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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성령 충만을 받으라 (민 11: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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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을 받으라 (민 11:24~30)

금년에는 교회력이 예년보다 한 달 쯤 앞으로 당겨져서 예년에 6월 첫 주에 있던 성령강림주일이 금년에는 5월 두 번째 주일 어버이주일과 겹치게 되었습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새삼 성령의 감동하심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재 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주일동안 목사님들과 모여서 회의를 하면서 편안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어떤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교회에 찬양대를 하는 어떤 집사님이 계셨는데, 찬양을 참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데, 그런데 찬양을 잘하지는 못하였나봐요. 음치였나봐요.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이 너무 힘들고 어려운거에요. 찬양을 하는데, 옆에서 엉뚱한 소리를 내니까. 그래서 참다못해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아무개 집사님 때문에 찬양대를 못하겠어요. 그러니 목사님께서 그 집사님에게 찬양대에 서지 말라고 그래주세요.’ 그렇게 부탁을 했어요. 목사님이 고민입니다. 

이렇게 목사님이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느날 지휘자가 찾아 왔어요. ‘목사님 제가 찬양대 지휘를 못하겠어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사람이 엉뚱한 소리를 내서 도저히 안되니, 목사님이 아무개 집사님 찬양대에 서지 말게 해주세요.’ 또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목사님이 큰 고민입니다. 이걸 어떡하나 이야기를 하면 또 시험에 들텐데. 그런데 찬양대 대장이 찾아왔습니다. ‘이 찬양대 전체 대원이 술렁술렁 합니다. 도저히 안되겠으니 목사님 꼭 아무개 집사님 찬양대 서지 않고 그냥 자리에 앉아 예배드리게 해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이 이제 마음을 다짐하고 그 아무개 집사님을 불렀어요. 
‘집사님, 찬양대에서 찬양을 좋아하고 참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하는거 다 알고 그렇지만,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옆사람이나 주변의 사람들이 찬양대에 안 서는게 좋겠다고 그러니, 찬양대에 서지 마십시오. 내가 이런 이야기를 3번이나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님이 가만히 있다가,
‘목사님 3번 가지고 뭘 그러세요.’ 
‘아니 3번이라뇨. 옆에 있는 사람, 지휘자, 찬양대장까지 와서 이야기를 했는데.’ 
‘아유~ 목사님, 저는 목사님 설교가 무슨 소리인지 은혜가 안 된다는 이야기를 10번 넘게 들었습니다. 내가 10번 넘게 들었는데도 목사님께 아직 한 번도 이야기 안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3번가지고 그러십니까.’ 그리고 돌아갔다는 겁니다. 

전 그 얘기를 들으면서 혹시 우리교회 교인들이 10번씩이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고 있지는 않은가. 설교란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아니요. 우리 목사님 똑똑하시다. 논리가 정연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아니요. 설교는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 것인데, 과연 내가 하는 이 설교가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인가. 또 우리의 신앙생활, 예배라고 하는 것 자체도 모든 요소가 중요하고 필요하겠지만,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가슴을 뜨겁게 하는 감격이 감동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 교회 예배마다 그런 감동이 성도들의 마음속에 가슴을 뜨겁게 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곰곰이 다시 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러면서 성령 강림주일인데, 제가 미리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어버이 주일 설교를 하지 않고 성령 강림주일 설교를 하겠다. 물론 개인적으로 어버이 주일에 대한 부담이 없는 것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 강림에 대한 설교를 지나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 그리고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 속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내주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이 주일 이 설교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성령강림 주일에 대한 주시는 말씀으로 전하려고 정하였고 기도하고 준비하였습니다. 이 설교를 통하여 이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의 충만한 역사하심이 임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지난 주 초 세계적으로 유명한 빌게이츠가 내한하였고 한국에 와서 강연하였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정보기술이 발달하였음은 말할 것 없거니와, 앞으로 10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정보기술이 발달될 것이라고 하는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TV 중계를 할 만큼 중요한 이슈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 나름대로의 많은 생각을 하였는데, 소위 정보기술이 발달하여서 사람들이 물밀듯 쏟아지는 엄청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교인들도 가만히 집에 앉아서 엄청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동시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릴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한자리에 이렇게 모여 감격스러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기계를 통하여 전하여져 오는 정보를 통하여 우리 속에 채워야 할 요소를 채울 수 없고,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찬양을 통하여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이 필요한 것이고, 이 예배를 통하여,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함을 얻게 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기술 발달로 인하여 편리한 삶은 살아가지만, 평안하지는 않습니다. 재밌는 프로그램이 많이 있고, 레포츠를 통하여 즐기려고 하고 있고, 즐기는 일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기쁨이 우리 속에 없습니다. 물질의 풍요함을 통하여 이것저것 풍성하긴 하지만, 우리의 심령 속에 만족함이 없습니다. 이것은 물질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요. 기술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속사람에는 하나님만이 만져줄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 보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에는 영원하신 하나님이 계셔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곧 성령의 내주하심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변하면 변할수록 필요한 것은 성령의 감동하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과 예배와 기도생활을 통해 채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성령의 감동하심이 평안을 주십니까. 성령의 감동하심이 참 기쁨을 주십니까. 참 만족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무엇인가 불안함에 답답함에 목마름에 어쩔 줄 몰라 살고 있습니까. 오늘 이시간 성령의 임재하심을 통하여 이 모든 것이 해결 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민수기 11장 24절 이하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70인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신을 허락하시어 그들에게 사명을 주시는 장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앞뒤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켜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모세의 입장에서 이 큰 과중한 일로 인하여서 혼자서는 이 책임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모세의 탄원, 간절한 기도와 그리고 하나님께 억지를 쓰고 있는 모습을 10절과 15절 사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일을 하게 된 일이 은혜가 아니라, 은혜를 입지 못했다고 그렇게 고백하는 겁니다. 모세가 이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할 일이 아니라, 은혜를 입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어려운 일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이 모든 백성을 낳았습니까. 어찌하여 그들을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까. 이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이렇게 하나님께 탄원하고 호소합니다. 모세의 이 간절한 기도, 이 탄원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모세가 선택한 70인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신을 하나님의 영을 허락하시어 지도자로 세우시는 장면을 오늘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70인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심으로 그들을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이 교회에 세우신 장로님들도 하나님의 영 성령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입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일꾼의 제일 조건은 바로 성령 충만함을 입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임한 신을 그 70인의 장로들에게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신학적으로 말해서 신적인 위임, 신적인 위탁을 말합니다. 이제 70인 장로들은 모세와 동일하게 소명을 받아 그 짐을 나눠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 임하자 그들이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예언을 하였다는 것은 그들에게 모세와 함께 그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주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모습이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성령충만을 사모해야 하며, 성령충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 여러 가지 직분을 맡고 받으신 여러분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 원하십니까.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기를 생각하기 전 성령의 충만하신 임재하심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될 때,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그리고 직분을 주셨음을 믿게 될 것입니다. 

