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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자녀를 위한 결단 (창 48: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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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위한 결단 (창 48:8~16)

  아주 먼 옛날, 끝없이 펼쳐진 대지와 푸르른 숲에 한 마리의 표범이 살고 있었습니다.  표범은 초원에서 사자와 하이에나와 영양 무리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표범은 늘 사자에게 주눅이 들고, 하이에나의 속임수에 빠지고, 영양 무리들에게도 따돌림을 당합니다.  그렇게 풀이 죽어 살던 어느 날 표범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 능력을 갖게 된 자칭 천재표범은 그 사실에 자신도 놀랍니다.  하지만 표범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은 불평뿐이었습니다.  영양은 초원 어디에나 있는 풀 덕분에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이 필요가 없었고, 힘센 사자와 약삭빠른 하이에나는 표범이 힘들게 잡아 놓은 먹이를 힘으로 빼앗거나 몰래 훔쳐 갑니다.  그러자 표범은 하늘이 정말 불공평한 것을 느낍니다. 자기는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는데 매번 왜 자신만 굶주려야 하는지 불만에 싸입니다.  게다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생각하는 능력까지 있어서 불평을 수긍하고 현실을 수용하기가 더욱 힘듭니다.  그렇게 점점 표범은 좌절하고 의욕을 잃어버렸고, 이것이 운명이려니 하고 더 기가 죽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표범에게 수호천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면서 표범은 지금까지 놓쳤던 것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습니다.  수호천사는 반성, 자신감, 집중력, 소중함, 그리고 자기를 돌아보게 하면서 드디어 큰 결단을 내리게 합니다.  그때부터 표범은 달라집니다.  생각하는 능력으로 더 지혜로워진 표범은 마침내 초원의 정상에 서게 됩니다.

 중국의 작가 쉬지엔이 지은 ‘내 인생을 바꾸는 터닝포인트’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이 책에서 표범과 같이 운명과 팔자를 탓하며 불평불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반성, 자신감, 집중력, 소중함, 수호천사’ 등의 화두를 던지며 결단을 촉구합니다.  그것을 통해 삶에 지치고 인생의 목표를 찾지 못하며, 성공을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선사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세계적으로 120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어 운명을 탓하며 불평하며 사는 현대인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도 성공하는 길이 결단에 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으로 성공하고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더욱 결단이 필요합니다.  특히 가정의 달을 맞이하고,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이한 우리에게 자녀를 생각하면서 자녀를 위한 부모와 어른으로서의 결단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요?  해마다 찾아오는 이런 때에 과연 우리가 자녀를 위해 어떤 결단으로 새롭게 나아가야 할까요?  과연 우리의 의지를 굳게 세워야 할 도전의 말씀이 무엇일까요?  본문을 통해 그것을 함께 찾아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축복입니다.

 본문은 창세기의 나오는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의 결론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17세에 애굽으로 팔려가 온갖 고생을 한 뒤 드디어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가나안 땅은 심각한 기근이 찾아와 야곱의 가족은 먹을 것을 구하러 애굽까지 내려갔고, 거기에서 요셉과 극적인 상봉을 합니다.  그리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살았다는 소식을 접하자 야곱은 온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본문은 야곱의 가족이 애굽에서 내려와 살던 때, 그리고 이제 야곱의 인생이 거의 끝나가는 때, 요셉이 그의 아들들을 야곱에게 데리고 나온 것이 배경입니다.  당시 야곱은 이미 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력도 쇠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야곱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때 자녀와 후손을 위한 야곱의 결단과 믿음이 돋보이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보여준 야곱의 행동이 무엇일까요?   

우선적 으로 야곱은 요셉과 그의 후손들을 축복합니다.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을 이끌어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야곱은 그 앞에 있는 후손들을 축복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본문은 축복의 관점에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축복의 관점에서 보면 본문은 온통 축복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본문에서 가장 많이 반복하는 단어가 축복입니다.  15절, 16절, 20절에 계속해서 축복, 축복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믿음이고, 헌신이며, 결단입니다.  특히 마지막 가는 인생여정에서 너무도 아름답고 돋보이는 모습입니다. 이런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축복의 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록한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기 때문이고, 앞서간 선진들이 자녀와 후손을 위해 보여주었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분명 하나님은 이런 능력과 권세를 믿는 자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손에게 축복하라고 말씀하셨고, 하나님은 그 축복을 들으시고 자녀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도 동일하게 말씀하시고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어린아이들을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어른들처럼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을 가장 사랑하고, 존중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마음껏 축복해 주었습니다. 

