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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 주님이 가치 있게 여기시는 것 (눅 1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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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가치 있게 여기시는 것(누가복음 15:1~10)

  매우 비싼 골동품을 소유하고 있는 부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차 6개월 동안 유럽을 방문하게 되어서 집을 비워놔야 하는데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비싼 골동품들을 도둑이 들어서 훔쳐갈 것 같은 걱정에 경보장치를 달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집을 아주 잘 지키는 개를 사다 놨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마음이 안 놓였습니다. 도둑들이 개에게 약을 먹여 개를 잠들게 하고 도둑질을 할 것만 같았습니다. 고민하던 중 한 가지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시장에 가서 몇 천원, 몇 만원하는 가짜 싸구려 그림을 수십 점 샀습니다. 그 그림에다가 3,000천만 원, 5,000원, 1억 원이라고 가짜 가격표를 붙여서 잘 진열해 놓았습니다. 그리곤 진짜 골동품들은 별 가치 없어 보이게 바닥에다 그냥 놔두었습니다. 이렇게 하고나니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그리곤 여행을 떠났습니다. 6개월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사이에 도둑님들이 왔다 가셨습니다. 3,000만원, 5,000만원 비싼 그림들은 다 가져갔습니다. 그러나 진짜 가치 있는 골동품들은 하나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도적들은 글씨는 읽을 줄 알지만 물건의 질을 모르니까 가격표만 보고 가져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싸구려에 불과합니다. 우리도 바른 가치에 눈을 뜨지 못하면 소중하지 않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아주 소중한 것들을 무가치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주님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나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의 생각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가치관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의 성숙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정말 소중하게 여기셨던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 대답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세 가지 비유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는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어떤 목자가 양 100마리를 돌보는데 한 마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곧 그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서 온 산과 들을 다 헤매며 수고합니다. 결국 그 한 마리를 찾고는 너무 좋아서 자기 등에 매고 돌아와서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아서 즐거워하며 잔치를 벌입니다.

  두 번째 비유는 열 드라크마의 비유입니다. 한 여인에게 열 개의 은전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가난하기 때문에 한전 한전이 너무나 귀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은전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그녀는 그 은전을 찾기 위해서 집에 등불을 밝히고 빗자루로 쓸면서 그 은전을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결국 그 은전을 찾은 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를 벌입니다.

