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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금보다 값진 믿음 (벧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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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믿음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지난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2박 3일 동안 세계목회자Conference에 초청을 받아서 참석할 수 있었다. 미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물론 세계 각국의 교회 지도자들이 많이 참석한 자리에서 강사로 섬길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훈련에 관한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오늘 날 하나님의 교회가 훈련을 통해서 어떻게 성숙해지고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는지에 대한 말씀을 전했다. 여러가지의 사례를 전하였고 질의 응답의 시간을 갖는 등, 매우 뜻 깊은 기회를 가졌다. 처음에는 보다 서양 교회에 맞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었다. 참석한 사람들이 듣기에 편하고 그들에게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중에 하나님이 방향을 바꾸셨고, 보다 도전적이고 성경적인 방향으로 전환하게 하셨다. 훈련은 한 program으로 한 문화권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주셨다. 이것은 성경적인 패라다임이고 도전적인 패라다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 교회 16 주간의 새일꾼반, 32 주간의 제자반, 또 다시 32 주간의 사역반을 소개하였다. 

특별히 우리 교회의 훈련 program은 매일의 삶을 통해서 드려지는 pattern과 습성의 변화를 목표로 한다는 말씀을 전했다. 참석자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고 모두가 필요한 것이라고 공감하였다. 그리고 이 미국 땅에 그런 교회가 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략이고 현대 교회가 따라야 할 모범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러한 계기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미국과 세계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 그리고 미국 교회와 세계 교회를 위해서 우리가 sampling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이것을 위해서 우리를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자부심을 느끼기 보다 더욱 훈련의 spirit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귀한 사명을 받은 자로서 우리들이 과연 이 spirit을 유지하고 있는 지를 점검해야 한다. 특별히 이 season이 되면 우리는 훈련을 끝내고 방학으로 접어든다. 그리고 새롭게 훈련을 시작하려는 성도들의 신청을 받게 된다. 이 시기야말로 우리의 훈련 spirit을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우리가 과연 부끄러움 없는 훈련 사역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당신의 나라를 온 땅에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있는가? 더우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대 재난의 소식을 접하면서 마지막 때에 이르러 더욱 더 근신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자신에 대하여 자부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의 훈련 spirit이 얼마나 불타고 있는 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본문은 우리의 믿음을 금보다 값진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말씀은 초대 교회 당시에 큰 핍박을 받던 성도들에게 주었던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핍박을 받던 성도들에게 도전적인 말씀을 주고 있다. 6절을 보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많은 시험을 받으면서 오히려 크게 기뻐하라는 권면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시련과 시험 가운데서 기뻐할 수 있는가? 그 답이 바로 오늘의 본문이다. 

5절부터 7절까지의 말씀을 현대인 성경으로 읽어보자.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나도록 예비된 구원을 얻기 위해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여러 가지 시련으로 잠시 근심할 수밖에 없으나 그래도 여러분은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시련을 겪은 순수한 믿음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의 믿음의 결과는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금보다 더욱 빛나기를 원하신다. 그런 refining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트로피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불로 시험하시고, 우리에게 연단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시련과 연단은 마지 못해서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이러한 선하신 목적을 만세 전부터 계획하셨다는 사실이다. 

벧전1:1을 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베드로는 지금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2절을 보자.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하나님은 만세 전부터 미리 아셨으며 성령으로 우리를 성화 시키시려는 뜻과 계획을 가지고 있으셨다. 성령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여 강력하게 따르게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people로 구원 받았는데, 이제 그 분께 순종하는 백성으로 세우시기 위함이다.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모두 개입하신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단순히 천국을 가지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서 빚어지고 정금보다 귀한 자로 만들어져서 믿음과 영광의 트로피로 세워지기 위함이다. 믿음이 오직 천국을 가지 위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은 성경적인 구원론과 다르다. 이는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성화와 연결되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미래에 이루어질 영광스런 구원의 완성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친히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God is more concerned with our character than our comfort’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계획 안에 있는 하나님의 그림이다. 우리 모두가 ‘아! 하나님이 훈련하고 계시구나’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마땅한 우리 몫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내 몸을 더욱 쳐서 복종시키고 더욱 충실한 하나님의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훈련 받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훈련을 받고 있는 자나, 훈련을 마친 자나, 혹은 훈련을 시작하지 않은 모든 자들이 지속적으로 정금같은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훈련의 과정을 걷고 있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훈련 과정을 걷고 있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붙잡아야 할 세 가지 원칙을 무엇인가? 

