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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아버지, 사랑합니다 (호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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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사랑합니다 (호 11:1~4)
 
아버지들은 어머니에 비해 자녀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어버이 주일은 본래 어머니 주일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어버이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어버이날도 원래는 어머니날이었는데 어버이날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아마 아버지도 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아버지의 위치가 추락하고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생겨난 어버이날, 어버이 주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큰소리를 치는 어른으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그 위치가 자꾸만 변해온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역할을 한다는 것,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참기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을 가슴으로부터 절감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도 어버이 주일을 맞아 할 때마다 처음에는 어머니에 대해서 설교를 해야겠다고 준비를 하면서도 자꾸만 아버지에 대한 설교를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자녀들은 어머니를 떠올리면 너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고 가슴이 뭉클하고 눈가에 눈물이 맺어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맥박이 막 뛰놀게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하고 부르면 오히려 맥이 빠지는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보게 됩니다. 갑자기 아버지의 모습이 온몸으로 전달되면서 슬픈 마음, 외로운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은 어머니가 더 좋습니까? 아니면 아버지가 더 좋습니까?” 이런 질문은 우매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더 좋다는 사람들이 83.3%, 아버지가 더 좋다는 사람들이 16.7%로 현격한 차이가 나왔습니다. 아마 두 분이 다 좋고 두 분에게 다 감사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더 좋다는 것이 이렇게 많은 비율로 나타났습니다. 

  이 통계가 보여주는 명백한 사실은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자녀들에게 훨씬 더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들과 소통이 잘 안 되고, 친밀감에 있어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아버지들이 사랑의 표현을 잘 못하기 때문에 생겨진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너무 적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들은 자녀들과 계속해서 만나지만 아버지들은 자녀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생겨진 결과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아버지는 외롭습니다. 당당하고 떳떳하고 싶지만 때로는 이런 사실 때문에 위축되는 것이 오늘날 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떤 아버지였습니까?

  2007년 교육방송 EBS에서 상영된 “56점 자리 인생”이라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보여줍니다. 

미국 링컨 대학 학생 5만 명이 어느 날 받은 질문
“아버지와 TV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68%학생 “TV요...”
대한민국 아버지 10명 가운데 3명
평일 5일 동안 자녀와 보내는 시간은 2시간미만
그 이유는 아버지의 장시간 노동 1주일 60시간 이상 노동 31.7%
대학생 44%
“우리 아버지에게 있었으면 했던 것은 재력”
아버지 54.9%
“나는 좋은 아버지다.”
월 소득 300만 원 이상 고소득 가정일수록 높게 나타남
(한겨레신문, 전국 35~54세 남성 300명 조사, 2002년)

아버지 생활비 부담률 95.6% 세계 1위 
또한 대한민국 40, 50대 사망률 세계 1위
그리고 2006년 아버지가 받은 초라한 성적표 “56점”
한 조사에서 드러난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지수
(행복가정재단, 전국 7개 도시 가장 400명 조사, 2006년)

아버지의 서글픈 동상이몽
아버지 50.8% “자녀가 고민이 생길 경우 가장 먼저 나와 의논한다.”
하지만 똑같은 질문에 자녀들의 응답은 단 4%
“항상 술에 취해 늦게 귀가하던 아버지가 요 며칠 일찍 들어오니 어색하다.
저녁 식사가 그렇게 가시방석일 수가 없었다.” -대학생 아들 김상영(가명)-
“어쩌다 아이들과 저녁식사를 하려 했는데 친구와 먹으러 나가거나 먹고 왔다며 제 방으로 들어가기 일쑤죠.” -51세 아버지 김고훈(가명)-

한때 소박하게 품었던 아버지의 꿈
첫 단어
첫 걸음마
첫 입학
- 잡지 부모 설문조사 (2005년)

아버지가 자녀와 함께
가장 하고팠던 순간들이었다.
“어느 날 문득 보니 나는 집 안에서 세탁기도 못 돌리고 
라면도 제대로 못 끓여먹는 돈 버는 기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대학생 56%가 가장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
“사랑합니다.”
사람의 머리에서 가슴까지는 30cm가 채 안 되는 거리지만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데 30년이 더 걸리는 사람도 있다.


부정적인 아버지 상 때문에 자녀들은 괴로워합니다.   

