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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행 2: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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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행 2:37~42)

오순절에 베드로는 천하만국에서 모인 자들에게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의 양심이 찔리기 시작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이들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What shall we do?)”(행2:37)라고 몸부림쳤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이들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신 나간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특별히 구원받기 위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물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①너희가 회개하여 ②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③죄 사함을 받으라 ④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2:38)고 일러 주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제시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회개”입니다. 

오늘은 구원받는데 필수적 요소인 “회심(回心, Conversion)”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심을 일명 “회개(悔改, Repentence)”라고도 합니다. 

예레미야는 “①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②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③그들의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④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렘8:6)라고 말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사람들은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What have I done ?)”라고 말하는 자가 없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선민 중에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자가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회심(回心)이라고 하는 회개(悔改)는 하나님께로 전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이탈하였던 하나님께로 돌아옴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옴 없이는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1. 피상적(皮相的)인 회심이 있습니다.

피상적 회심(Superficial Conversion)은 외형적 회심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는 이 회심을 민족(국민)적인 회심이라고 합니다. 민족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피상적일 수 있습니다. 외형적일 수 있습니다. 일시적일 수 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니느웨는 큰 성읍이라 사흘 동안 걸을만 했습니다. 하루 종일 다니면서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3:4)고 외치며 다녔습니다. 

요나의 말씀을 들은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위에 앉았습니다.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먹지도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3:10)고 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다 유대교로 개종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민족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에게 일반적인 도덕적인 개선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회심의 모양만 갖추고, 개종의 모양만 갖추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서지 않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상업적인 목적으로, 인정적인 사정으로 모양만 갖추는 회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2. 일시적(一時的)인 회심이 있습니다. 

영적인 변화가 없는 일시적인 회심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은 씨뿌리는 비유에서 “①말씀을 듣고 기쁘게 받으나 ②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③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마13:20-21)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가리켜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딤후2:18)고 말했습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개종은 일시적인 것이었습니다. 금방 이단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단으로 넘어가 다른 사람들의 믿음까지 무너뜨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4:10)라고 말했습니다. 데마는 일시적으로 회심하여 전도대열에까지 동참했으나 끝내는 세상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히브리서는 “①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②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③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④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⑤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게 못 박아 드러내놓고 욕되게 함이라”(히6:4-6)고 말했습니다.  

사도요한은 교회를 이탈한 자들에 대하여 “①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②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③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④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2:19)고 말했습니다. 

유다는 이런 자들을 “①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②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③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④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유12-13)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이런 자들은 “빛가운데 있는 모양을 보이나 지금까지 어두운데 있는 자요”(요일2:9),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계3:1)였습니다. 


3. 구원에 이르는 회심이 있습니다. 

중생한 자는 반드시 구원에 이르는 회심에 이르게 됩니다. 평생 한번 밖에 없는 회심입니다. 두 번 다시 필요 없는 완전한 회심(회개)입니다. 중생한 자는 반드시 이 회심에 이르게 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회심으로 시작하여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열매를 맺습니다. ①사탄의 권세로부터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전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②영혼에 심적 감화를 받아 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구원에 이르는 회심이라고 합니다. 

구약성경에 그 실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①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왕하5:15), ②유다왕 므낫세가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③하나님이 그를 치심으로 앗수르왕이 쳐들어와 그를 사로잡아 갔습니다. ④바벨론으로 끌려간 므낫세가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 기도했습니다. ⑤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⑥므낫세가 그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 알았습니다(대하33:10-13).

신약성경에는 구원에 이르는 회심을 한 자들이 무수히 소개됩니다.  ①삭개오(눅19:8-9) ②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요9:38) ③사마리아 여인(요4:29,39) ④구스내시(행8:30) ⑤고넬료(행10:44~) 바울(행9:5~) ⑥두아디라 여인 루디아(행16:14)와 같은 자들은 완전히 회심하여 구원의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회심은 평생 한번밖에 없는 회심을 말합니다. 중생과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숨을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중생하여 구원에 이르는 회심을 한 자는 절대 지옥으로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구원을 받습니다. 


4. 축복에 이르는 회심이 있습니다. 

중생하여 구원에 이르는 회심을 한 후 믿음이 식어서 타락의 단계로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그럴 때에 회개하여 처음의 믿음으로, 처음 사랑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①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②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③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④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⑤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⑥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족하였다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반복 회심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반복적인 회개라고 합니다. 반복적인 회개는 축복으로 인도합니다.

우리 주님은 베드로에게 “①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②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③너는 돌이킨 후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1-3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사탄의 역사로 넘어지고, 자빠지고, 범죄하고, 곁길로 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롬8:34). 그러므로 성령님의 기도 소리를 듣고, 우리 주님의 기도소리를 듣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회개하고, 자복해야 합니다. 


끝맺는 말

Wilberforce는 하늘가는 길은 “첫째로 바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요, 다음에는 똑 바로 행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만찬 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베드로가 사양하자 발을 씻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에는 베드로는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요13:9)라고 간청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요13:10)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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