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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롬 1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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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롬 12:1~13)

할렐루야! 
오늘 주님의 날에 거룩한 예배에 함께하신 여러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먼저 한분 한 분에게 성령으로 충만 하여 강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가정에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하여 화목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고유가시대와 쇠고기 정국으로 어수선하고 어려운 삶의 현장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가 맺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사랑 속에 지난 11일 동안 종로지방교역자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삼개국은 이스라엘 주변국들로 성경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유익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가장 많이 본 것은 사막입니다. 이집트는 전체 땅의 95%가 사막이고, 두 번째 방문한 나라 요르단은 80%가, 그리고 세 번째 방문한 시리아는 70%가 사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삭막한 사막 가운데 도시가 건설되는 결정적인 조건은 바로 물이었습니다. 이집트처럼 나일강이 흐르든지, 아니면 오아시스가 솟든지 물이 있는 곳에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달, 화성 등 우주탐사에서 물을 찾는 노력이 왜 그렇게도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많이 본 것은 신전과 성들이었습니다. 물론 이번에 둘러본 것은 옛 유적지 중심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흔적들 속에서 영원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보았습니다.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그 세력을 보호받고 계속 연장하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욕망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성을 건축하고, 신전을 건축하고, 마침내 무덤까지 생명의 연장선상에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많이 본 것은 무슬림(이슬람)인들과 그 사원이었습니다. 우리가 둘러본 모든 나라들이 아랍 국가들이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만 온통 무슬림들 뿐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복장과 하루 다섯 번 기도시간을 알리는 스피커의 요란한 기도소리를 들으면서 신앙의 정체성에 대하여 많이 생각했습니다. 

11일 동안 매일 두 시간이상 경건의 시간을 갖고, 세 권의 책을 읽고, 196페이지의 글을 썼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받은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항상 그렇지만 이번 기회에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수없이 깨달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알았기에 삶의 보람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구원받은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하나님의 자녀 됨의 능력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매일매일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감사하며 살고 하나님이 오라 부르시는 날 할렐루야 찬미하며 하나님 앞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를 알지 못하고, 아침안개처럼 잠간 있다 사라질 찰라적인 영광을 위하여 싸워서 빼앗고, 자기의 성을 건설하고, 스스로 무덤을 만드는데 사력을 다하는 사람들의 삶의 흔적들을 보면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께서 진정한 신앙인의 길이 무엇인지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1.그 하나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도 바울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마지막 작품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축복이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함께 무한한 축복을 누리는 것이 존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사단이 끼어들므로 은혜와 축복 대신에 부적절한 인간의 억지와 저주가 사람을 고통으로 몰아갔습니다. 하나님대신에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 대신에 부적절한 관계를 통하여 쾌락을 추구하지만 그 모든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끊임없는 사람의 노력들은 마치 늪 속에 빠진 사람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욱 깊이 빠져드는 것처럼 죄의 수렁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로마서3:23, 24에는 사람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4:25에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로마서5:1, 2에는 이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적극적인 신앙의 삶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우리의 죄 사함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속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우리의 믿음 속에 우리의 의로움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심 속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의 강림 속에 우리 삶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위대한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냥 받기가 참 송구스럽기는 하지만 주께서 택하신 자들은 이 사실이 믿어지고 받아들여집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의 기쁨을 압니다. 그 축복을 우립니다. 
이것은 신비입니다. 
그래서 고백하고 노래합니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예수님 십자가 져야했나, 왜 사랑하나!”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12장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12장의 말씀은 이 은혜의 바탕에서 시작합니다.


2. 은혜 받은 자의 삶은 예배입니다.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은혜를 입어 의롭다하심을 받은 사람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실 예배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은혜의 채널이지만 누구나 그 은혜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자만이 그 은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은혜가 은혜를 낳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것은 그 은혜로 주어지는 모든 은혜의 마중물과 같습니다. 이 예수십자가와 부활의 은혜가 없으면 다른 어떤 은혜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골로새서2:2,3)
 
  은혜도 그와 같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하면, 그 은혜 속에서 주어지는 무궁무진한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금년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한지 40년이 되었습니다.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그 순간에 그 믿음 안에 주어지는 은혜가 이렇게 큰지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믿음으로 주어지는 죄 사함과 구원, 그 밖의 은혜를 구하는 것은 자칫 물신주의 곧 바알신앙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부자가 됩니다. 자식들이 잘 됩니다. 가정이 행복해집니다. 사업이 번창합니다. 이 말은 결코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잘 살기 위해서, 부자 되기 위해서, 자식들의 출세를 위해서,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예수 믿는 것은 위험합니다. 자칫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목적이 되지 않고, 다른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이번 여행 중에 가볍게 읽은 책 한 권은 “유쾌한 유머”라는 책입니다. 연세대학을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교수로, 유머특강강사로 맹활약을 하고 있는 김진배씨의 책입니다. 이 분의 유머철학이 좋습니다. “성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다보니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억지로라도 웃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글 중에 아주 재미난 부분이 있습니다. 
“백수일수록 당당하라”

“미스터 김,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회사가 어렵잖아···” 이 말 한마디에 회사의 어려운 사정으로 정리해고 되어 졸지에 백수가 된 20대 중반의 이 사람은 온 세상이 우울하기만 했습니다. 전기통닭집에 걸려있는 통닭도 불쌍하고, 길가에 떨어진 낙엽도 불쌍했습니다. 너나 나나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 것은 같구나···아침이 되면 갈 곳이 없는 게 이렇게 괴로운 일일 줄이야! ····어느 날, 아침 겸 점심밥을 늦게 먹고,  한참 걷다가 책방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부터 독서에 빠졌습니다. 책을 보면 볼수록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니 이렇게 중요한 지식들을 익히지 않은 상태로 내가 인생을 살았단 말이야? 그날부터 하루10시간씩 책을 읽었습니다. 교보문고, 종로서적, 남산도서관, 행촌동 에스콰이어 도서관··· 책을 읽으며 아침을 열었고, 책을 덮으며 하루를 마감했습니다.···책을 열 때마다 머리가 시원해졌고, 책을 덮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뿌듯함이 밀려왔습니다. 

