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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이 진짜냐? (살후 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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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짜냐? (살후 2:5~14)

지난 삼일 동안 부흥회를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혜 아래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참으로 혼란스러운 것이 과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옳다고 하는 것이 돌이켜 보면 전혀 아닌 것이 있고 모두가 다 틀렸다고 하는데 다시 보면 그것이 사실은 옳은 것이 또한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세상의 가치관과 믿음의 가치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런 혼란이 옵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향유를 부어 드렸습니다.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깁니다. 그때 제자중 하나 가룟 유다가 말합니다. 그 향유를 갖다 팔면 삼백 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는 귀한 것인데 차라리 그걸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런데 그걸 그냥 낭비해 버리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구나. 한편 생각해 보면 옳은 말입니다. 

성경에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한다고 하는 것은 자주 이야기 되고 있는 또한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그렇게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이 한 일은 가난한 자를 돕는 것보다 더 큰 일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요. 

그렇게 보니 아까 이야기는 틀렸습니다.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한다고 하는 점에서는 아주 옳은 이야기인데 그러나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다고 하는 점에서는 틀렸더란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이란 세상의 입장에서가 아닌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미 활동을 시작한 불법의 비밀은 예수님의 가치관이 아닌 세상의 가치관으로 모든 것을 보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인정하는 가치관이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해도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무엇이 진짜입니까?

먼저 생각할 것은 불법한 자가 나타나 이미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법한 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사람입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내 생각대로 바꾸어 해석합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 불법의 비밀이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려고 하는 악한 영의 역사를 말합니다. 그런데 악한 영의 역사라고 하니까 그들이 예수를 믿지도 못하도록 방해를 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대드는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이미 지난날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보다 지능적입니다. 믿지 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믿으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믿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슬쩍 자기들의 가르침을 끼워 넣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으로 시작해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가 참고 사항으로 여길 수는 있어도 그대로 지킬 이유는 없다고 합니다. 그럼 신약 성경의 말씀에 대해서는 무어라고 합니까? 시대가 달라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 당시와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다 그러니까 오늘에 맞게 모든 말씀을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습니까?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3장 8절로 9절을 통해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 주신 모든 말씀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선민 이스라엘에게 주신 모든 말씀은 곧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변함없다면 그 하나님의 말씀 역시 변함이 없음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곧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악한 자는 무어라고 우리를 속입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약은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요 참고 사항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될 이야기지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것도 지키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또 그렇게 말합니다. 그건 예수님이나 지킬 수 있는 것이지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의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 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능력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또 뭐라고 하느냐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는 단순한 삶일 뿐입니다. 믿음은 현실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낫겠나이다.” 라고 했던 백부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말씀만 하면 중풍 병자가 낫는다? 그게 가능한 말입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 하셨고 그 즉시 그 하인이 고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믿음은 현실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친다면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곧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양이 새끼를 낳을 때 알록달록한 것이 나올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내 삯은 알록달록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랬더니 다 알록달록한 새끼들이 태어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이야기입니까? 그래서 믿음은 신비로운 것이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마귀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네 냉철한 지성으로 판단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인생의 모습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오히려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피곤해서 안 된다고요? 하나님이 힘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머리가 나빠서 안 된다고요? 하나님이 지혜 주시면 되는 겁니다. 나는 가진 것이 없다고요?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없는 데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포도주가 다 떨어졌어도 물이 포도주가 되지를 않습니까? 그 믿음을 현실로 가져오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불법한 자에게 더 이상 속아서 살아가는 우리가 아니라 오직 말씀대로 살아가는 기도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악한 자는 속임으로 멸망에 이르게 하려 합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악한 자는 사탄의 조종을 받아 마치 자기가 진짜인 것처럼 이런 저런 능력과 표적들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그만 속아서 넘어가는 사람이 있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속아서 넘어지는 사람들이 그렇다면 미련한 사람들이냐 하면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탄도 아무나 집적대고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교회나 왔다 갔다 하고 그냥 편한 대로 믿으려고 하는 사람은 사탄도 그냥 내버려 두십니다. 

