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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성경적인 효도 (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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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효도 (엡 6:1~3)

독일의 정신분석학자인[미처를리히]는 이 시대를<아버지 없는 시대>라고 정의합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없어지고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는 이 사회를 한탄한 말인 듯합니다. 저 마다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도 일갈(一喝) 할 목청이 없고 천방지축으로 날뛰어도 야단 칠 회초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래위가 없이 모두 동격이요, 질서도 규율도 없는 난장판 같은 이 시대를 일컬어<아버지 없는 시대>라고 했습니다.

[공자]는"어버이는 어버이답게, 아이는 아이답게"라는 말을 했습니다. 여기에서"~답다."라는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단어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가 과연 어른은 어버이답고, 또 자식은 자식다운 시대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자의'아비 부(父)'자는 오른손에 돌도끼를 들고 있는 모습, 또는 막대기를 들고 있는 모습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또'사내 남(男)'자는 밭(田)에서 힘(力)들여 일하는 모습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결국 회초리를 들고 있는 엄한 어버이의 모습, 식구들의 생계를 꾸려가는 가장의 모습이 아버지란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대를 사람들은 아버지의 존재가 흔들리고<아버지 없는 시대>로 까지 비하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어려울수록 아버지들이 수난을 겪고 있을수록 아버지의 자리는 분명해야만 됩니다. 심리학자들은 아버지의 영향 즉<부성(父性)>없이 자란 세대는 자기 속에 원리원칙이 없고 행동규범이 없다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세상이 되고 맙니다. 그러다보니 인생의 목표가 흐리고, 가치관이 흔들리고, 사회적 도덕이 결여되고 맙니다. 어느 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깨어져 가고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금이 가는 세상이 우리를 안타깝게 합니다. 심지어는"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까지 등장하는 이 사회는 분명 잘못 되어도 한참 잘 못된 세상입니다. 부모 자식 간에 신뢰가 무너졌습니다. 사랑이 시들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혹시<딩크족(DINKS)>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DINKS : Double Income No Kids의 앞 글자를 딴 것입니다. 1986년경 미국에서 만들어진 말로서 199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여가시간은 자녀들에게 구속당하지 않고 원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려는 생활방식입니다. 자식이 생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예 결혼 할 때부터 자식을 낳지 않기로 약속하고 사는 사람들을 두고 이른 말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구속의 조건이 되어서 싫다는 이런 사고방식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어찌되었건 부모 자식이 서로에게 짐이 되어서야 말이 될 일입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것저것을 고르는 것을 잘합니다. 과일 가게에 가면 맛있어 보이는 것으로, 잘생긴 것으로, 색깔이 좋은 것으로 고르고 골라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선택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부모입니다. 이런 아버지 요런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태어난 사람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거야말로 운명입니다. 내게 선택권이 없습니다. 부모 자식은 본래적이고 원천적 관계라 합니다. 이거는 요지부동한 관계입니다. 내가 맘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판단해서 좋은 부모다 혹은 나쁜 부모다 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부모든 나쁜 부모든 절대로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신앙적 이해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나에게 부모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면 그 부모에 대해서는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자식의 도리입니다. 
일반적으로 효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자들은 부모를 공경하는 다섯 가지의 요건을 말합니다. 

첫째가 자주 뵙는 것이 공경이라고 했습니다. 옛날에 아침저녁으로 문안 드렸던 전통은 훌륭한 것이라도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한번 찾아뵙기도 힘든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만 그만큼 공경의 마음이 줄어드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바쁜 시대를 살아가는 핑계라고 하더라도 대신 한번이라도 뵐 때 손을 잡아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뉴욕대학의[돌로레스 크리저]박사에 의하면 사람의 손에는 감촉을 느낄 수 있는 기관이 오백만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손을 잡으면 혈액 속에 있는 헤모글로빈의 산소 운반작용을 촉진시켜서 재생능력이 생겨서 환자도 빨리 회복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스킨십으로부터 사랑을 배웁니다. 갓 난 아이들은 안아주고 만져주고 하는 것에서부터 평안을 느낍니다. 일흔 두 살과 열두 살은 정신연령이 똑같다고 합니다. 자주 찾아뵙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손을 잡아 드리는 것이 공경입니다. 

