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버이주일] 잘 되고 장수하리라 ( 엡 6:1~3)

  • 잡초 잡초
  • 250
  • 0

첨부 1


성 경 : 엡 6 : 1 - 3
제 목 : 잘 되고 장수하리라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맺게 되는 인간관계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선천적인 관계이고, 또 한 가지는, 후천적인 관계입니다. 
선천적인 관계란 무엇입니까?  부모와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와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자기의 의사와 상관없이, 불가항력적으로 맺어진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관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천적 관계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친구와의 관계, 부부와의 관계,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 또 목사와 성도들과의 관계 등과 같이, 세상에 태어난 후에, 인위적으로 맺어진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의 관계가, 어떤 차이가 있느냐?  그 관계가 변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후천적 관계는, 수시로 변할 수 있고, 또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가변적인 관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선천적인 관계는 어떻습니까?  왜라고 물을 수 없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없는, 절대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또는 형제와의 관계, 이것을 어찌 내 임의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내가 마음에 들던, 들지 않던, 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질서는, 결코 바뀌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버이 주일을 맞이해서, 부모에 대한 효를 생각해 보고자 하지만, 부모님을 향한 효도 마찬가지지요. 우리가 부모님을 받들고 순종해야 하는 것은, 그 이유를 설명하거나, 이해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설득이나, 이해가 필요 없는, 순종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항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1부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을 보면, 대부분은 부모의 입장에 계신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자식의 위치에 있는 분들도, 적지 않아 있는 줄 압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오늘 주신 이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부모의 입장에서가 아닌, 자녀의 위치에서, 내가 아직 살아계신 부모님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러한 것을, 오늘 좀 깊이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할 줄로 압니다.  왜입니까?  
내게 아직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은, 아직까지 내가 부모를 향해 감당  해야 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책임감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책임감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을 창조하시고, 부모를 통해 나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가 거역해서는 안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가정 안에 나타나는 가족 간의 질서, 또 부모의 권위, 이 모든 것들을 누가 창조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가족 간의 질서를 깨뜨리고, 부모의 권위에 순복하지 못하고, 거역하는 일은, 곧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거역하는 일이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오늘날 성도들은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보세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어디에서 순종하라고 했습니까?   “주 안에서”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주님이 정한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주 밖에 있는, 세상의 불신자들에게는 적용이 되질 않는 말씀일 수 있으나,  주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는,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적용되어지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것이 옳으니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 믿는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만일 이렇게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지 아니하면, 그는 진정한 성도가 아니라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의, 부모님에 대한 신앙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칭찬하실만한, 그런 신앙이십니까?  참으로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이런 올바른 신앙을 가진 성도들이 그렇게 많지를 않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세상의 불신자들과 똑같습니다.  

분명 가족들 모두가 예수를 믿는 신앙의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권위가 무너져 있는 가정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말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잘 받들어 섬기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부모보다는 자신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신의 삶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습니다.  또 부모님을 섬기기 위해 자신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저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쓰기를 원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쓰는 물질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부모를 위해 쓰는 얼마 되지 않는 물질에  대해서는 대단히 인색합니다.  아까워합니다.  