  어떤 아버지가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버지들의 사랑표현이 너무 서툴러서 자녀들은 아버지를 마음에 안 들어 하고, 아버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들에게 비춰진 부정적인 아버지상은 보통 세 가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첫째, 거만한 왕처럼 군림하는 아버지들이 있습니다. 아내와 자녀를 충성스러운 하인처럼 봅니다. 아버지는 집에서 왕으로 아내와 자녀들에게 호령하기 때문에 가족들은 아버지가 들어오기만 하면 한마디도 못하고 살아갑니다.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가장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아버지를 화나게 해서도 안 되고 성가시게 해서도 안 됩니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자녀들에게 체벌을 가하고 꾸중합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비춰집니다. ‘여긴 내 집이란다. 넌 내 집 지붕아래 살고 있는 존재야. 네가 내 지붕아래 살고 있는 한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돼.’ 그때마다 자녀들 마음속에는 화가 생깁니다. ‘아, 내 지붕을 가질 때까지 나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나는 빨리 이 집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도망가고 싶어.’ 

  두 번째, 부정적인 아버지는 비판적인 심판관 노릇을 하는 아버지입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바깥에 나가서 좌절하고 분노한 것을 집에 들어와 자녀들에게 쏟아 놓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꾸지람을 할 때도 비판을 일삼는 아버지의 모습 때문에 그 꾸지람이 전혀 마음에 다가오지를 않습니다.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네가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이 겨우 이 모양이냐? 바보 같은 녀석.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봐. 하려거든 제대로 좀 해봐.’ 이와 같은 꾸중으로 자녀들의 마음을 움츠려들고 주눅 들게 하는 아버지입니다. 

  세 번째, 부재중인 아버지가 있습니다. 너무 소극적이어서 부재중이고 너무 적극적이어서 부재중인 아버지입니다. 수동적인 아버지는 책임을 기피하는 아버지입니다. 자기 의무와 권리까지 어머니에게 맡기고 자녀들의 모습 속에는 텔레비전만 보는 아버지, 신문만 보는 아버지, 술만 먹는 아버지로서 인상지어진 아버지는 무기력한 아버지로 낙인찍힙니다. 또 너무 적극적이기 때문에 부재중인 아버지는 자녀들 곁에 있지 않습니다. 능력이 있어서 바깥으로만 돌아다닙니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다만 돈 벌어다 주는 기계 일뿐이라고 생각하는 자녀들은 아버지 결핍증에 시달려 결국 아버지도 고통스럽고 자녀들도 고통스럽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사랑하지만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한 언론매체에서 부모를 닮은 배우자와 결혼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의 경우 어머니를 닮은 배우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대답한 사람이 42.9%가 나왔습니다. 반면 어머니와 닮은 배우자는 싫다고 대답한 사람이 40.7%가 나왔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를 닮은 배우자가 좋다는 사람이 2.2%가 더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딸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를 닮은 배우자가 더 좋다고 대답한 사람이 17.9%가 나왔습니다. 반면 아버지와 닮은 배우자랑 결혼하기 싫다고 대답한 사람이 65.4%가 나왔습니다. 아버지를 닮은 배우자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무려 47.5%나 많았습니다. 

  아버지들은 이 통계를 보면서 가슴이 아픕니다. 한국의 아버지만큼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아버지들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에게 사랑을 표현할 줄 잘 모르는 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아버지들은 어릴 때부터 힘겨운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우리 아버지들은 어릴 때부터 이런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사내 녀석이 무슨 말이 많기는 이렇게 많아. 좀 조용히 해. 남자는 침묵을 금같이 여겨야 되는 거야.”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어쩌다가 울면 “사내 녀석이 울기는 도대체 왜 울어.”하면서 감정적으로 속에 있는 것을 억제하도록 훈련받았던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사랑을 표현하는데 서툽니다. 자기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결혼하면 아버지로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회사에 나가서 열심히 일해서 아내와 자녀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강력한 요청을 받았던 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들이 했던 것은 오직 땀 흘려 일하고 수고하며 돈 버는 것이 인생의 내용이었고 목표였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방법에 한국 아버지들만큼 뛰어난 사람이 세계 여러 나라 중에서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왜 일해야 하는지, 일하면서 어떻게 가족들과 함께 즐거워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중독에 너무 쉽게 빠졌습니다. 일중독에 빠진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가정에서 아내와 자녀에게 소외되고 박탈감을 느끼는 순간에도 일만 잘하면 된다고 뽐내도록 스스로 훈련받았던 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우리 아버지들은 40-50대 남성 사망률 ‘세계 1위’ 라는 불명예에 오르도록 땀 흘렸습니다. 그토록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왔던 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입니다. 아버지들의 감정은 엄청나게 강했습니다. 부드럽지 못하고 용감했습니다. 도전도 잘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비심이 없었고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때로는 잔인한 모습까지 우리 아버지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자녀를 가슴에 품으면서 ‘나는 내 아버지가 되어서 너무 좋구나. 네가 너무 자랑스럽다.’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합니다. 


