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힘과 섬김 (막 10:35~46)

  • 잡초 잡초
  • 312
  • 0

첨부 1


힘과 섬김 (막 10:35~46)

지난 주 한 신문에서 "울 엄마가 바로 날개 없는 천사"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대전에서 아이들을 섬기는 어느 목사님 부부의 이야기였습니다.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 신청을 할 정도로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사모님은 대학 졸업 후 충남 공주시 동곡요양원에서 본격적으로 자원봉사에 들어가 2년 동안 중증장애아들과 생활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그 요양원에 찾아와 "천사 같이 봉사하는 사모님의 모습에 반해 결혼했다"고 합니다. 누구나 결혼할 때는 푸른 꿈을 가지고 결혼하지만 그렇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인생살이지 않습니까? 

내일 어린이 날이지만 우리가 어린이 날이 되면 한 번쯤 아이들을 잘 길러야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 두 가지는 건강과 자식이라고 합니다. 사실 모든 것이 사람 마음대도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직한 고백일 것입니다. 이 분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아 잘 기르고 행복한 가정을 꾸미려는 꿈을 가졌는데 아이를 계속 유산을 하였답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사모님은 입양을 선택하였다고 합니다. 

2000년 5월 5일 어린이 날에 하은(여)이와 하선이(11) 자매를 입양했다고 합니다. 하은이는 눈동자가 바깥으로 몰리는 '간헐성외사시' 증세를 보였고, 하선이는 기관지염을 앓았답니다. 하선이는 폐가 좋지 않아 기침을 달고 살았답니다. 정밀검진 결과 폐 한쪽이 제 기능을 못해 이식수술을 받아야만 한다고 했답니다. 사모님은 하나님께 매달렸다고 합니다. '우리 하선이만 살려주시면 저도 다른 생명을 살리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모님의 기도를 응답해 주셔서 담당 의사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수술을 하지 않았는데도 흡입기와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운동장을 뛰어다닐 만큼 건강이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하선이가 건강해지자 한 편으로 겁도 났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한 약속을 지키기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모님은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자신이 신장을 주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로 결심하였다고 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30년 동안 만성신부전증으로 혈액 투석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 환자에게 자신의 신장을 내 주었다고 합니다. 또 마음씨 좋은 사람들 조차 입양하기를 꺼리는 장애 아이들을 자식으로 입양했다고 합니다. 이후 입술갈림증(구순열)으로 괴로워하던 하민이(여), 퇴행성 발달장애를 겪는 요한이(6), 심각한 안짱다리로 걷지 못하던 사랑이(5) 등 세 명의 장애아를 더 입양하여 기르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어린이 날입니다. 내 아들 내 딸이 이 사모님처럼 이렇게 살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적극적으로 지지하겠습니까? 적극 반대하겠습니까? 아니면 묵인하겠습니까? “평범하게 살아라. 뭐 그리 복잡하게 살려고 하느냐? 돈이 최고다 돈 벌어야 해, 좋은 대학에 들어가 출세해야 해.”
"내 아이는 최고로 키우고 싶다!"는 것이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표어인 것 같습니다. 출산율 1.3인 시대에 있어서 부모들이 자녀를 똑똑하고, 건강하며, 창의력 넘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부모도 그 당시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1. 부모와 아이의 소원

마태복음 20장 20절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자식에 대한 소원을 아뢰는 내용이 나옵니다.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 20:20-21)”

예수님이 대통령이 되면 국무총리, 재경부 장관 쯤 시켜달라는 소원을 아뢰는 것입니다. 이분은 예수님의 이모입니다. 혈연 지연 학연에 의해 권력자가 쓰는 것은 역사 속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까? 이것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만 가지고 있는 소원이 아니었습니다. 자식들도 똑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35, 37절을 보십시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이종 사촌간입니다. 혈연이라는 인척관계를 이용하여 새로운 나라에서 서열을 정할 때 높은 직을 달라는 것입니다. 우의정과 좌의정의 자리를 요구했습니다. 우편과 좌편은 왕과 가장 친근하고 왕 다음가는 영광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이 정치적 메시야로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민족을 해방하고 부정한 헤롯 왕가를 제압하고 왕이 되면 모든 것을 버리고 이제까지 예수님을 좇아 다녔으니 그만한 대가를 원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만의 요구가 아니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른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41절을 보십시오.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제로섬 게임으로 예수님이 이룰 나라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면 나는 그 자리를 못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바로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 그러한 권력에 대한 소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부모님과 아이들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누구나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출세하기를 바랍니다.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좀 더 건강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위에 오르길 바랍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힘을 갖기를 원합니다. 정치의 힘, 지식의 힘, 부의 힘, 건강의 힘, 명예의 힘, 아름다움의 힘, 영적인 힘 등을 갖기를 원합니다. 이 힘을 갖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말하면 자식에 대한 기도 제목이며 자신의 인생 목표 비전 꿈입니다. 이런 소원을 갖는 것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께 소원을 가지고 나올 때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36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님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어 보십시오. 어떤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결코 잘 못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요 16:23)”

