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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러나, 나는 너의 하나님... (호 1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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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너의 하나님... (호 13:1~16)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니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호13:4)

어떤 책에 보니까 항상 웃는 날이라는 제목으로 월요일은 원래 웃는 날, 화요일은 화사하게 웃는 날, 수요일은 수수하게 웃는 날, 목요일은 목숨걸고 웃는 날, 금요일은 금방 웃고 또 웃는 날, 토요일은 토실 토실하게 웃는 날, 일 요일은 일하지 않고 웃는 날 그래서 항상 웃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이 주일 아침에 주님과 함게 웃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통해서 주님의 위로와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면 4절에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 라고 했습니다.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이 말의 현대적 의미는 우리가 예수 믿기 전부터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알기 전부터, 교회 다니기 전부터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으로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축복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기 전부터... 내 하나님이셨는데 지금은 어떠하겠습니까?
거룩한 부르심이 있어 주님께로와 허물과 죄를 자백하고 날마다 은총 입기를 구하며 업드려 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받겠습니까?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언제나 항상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라고 외칠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문에 있는 “그러나” 라는 접속사가 문제입니다. 
여기서 접속사 “그러나” 는 이스라엘 백성들 즉 에브라임 지파의 죄악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희를 알고 사랑하는데 너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자기의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돌보셨는데 백성들은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북 왕조 10 지파 중에서 대표적인 지파입니다. 한 때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창46:16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임종을 앞두고 자기 아들들을 불러 마지막 유언과 축복기도를 하는 중에 에브라임 지파에 대하여 “세상에서 번식되게“ 해달라고 축복하였습니다. 
그 축복의 말씀대로 에브라임지파는 북 왕조의 지도층에서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북 이스라엘을 막강한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북 왕국의 초대 왕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지파에 속했습니다. 그리고 이 여로보암 왕 때에 그들의 번영이 극에 달했습니다. 

1절에서 “에브라임이 말을 발하면 사람이 떨었도다.” 라고 표현한 것은 에브라임의 정치적 영향력과 번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문에서 에브라임의 죄악을 지적합니다. 

에브라임 지파의 죄악은 1절에 의하면 자기를 높이는 교만이었습니다. 
교만이란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제하면 당연히 헛된 우상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1절 하반에 보면 “저가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이더니 바알로 인하여 범죄하므로 망하였거늘”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높이고 자신이 교만에 빠지면 반드시 우상에 빠집니다. 
인간은 타락한 본성 때문에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면 교만에 빠집니다. 그리고 교만에 빠지게 되면 헛된 우상을 만들고 그것들을 섬김니다. 

2절에서 교만하여 우상을 만드는 인생들의 실상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이제도 저희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공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장색이 만든 것이어늘 저희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의 입을 맞출 것이라 하도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만은 곧바로 배은 망덕하는 행태로 나타납니다. 
배은 망덕이란 은혜를 입은 자가 은혜 입은 것을 망각하고, 감사하기는 커녕 도리어 자기에게 은혜 베푼 자를 부인하거나 배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호13:5-6절을 보면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권고하였거늘 저희가 먹이운 대로 배부르며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하나님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권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광야 마른 땅은 사람이 살수 없는 척박한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은 그곳에 두지 않으시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북왕조 이스라엘이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뛰어난 정치 술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먹이운 대로 배불렀고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배은 망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많이 받고 삽니까?
오늘 나의 누리는 행복이, 안녕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왜 모르십니까? 그것이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인 줄로만 알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면 그것이 죄입니다. 

미국에 제이슨 오니코프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환경 보호주의자이며 동물 애호가로 지난 10년간 상처 입은 악어들을 치료해 돌보는 것으로 플로리다 일대에서 유명한 사람입니다. 
상처난 악어, 병든 악어를 데려다가 치료해주고 극진히 돌보아 주며 길들이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악어들을 집에 데려다가 직접 먹이를 주고 자신의 집 근처에서 마치 애완동물처럼 키웠습니다. 심지어는 침대에서 같이 자기도 했으며 목욕도 시켰습니다. 
그는 평소 안전을 염려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악어는 애완 고양이 만큼 온순하다”고 말해왔다고 합니다. 