또한 모세에게 임한 하나님의 신이 장로들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로써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인정되어서 백성들을 위하여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 모세의 리더십에 혹시라도 손상이 갈까봐,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장로들의 예언을 금하라고 청하였습니다. 

28-29절에 보면 장로들이 진중에 예연하게 된 이야기를 듣게 되자, 그 곁에 있던 여호수아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성령이 임하고 예언을 하게 되면 이 모세의 권위에, 리더십에 문제가 있을까봐 그 예연을 금하게 하라고 권면하게 될 때, 모세가 29절에 보시면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며 여호수아를 질책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지도자로 섬기게 된 모든 장로들은 모세와 함께 일해야 하는 동등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일하는 성도들에게는 계급이나 지위나 높고 낮음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각자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직분을 다하는 하나님의 동등한 일꾼입니다. 교회 와 어떤 사람은 일을 시키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일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사람은 일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동등한 일꾼으로 서로를 인정하며 존중하며 일해야 할 일꾼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한 성령 안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하나된 일꾼임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은 높고 낮음이 없이, 목사와 평신도가 따로 없이, 장로와 교인이 따로 없이 우리는 모두 내게 주어진 일을 각자가 최선을 다하여 열심을 다하며 서로 인정하며 존중하는 아름다운 일꾼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신이 임하자 70인의 장로들은 예언을 하기 시작했다고 본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우심을 받은 사람임을 자신도 인정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게 됩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을 받은 이들에게는 증거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언을 하거나 방언을 하거나 혹은 지혜롭게 말하는 등 은사는 곧 성령의 임재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예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에 이 땅에 남겨진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오순절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허락하셨을 때에 그들 모두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였던 제자들이 성령이 충만하게 되자 모두 다른 나라 말로 방언을 하기 시작하였고, 성령의 임재하심의 증거가 나타났고, 그리고 배움이 없던 갈릴리 어부출신의 베드로가 증거하자 3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성령 받은 증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이 갖고 계신 성령의 임재하심의 증거는 무엇입니까. 내게 임하신 그 성령,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갖고 있는 그 증거는 무엇입니까. 그 증거를 갖고 계십니까. 그것이 물론 반드시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신비한 은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또 다른 성령의 증거는 우리가 잘 알듯이 사랑과 자비와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양선과 충성과 절제임을 우리는 압니다. 이런 인격적인 성숙을 말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모양으로든지 여러분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 성령의 임재의 증거가 여러분의 삶에 분명히 있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을 바라보는 모세의 바램이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 성경을 읽고 설교를 준비하면서 모세 앞에 머리가 숙여졌습니다. 29절 하반절에 보시면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말하기를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그 신을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기를 원하노라.’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 모두가 이 교회 목사인 조세제 목사가 받은 성령을 여러분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모두 이 교회 일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으면 온전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붙잡고 강하게 하시고 도와주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70인 장로들을 세우며 그 위에 임하신 성령님, 마가의 다락방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임하셨던 그 보혜사 성령님 오늘도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사 우리를 주장하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교회에 임하시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내는 능력의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을 주시사 다 사역자 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사람도 구경꾼 없이 함께 땀 흘려 일하는 일꾼들이 모여 있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의미있는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함께 예배하는 이곳에, 이 시간에 하나님 말씀 앞에서 동의하며 아멘 하는 여러분에게 70인의 장로들에게 임하셨던 그 신이, 그 영이, 그리고 두려워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임하셨던 그 성령께서 이 시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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