우리 주님이 원하시면 그 어떤 것도 다 이루어 주실 수 있습니다. 당시 모든 사람이 불치의 병이고 불결한 저주받은 병이라고 상종하지 않고 천대하던 나병 환자가 주님께 나올 때 우리 주님은 그들을 치료 시켜 주었습니다.(눅17:11-19)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죽어 슬퍼하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눅7:11-16)을 살려 주었습니다. 관에 손을 대는 것을 불결하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주님은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 앞에서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라고 명하시어 살리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딸을 치유시켜 주었습니다.(막5:22-24) 예수님은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과거 뿐만 아니라 지금도 얼마든지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능력의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기 때문에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는 소원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공급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납니다. 기도는 은혜의 통로, 능력의 통로입니다. 나는 능력이 없지만 우리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십니다. 간질병 걸린 아이를 둔 부모가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제자들이 간질병 환자를 고치지 못할 때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 

참으로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히스기야가 병들고 외적이 처들어 왔을 때 히스기야왕과 이사야 합심하여 기도하여 승리하였습니다.(대하 32:20)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몰의 위기에 처할 때 에스더와 유다 민족은 합심하여 기도하여(에4:16) 죽음에서 면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단 2 : 17-18) 니느웨성의 모든 사람(욘 3 : 1-10)들도 기도할 때 기적을 체험받았습니다. 기도할 때 다락방의 120명 성도가 성령 충만을 받았고 기도할 때 베드로와 요한이,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풀려났고(행 3:1) 기도할 때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비운의 체조요정 김소영을 아실 것입니다. 그는 86년 8월28일. 국가 대표 체조선수였던 그녀는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대비해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에서 훈련 중 어깨가 평행봉에 걸려 수술하였으나 하반신 마비. 몸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술 나흘째 되던 날, 침대 옆에 곱게 접힌 쪽지가 있었답니다. 무심결에 것을 집어 들었다."내 이름을 경외하는 자는." 전혀 낯선 말이라 읽기를 포기했답니다. 그런데 다시 호기심이 생겼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_막내 이모가 소영이에게"

`치료의 광선'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답니다. 갑자기 온몸에 전류가 강하게 흐르는 것 같았답니다. 그날의 그의 인생의 새출발이 되었답니다. 여고 1년생 김소영은 인생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숟가락으로 바둑알을 집어올리는 훈련. 걸음마..주기도문과 찬송도 배웠습니다. 그는 아픔을 딛고 우뚝 서 `영 라이프'라는 장애인 친교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국내에서 최초로 장애인스키교실을 연 사람도 김소영씨 였습니다.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고 영어회화도 수준급되었답니다. 그의 삶은 바뀌었답니다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이 되었다고 합니다.


2.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소원을

이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답변을 하십니까? 꾸짖지 않습니다.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가 오는 것을 방해할 때는 분노하셨는데 분노하지 않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그들이 구한 우편과 좌편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를 지고 인류 구속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 옆에는 두강도가 달릴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은 왕의 보좌를 연상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어린 아이들을 통하여, 부자를 통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가르쳐 주셨는데도 여전히 제자들은 이 땅에 이루어질 나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얼마나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앞으로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습니까?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 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막 10:33-34)”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고난의 잔은 생각하지 않고 영광의 자리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뜻과는 다른 것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예수님의 계획과는 다른 것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부른 본질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물어 보십시오. 예수님이 받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39절을 보십시오. 아주 자신감 있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의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잔과 세례를 영광으로 착각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고난의 잔으로 알았다 해도 메시야왕국을 건설을 위한 충신들의 고난 정도로 알았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수치, 십자가의 고난, 십자가의 죽음으로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있게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속단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말을 듣고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들의 대답을 긍정해 주십니다. 그들이 말한 대로 주님께서 받는 잔을 마시고 주님께서 받는 세례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야고보의 순교와 요한의 고난을 예고한 말씀입니다. 야고보는 헤롯에 의해 제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행12:21. 44년경) 요한은 도미시안 황제 때 밧모섬에 귀양 가서 계시록을 기록하고 오랜 기간 동안 고난의 잔을 마셨습니다.

좌우편은 하나님이 예비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 하셨든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종말적인 메시야 왕국에서 메시야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누가 그 자리를 얻든 상관할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주신 잔과 주님께서 주신 세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말하면 기도 응답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한 소원을 가질 때 자신의 꿈을 가질 때 예수님이 품을 뜻을 품어야 합니다. 