백수란 사실이 고맙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백수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 좋은 지식들을 습득할 수 있었으리요.···그러면서 말합니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이 사람은 백수를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은혜로 오늘의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은혜 속에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 안에 모든 충만한 은혜가 있습니다. 

은혜 속에 더 풍성한 은혜로 나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부르면서 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
예배는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우리 몸을 거룩히 구별하여 드리는 거룩한 제사입니다. 

  거룩한 예배는 영적 오아시스와 같습니다. 메마른 사막 같은 세상에 살다가 예배에 참여함으로 시원한 생수를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거룩한 산제사인 예배는 메마른 땅에 흐르는 은혜의 강과 같습니다. 그 은혜의 물줄기를 따라서 온갖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교회의 거룩한 예배는 영혼을 살리는 생수가 흐르는 곳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권사님으로 92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기 전에 우리나라 보통사람들이 믿는 미신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제가 어릴 적에 어머님이 추운 겨울날 목욕재계하시고 기도하시기 위하여 준비한 제물을 가지고 냇가로 가시던 일을 기억합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정성이 예수님을 영접하시고난 다음에도 이어졌습니다. 예배하러 가시는 날은 목욕을 하시고,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셨습니다. 헌금도 항상 성경 책 갈피에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영적인 예배는 우리 몸으로 드립니다. 우리 몸을 거룩히 구별하여 드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함부로 살지 않는 것은 이 까닭입니다.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를 드려야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정결케 합니다. 몸을 정결하게 합니다. 

  히브리서11:4에는 아벨의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아벨과 가인의 예배가 형식을 갖춘 최초의 예배였습니다. 이 예배에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가인의 제사보다 더 의로운 제사로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드린 제물로 인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깨끗하고 의로운 제물을 준비한 그 믿음을 하나님이 보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성을 보십니다. 

  자녀들을 믿음으로 목회자가 되게 하고, 장로로 세우신 한 권사님의 믿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권사님은 큰 도매업을 하셨는데 그 때만 해도 신권이 흔하지 않던 때였습니다. 손님에게서 받은 돈이 새 돈이면 그 돈을 별도로 모아 헌금하셨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이 되면 권사님은 다른 사람들이 잘 하시지 않는 일 하나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주일에 헌금할 돈들을 세탁을 하고 다림이질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돈은 구겨져도 돈입니다. 새 것이든지 헌 것이든지 돈의 가치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권사님의 정성은 하나님 앞에 달랐습니다. 몸으로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천국까지 예비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예배가 우리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예배가 되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이 이번 6월호 교회소식지 베데스다를 보셨습니까? 
지난 두 주간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고 김봉윤 권사님의 추모사가 그 아드님이신 김현철목사님의 글로 쓰여 졌습니다. 그 제목이 “평생 ‘주니, 주님’하며 바치고 축복받은 어머니”입니다. 권사님은 이 교회를 새롭게 건축할 때에 정성껏 헌금하시어 교회가 이처럼 봉헌하는데 힘을 더하셨습니다. 예배가 소중함을 아셨기에 이 거룩한 성전을 건축하는데 기꺼이 거액을 봉헌하셨습니다.    
 

3. 받은 은사로 사람을 섬깁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을 통하여 우리가 받은 것은 각양 은사입니다. 

로마서12:6-8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믿음으로 사는 예배 자들의 삶에 나타나는 것은 섬김입니다. 받은 은사를 따라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씀으로 축복하는 예언으로!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은 섬김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즐거움으로 할라 하십니다. 

믿음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 예배라면, 믿음이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은 섬김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예배로 나타나든, 섬김으로 나타나든 그것은 궁극적으로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예배함으로 내 마음에 성령이 충만합니다. 성령의 은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기쁨이 충만합니다. 
섬김으로 내 마음 속에 존재의 보람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삶 속에서 더욱 뜨겁게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섬김은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기꺼이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생명까지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우리 또한 고난 중에 있는 이웃을 섬깁니다. 우리들 중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는ㄴ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이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섬깁니다. 

지구촌 이웃나라들이 자연의 대 재앙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사이클론으로 10만 명 이상이 사망 실종되었으며, 100만 명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하였습니다. 중국의 쓰촨성에는 대지진으로 8만 명 이상이 사망, 실종되었으며, 124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반쪽, 북녁에는 결핵으로 130만 명이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 중에 30만 명은 어린이들로서 3만원이면 6개월 치의 약과 영양제를 공급하여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은혜 받은 성도들이여! 
받은 은혜를 잊지 마십시다. 더 큰 은혜를 위하여 예배하는 일에 집중하십시다. 예배를 통하여 받은 은사로 이웃을 섬깁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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