로마서 1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자기 정욕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버려 두신 사람을 사탄이 아니다 너는 잘 믿어야 돼 그렇게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은 사탄 역시 신경도 안 씁니다. 그럼 누구를 건드리고 속이느냐 하면 열심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잘 믿는다고 하고 열심도 내는 사람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는 그런 사람을 찾아서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 모든 사람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을 사탄은 집중적인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열 번 아니라고 하는 것보다 중직에 있는 사람 하나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더 큰 위력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뒤쳐져 있는 사람은 사탄은 언제든지 자기 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냥 버려두는 것이죠. 언제라도 밥은 먹어버리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사탄의 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사탄이 우리의 밥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 갈렙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따라서 사탄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적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주님의 능력이 우리를 사로잡으면 됩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데 그 말씀이 내 안에서 나의 능력이 되기 위해서는 그 어떤 말씀에도 아니요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모든 말씀을 예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건 말도 안 된다고요? 말도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그것이 바로 능력인 것이요 그 능력은 오직 믿음 안에서 나타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아브라함의 명령을 따라 자기 주인의 아들과 결혼할 상대를 찾아 하란 땅으로 가던 아브라함의 종이 어떻게 합니까?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 결과 리브가라고 하는 귀한 믿음의 여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그건 안 됩니다. 내 생각이 그렇고 내 믿음이 그런데 거기에 무슨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겠고 무슨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안 되도 하나님으로서는 가능하다고 믿고 고백하면 하나님이 말도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 생각이 아니라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먼저 하나님께 여쭈어야 합니다. 따라서 믿음이란 왜 해야 됩니까가 아닌 어떻게 해야 할까요를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왜가 없습니다. 굳이 있다면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다는 것뿐입니다. 그건 도망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요나가 그랬습니다. 나중에는 스스로 나를 바다에 집어 던지라고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또한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아브라함에게 네 고향 네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주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나는 못합니다. 그런데 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다고 하십니다. 능력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하냐고 합니다. 너 그거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면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가십니다.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요 그 사랑 안에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구원입니다. 하지만 사탄은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것이 싫습니다. 왜요? 사탄은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심보는 우리가 망하도록 만들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더 이상 속지 마십시오. 

왜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까? 그건 내가 원래 원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를 더 이상 원수가 아닌 친구로 하나님이 여겨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너도 더 이상 원수가 아닌 하나님 안에서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친구만이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 마음에 안 든다고요? 나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나를 하나님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마음에 안 들기에 더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수개 소리로 맞고 할래 그냥 할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컷 두들겨 맞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하고 두 손 두 발 다 든 요나가 되지 마시고 아브라함처럼 처음부터 그냥 순종하십시오. 거기에 내 생각을 들이대지 마십시오. 내 생각에 옳은 대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우리들에게 주신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르십시오. 여기에 모든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순종이 예배보다 낫다고 했던 것입니다. 오직 선은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임을 다시 기억하시고 오직 말씀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악한 자는 거짓 것을 믿게 하심으로 우리를 멸망케 하려 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바꿔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유혹이 임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막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내 생각에 아무리 아닌 것처럼 느껴져도 내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더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저 적당히 믿으면 된다고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적당히라는 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사탄은 결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단지 순서를 바꾸어 놓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일보다 내 일이 먼저가 아니냐고 합니다. 내 코가 석자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 일부터 하라고 합니다. 내가 먼저 살고 봐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내 생활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에게 먼저 내게 먹을 것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허기진 네 아들 먼저 먹이고 그리고 나서 나 먹을 것도 가져오라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한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가뭄이 계속 되었어도 더 이상 사르밧 과부는 먹을 것을 걱정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먹을 것을 공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넘어집니까?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입니다. 불의란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각을 더하거나 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더하거나 빼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직 말씀대로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을 자꾸 고집하다 보면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화를 내십니다. 하나님이 화를 내시면 누가 거기에 견딜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내가 쌓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다 불어버리신다고 했는데 그렇게 될 때 내게 남아 있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영광의 상처라는 말을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영광도 없이 그저 상처만 있을 뿐이요 그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해서 화를 내시면 내가 어떻게 견딜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겸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의 지혜로운 것이 하나님의 미련한 것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잔머리 굴리지 마십시오. 그저 미련스럽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오직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럴 때 심판이 아닌 구원과 더불어 상급이 우리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이런 구원의 자녀요 은혜 아래 복된 나날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직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나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인가 아니면 내 생각과 경험을 더 내세우는 사람인가 깊이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게 될 때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린 여인처럼 그것이 내게 당장은 손해가 되는 것 같으나 오히려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된 날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니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낭비가 아닌 투자인 것입니다. 너희가 심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심고 헌신함으로 심고 사랑으로 심고 넓은 마음으로 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쩨쩨하게 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오직 말씀을 따라 순종함으로 심고 기도로 심고 헌신함으로 심고 넓은 마음으로 풍성하게 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놀랍도록 우리의 길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날마다 넘쳐나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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