 ‘하루에 한번 씩 자녀를 축복하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부모가 가진 축복권에 관한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하루에 한 번씩 자녀를 축복하며 살라는 결단을 촉구합니다.  또한 축복이란 칭찬이며 격려이고 부모로서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임을 말합니다.  축복받고 자란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를 말하고, 우리에게 주신 축복권한을 제대로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가를 반문하고 있습니다. 

 축복은 말로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축복의 힘과 함께 말의 힘도 잘 압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우리는 말의 권세와 힘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특히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말 한마디, 아이를 향한 어른의 말 한마디, 학생을 향한 교사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야곱처럼 자녀를 마음껏 축복하기를 다짐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축복 속에서 잘 자라나도록 힘쓰시며 결단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자녀를 위한 우리의 믿음은 축복이 중요한데, 그것이 기도로 나타나야 합니다. 
본문은 축복과 함께 바로 기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15절과 16절을 보십시오.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이것은 자녀를 향한 야곱의 축복이요, 그리고 기도입니다. 축복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의 믿음이요, 자녀를 위한 그의 결단입니다.

 자녀를 위해 축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얼마든지 축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는 믿는 자만이 하나님께 올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축복의 힘도 믿지만, 기도의 힘은 더 큰 것을 믿습니다.  많은 기도가 우리가운데 있어야 하겠지만 특히 자녀를 위한 부모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가 많을수록 자녀는 더욱 더 기도의 힘으로 살아가고, 기도로 힘을 내고, 용기를 갖고, 이기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언제나 빼놓지 않는 기도는 여러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기도는 응원이라는 것입니다.  경기장에서 열심히 뛰는 선수를 향해 응원을 합니다.  그것이 크면 클수록 더 힘을 내고, 그것이 홈그라운드에서 하는 응원이면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응원을 통해 초인적인 힘을 내었던 경기를 많이 경험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생의 여정을 달려가는데 기도의 응원만큼 놀라운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경주하다 보면, 지치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때론 곁길로 가고 잘못할 때도 있습니다.  때론 외롭고 고독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를 지나갈 때 응원소리를 들으면 힘을 낼 수 있습니다.  기도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인생을 경기할 때 부모의 기도를 잊지 못합니다.  어른의 기도가 쟁쟁하게 들려옵니다.  그래서 그들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잘못하고 곁길로 갈 때마다 그 기도가 마치 응원소리처럼 들려옵니다.  그런 기도의 많은 응원을 받고 자라나는 자녀들이 잘 되고, 인정을 받고,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자녀가 자신의 기도로도 힘을 내겠지만, 다른 사람, 특히 부모의 기도로 더 큰 힘을 얻습니다.  분명 기도는 낙심한 자에게 힘을 줍니다. 

지친 자에게 위로를 줍니다.  그래서 기도를 쉴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주 앞에 엎드려 자녀와 후손을 위해,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를 위해  기도할 때 능력이 나타냅니다.  큰 응원이 됩니다.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됩니다.  특히 부모의 기도를 듣고 자라는 아이들이 잘 못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아니 설령 잘못되어도 돌아오게 합니다.   그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 ‘날마다 주와 버성겨’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곡을 만든 리지 디아몬드(1861-1921)라는 사람은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난 여류 찬송 작가입니다.  그녀는 일찍이 목사와 결혼했으나 남편을 일찍 여의고 혼자서 8명의 자녀를 양육하며 온갖 궂은일을 다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하면서  아름다운 찬송시를 남겼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노래입니다.  그녀가 믿음의 눈으로 자기의 자녀, 모든 자녀가 어머니의 기도로 힘을 얻고, 부모의 응원으로 바로 서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단의 고백입니다.