왜 우리가 기도하는데 응답받지 못합니까?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잠28 : 9)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슥7 : 12-13)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믿음 없이 의심을 갖고 구했기 때문입니다.

“(약1 : 6-7)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마17 : 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욕심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약4 :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우리가 다 좌우정 우의정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대로 다 된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옥이 될 것입니다. 성공하는 삶이 무엇이겠습니까? 대단한 힘을 얻어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통제하고 사는 것이 성공이겠습니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 성공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사는 것이 긍극적으로는 성공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어떤 사람은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좌의정 우의정 자리에 앉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속한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 그곳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분단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비극을 보십시오. 해방이 되자 당시 세인들의 시선을 받았던 사람은 김구, 여운형, 조만식, 이승만 김일성 다섯이었습니다. 다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 민족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바친 사라 배리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지금 75세입니다. 우리나라 대학생 성경 읽기회(UBF)를 만드신 분입니다. 한국 UBF는 1969년 이후 36년 동안 2000명이 넘는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들을 세계 80개국에 파송한 기관입니다. 그분은 1930년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부자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버지와 오빠는 개인 비행기를 소유하였고 농장에는 가족의 박물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대농장주의 딸로‘미시시피의 공주’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과 결혼하고 독신으로 한국 땅에 와서 선교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대학 2학년 때 한 친구와 로마서를 공부하다가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고 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생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헌신했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에 순종하고 한국 땅에 와서 젊은이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순종하는 작은 불꽃 하나가 큰 성령의 불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3. 섬김의 소원을

이 말을 듣고 다른 제자들이 분노합니다. 십자가를 지시려 가는 길인데 제자들은 마치 점령군으로 가는 것처럼 착각하여 논공행상으로 심각한 내분에 쌓이게 될 것같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놓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추구하는 권력의 속성을 말합니다. 42절을 보십시오.

집권자들 즉 왕은 백성을 임으로 주관하여 종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왕의 권력을 맡은 방백들 역시 백성들 위에 세도를 부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른 것은 그런 힘의 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진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크고자 하면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면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크냐 라는 문제로 다툴 때 이미 말씀하신 것입니다.(9:35, 36, 눅22:25-27) 그런데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속적 질서와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같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정반대라는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분명한 목적을 말씀해 주십니다. 

45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접속사 “왜냐하면”이라는 번역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어야할 것은 스승 되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섬기기 위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전생애는 철저히 섬기는 생애였습니다. 마지막까지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생명을 바쳐 인류를 섬기시고 구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와 죽음의 노예상태에 있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보혈로 값을 지불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섬김의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사람으로 키운다"라는 책을 쓴 전혜성 박사가 계십니다. 신앙인으로 이화여대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 사회학 박사와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로서 생활하며 여섯 아이를 길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섯 자녀가 모두 하버드대와 예일대 졸업하였고 한 가족이 11개의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고 합니다. 이 자녀들은 미국 최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미 국무부 차관보, 매사추세츠주 보건 후생부 장관, 하버드 대학 공공보건대학원 부학장, 예일대 법대 학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일대 200년 역사상 남매(홍주·경은)가 석좌 교수 이상에 임명된 경우도 처음 있는 일이었답니다. 하도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가정이어서 미국 교육부가 이 가족을'동양계 미국인 가정교육 연구 대상'으로 선정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분은 그 책에서 자녀 교육의 비법을 섬기는 자로 기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스스로를 섬기고 타인을 섬기고 세상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자녀를 진정한 리더로 키우기 원한다면 부모가 먼저 섬기고, 서로를 섬기고, 자녀를 섬기며, 더 나아가 남을 섬기고 사회를 섬기라고 말합니다. 