아버지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에게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본문 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아들로 부르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호세아 11:4) 

  하나님도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이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아버지들의 소원은 자녀들에게 풍성한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밥 못 먹던 시절, 배고팠던 시절, 굶주렸던 시절이 생각나서 어떻게 하면 내 자녀는 잘 먹고 잘 살게 할 것인가에 모든 정성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회사에 나가 수고하고 땀 흘렸습니다. 그것을 내 인생 최고의 자부심으로 알고 전력투구했습니다. 그런데 자녀들은 배고픈 시절, 굶주린 시절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들에게 항의합니다. “아버지, 밥만 먹어주면 다인가요? 돈만 벌어주면 다인가요?”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항의하고 불평한 것이 우리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본문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다” (호세아 11:3)

  우리 아버지도 그 옛날 자녀가 태어난 순간 대한 생생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를 안고 붙잡아 뽀뽀하며 첫걸음마를 할 때 너무 신이 나서 함께 걸으며 박수를 쳤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녀를 귀히 여기며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삶이 너무 바빠서 아이들이 자라나는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시절에 자녀들을 깊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때 자녀들은 말합니다. “아버지, 나를 안아 본 적이 있으세요? 내 손 붙잡고 같이 놀러간 적이 있으세요?” 

부모님에게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합시다.  

  아버지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습니다. 자녀들의 보호막이 되려고 했습니다. 내가 있기에 가정이 든든하게 설 것을 기대하면서 전심전력하면서 살아왔던 것이 아버지들의 삶입니다. 때로는 미숙한 점이 있었고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자녀들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고 축복기도를 하지 못했던 불신앙의 삶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은 한결같았습니다. 속으로는 사랑한다고 수없이 외쳤습니다. 자녀가 나보다도 훌륭해지기 원하고, 내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축복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 번도 제대로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자녀들이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 합니다. 

  정회성 씨가 쓴 「아버지, 이제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수없이 많은 매를 맞고 자라 아버지를 향한 분노와 미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소중한 분임을 알고 아버지를 사랑해보겠다고 결심하면서 이런 글을 썼습니다. 

  재작년 구정에 부모님 댁에 세배를 하러가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오늘은 꼭 아버지를 안아드리리라 결심했다. 그 때 내가 아버지에게 “아버지, 아버지하고 꼭 한번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라고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런데 불과 앉아있는 아버지와 서 있던 거리가 1.5m도 안되는데 그 거리가 마치 요단강같이, 아니 홍해와 같이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 못하게 되면 나는 진정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강하게 다짐을 하고 용기를 내서 앉아계시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아버지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나는 울면서 “아버지, 사랑하고 감사해요”라고 말하고 아버지 품에 안겼다 그때 하염없이 울고 계시는 아버지를 보았다. 나는 그때 아버지 역시 당신의 아버지에게 사랑의 안김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나를 안아주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한 번도 그 아버지에게 안겨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품이 너무 좋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나도 좋았다. 옆에 계신 어머니도 울고 뒤에 있던 아내도 울고 그곳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표현을 잘 못하실 뿐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와 아버지가 주신 축복을 자랑스러워하고 그 한마디에 기뻐하고 고마워합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귀한 자녀들이 있는 것을 감격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사랑을 고백하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사랑하는 부모님을 주시고 생명과 사랑을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다시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슴으로 껴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너무 귀한 어머니, 귀한 아버지라고 소리쳐 말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정에 맺혀진 응어리가 풀어지게 하시고 하나님 사랑의 역사로 충만한 가정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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