(1) 하나님은 역경을 통해서 우리를 연단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훈련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이 분명히 있는데 이것은 반드시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나에게 역경이 다가올 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이것은 우리를 평가하는 귀한 척도이기도 하다. 성도로서 성숙한 모습이란 어떤 것인가? 역경 때문에 강퍅해진다면 그것은 매우 미흡한 모습이다. 그러나 더욱 soft해지고 유연해진다면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이 빚으실 것이다. 사실 믿음이 upgrade되어질 때마다 역경이 찾아온다. 이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축복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한계를 깨닫게 하시고, 족한 은혜를 느끼며, 인내하는 것을 배우게 하신다. 나 자신을 자랑치 못하게 하고 보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게 하신다. 

사실 우리 모두는 편리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편리할 때에 우리의 영성은 떨어진다. 그리고 impact을 주는 교회의 모습으로 섬길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역경은 하나님의 뜻이고 감사할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금보다 귀한 믿음을 요구하시는데 우리가 동메달에 만족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부수시고 구체적으로 간섭하신다. 하나님은 더 큰 potential을 보시고 더 높은 level까지 간섭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조각하신다면 그것은 분명히 감사할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potential을 보시고 우리를 용광로에 집어 넣으신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역경이 되는 것이다. 벧전 4:12을 보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우리는 시련과 시험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역경과 불경기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말할 수 없이 사랑하신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큰 시련을 주신다면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다.

(2) 훈련은 program이 아니라 삶이다.

제자 훈련이 program이라면 많은 오해가 있을 수 있다. Classroom에서만 진행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훈련이 아니다. 삶에 impact을 주고 삶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훈련을 받는 동안 서로가 만나서 씨름하고 도전하며, push하고 격려하여 끝까지 함께 가야 한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서 일 주일 동안의 삶을 set-up하는 것이다. 삶을 통해서 거룩한 습성과 pattern을 형성해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아는 것 때문에 변화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늘 한계가 있다. 

우리는 익숙한 pattern을 발휘하며 살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훈련이란 익숙한 pattern을 깨고 새롭고 거룩한 pattern을 형성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벽 기도를 거룩한 pattern으로 삼으셨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10대 초반부터 포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바벨론 왕이 주는 음식을 거부하고 기도와 예배의 생활에 집중하였다. 그들에게는 어려서부터 형성된 습성과 pattern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훈련을 통해서 형성되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주일학교와 제자 훈련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진수성찬을 거부할 능력은 결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직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거룩한 습성에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주님은 우리의 성과를 보고 믿음을 판단하지 않으실 것이다. 오직 거룩한 습성과 pattern을 보고 우리의 믿음을 판단하실 것이다. 

‘Sanctification is not something, Jesus puts in me – it is himself in me.’

말라기 3:3을 보자.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은을 세공하는 사람들은 은을 불 속에 넣은 후부터 절대로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눈에 비치는 최적의 순간을 catch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도 우리를 정금과 같이 만들기 위해서, 그 순간을 놓지지 않기 위해서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3) 일평생 이루어져야 하는 과정이다.

7절을 보면 우리의 믿음이 불에 연단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8절을 보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그리고 우리는 아픔 속에서도 기쁨을 이루어야 한다. 믿음의 결국은 전적인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을 통해서 이것을 이루어가야 한다. 

엡 4:14을 보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는 것은 3 년만에 이룰 수 없다. 이것은 life long process가 되어야 한다. 또한 멈추면 퇴보하다가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 새로운 wine을 새로운 푸대에 담기 위해서 우리는 늘 훈련받아야 한다. 그 과정을 멈추는 순간에 우리는 죽어가기 시작한다. 연어가 흐르는 물을 역행하며 올라가는 것을 멈추면 그가 죽어가는 것과 같다.

 평신도 지도자와 목회자는 자신들이 훈련을 인도하는 자라고 생각하고, 훈련은 오래 전에 끝냈다고 여긴다면 그 사람은 타성에 젖은 것이도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회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셨다. 그들은 잎사귀는 무성하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우리는 성장을 멈출 수 없다. 우리가 성장을 멈추면 우리는 정지하고 만다. ‘Have you stopped growing’ 이 말은 정말로 정신 차리게 만드는 말이다. ‘이제 다 이루었다’라며 멈추어 서있다면 그 순간에 우리는 넘어지고 말 것이다. 그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를 산산조각으로 만드실 수 있다. 훈련은 평생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믿음의 결과이며 삶이 끝나는 그날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마지막 날까지이다. 훈련에 노력하는 성도들을 보면 나보다 더 모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분들은 내게 inspiration이 된다. 훈련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형상될 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역경은 우리를 깨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주님 앞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 받을 수 있는 공동체와 훈련생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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