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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순절 성령강림의 날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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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성령강림의 날 (행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장 1∼4절)

우리를 돕는 보혜사로 오신 성령님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면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며 살 수 있어

 구약 4천년 동안 하나님은 여러 모양과 여러 형태로 사람들에게 직접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4천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33년 동안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이 33년 지난 후 십자가에서 못박혀 피흘려 죽으시면서 우리의 죄를 다 대속하시고 구원의 일을 다 이루시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령시대가 왔는데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지 이제 2천년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성령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옛날에 하나님이 직접 일하시던 때가 지나고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일하셨는데 이제 예수님이 일을 다 이루시고 난 다음에 성령이 그 일을 받아서 일하시기 때문에 성령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버지도 성령을 통해서, 아들도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실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성령 없이 혼자 나가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을 받고 나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1. 다른 보혜사 성령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운동경기 때 언제나 마지막에 하는 것이 릴레이입니다. 청군, 백군이 배턴을 잡고서 서로 뛰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릴레이는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 제일 먼저 뛰시고, 배턴을 예수님께 전달해 드렸는데 예수님이 그 배턴을 가지고 다 뛰시고 난 다음 마지막 질주자인 성령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제 예수 이름으로 예수님의 보혈로 값주고 산 예수님의 은혜를 천하만국에 전도하는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 신앙생활에 기관차와 같습니다.

 저는 동래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부산진역에 가면 역내에 많은 화차들이 있었습니다. 짐을 잔뜩 싣고 철로에 있는데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런데 언제 움직이느냐하면 기관차가 와서 철커덩하고 연결이 되면 화차는 줄지어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늘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기관차 없이 화차는 꼼짝도 못하는구나. 아무리 보화를 싣고 있어도 움직이지 못하는구나. 기관차가 끌어줘야 가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늘날 성령의 역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성령이 바로 기관차입니다. 우리는 화차라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영특한 사람이라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보배를 잔뜩 싣고 있어도 그냥 앉아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끌어 주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성령이 끌어주셔야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복음증거도 하고 사랑의 역사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 무슨 일을 한다고 날뛰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인 것입니다. 성령께서 끌어 주셔야 합니다.

 성령은 예수님과 똑같은 보혜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첫째 보혜사요, 그 다음 다른 보혜사에게 배턴 터치를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 속에 다 들어와서 역사할 수 있기 때문에 육으로 가시고 영으로 오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보혜사라는 뜻은 뭡니까? 예수님도 보혜사 예수님이고, 성령도 보혜사 예수님인데 보혜사라는 것은 헬라원어로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하루 이틀도 아닌 한 평생을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안에 지금 와서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보혜사로 우리에게 오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귀신을 쫓아 내시고 병을 고치시고 밥을 먹여 주시고 풍랑에서 건져 주시고 죽은 자를 살려 주시고 도와 주시고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원수를 물리치는 것처럼 성령도 똑같은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4장 18절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함께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은 여기 계시고 내 옆에 계시고 내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고아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부모인 성령께서 항상 같이 계시므로 아무리 고아를 만들려고 고아원에 데려다 놓아도 고아가 안됩니다. 성령이 같이 계시므로 우리들은 버림받지 아니하고 외롭지 아니하고 혼자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사역

 요한복음 16장 8절로 11절에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와서 하는 가장 중대한 일은 죄에 대하여 우리를 깨우치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은 의인은 없습니다. 이 죄를 하나님이 깨닫게 해줄뿐 아니라 죄의 결과가 지옥으로 사람을 데려가기 때문에 가장 큰 것입니다. 그 지옥에서 우리를 건져 주기 위해서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의 죄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안 믿기 때문에 지옥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에게 와서 깨우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버림을 받았으나 죄를 다 청산하고 갚아 버리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께 영접을 받아서 아버지 앞에 올라간 것입니다. 이것을 성령이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한국의 지성인 이어령 박사는 현자입니다. 그러한 분이 예수를 깨닫게 되고 회개하고 일본 동경에서 공식적인 집회에 하용조 목사님 앞에서 침례 받고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딸이 후두암에 걸려서 죽어갈 때 하와이 한 카페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 딸아이가 후두암에 걸려서 죽어 가는데 정말 살아계시거든 우리 딸을 고쳐 주세요. 내가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자식이 죽는데 기도 안 할 사람 누가 있습니까? 이어령 박사같은 현자도 딸이 후두암으로 죽어가니 간절한 아버지의 심정으로 기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의사도 포기한 그 딸을 하나님이 고쳐주셨습니다. 목소리를 회복하고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 영적인 세계가 있구나’ 기독교를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실 결단을 내리고 그리스도를 모셔서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 영원한 세계를 모셔들이게 된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깨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역사하는 설교를 듣거나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에 나가면 예수님이 살아서 내 마음속에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1등 한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성경의 지식을 많이 가졌다고 해도 거듭나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 때 선교사들을 모두 쫓아내고 성경을 불태웠습니다. 덩샤오핑은 “중국에서 기독교를 장사 지냈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런데 중국 공산화 이후 중국교회의 운명을 말해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책에 이런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82년도에 ‘둥’이라는 한 여자가 예수 믿다가 잡혀서 수용소에 들어갔습니다. 600여 명의 죄수들이 있는 곳에 그녀가 들어가서 전도를 하고 기도그룹을 만들었습니다. 하루에 10시간 일하고 난 다음에 잠을 줄여 가면서 전도해서 전도그룹을 만들고 몰래 성경 한권을 밀반입해 가지고서 밤에 이불을 덮어 쓰고 전등불 밑에서 성경을 필사했습니다. 그녀는 성경을 하나하나 베껴서 죄수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전도한 것입니다. 얼마 있지 아니하여 600명의 죄수가 다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머리칼을 잡아당기며 싸우고 물고 찢던 죄수들이 방마다 모여서 회개하고 찬송하는데 공산주의 간수장들이 입을 딱 벌리고 뒤로 자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다른데로 옮겨라” “옮겨놓으면 물들게 되니까 어떻게 하느냐. 한사람이 들어와서 600명을 물들게 만들었는데 이 600명을 옮겨 놓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물들게 하겠느냐”며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들이 기독교는 추방할 수 있고 선교사는 추방할 수 있어도 성령은 추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엄한 공산주의 치하에도 성령이 역사해서 수많은 사람이 지하에서 예수를 믿고 오늘날 중국에는 5000만 내지 1억 명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에게 권능을 주셔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사는 사람은 참새 같습니다. 참새는 날아갈 때 날개를 퍼덕거리지만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독수리 같습니다. 천천히 날개를 움직이지만 바람을 타고 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타고 날개만 쭉 뻗고 유유히 날아 가야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를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3. 성령의 은사

