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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자 (욜 2:28~32; 행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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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자 (욜 2:28~32; 행 1:6~11) 
 
   우리가 특정한 단체의 일원으로 들어가게 되면 일정 기간 동안 집중교육을 받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단체의 회원으로서 맞는 생각과 행동, 말을 하게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런 집체교육을 받아도 우리의 오랜 습성이 잘 바뀌지 않습니다. 제가 군에서 장교교육을 받을 때도 민간인을 군인으로 만드는 집중교육기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정말 호되게 교육받습니다. 빨리 군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습니다. 저도 한 번은 행정반에 훈육관을 만나러 들어갔다 나오면서 허리를 굽혀 넙죽 인사하다가 자유 시간 내내 엎드려 기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우리에게는 민간인이 군인으로 거듭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신분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옛 습관을 벗어버리고 새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요지 : 나는 내 삶 속에서 새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며 살아야 한다. 

첫째, 왜 내 삶 속에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오순절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복음의 증인, 영혼의 추수 꾼이 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40일 동안 함께 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오순절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사건, 이스라엘 역사의 절정의 순간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제자들은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의 절정을 잘못 그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그들의 질문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때가 이 때 입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제 왕이 되셔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인 나라가 이 땅에서 당장 회복되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지극히 육체적이고 민족적인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나라에서 장관 자리 하나 쯤은 차지 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 역사의 절정의 시간이 왔고 이제 곧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셔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좌정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제자들의 생각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민족적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만왕의 왕이 되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들이 소원했던 것처럼 그 나라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자리는 세상의 주관자들처럼 권세를 누리고 행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자리는 바로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구속의 사역을 증거하는 증인들에 의해 든든히 세워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의 참된 임금과 구주가 되심을 전파함으로 확장되어집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그 자들이 중요한 자들입니다. 우리 역시 제자들과 같이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중요한 직분을 맡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는 우리가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갈 때 주어지고 계속해서 누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특권을 누리시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또 하나 우리에게 주어진 신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추수 꾼이라는 것입니다. 신천지라는 이단에서 이 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조금 거부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름은 바로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아무런 역사도 일어날 수 없는 능력 없는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구원역사의 열매들을 걷어 들이는 기쁨을 만끽 할 추수 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추수하는 자들에게는 풍성한 수확이 있고 기쁨이 넘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들판에 곡식이 익어 휘어졌는데 일꾼이 부족하니 추수할 일꾼을 주시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바로 추수의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초대교회가 생겨났고 우리 또한 이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제자들과 우리를 예수님의 증인으로 만들 성령강림이 바로 오순절 날 일어난 것입니다. 오순절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순절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중 시기적으로 가운데에 위치해 있습니다. 오순은 무슨 뜻입니까? 순은 10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오순은 50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칠순, 팔순이라고 말할 때와 같은 의미입니다. 첫 명절인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 바로 오순절입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와 관련된 뜻을 가집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기념합니다. 오순절은 출애굽 후 50일이 지나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율법을 받음으로 하나의 정식 국가로 탄생한 것을 기념합니다. 장막절은 광야 생활 가운데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인도하신 것을 기념합니다. 이것은 또한 예수님의 구원 사역과도 연결됩니다. 유월절은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오순절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탄생된 것처럼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정식 탄생된 것을 의미합니다. 장막절은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누리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오순절은 맥추절이라고도 하는데 바로 이 날이 보리의 완전한 수확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절기들에는 농경적인 의미들이 배경에 있습니다. 유월절은 보리의 이삭이 반 즈음 익었을 때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은 이 보리가 완전히 추수될 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막절은 한해의 모든 양식을 수확하여 곳간에 저장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은 한해의 첫 수확인 보리를 걷어 들이는 기쁨의 절기입니다. 그들은 양식을 추수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또한 남은 모든 농사가 끝나고 곡식을 저장할 장막절까지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믿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님께서 임하심으로 제자들은 영적 추수 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3000명, 5000명의 영혼들을 거두어들이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거두어 드린 이 초대교회를 다시 보내시어 땅 끝까지 추수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셨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부름 받은 우리 역시 추수할 일꾼이 되라고 보내십니다. 이것은 억지로 우리에게 열매를 만들어 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풍성하게 무르익은 열매를 거두어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추수 꾼으로 부르셨음을 알고 믿음으로 낫을 들고 나가 곡식을 베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추수하는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사도행전의 29장이 계속 써져 가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소원으로 삼고 기도하시고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마지막으로 왜 내 삶 속에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까? 살려 주는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항상 계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순절에 임하셨다는 것은 그전에는 활동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는 창조 때부터 역사하셨고 구약의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도 역사하셨습니다. 구약의 백성들도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며 오실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경우 몇몇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역사하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특별히 임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사사와 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이방의 손에서 구해내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림으로 참된 사사이시고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선지자들 가운데 특별히 역사하셨고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보이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읽은 요엘서의 말씀처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게 될 성령의 역사는 구약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요엘 선지자가 말씀한 이런 이스라엘의 소망은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베드로가 그의 설교에서 바로 요엘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성령님께서 충만히 임하심을 보게 됩니다. 또한 이 예언의 성취는 오순절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께서 오늘 우리 속에도 충만히 거하십니다. 신약의 성도인 우리 모두는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전인 우리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겠습니까? 먼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그들 가운데 역사하신 분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바로 살려 주시는 영이십니다. 생명을 주시는 영이십니다. 죽은 예수님을 살리신 이 성령님께서는 죽은 우리 역시 예수님과 함께 살리셨습니다. 성령님으로 인해 우리 속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부활의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과 겉모습이 비슷해 보여도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이런 우리를 가리켜 종이에 글로 쓴 편지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으로 우리 속에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다른 이에게 전하여 지고 흘러가게 하십니다. 새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귀한 도구와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계시다면 우리를 통해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이쯤에서 우리의 삶을 진지하게 한번 돌아봅시다. 우리는 혹시 기적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를 복음의 증인으로, 영적인 추수 꾼으로 부르셨는데 우리의 삶 가운데 새 생명의 역사가 날마다 일어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살려주시는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함께 하심으로 부활생명이 우리 속에 용솟음치고 있는데 우리를 통하여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적 같은 일을 매일의 삶 속에서 행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또한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오순절 성령강림 주일을 보내고 있는 저의 고민이요 기도제목입니다. 아침마다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내 삶 속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과연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는 나 한 사람이 그 곳에 있음으로 해서 어떤 유익과 생명의 역사를 경험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질 때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나를 통하여 생명을 얻게 되고 풍성히 얻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하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와 소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저 반성하고 자책하자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열매 없는 자신의 삶을 보며 우리 자신이 받은 놀라운 신분의 변화와 은혜를 의심하라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서론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바로 알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옛 생각과 습성을 버리고 변화된 신분에 맞는 삶을 살며 신분에 맞는 열매를 기대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매일의 삶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질문하고 그 답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변화된 신분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았다면 그 신분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마땅합니다. 우리 안에 오순절 성령님께서 임하심으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증인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때에 부름 받은 영적인 추수 꾼이 되었습니다. 부활 생명을 주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이런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소망합시다. 날마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되게 합시다.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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