니 그런 사람을 누가 좋아했겠습니까?

더구나 이 세리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일부러 많은 세금을 뜯어다가 자기 배를 채우고는 로마 나라엔 정해진 세금만 갖다 바치면 되는 거였거든요.
요즘 아이들 말로 하면 세금이 아니라 ‘삥’을 뜯는 거죠.
세상에 ‘삥’ 뜯기고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아무리 없이 살아도 그렇지, 로마 나라의 충성스런 개(?)가 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요?
그것이 세리 마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마태에게는 친구도 없었고요, 누구 하나 그의 벗이 되어 줄 만한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만날 ‘사느냐 마느냐? 이 일을 계속 해야 되느냐? 마느냐?’ 그러면서 하루 하루를 지루하게 여기면서 살아왔던 겁니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생리적인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소속되고 싶어 하는 욕구, 존경받고 싶은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이 다섯 단계의 욕구가 있다는 거예요.

생리적인 욕구는 뭐예요?
먹고 자고, 오줌 싸고 똥 싸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 욕구를 충족해야 살 수 있다는 거죠. 

안전에 대한 욕구는 신체적인 안전이나 불확실성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는 욕망입니다.
광우병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온 나라가 이렇게 난리잖아요?
안전에 대한 욕구 때문에 그런 겁니다.  

소속되고 싶어 하는 욕구도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왕따’라는 말이 많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그저 어울려서 살아야 됩니다.
남들 다 학교에 다니고 회사에 다니는데 자기 혼자 집에서 놀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것만큼 외롭고 답답한 일은 없을 거예요.

우리교회에 소속이 되어서 같이 예배드리는 것도 소속에 대한 인간의 강한 욕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예배 시간에 같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지 아세요?
예배에 빠지지 말고 열심히 잘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존경에 대한 욕구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능력에 대해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누구든지 남들이 자기에게 고개를 숙이고 존경을 표해 주는 걸 좋아한단 말입니다.
선생님이 어떤 아이에게 ‘너희 아빠 직업이 뭐냐?’ 그랬더니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우리 아빠는 수산업에 종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더래요.
‘그럼 아빠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으시는 분이니?’ 그랬더니 아니라고 하더래요.
‘그럼 무슨 일을 하시는데?’ 그랬더니 ‘우리 아버지는 수산물을 가공하는 일을 하십니다.’그러더래요.
‘그럼 ●● 참치 회사 같은 데서 일을 하시는 모양이구나.’그랬더니 그것도 아니라고 하더래요.
그래서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데?’ 그랬더니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우리 아빠는요, 학교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세요.’그러더랍니다.

붕어빵 장사를 하더라도 남에게 기죽으면서 살고 싶지 않은 거예요.
누구든지 존경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매슬로우가 말하는 마지막 다섯 번째 인간의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받아도 소용이 없어요.
아무리 편한 일자리라도 소용이 없는 거예요.
죽을 고생을 하더라도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겁니다.
불구덩이 속에 뛰어 들어가서 사람을 구하다가 자기 목숨을 불 속에 던져 버리는 소방관들을 보세요.
이 분들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어떤 고난이 찾아와도 그것을 묵묵히 잘 감당을 합니다.
‘수당이 많다, 적다.’ 일체 그런 얘기가 없어요.  

그런데 하루 세끼씩 꼬박 꼬박 밥 먹여주고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재워주어도 하루 종일 이쪽에서 저쪽으로 벽돌을 나르고 다 나르면 다시 저쪽에서 이쪽으로 벽돌을 나르는… 그 일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날 몇 일을, 몇 년 동안을 계속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람 미치는 겁니다.
벽돌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 쌓고 다 옮겨 쌓으면 다시 그 벽돌을 저쪽에서 이쪽으로 옮겨 쌓고 그게 무슨 보람이 있겠어요?
하루 종일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자기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창조적으로 자기의 가능성을 실현시켜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최종적인 욕구 단계라는 겁니다.

그런데 세리 마태에겐 먹고사는 생리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안전이나 소속에 대한 욕구도 그런대로 다 해결이 된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자기 동족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나라에 갖다가 바치는 이 일은 도무지 아무에게도 존경을 받을만한 일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더구나 자기 동족들의 혈세를 뜯어 먹고 살면서 그 일을 통해서 자아실현을 이룬다고 할 수가 있겠어요?
죽지 못해 사는 겁니다.

남들이 볼 때엔 그저 먹고 살만하고 사회적으로도 지위도 있고 이것저것 좋아 보여도 세리 마태에겐 다 소용없는 일이었단 말예요.
세리 마태는 유대인 공동체에서 왕따를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면 죄인들 그룹에 속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런 마태를 찾아와주시고 만나주시고 불러 주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13절 하반절 말씀에 그러시잖아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두 번째로 우리 영혼의 촛불이 되시는 우리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 중에서 간과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치유사역이셨습니다.
18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바쁘게 사셨는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금방 죽었대요.
믿음이 좋은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와서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는데 안 가실 수가 없으셨던 거예요.  

그래서 급하게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한 여인을 만나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 여인도 참 대단한 여인이죠?
다른 사람들은 ‘안수해 주세요. 만져주세요. 기도해 주세요.’ 난리들인데, 이 여인은 그런 거 다 필요 없다는 거예요.

‘내가 그냥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어떻게든지 예수님의 옷자락에 살짝 손만 갖다 대도 낫겠다.’는 겁니다.

그 믿음으로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댔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12년 동안이나 앓고 있던 혈루병이 경상도 사투리로 깨끗하게 나사버린 거예요.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할렐루야!)

우리 예수님은 병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병든 자들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우리 영혼의 촛불로 오신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행2:21)

♪네 병든 손 내밀어라 주 예수님 고치시리
네 병든 손 내밀어라 주님 고치시리라.♫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는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우리 영혼의 촛불이 되시는 우리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가복음 5장과 누가복음 8장에도 같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열 두 살 난 어린 아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도착해서 보니까 사람들은 죽은 소녀를 애도하면서 훤화하며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훤화한다.’는 말은 좀 어려운 말인데요, 당시 장례 풍습으로 부자 유대인들 집에서는 돈을 주고서 곡하는 사람들을 사서 장례기간동안 슬픈 악기를 연주하거나 ‘애고 애고’ 곡을 하도록 했습니다.
아르바이트 치고는 좀 그렇죠?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가셔서 보시니까 돈을 받고서 곡을 해주는 알바생들이 잔뜩 모여서 한참 곡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사람들이 다 비웃었대요.

죽은 아이를 보고 잔다고 하시니 안 그랬겠어요?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다 내어 보내시고는 아이 부모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만 데리시고 들어가셔서 죽은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서 “달리다굼!” 하시니까 소녀가 부스스 일어났다는 말씀입니다.(할렐루야!)

‘달리다굼’이 무슨 뜻이예요? - ‘소녀야 일어나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죽은 자도 살아서 일어나게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촛불집회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가 모셔야 할 촛불은 바로 우리 영혼의 촛불이 되시는 예수님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분 만이 우리들의 소망이요 우리들의 참된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을 불러주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죽은 자들을 살려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도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고,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말씀이 선포되어지고, 거룩한 의의 빛이 온 세계에 비추어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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