 고린도전서 12장 4절로 7절에 “은사는 여러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가지고 오십니다. 성령의 은사 중에는 계시의 은사가 있는데 지혜로운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영분별의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은사가 있고 또 지식을 모르는 것을 깨달아 알수 있게 하는 지식의 은사도 있고 그 다음에는 마귀의 영인지 성령인지 천사의 역사인지 분별할 수 있는 분별의 은사를 주시기도 하고 발성의 은사를 주시는 것도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예언의 은사, 이것은 발성의 은사인 것입니다. 그 다음 권능의 은사가 있습니다. 믿음의 은사, 병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의 은사 이런 은사를 원하는대로 각자에게 성령이 나눠주신 것입니다. 내가 달라고 한다고 해서 내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알아서 은사를 나눠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십니다.

 로마서 12장 6절로 8절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은사가 임해서 예언하는 은사는 말씀을 전도하는 은사인 것입니다. 전도하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은사가 왔기 때문에 안하고는 못견디는 것입니다. 섬기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어딜가도 봉사를 합니다. 또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교회학교 교사로서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도 그만두지 않고 가르치고 돌보아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 위로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은 낙심한 사람에게 찾아가서 기도해 주고 위로의 말을 해주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것입니다. 구제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은 어찌하든지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구제하는 은사, 자기가 없으면 있는 사람을 끌어 당겨서라도 구제를 하게 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자는 열심히 행정적인 일을 돌봐서 사람들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다스리는 은사가 있고 긍휼을 베푸는 자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서 기도해 주고 위로해 주고 품어주고 안아주고 힘을 얻게 하고 용기를 얻게 하는 은사 이런 것이 다 성령의 은사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어떤 은사가 내게 왔는지 알아보려면 내가 하고 싶을 뿐 아니라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오면 그냥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신령한 은사와 사역의 은사를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4. 성령의 교통

 우리는 성령과 교통하면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물건이 아닙니다. 공기가 아닙니다. 바람이 아닙니다.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인격체 이십니다. 성령을 제삼위 하나님으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모시기 때문에 인격적인 하나님을 모셔들이려면 대접해야 되는 것입니다. 손님이 집에 왔는데 들어오라는 말도 안하고 문전박대한다면 떠나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크게 인정하고 환영하고 영접하고 모셔 들이면 기쁨의 교제가 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교통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성령과 어떻게 교통하는 것입니까?

 요한일서 1장 3절에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말씀합니다.

 사귐이 바로 교통입니다.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서 사귈수는 없습니다. 서로 이해를 하고 사랑을 전할 때 사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 와서 예수를 믿게 되면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에게 오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우리가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이고 영접하고 성령과 대화를 할 때 성령과 사귈 수가 있고 교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1절로 3절에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불러서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기도하고 성경읽고 신앙생활하는 것도 성령께서 우리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고 우리들이 자녀를 기르는 것도 성령이 함께 길러 주시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것도 성령이 동역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와 현재 함께 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론이나 학문이 아닙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요, 머리 속에 지식이나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 일을 가능케 하시는 이가 성령입니다. 성령이 바람같이 불같이 생수같이 와 계셔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먹고 자고 깨고 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성령과 함께 손을 잡고 살고 우리의 삶이 성령으로 인하여 초인적인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구원을 계획하시고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십자가에서 사랑을 실천하심으로 성령을 보혜사로 보내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힘을 합쳐서 우리 인생들을 구원해 주시니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시대가 지나고 예수님의 시대가 지나니 성령님의 시대가 오셔서 성령님이 우리 각자와 같이 계셔서 아버지를 모시고 예수님을 모시고 우리 가운데 와서 역사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들이 성령을 통하여 더 용기와 힘을 얻어 성령 충만한 삶을 살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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