어느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가, 목사님을 만나 개탄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병원에서 일하다보니, 자식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왜 그런 말을 하십니까?”  
“자식이 아파서 병원에 온 부모들은, 의사를 붙잡고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자식을 고쳐 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그런데 노부모를 모시고 온 자식들은 얼마나 사시겠냐고, 죽는 날만 묻습니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나, 부모가 아프면, 살려 달라는 자식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잘못되어진 세상의 풍조가,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의 가정에 나타나서야 되겠습니까?  과연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녀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부모님이 아프실 때에, 오히려  지극한 정성으로 섬기며, 받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제까지 자신을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갚는 길이고, 또한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신앙을 나타내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최근 65세 이상 되신 부모님을 상대로 조사한 통계인데요, 노인들이 자녀에게 가장 하기 싫어하는 말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아프다는 말을 하기 싫어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파서 혼자 끙끙대는 한이 있어도, 절대 자식에게 아프다는 말은 하지를 않습니다. 
둘째는, 외롭다는 말을 하기 싫어한다는 겁니다.  과부든, 홀아비든 외로워도 외롭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셋째는, 용돈 달라는 소리를 하기 싫어한답니다. 무료 급식소에 가서 얻어먹고, 차비가 없어 걸어 다니는 한이 있어도, 자식에게 절대 용돈 달라는 소리는    안 한답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왜 자신의 부모를 이렇게 초라하고, 서글프게 만듭니까?   그러고도 자식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고서, 어찌 그 자녀의 인생이 잘 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런데도 잘 되는  자녀들이 있지요?  그런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뭐라고 말을 합니까?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저런 자식들이 복을 받노?”  마땅찮다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 신앙의 가정에 속한 자녀들을 향해서는, 결코 하늘이 무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판단하십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말씀하고 있는데, 이런 축복이 누구에게 임한다는 말입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들을, 하나님이 절대 간과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축복해 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첫 계명이다.  무슨 뜻입니까?  부모 공경이 신앙생활   가운데 먼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결코 내 삶에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될 수   없다는 뜻인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근본, 시작을 잊고  살아가는데, 어찌 축복이 시작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부모를 공경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그 인생에 축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데, 이는 보통 축복이 아니라, 보장된 축복, 확실한 축복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어떤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까?   3절 말씀을 보세요.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두 가지의 축복이지요? 
첫째는, 범사가 잘 되는 축복입니다.  여기서 “잘 되다.”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타브” 란 말을 쓰는데, 그 뜻은, “그침이 없다, 막힘이 없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내가 소원하는 마음의 생각과 계획에서부터, 행동하는 삶 전반의 모든 것이, 형통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축복은 무엇입니까?   땅에서 장수하리라.  장수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 “장수하다.” 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라크” 란 말을 쓰는데, 그 뜻은 “계속해서 길어진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냥 나 혼자만 오래 산다는 뜻이 아니라, 나와 같은 장수의 축복이, 자자손손 대대토록,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져 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받는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축복 속에 인생이 잘 되고 장수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여러분의 부모님을 공경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 공경이란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또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경한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면 공경이란 말이 뭐냐?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느냐?   “공경” 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카바드” 인데, “간” 을 뜻하는 “카베드” 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간은 사람의 장기 중에 가장 무겁고, 또 생명과 직결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이 간에 병이 생기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부모님을 자신의 간과 같이 신경을 쓰고,   모시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바로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한 소년이 바다를 정복할 꿈에 부풀어, 뱃사람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배에 짐을 싣고 어머니에게 작별인사를 드립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붙잡고 만류하며 눈물만 흘립니다.  이때 소년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바꿉니다. 
“어머니 눈에 이렇게 눈물을 흘리게 하고, 내 꿈을 좇아갈 수 없다.”  
다시 짐을 풀고서는, 어머니에게 순종합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성경에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복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내가 근심하는 것 때문에, 꿈을 포기한 너에게 하나님이 큰 복을 주실 것이다.” 
그 뒤로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였으며, 그 소년은 훗날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가 어머니의 뜻을 저버리고 떠났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이름난 선장이 되었을지 몰라도, 대통령은 될 수 없었을 줄 압니다.  어머니의 눈물을 거둔 그 순종이, 결국 그를 대통령이 되는 축복을 받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다시 봅시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순종은 헬라어로 “휘파쿠오” 인데, 그 의미는 “복종하다.” 입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귀를 기울여 말을 잘 듣고 따르는 것이며,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말에 복종하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부모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녀들은,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이라고, 신명기 21장 18절 이하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부모의 말씀을 거역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함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 바울은, 골 3 : 20절을 통하여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이렇듯 성경은, 우리 성도들이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거듭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도 유념해야 할 줄로 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는 마음의 평강을 얻게 됩니다.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자손이 끊어지지 않는 복을 얻으며, 자손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어, 자손도 효를 행하고 복을 얻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모라 할지라도, 우리는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조건을 보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퇴계 이황은 효자로 유명합니다. 노년에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가기 원했습니다.  임금이 그 이유를 묻자, 고향에 내려가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여생을 보살펴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임금은 이황을 조금이라도 더 옆에 두고 싶은 생각에, “어머니를 한양으로   모셔 오지요.  그러면 나라에서 잘 돌보아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이황은 정중히 거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제 어머니는 시골에서 태어나,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면, 제가 고향으로 내려  가서 어머니와 함께 흙을 밟고, 흙과 더불어 살아야만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이처럼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할 때,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잠 23 : 25절에, “네 부모님을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또 잠 10 : 1절에는,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또 잠 15 : 20절에는,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부모를 기쁘게 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부모에게 근심 걱정을 끼쳐 드리는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환경과 조건이 좋지 않을지라도,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 교포들은 연로하신 부모님들을 효도관광을 보내드릴 때 주로 미국 북동부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에 보내드린다고 합니다. 