"남을 돕고 베푸는 과정에서 아이 스스로 오히려 힘과 지혜를 얻게 되고 부모가 먼저 남을 배려하고 봉사한다면 아이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바르고 훌륭하게 자라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섬기는 법을 아는 아이가 세상의 섬김을 받고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사람으로 키운다"라고 말합니다. 그분의 가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 식사를 같이 했고 아이들은 돌아가며 기도를 드리게 했다고 합니다. 매주 금요일 밤은'가족의 밤'토요일 아침 식사 후에도 반드시 가족회의를 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은 따르는 소원은 지배가 아니라 섬김에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섬김이 아니라 지배가 목적이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그들의 삶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만왕의 왕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말구유에 탄생하신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인간을 섬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주기까지 섬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세상은 계속 우리를 유혹합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섬김받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한 번 사는 세상인데 멋지게 권력과 돈을 쥐고 섬김 받으며 살아라고 말합니다. 은밀하게 일하는 사람은 바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지배당하는 것보다 지배하고 사는 삶이 훨씬 가치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왕 됨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나라의 특징입니다(25).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는 자보다 크다고 말씀합니다. 죽고자 하는 자가 산다고 말씀합니다. 섬기는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이고 복된 삶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힘들고 살기가 복잡합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섬김의 비전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10명의 학생이 공부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의사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농부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섬기는 비전을 가지고 일하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내 가진 것으로 잘 섬길까에 목표를 두고 살면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섬김을 받을까?" "어떻게 하면 사기쳐 먹을까?" "어떻게 하면 폭리를 취해 나만 잘 살까?"라고 생각하니까 사회적으로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끝없이 높아지고 끝없이 많아지려는 소유욕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힘이 있어야 섬김을 받을 수 있고 대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섬김은 섬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섬김을 위하여 또 다른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에게 준 건강, 나에게 준 지식, 나에게 준 미모 나에게 준 경제, 나에게 준 달란트를 가지고 참으로 멋지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보고 가겠다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를 품고 섬겨야하겠다는 비전 말입니다. 어려움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품고 섬겨야 하겠다는 비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섬겨야 하겠다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창조 질서의 원리입니다. 왜 인간을 홀로 살지 않고 함께 살게 하였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8)"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창 2:20)"입니다. 도와 주라고 즉 섬기라고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옆에 있는 분 섬기라고 만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가족들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교회 직분 왜 주었습니까? 계급으로 주었습니까? 서열로 주었습니까?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 4:12)"라고 했습니다.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종이 되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병든 자를 섬겨 주었습니다. 가난한 자를 섬겨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섬김을 실천하였습니다. 저는 열린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늘 감사하고 살고 있습니다. 청소를 청소부 시켜 하지 않습니다. 주방일로 섬기는 분을 봅니다. 어떻게 하면 맛있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분들을 봅니다. 꽃꽂이로 차량운행으로 주보로 섬기시는 분들을 봅니다. 성도님들이 나와 청소를 합니다. 성가대 지휘자라고 반주자라고 사례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저 섬기는 것으로 행복해 합니다. 거의 모든 분들이 섬기려고 애를 씁니다. 만만만 생명운동을 통해 세계를 품고 섬기는 운동을 합니다. 

시골 교회, 소년 소녀 가장, 불우 이웃을 섬기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우리 섬기는데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섬길 만한 것이 없다고 한탄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으로 섬기면 됩니다. 경제력이 있으신 분은 경제력으로 섬깁니다. 지식이 있는 분들은 지식으로 섬기면 됩니다. 권력이 있으면 권력으로, 건강이 있으신 분들은 건강으로 섬기면 됩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요즘 보면 교회의 큰 병중의 하나는 "멋진 교회 병"입니다. 신앙인들이 멋진 교회를 만나기 위해 교회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우리 교인들은 멋진 교회를 찾는 분들이 아니라 섬기는 교회를 찾는 분들인 줄 압니다. 
Warren Wiersbe 목사님은 “오늘날 교회 속의 슬픈 현상은 유명한 사람들은 많지만 종들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D. L. Moody 목사: “사람의 위대함은 그가 얼마나 많은 종을 데리고 있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섬기는가에 따라 판가름 난다.”어떻게 하면 내가 멋지게 한 번 섬겨 볼까를 찾다 우리 열린교회에 와서 함께 신앙 생활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주님 때문에 자존심 상하고 주님 때문에 헐벗고 주님 때문에 고난받고 주님 때문에 작은 교회를 섬기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교인들이 멋진 교인일 것입니다. 섬기면 불행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는 자가 오히려 크게 되고, 종이 되는 자가 오히려 으뜸이 된다는 역설적 진리를 주님은 말씀합니다. 

"서번트 리더십"을 제임스 C. 헌터는 "권력이란 얼마 동안은 효과가 있고 얼마간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나 지속되면 인간관계를 훼손하게 되고 반항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뢰이고 이 신뢰는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 즉 사랑의 섬김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탈선하는 것이 자꾸 부모가 권력만 앞세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최상의 서비스"라는 책을 쓴 발 지(Val Gee)는 "고객의 68%가 단골이 되지 않는 오직 한 가지 이유는 나쁜 서비스 때문이다. 한 사람의 불만 고객이 10-20 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불평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서비스도 상품이다 "를 쓴 칼 알브레히트는 "우수한 제품을 미흡한 서비스로 제공하느니, 차라리 평범한 상품을 우수한 서비스로 제공하는 편이 더 낫다."라고 말합니다. 서비스의 황금률을 "당신이 고객일 때 받고 싶은 대접 그대로 고객들을 대접하라"고 말합니다. 섬김은 결코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가치있고 아름 다운 자리는 각자 주어진 주님이 필요로 하는 자리입니다. 주어진 인생 섬기지 않아도 썩게 되어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주어진 것으로 서로 후회없이 섬기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