제이슨의 절친한 친구인 아널드 워신 버그씨는 “몇번이나 파충류는 어떤 행위를 할지 알 수 없다고 경고했지만 제이슨은 듣지 않았고 그들은 실제로 너무 친해 보였다” 고 합니다. 그런데 이 동물 애호가가 스스로 돌봐오던 악어에 물려 죽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부엌 바닥에서 발견된 그의 시신은 목이 떨어져 나가 있었으며 왼팔이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이슨을 해친 약 2m 짜리 악어는 침대 밑에서 잡혀 해부한 결과 위속에서 인육이 다량 검출됐습니다. 그는 그가 그렇게 사랑하고 돌봐주던 악어에게 배은 망덕한 일을 당한 것입니다. 
동물 연구가들에 의하면 파충류인 악어는 애정에 반응하는 형태가 다른 포유류 동물과는 전혀 달라 처음 얼마간은 길들여지는 듯하다가도 언젠가는 특별한 이유 없이 공격적 본성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아니 오늘 우리가 그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고 돌봐주시고 은혜주시건만 오래 참고 기다리시며 은혜로 붙들어주사 믿음안에 굳게 서기를 기다리시건만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모습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목전에서 여지없이 그를 부인하고 그의 뜻을 묵살하는 배은 망덕한 모습이 아닐까요?
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배은 망덕의 자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 만큼 주님을 위해서 삶을 헌신하는 것이 복음적인 감사 생활이 아닐까요?

에브라임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배은 망덕한 에브라임의 죄를 하나님께서 가만 두실 리가 없습니다. 자기를 높이고 배은망덕한 에브라임을 향하여 심판을 경고합니다.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고 배은 망덕한 에브라임에게 심판의 경고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에브라임을 새끼 잃은 곰같이 그들을 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호13:8절에 보면 “내가 새끼 잃은 곰같이 저희를 만나 그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같이 저희를 삼키리라 들짐승이 저희를 찢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새끼를 잃은 곰의 사나움은 무엇으로 비유되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상대 하시면 누가 살아남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엄중합니다. 호1313절에서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저에게 임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해산하는 여인이 난산으로 인하여 격는 고통과 같은 고통이 임할 것이라고 징벌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런데 하나님은 에브라임에 대하여 심판을 경고하시면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본문 4절에서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라는 접속사는 지금까지의 모든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가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까지 하나님이 지적하신 그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애굽 땅에서 나올 때부터 우리의 여호와가 되셨습니다. 애굽 땅에서 나올 때는 언제입니까? 북 왕조가 세워지기 훨씬 전입니다. 그들이 범죄하기 전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 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며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애굽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 시간, 그 시간 전부터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 셨습니다. 하나님이 볼 때 잊을 수 없고 버릴 수 없는 자신의 백성들이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백성들이 잘못된 길을 갈 때 하나님은 징계와 채찍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채찍 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시고 계신 것이 바로 4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모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행불행의 궁극적인 요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즉 경제적 정치적인 문제보다 신앙에 있음을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만 섬기고 그분 만을 사랑하고 의지할 때 14절의 말씀처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시고 사망의 권세에서 구속하여 주실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힘이 존재합니다. 
지식의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식의 힘을 소유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며 학문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나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의 힘이 있습니다. 물질의 힘 또한 대단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자면 이런 모든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완전하지도 못하며 영원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세상에서 승리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완전하시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힘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라고 하박국 3:1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 주님의 은혜를 망각하지 맙시다. 
그분과의 아름다운 관계가 우리의 힘이라는 사실을 믿고 그 분만을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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