  세 번째 비유는 두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아서 먼 길을 나갔습니다. 그는 허랑방탕하며 낭비하다가 결국은 거지꼴이 되어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이제나 저제나 아들이 돌아올까 동구 밖에 나가 기다립니다. 그리고 아들을 발견하고는 뛰어가서 그 아들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합니다. 그리고 살진 소를 잡아서 아들을 위한 큰 잔치를 벌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백 마리 양 중에 한 마리 양을 잃어버렸습니다. 열 개의 은전 중에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두 아들 중에 한 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초점이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린 것, 은전 하나를 잃어버린 것, 한 아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거기에 초점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그것을 찾기까지 주인은 마음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찾기까지 노력합니다. 결국 찾을 때까지 찾고, 그것을 찾고서야 기쁨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그 잃어버린 양이, 그 은전이 너무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즘 중국에 대지진이 나서 많은 사람이 죽고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십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거나 행방불명상태에 있습니다. 구조대가 구조를 하는데 살아있는 사람이 한 사람만 나와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몇 일전 신문을 보니 한 60대 여성이 195시간 동안 매몰된 곳에서 빗물로 연명하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일주일 이상을 버텨낸 것입니다. 톱뉴스로 소식을 알리고 많은 사람이 즐거워하고 자기 일처럼 기뻐합니다. 한 영혼이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반면 매몰된 사람을 구조하다가 산사태가 나서 158명의 구조대원이 다 매몰되어 죽었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수백 명의 사람이 또한 희생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그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고 그 영혼을 찾고야 마는 목자의 심정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서 목자는 우리 주님을 의미합니다. 은전을 잃어버린 여인은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을 기다리는 그 아버지의 마음, 그것은 바로 주님의 간절함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소중히 여기는 것,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것은 한 생명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 영혼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습니다. 아니 그 분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을 당하시고, 붉은 피를 흘리시고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영혼이 그토록 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영혼구원을 사역의 우선순위에 두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 보니 제자들이 와서 주님께 묻습니다. “주님 많은 사람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른 가서 유창한 설교를 하셔서 인기를 얻으셔야죠.” 예수님은 반응하지 않습니다. “다른 마을로 가자. 거기서도 내가 전도하리니 나는 이를 위하여 왔노라” 구원할 영혼들을 향해서 주님은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곳,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자리에 가서 예수님이 한 마디 하시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멀리하시고 준비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영원 구원의 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9장 10절에 보니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디모데전서 1장 4절에 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영원구원이 주님의 뜻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오늘도 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가장 가치 있게 소중히 여기십니다. 주님이 가치 있게 여긴다면 우리도 그렇게 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다” 어떻게 한 영혼과 천하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한 영혼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우리가 100만원을 투자해도, 1000만원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100명을 목표로 해서 기도하고 전도했는데 99명은 전도하지 못하고, 1명만 전도했더라도 그것은 결코 낭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영혼은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몰라서 영혼 구원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면 그것은 주님이 이해하시고 용서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주님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거기에 무관심하고 소홀히 여긴다면 우린 주님의 꾸지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여러분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말 주님이 소중히 여기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첫째로 태신자를 작정해야 합니다. 옆에 분들에게 물어봅시다. “태신자를 작정하셨습니까?” 여기 계신 분들 중에 3분의 2는 작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태신자를 작정하지 못하신 분들 꼭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 순종하라고 하니까 무슨 이영무 목사 말에 꼭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도 영혼을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우리가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우신 목회자들을 통해서 영혼구원에 우리가 매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내 심령이 복을 받고, 내 가정이 윤택해지고, 내 생업에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순종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내가 왜 태신자를 작정해야하나? 헌금이나 드리고 예배나 드리면 되지 그까짓 귀찮은 것 왜 해?’ ‘나는 자존심 상해서 그런 것 안 해.’ ‘나는 교회에서 하는 일 협조 안 해.’ 그런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마귀가 주는 생각일 수 있습니다. 마귀가 내 마음 속에서 순종하지 못하게 만들고, 자존심을 자꾸 긁어서 무슨 그것이 자존심인양 내세우게 만드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심령에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아이고 목사님 저는 전도를 하도 많이 해서 전도를 할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내 주위에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 국민의 80%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 가족이든, 우리 이웃사람이든, 우리 만나는 사업상의 사람이든, 그 이름을 먼저 마음에 품으십시오. ‘내가 전도할 수 있을까? 없을까?’ 계산하지 마십시오. 그냥 이름을 품으십시오. 이름을 적으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시는 겁니다. 그 다음은 누가 하십니까? 하나님이 하십니다. 태신자 이름이 생각나지 않으십니까? 한번 고민해 보십시오. 그것을 위해 기도해 보십시오. 진지하게 기도하시면 반드시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명단을 교회에 제출하십시오. 여러분들이 태신자 작정하는데도 욕심을 내시면 좋겠습니다. 옆에 있는 집사님이 두 명 했다면 ‘나는 좀 더 해야지. 나는 4명 해야지.’ 옆에 있는 4명 했다면 ‘나는 10명쯤 해야지.’ 이런 거룩한 욕심을 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욕심도 안내고 아멘도 하지 않는 분들, 복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내 인생을 더 헌신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거기 비결이 있습니다. 

  태신자를 작정했다면 두 번째로 태신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영적인 사건입니다. 내 힘으로만, 내 언변으로만 전도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기 때문에. 전도가 되고 안 되고는 내 책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태신자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십시오. 몇 번 기도할까요? 적어도 하루 세 번 이상 기도하십시오. 아침에 한번, 점심에 한번, 저녁에 한번. 더 기도하고 싶으시면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저녁에 주무시기 전에 그 영혼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이런 관심을 가지고 기도한다면 반드시 그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기도하실 때 반복적으로 기도하십시오. 매일 기도하십시오. 그의 닫힌 마음이 열리도록 기도하십시오. 태신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세 번째는 태신자에게 선물을 전달하셔야 합니다. 태신자가 교회 나와서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는 정말 놀라운 하늘의 축복들을 받게 됩니다. 그는 생명을 선물로 받을 겁니다. 복음을 선물로 받고 축복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마음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의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일단 교회에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준비한 선문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선물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꽉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여는데 선물이 좋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물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도하려면 여러분의 돈도 투자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돈을 투자하면 하나님이 그 이상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선물도 사서 전달하셔야 합니다.

