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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워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시 4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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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시 46:1~11)

1. 요즘 어느 이동통신사의 텔레비전 광고 노래 ‘되고송’ 이 아주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 노래를 패러디한 버전이 많은 데, 그 중에 장동건 버전이 있습니다. 
“결혼 말 나오면 웃으면 되고
잔주름 늘면 작게 웃으면 되고
꽃미남 후배 점점 늘어나면 연기로 승부하면 되고
스타라는 게 외로워질 때면 옛날 친구 얼굴 보면 되고
생각대로 하면 되고!”

이 노래가 히트를 치게 된 이유는 이것입니다. 우리사회가 얼마나 살기 힘들고 팍팍한지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생각하도록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대로 하면 되고!” 했지만, 사실 생각대로 잘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양심과 도덕이 허용치 못하기 때문에 생각대로 못합니다. 환경이 떠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대로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이 노래 <홈 스위트 홈>을 만든 존 하워드 페인은 한 번도 가정을 가져보지 못한 떠돌이였습니다. 그러기에 가정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진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지만, 생각대로 잘 안 됩니다. 

2. 오늘 시편 말씀에서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스라엘이나 사람 사는 세상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는 게 쉽지 않고 생각대로 잘 안된다는 것입니다. 원치 않는 시련과 고통이 때때로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2-3절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찌라도”
자연의 재앙이 닥친다는 것입니다. 미얀마의 사이클론이나 중국의 지진으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사라져버렸습니까? 정말 두렵습니다. 
6절 “이방이 훤화하며 왕국이 동하였더니”
외국군대가 침략해와서 나라가 몹시 혼란스럽다는 것입니다. 
9절의 “전쟁, 활, 창, 수레”는 전쟁 상황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결국 ‘인생살이에는 어려움이 많다, 시련이 많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들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사랑도, 가정도, 사업도 흔들리지 않고, 비에 젖지 않고 꽃피우는 법은 없습니다. 
1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흔들리면서, 비틀거리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흔들릴 때,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요 도움이 되십니다. 
7절과 11절에 반복해서 나오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이 흔들리고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5절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예루살렘성 안에는 강이나 시내가 없습니다. 서울만 해도 도심에 한강이 흐르고 있고, 우리 대구에도 신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밖에서부터 물을 끌어들여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의 성인 예루살렘에 강이나 시내가 없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 민족이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물이 없고 메마를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원치 않는 환난을 겪기도 했다는 말입니다.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환난을 이겨낼 방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들은 시련과 위기를 이겨왔습니다. 출애굽할 때도 그러하였습니다. 홍해 앞에서도 그러했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더위와 추위를 막아주셨고, 광야길을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적군의 공격을 막아주셨습니다. 요단강을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의 도움으로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 생명의 능력이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으로 흘러들어옵니다. 그 생명의 능력이 예루살렘을 풍요롭게 합니다. 시련을 이기고 승리하게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물, 기쁨의 물, 위로의 물, 은혜의 물을 마십시다. 
그 물이 우리를 환난에서 건져줍니다. 그 물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합니다. 
우리를 살리는 물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5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하시면 우리는 결코 요동하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새벽은 곧 하나님이 도우시는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일어나는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때입니다. 
새벽은 반드시 옵니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련에서 건져주실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새벽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3. 새벽을 기다리는 우리는 어떻게, 무엇을 하며 기다려야 합니까? 
열왕기하 19장을 보면, 유다왕 히스기야 때 앗수르의 산헤립왕이 18만 5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습니다. 조선의 인조대왕 때, 청나라에 의해 왕실이 남한산성에 갇힌 것처럼, 히스기야왕과 예루살렘 성민들은 성안에 꼼짝 못하고 갇혀지냈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포위 상태가 길어지면, 다 굶어죽게 생겨났고, 그렇지 않으면 항복해야 하는데.... 
얼마나 답답한 상황입니까? 
그 때, 히스기야는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래도 앗수르의 산헤립왕은 여전히 히스기야의 목을 조여옵니다. 항복하라는 협박 편지를 히스기야에게 보내왔습니다. 히스기야는 그 편지를 들고 또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그 편지를 펴놓고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 보시옵소서.”
이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노라.”
그날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던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땅을 황무케 하고, 전쟁을 쉬게 하시고,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십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시련을 당할 때, 울고만 있지 말고 교회에 나와 기도하십시오. 
술, 담배로 신세타령하며 세월을 보내지 말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 앞에 나와 탄식하며 기도하십시오. 
울어도 하나님 앞에 나와 울고 탄식해도 하나님 앞에서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노라.”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결론을 짓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여기에서 “가만히 있어라”는 말은 너희 혼자 힘으로 뭔가 하려고 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말라, 사람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조용히 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도움으로 우리는 결국 환난을 이기고 주님 주시는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4. 시편 46편은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가장 애송하고 사랑했던 시입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하면서 교황청의 압력에 시달리며 절망에 빠졌을 때 이 시편 46편에서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루터는 어느 날 찰스 황제로부터 보름스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라는 소환장을 받았습니다. 보름스 회의에서 루터는 황제와 로마 교황청의 대표들로부터 종교개혁을 포기할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루터는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주장한 어떠한 것도 철회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제가 여기 섰사오니, 오 하나님! 저를 도와주소서.”
그 때 역시 시편 46편에서 큰 힘을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 시에서 힘을 얻어서 찬송가 384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를 작사, 작곡했습니다. 이 찬송은 독일 사람들이 애국가보다 더 애창하는 노래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큰 환난에서 구하여 내십니다. 
원수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고 우리 가정을 깨뜨리려고 하지만, 힘있는 장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십니다. 내 힘만 의지하면 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두려워말고 주님만을 신뢰합시다. 반드시 이기게 될 줄 믿습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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