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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쁨 (빌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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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 (빌 4:4~4)
 
Ⅰ. 서  론

빌립보교회는 주후 52년경,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때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환상 중에 한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9)"고 하는 말을 듣고는 소아시아로 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 이르러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는 귀신들린 여자아이 하나를 고쳐 주게 되는데 그것 때문에 애매하게 매도 많이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바울 일행은 그 감옥 안에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드리다가 옥문이 열리고 간수가 회개하는 사건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사건을 발단으로 빌립보에 교회가 서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힌 몸으로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쓴 이 서신서에는 ‘기쁨의 복음’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습니다. 

4장밖에 안 되는 빌립보서에 “기쁨”이라는 말이 16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기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빌립보 감옥에서 있었던 그 사건을 배경으로 얻어진 신령한 기쁨이요. 능력입니다.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악을 이기는 권세인 것입니다. 이 기쁨은 죄악을 이기는 권능입니다. 이것은 옥문을 여는 능력이요, 복음의 문을 여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빌립보서를 ‘기쁨의 복음'이라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Ⅱ. 본  론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일시적인 한 순간의 기쁨이 아닌 지속적인 기쁨을 어떻게 하면 소유하고 살 수 있는가를 고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기쁨의 인생을 사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소유하고 계시는 기쁨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기를 소원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15:11)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소유한 사도 바울의 기쁨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어떠한 환경과 처지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는 성도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5장 3절에 보면 혹독한 핍박을 받는 중에서도 즐거워하고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 5장 5절에서 말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다시 말하면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폭포수처럼 가득 채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환난을 당해도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완전히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는 사랑입니다. 어떤 죄도 예수 이름으로 나가면 용서해 주시는 사랑입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넉넉히 이깁니다(롬 8:37).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롬 8:39). 성령을 통해 우리는 그 사랑을 마음 가득히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깨닫든지 그렇지 않든지 언제나 우리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으면 기쁨이 생깁니다. 슬플 때, 마음이 아플 때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도 바울처럼 세상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우리에게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슴으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한 더 없이 크고 넓은 사랑을 알아 그 사랑 때문에 어떠한 환경과 역경 속에서도 기쁨을 누리는 능력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소유함으로 기쁨을 누립니다.

사도행전 8장 8절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엄청난 기쁨이 온 도시에 넘쳤습니다. 기쁨의 복된 소식인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가 그 도시에 들어가니 도시는 기쁨의 도시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죄악이 들어가면 그 도시는 썩고 타락하고 맙니다. 기쁨을 앗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가정에 들어가면 그 가정이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개인의 영혼 속에 들어가면 개인의 심령이 평화와 기쁨으로 넘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빌립보서 3장 1절을 보면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바울 자신이 주안에서 항상 기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장 7-8절에 그 기쁨의 이유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수님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뻐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얻었고, 예수님을 소유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참된 기쁨의 원천이 되십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 예수님을 발견하자마자, 이 예수님을 소유하자마자 너무나 좋아서 다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취급해버렸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나의 모든 죄가 용서 받았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이 험한 세상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도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모시면 예수님이 누리는 하늘의 모든 영광스러운 축복이 다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 때문에 바울은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전함으로 기쁨을 누립니다.

눅 1:13-14에 보면 세례요한이 태어남을 알리는 천사가 세례요한을 통하여 기쁨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연 세례요한의 삶이 그의 부모에게, 자신에게 많은 사람에게 기쁨이 되었습니까? 누가 보더라도 그의 생애는 자기 부모에게 즐거움을 준 인생이 아니었고, 자신에게도 기쁨이 되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말씀을 외치고 갖은 박해를 받고 말년에는 옥에 갇힌 죄수로 있다가 헤로디아의 딸에게 줄 선물거리로 자신의 목을 내놓아야 했습니다(마 14:10-1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생이 기쁨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성경은 눅 1:15-16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를 높이고 그를 통하여 많은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 큰 기쁨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도바울도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곳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 결과 간수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또한 네로의 궁전에까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빌 4:22). 바울에겐 예수님을 전하는 기쁨보다 큰 기쁨이 없었습니다. 자기를 시기해서 예수님을 전해도 기뻐했습니다.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라”(빌 1:18).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가 너무 크고 놀랍기 때문에, 나 한사람만 간직하기엔 너무도 풍성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각종 시험과 시합에서 좋은 성적을 내어도, 좋은 일들이 있을 때도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최고의 기쁨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했을 때 밀려오는 기쁨인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전도는 우리에게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가장 깊고 넓은 최고의 기쁨과 보람과 영적인 만족을 안겨 줍니다. 이 기쁨을 누리며 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Ⅲ. 결 론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울이 사역 중에 겪었던 옥에 갇히고, 수없는 매를 맞고, 파선의 경험과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광야, 바다, 거짓형제의 위험,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헐벗고, 죽음을 앞에 둔 상황 속에서도 무엇 때문에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았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에 항상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가장 소중한 예수님을 얻었기에 항상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나에게 있는 가장 소중한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함으로 항상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기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당하는 모든 형편 속에서도 주안에서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비천하거나 풍부할 때도, 배고프거나 배부를 때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고 말합니다(빌 4:10-11). 그리고 이 비결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우리 각자가 처한 형편이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만족스러워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불만족스러워 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행복해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형편에 놓여 있든지 우리는 바울처럼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이고, 이 예수님을 전하는 삶에서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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