  특별히 이번 주에는 여러분이 태신자를 작정하셨는데, 그 태신자에게 전달할 치약선물을 교회에서 나눠드리고 있습니다. 구역장을 통해서 그 치약을 받으셔서 꼭 가서 만나시고 전달하셔야 합니다. 선물을 받을 때 그 마음속에 기쁨이 있고, 또 그의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선물을 전달하셨다면 네 번째는 이제 태신자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야 합니다. 한번 따라해 보십시오. “태신자의 마음에 감동을 주자” 사람들은 감동을 받아야지 마음이 열립니다. 또 감동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강퍅해가지고 웬만한 일에는 잘 감동받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도하려면 태신자의 마음에 감동을 줘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찾아가는 그 열심에 감동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정성껏 준비한 선물에 감동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에 대한 위로와 배려의 말에 감동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감동받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감동을 줄 수 있는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자라면서 고생을 전혀 해보지 않은 어떤 처녀가 있었습니다. 이제 결혼을 하고 한 가정의 며느리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이 밥을 잘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결혼을 하고 시아버님에게 진짓상을 올려야 하는데, 반찬은 어떻게 좀 만들어 보겠는데, 밥이 잘 안 되었습니다. 물을 너무 많이 넣은 것 같기도 하고, 물이 좀 적은 것 같기도 하고. 하다보니까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것 같이 되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드리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랬더니 안방에 계신 시아버님이 “얘! 배고프다.” 큰일 났습니다. 그래서 진짓상을 들고 시아버님 앞에 갖다 놓고는 절을 했습니다. “아버님 용서해 주세요. 제가 오늘 실수로 이 밥을 잘 못했어요. 보니까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고, 이걸 어떻게 아버님께 드려야 할지 너무 죄송해서, 이번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제가 다음엔 더 잘 해 드릴게요.” 그랬더니 이 시아버지가 참 훌륭한 분입니다. “얘야! 참 고맙다. 내가 어제 잠을 설쳐서 몸살기가 있는데 입맛이 없어서 죽도 먹기 싫고 밥도 먹기 싫은데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닌 걸 가져오니 너무 고맙다. 너무 고마워.” 그 시아버님 한마디가 얼마나 감사한지, 얼마나 마음에 감동이 되었던지, 그녀는 더 열심히 시아버님을 공경하고 섬겼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전도하려면 상대의 마음속에 감동을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마음이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전도하려면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옆에 분들하고 인사합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전도할 때는 늘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찾아옵니다.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철석같이 약속했는데 내일되면 딴소리합니다. “아이고 시골에 계신 우리 시어머님 댁에 전화하니까 우리는 불교집안이라 교회 나가면 집안이 망한다고 가지 말라고 했다고.” 딴 소리 합니다. 누가 역사하는 겁니까?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 때 물러서면 안 됩니다. “아이고 그런 거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도 다 그런 과정 거쳐 왔어요. 우리 가정도 다 불교 섬겼고, 미신 섬겼고, 다 해봤는데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경험담을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우리 구역의 권사님 한분은 무당의 딸로 태어났는데도 예수 믿고 잘만 살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예수 믿으면 다 해결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인내심을 가지고 접근하셔야지, 그 한마디에 ‘아이고 그러면 할 수 없지 뭐, 남의 집에 재앙을 줄 순 없잖아’ 하고 물러서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갈라디아서 6장에 보니까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도 이 목자는 그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아서 결국 안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잃어버린 은전 하나를 찾을 때까지 온 집을 다 쓸다가 결국 찾아서 이웃 사람을 불러서 즐거움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찾을 때까지 찾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에 가장 부끄러운 것이 무엇입니까? “얼마나 많이 헌금했느냐?” “얼마나 많이 봉사했느냐?” 무엇을 물으실까요? 저는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너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구나? 나는 정말 한 영혼을 원했는데 너는 한 영혼도 전도하지 못했어.” “너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무관심하게 생각했어. 소홀이 여겼다고.” 주님이 꾸지람하신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나는 30년 동안 잘 섬긴 것 같은데 주님 앞에 가니 아닌 것입니다. 주님을 잘 몰랐습니다.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어떤 목사님께 40대 한 교사 집사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학교 교사인데 이분이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암이라는 선고를 받았고, 6개월 이상 못산다고 하였습니다. 이 분이 와서 목사님께 부탁을 합니다.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1년만 제 생명이 더 연장될 수 있도록 목사님 기도해주세요.” 그래서 “1년 더 살아서 뭐 하시려고 그럽니까?” “제가 제일 부끄러운 것이 제가 교사 생활하면서 아이들에게 한 번도 복음을 전해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가서 한 아이도 예수님께 전도하지 못한 것 너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게 1년이 주어진다면 제가 열심히 전도하겠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때 묻지 않은 아이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겠습니다.” 이렇게 와서 하소연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 앞에 설 때에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주님 오늘도 한 영혼을 가장 소중하게, 가장 가치 있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목자의 심정을 가지십시오. 양 한 마리를 찾아 해매는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사랑하는 아들이 돌아왔을 때 그를 기쁘게 맞이하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간절함을 가지고 오늘도 기도함으로 한 영혼을 향해 나아감으로 정말 그 영혼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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