“날마다 주와 버성겨 그 크신 사랑 버리고 방탕한 길로 가다가 어머니 기도 못잊어 나 집에 돌아갑니다 어머니 기도 못 잊어 새 사람 되어 살려고 나 집에 돌아갑니다/ 메마른 들과 험한 산 갈 바를 몰라 헤매며 영 죽게 된 지경에서 어머니 기도 못 잊어 나 집에 돌아갑니다”

 자녀를 위한 어머니의 기도, 아버지의 기도는 분명 힘이 있습니다.  그 기도는 자녀가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강력한 응원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믿음의 부모로 이제 결단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고,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그리고 자녀를 위해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부모의 기도로 자녀를 바르게 자랍니다.  부모의 기도가 자녀에게 커다란 힘이 되고, 응원이 됩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위한 기도를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녀를 위한 결단은 축복과 기도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이제 자녀를 위해, 아니 바른 삶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고, 나아가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 가르치는 참 중요한 교훈입니다.  

 본문을 보면 야곱이 요셉의 자녀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야곱을 위해 요셉은 야곱의 오른손에 장자인 므낫세를, 야곱의 왼손에는 차자인 에브라임을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두 손을 그 머리에 얹어 축복하며 기도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중에 야곱은 오른손과 왼손을 어긋나게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른손으로는 차자인 에브라임을, 왼손으로는 장자인 므낫세를 축복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요셉은 혹이라도 야곱이 실수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다시 야곱의 오른손을 므낫세에게 향하게 합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여전히 어긋나게 축복하고 기도하면서 요셉에게 ‘나도 안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야곱의 이런 기도에 따라 동생 에브라임이 장자의 축복을 받습니다.  요셉의 생각에는 당연히 므낫세가 장자의 축복을 받아야 했습니다.  물론 야곱도 그것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기도하는 중에 사람의 생각이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었습니다.  야곱 자신도 장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에서를 대신하여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판단에는 눈에 보이는 장자가 축복을 받아야 하겠지만, 하나님은 장자가 아닌 차자라도 축복을 받을 수 있음을 알리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요셉이 기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서로 어긋나게 하여 기도함으로서 인간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온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의 믿음을 통해 보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강조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히 설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늘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주님도 십자가를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아니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면 우리는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크게 믿음을 다짐하고, 결단하고 헌신하며 나아갈 방향은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만이 확실합니다.

 자녀를 항한 부모의 결단도 바로 이것이어야 합니다.  부모의 뜻이나 심지어는 자녀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자녀를 대하고, 사랑하고, 양육하고, 지도하고, 가르치고, 이끌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분명 자녀가 잘 되는 길이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에서는 부모의 뜻, 부모의 의도가 너무도 강하게 있는 것을 봅니다.  그것을 양보하지 못하고, 그것을 위해 자녀와 심한 갈등과 다툼을 겪는 경우도 많습니다.  쉽게 자기 뜻, 부모의 뜻을 접지 못합니다.  자녀도 자기 뜻을 꺾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뜻은 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살고, 신앙으로 서겠다고 다짐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뜻만 고집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고 교만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도대체 누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있으며, 누가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부모가 자녀를 마음대로 하려는 것은 자기의 뜻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 뜻을 위해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고 강력하게 펼쳐 한 치라도 양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앙인은 자기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자녀를 키울 때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고, 다 큰 자녀가 앞길을 향해 나갈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 뜻을 주장하고, 내 뜻을 고집하고, 양보하지 않을 때 어려움과 충돌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닌 것을 잘 압니다.  그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부모는 자녀를 소유로 생각합니다.  내 의도로,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모든 문제는 바로 거기에서 비롯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내 뜻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늘 우리 신앙과 삶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뜻은 온전해 세워지기에 우리가 결코 막을 수도 없고, 거스를 수도 없습니다.  이 믿음으로 자녀를 대해야 합니다.  

 이제 오늘 어린이주일에 우리는 자녀를 위한 결단을 다짐합니다.  마음껏 축복해 주시고, 날마다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내 뜻이나 자녀나, 누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날마다 찾아야 합니다.  이 믿음과 신앙으로 자녀를 대하시고, 사랑하시고, 양육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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