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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요 12: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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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요 12:37~43) 

오늘 본문에서 복음서 기자는 자기가 품고 있었던 큰 의문 하나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토록 많은 이적기사를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느냐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실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일으킬 수 없는 일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을 수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던 나사로(요11:39)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다시 살리신 일이었습니다(요11:43-44, 12:17). 

이 일은 천하의 그 어느 누구도 행한 적이 없고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 일을 하셨다면 유대인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메시야로 믿고 받아들였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일보다 더 확실한 표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사도 요한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던 것입니다. 요한은 그 문제를 많이 생각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바로 오늘 본문 37-41절 사이의 내용일 것입니다. 다시 봅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 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요한은 자신의 결론을 두 단계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유대인들이 그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표적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지 않는 것은 알고 보면 새로운 일도 놀랄 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일이고 그 예언대로 되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사53:1을 인용하며 그렇게 말합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예수님의 말씀도 믿지 않고 그가 권능의 팔로 나타내시는 표적도 본체만체하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사야를 통해 예언하신 바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여기서 인용한 사53:1에 이어지는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사53:2-11이 전하는 유명한 예언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지도 않을 것이고 그가 권능의 팔로 표적을 나타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먼저 언급한 것이 1절입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리고 그대로 되었다고 요한이 말하는 것이 오늘 본문 38절입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요한이 내린 두 번째 결론은 그 믿지 않는 자들이 그들의 불신앙 속에 완악하게 머무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내버려두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이미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하신 대로라는 것입니다. 

본문 39-40절입니다: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요한은 이 말을 사6:9-10을 인용하며 했습니다. 곧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셨다.” 한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가 행하시는 권능의 표적 앞에서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은 옛날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이집트 왕 바로는 모세가 행하며 불러온 열 가지 놀라운 일과 재앙 앞에서 갈수록 그 마음을 더욱 완악하게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완악함은 바로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29:2-4를 봅니다: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요한이 깨달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충만하게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달으며 믿을 수 있게 되는 일은 하나님께서 영의 눈을 뜨게 하시고 마음을 고쳐주시지 않으시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많은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갖게 된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을 피력한 요한은 그들과는 조금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 관해서도 언급할 필요를 느낀 것 같습니다. 42-43절에서 언급한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여기서 “관리”라고 한 사람들은 산헤드린 즉 유대인의 공회의 회원들로서 지도자층에 속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니고데모 같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기는 믿지만 그들의 믿음을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리새인들 때문이며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서 드러나게 말하지 못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말은 우리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첫째는, 스스로의 의지나 선택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참 믿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의 뜻으로 믿는 사람은 핍박이 오고 고난이 닥치면 그 믿음을 쉽게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또 자기 스스로 믿는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의 영광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께서 구원에로 택하시고 이에 따라 성령을 통해 주시는 믿음이며 그 믿음을 가진 이만이 사람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며 최고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믿음을 드러나게 말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의 전부는 아닐지 몰라도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일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일입니다(요1:14). 요한은 그때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했습니다. 한 알의 밀처럼 땅에 떨어져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요12:24).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실 때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요12:23)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는 고통의 때를 면하려 하지 않으시고 그때를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실 때로 받아들이신 일입니다(요12:27).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요12:28).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것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일과 관련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이고 전횡적인 영광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참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알고 감사와 찬송을 돌리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를 내놓으시고 자기를 비우시며 낮추어 오시고, 사랑으로 섬기시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것이 그의 영광이고 하나님의 영광이라면 우리의 영광도 우리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16:24-27)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요13:1-11).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13:14-17) 

주님의 이 말씀대로 실천하는 것을 우리의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겸손과 순종, 자기부인과 십자가, 희생과 섬김, 이것이 우리가 영광을 차지하지 않고 모든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 돌리는 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참된 길일 것입니다. 이 외의 그 어떤 영광의 길을 찾아 헤매는 딱하고 보기 민망한 삶을 살지 맙시다. 사람의 영광, 이 세상의 영광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저버리는 불쌍한 인생이 되지 맙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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