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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플 삶, 심플 교회 (삼상 17: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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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삶, 심플 교회 (삼상 17:41~52) 

오늘 설교제목을 보고 조금 의아하게 여기신 분들이 계실 줄로 압니다. 아예 영어로 [Simple life, simple Church]라고 하든지 아니면 우리말로 [단순한 삶, 단순한 교회]라고 하든지 하지 않고 왜 어색하게 [심플 삶, 심플 교회]라고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서 “심플”이라 한 것은 “단순하다”는 뜻의 한 단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심플”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잠시 후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먼저 본문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이 전하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아직 전쟁에 나갈 만큼 크지 못했을 때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싸워야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골리앗이라 하는 장수가 나와서 싸움을 돋우는데 그는 키가 엄청 큰 거인이었습니다(삼상17:4). 그는 머리에 놋 투구를 썼고 몸에 입은 갑옷의 무게만 해도 56킬로나 나갔습니다(삼상17:5). 그리고 그가 멘 놋 단창은 그 창날의 무게만 6.8킬로가 나가는 것이었습니다(삼상17:6-7). 그 골리앗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며 싸움을 걸어왔지만 사울 왕과 온 이스라엘은 그의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며 도망치기에 급급했습니다(삼상17:10-11, 24). 

이것을 목격하게 된 다윗은 분개하여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17:26) 하며 그와 맞서 싸우겠다고 자청하며 사울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삼상17:32). 사울은 다윗에게 말하기를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삼상17:33) 하며 만류했지만 다윗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싸우러 내보내되 그에게 자기의 갑옷을 입히고 자기의 투구를 씌워서 내보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무장에 익숙하지 못한 다윗은 그것들을 다 벗어버리고는 한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에게로 나아갔습니다(삼상17:38-40). 그리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5-47) 이 말을 들은 골리앗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은 골리앗을 향하여 달려가며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돌을 꺼내가지고 물매로 던졌고 그 돌은 그의 이마에 맞아 박혔으며 그는 땅에 엎드러졌습니다(삼상17:48-49). 다윗은 달려가서 골리앗을 발로 밟고 그거인의 칼로 그를 죽이고 머리를 베자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의 장수의 죽음을 보고는 도망하기 시작했습니다(삼상17:51). 

그러자 그때까지 겁에 질려 죽은 것 같았던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일어나 블레셋 사람들을 무질렀고 수많은 블레셋 군사들이 길에 엎드러졌습니다(삼상17:52). 골리앗을 죽인 다윗과 이스라엘 군사들이 돌아올 때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춤추고 노래하며 말하기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했던 것입니다(삼상18:6-7).

   이 이야기는 위대한 승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기름 부으신 다윗의 신앙이 거둔 통쾌한 승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거역하며 모독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믿음의 삶의 승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놀라운 힘을 발휘하며 불가능한 싸움을 싸워 이기는 기적적 승리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힘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힘을 이길 수 없음을 증명한 사건입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살린 애국의 이야기입니다. 두려움과 실의에 빠져 어찌 할 바를 모르던 백성에게 다시 용기와 힘과 자신감과 승리의 기쁨을 되찾아준 구국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개인에게나 교회에게나 나라에게도 요구될 수 있는 한 바람직한 삶의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그 삶의 원리를 “심플”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영어로 표기하면 “SIMPLE”이 되는 이 말은 다음 다섯 단어의 첫 글자들을 딴 약자입니다. S는 “small”을 말합니다. I는 “intelligent”를 뜻합니다. M은 “moving”을 가리킵니다. P는 “powerful”을 의미합니다. L과 E는 “life-encouraging”을 줄인 말입니다. 즉 작지만 똑똑하고 움직이며 힘을 발휘하고 생명을 살리며 삶의 용기를 주는 것, 이것을 “심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그저 “단순한”이라는 말로 옮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원리를 우리는 다윗의 모습에서 발견합니다.

   다윗은 작았습니다. 실제로 그의 키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골리앗에 비해서는 너무나 작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똑똑했습니다. 똑똑하다는 것은 알아야 할 것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모욕하는 자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와 싸워야 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신 줄 알고 있었습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하시며 자기에게 승리를 주실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물매로 거인 적장을 상대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준비해야 할 것이 투구와 갑옷과 칼이 아니라 바로 매끄러운 돌맹이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리고 움직였습니다. 사울 왕이나 다른 백성처럼 숨어서 꼼짝하지 않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적장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빨리 움직일 수 있기 위해서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벗어던졌습니다. 무겁게 무장을 하고 느릿느릿 다가오는 골리앗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번개처럼 물매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넘어지자 재빠르게 그의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여기서 그의 힘이 발휘된 것입니다. 

알아야 할 것을 바로 알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데서 힘이 나옵니다. 그러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힘을 발휘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무서운 거인 적장 앞에서 겁에 질려 죽어가는 백성에게 용기를 준 것입니다. 풍전등화처럼 꺼져가던 나라에 새 힘과 희망을 안겨준 것입니다. 그는 한 “심플”한 인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백성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보여준 이 “심플”한 믿음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요구되는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작은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무작정 작아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커지려고 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그저 많이 가지려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말자는 것입니다. 작아도 똑똑한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똑똑하다는 것은 알아야 할 것을 바로 아는 것이라 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왜 사는 것인지,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바로 아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며,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며, 하나님의 군사들로서 이 세상에 대해 승리하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용기로 힘을 발휘하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으로, 이 세상을 깨끗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소금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그리스도의 향기로 나타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향력 있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어 생명을 살리고 삶의 의욕을 되살려주며 이 나라와 민족을 활력이 넘치게 만드는 일꾼들이 되자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심플”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작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일부러 숫자를 줄이자는 것이 아닙니다. 무작정 큰 교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크고 무겁고 동작 더딘 비만증에 걸린 교회 될 것이 아니라 작아도 똑똑하고 날렵하여 영향력이 있고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커질 것인가만 궁리하는 교회가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지를 바로 알고 제 때 제 때 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화자찬 속에 안주하는 교회가 되지 말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교회, 앞으로 나아가는 교회, 목표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고 이 사회를 변화시키며 이 나라와 민족의 역사를 바꾸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이 사회의 치유자가 되며 나아가 온 세상에 복된 소식의 전령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심플”의 원리는 나라에도 적용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나라를 위한 기도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우리 다 함께 우리나라가 “심플”한 나라 되게 해주실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작지만 똑똑하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부지런한 나라, 그래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가진 강한 나라, 실의와 절망과 불안 속에서 죽어가는 지구상의 모든 불쌍한 사람들을 살리는 데 앞장 설 수 있는 나라, 무엇보다도 복음의 진리로 죽어가는 심령들을 살려내는 선교사역에 있어서 으뜸가는 나라가 되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 땅의 동포들에게 사람답게 살 권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 나라, 자연재해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은 중국을 위로할 수 있는 나라, 그러면서도 그 땅에서 탈북자들의 인권과 안전이 보장되게 만들 수 있는 나라, 티베트와 미얀마에서 자유와 인권이 확립되도록 힘쓸 수 있는 나라, 그래서 작지만 이 시대에 세계 속에서 가장 선하게 영향력 있는 나라 중 하나가 되도록 우리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새로 나라살림의 중책을 맡은 이들이 진정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섬기는 데 열과 성을 다함으로써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아니 한반도의 새로운 기적을 이루며 세계로 하여금 그들도 복된 꿈을 꾸게 할 수 있는 이 나라가 되도록 하나님께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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