좋은 곳이 많은데 하필이면 왜 나이아가라 폭포냐고 하겠지만 나이아가라 폭포에 한번 갔다 오면, 10년 정도 더 젊어지신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부모님들이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가서 “나이야 가라! 나이야 저리 썩 물러가거라!” 하고 돌아오면, 훨씬 젊어진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행은 즐겁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릴 수 있지만, 먼저 부모님이 좋아하시며 기뻐하시는 일을   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건강하세요. 백수는 걱정 없겠어요.” 
“아버지 어머니를 닮아서 이렇게 머리가 좋은가 봐요.” 
“다들 제가 부모 덕 많이 본다고 그래요.” 
“아버지 어머니 절반만 돼도 소원이 없겠어요.” 
“저희들 키운다고 정말 고생 많으셨죠.” “역시 어머니 음식 솜씨가 최고예요.” “아버지 어머니처럼만 살겠습니다.” “역시 우리 아버지 어머니니까 이 정도죠.” “어쩌면 그렇게 기억력이 좋으세요? 젊은 사람도 못 따라가요.” 
“모두 부모님 덕분이지요.”

시집간 자식이 엄마에게 안 물어 본다. 
셋째로는, 부모님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아버지와 관련된 여고시절의 이야기로 라디오에서 방송된 내용입니다. 
그녀가 고등학교 시절,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어디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돌아보니, 버스 운전하는 아버지가 딸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부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딸은 순간 친구들 앞에서 창피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못들은 척하며 계속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한참 후에 친구들과 버스를 타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운전하던 버스에 타게 되었습니다. 
올라타면서 운전대에 앉아 있는 아버지를 보고 그만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탈까 말까, 엉거주춤한 상태로 서 있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말합니다. “학생, 거기 서 있으면 위험하니까, 빨리 안으로  들어가.”  그 날 저녁 딸은 아버지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 자는 척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습니다.  퇴근하신 아버지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네게 자랑스런 아빠가 되지 못해 미안하다. 그러나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 정직하고 성실한 일이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딸은 그 날 이불 속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존경하며, 그에 걸 맞는 대우와 대접을 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부모님께서는 한없는 사랑을 베푸시고, 끝없는 희생을 자녀들에게 주셨습니다. 한없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걸 맞는 대우와 대접을 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늘 부모님을 존경하고 높여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무시하거나, 절대로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늙습니다.  늙으면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때 자식들의 외면처럼 서러운 것이 없습니다. 부모가 늙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병들었다고 귀찮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사람들을 축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백악관을 출입할 때마다 경비들에게 정중히 경례를 하였습니다. 측근들이 “왜 대통령이 경비들에게 그렇게 정중히 경례하느냐?” 고 묻자,   트루먼은 대답합니다. “나는 그들의 인격과 충성심에 존경을 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연약한 사람을 존경할 줄 아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그런데 연로하신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을, 어찌 축복하지 않겠습니까? 
부모님이 연세가 들어 연약해질수록 더 공경하십시오. 그리고 더 사랑의   손길을 베푸십시오.  부모님의 힘이 없어 우리에게 줄 것이 없다 해도, 더 공경하고 도우십시오. 

힘이 없는 부모님은 갚아주시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주실 것입니다. 형통하며 장수하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효도하십시오. 
자녀가 복 받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자녀에게 효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왜 자식이 효도하지 않습니까?  효도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니 축복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효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항상 부모님께 순종하며 기쁘게 해드리며, 높여드림으로,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얻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가정생활에 대해 가르친 말씀입니다.  특별히 자녀들에 대한 교훈과, 또 부모를 어떻게 공경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첫 계명이며, 장수와 형통의 축복이 약속된 계명인 줄 믿으시고, 이 땅에 사는 동안, 또 부모님이 내 곁에 계시는 동안,   힘써 순종하며, 효를 행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