공경의 두 번째는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말을 해야 삽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말은 들어주어야 됩니다. 말을 하고 싶은데 들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병납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기운은 아래로부터 빠진다."이것은 사람이 늙는 순서를 말하는 것인데 맨 먼저 다리가 후들거리고, 그다음에는 허리가 약해지고, 어깨가 결리면서 늙어 가는데 그렇게 되면 기운이 위로 다 모입니다. 사람은 마지막까지 입은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늙을수록 나타나는 현상이 말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기억력은 약해져서 자기가 말한 것을 금방 잊어버리고 자꾸 같은 말을 합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나이가 들면서 하는 말들은 전부 잔소리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말까지도 잘 들어 주는 게 이것이 효도입니다. 잔소리한다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셋째는 높은 가치를 인정해 드리는 것이 공경이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마라하면 안 됩니다. 마지막에는"나보고 죽으란 말이냐!"하면서 섭섭해 합니다. 적당한 일은 부탁해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 드리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물론 내가 해도 되고 아이들이 해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이 일만큼은 부모님이 해 주셔야 됩니다."할 때 존재감을 느끼고 가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넷째가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해드리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손자손녀를 보면서 미래를 봅니다.'저 놈이 커서 뭐가 되려나...',나이가 들었으니 이제 죽어야 되겠다 하다가도 손자들을 보면'저 놈들 잘되는 것 보고 죽어야 될 텐데...'하는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이게 미래입니다. 그래서 손자손녀들의 커가는 모습을 자꾸 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하면 얼른 손자를 안겨 드리는 것이 효도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미래를 보게 하는 것은 예수 믿게 하셔서 소망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미래를 선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공경이자 효도라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공경의 마지막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가 순종하면 내 자식이 나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그 자식이 또 그 자식에게 순종합니다. 이게 효도의 유전입니다.
 
오늘 성경도 우리에게 부모에 대해 행해야 할 바를 가르쳐줍니다.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그리고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합니다. 성경적인 효도의 출발은 이 두 마디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효도의 그 많은 의미가"순종"과"공경"이라는 단어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공경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란 위로 향하는 사랑입니다. 즉, 존경을 겸한 사랑, 이것을 공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자식의 도리라고 성경은 말씀하면서 이 효도를 행하지 않는 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합니다. 

출21:17을 보십시오."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 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그랬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다. 

또 신21:18-21을 보십시오. 이것은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그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그랬습니다. 대단히 엄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불효를 아주 엄하게 다스리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순종하라"는 의미는 청종적 순종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조건 없이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즉"듣는 대로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의를 달지 않고 그대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순종에도 잘못된 순종이 있습니다. 먼저는 노예적 순종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무서워서 혹은 억지로 그럴 수밖에 없기에 노예적으로 굴종하는 그런 의미의 순종입니다. 또 한 가지 조건적 혹은 실리적 순종이 있습니다. 이것은 일단 순종해놓고 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다리다 보면 내게 돌아오는 이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회학자들이 효에 대한 사상을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옛날에 효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유산으로 땅을 받아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어서라는 것입니다. 땅이 없이는 부지런할 수도 없고 일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길은 오로지 땅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가진 땅을 꼭 물려받아야 하는 것이 사명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고로 아버지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유산을 위해서 조건적으로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존경과 순종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존경과 감사와 사랑의 동기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가 나보다 높습니다. 그가 나보다 지혜롭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볼 때에 더 높임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래서 순종해야 됩니다. 진정한 존경으로 순종해야 됩니다. 

중국 고사에 이르기를 "효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했습니다. 가장 큰 효는 존경이요, 다음의 효는 욕을 돌리지 않는 것이요, 다음의 효는 봉양함이라고 합니다. 제때에 밥그릇이나 드렸다고 해서 효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존경함이 바로 효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를 상대로"효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전체의 60퍼센트가"속상하지 않게 해드리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고 6.2퍼센트가"그저 극진히 대접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어떤 대답에도"존경"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효가 실종된 것입니다. 부모님을 대접하는 자는 있어도 효도하는 자는 없는 어두운 세상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자녀들아 주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순종함으로 지혜를 얻고, 공경함으로 영광을 얻고, 순종하고 공경함으로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여기에 겸하여 장수까지 하리라 말씀합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는 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를 순종하고 공경하는 효가 여러분의 가정에 가풍이 되고, 윤리가 되어서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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