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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삼하 18: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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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삼하 18:28~33)
 
사회적으로 출산율이 너무나 낮아져서 
           앞으로 교회학교도 어려움이 예상됩니다만, 
           이것은 선진국가라고 하는 나라들의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습니다. 
그 가운데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군에 갈 자원이 점점 부족해지고, 
     노동인구보다는 비 노동인구 비율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앞으로 경제활동과 노동 생산성 부문에 있어서 
           심각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전망입니다. 

이젠 아이를 많이 나아야 애국자라는 말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세 번째 아이를 가진 어느 집사님에게
     `집사님 애국자이십니다...` 그랬더니 
이 집사님은 한술 더 떠서 `교회부흥에도 좋잖아요...` 그러시더라고요. 
이젠 교회성장 이론에 있어서 생물학적 성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아지고 있는 시점입니다. 
이렇듯 귀하고 복된 우리의 자녀들이 때론 복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 때문에 고통스러워 눈물로 밤을 새는 분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다윗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암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라고 하는 외침은 
아비로서 아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진솔한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이렇게 다윗의 통곡하는 모습에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주며 
       부모를 부모로 공경하는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 왕이 아버지로서의 가슴 아픈 고백을 듣고 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그는 내 아들이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반복하며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내 아들 압살롬은 어떤 인물입니까?


1. 압살롬은 어떤 인물입니까?(참조/14:25-27절)

다윗에게는 모두 열아홉 명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압살롬은 세 번째 아들로서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입니다.

삼하14:25절 이하에 보면 
[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
이처럼 준수한 용모에 소위 요새 말로 꽃미남으로 
       다윗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6절에
[ 그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 머리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 본즉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
성경에서 머리털에 대한 이야기중 대표적인 것은 
          압살롬과 삼손을 들 수 있습니다. 
압살롬의 머리털은 아름다움이요 삼손의 머리털은 힘의 상징입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상입니다. 

성경에서 이 부분을 특별히 기록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을 세울 때 삼상16:7절에
[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 했는데
굳이 압살롬의 외모를 기록한 이유가 무엇일가요?
여기에는 분명히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이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무엇을 하였느냐?

아비 다윗은 삼상16:18절에
[ 이새의 아들을 본 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 
다윗은 이러한 외모와 재능을 가지고 
              여호와의 영광을 위해 살았지마는
압살롬의 외모는 자신이 반역을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고 
        많은 백성들은 그의 외모와 그가 행한 거짓된 구변에 속게 됩니다. 
압살롬은 이러한 자신의 외적인 모습을 
         최대한 자신의 정치적인 성공을 위하여 최대한 활용하지만
         결국은 이 외모 때문에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특히 머리카락을 기록한 것은 
     그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되려 화근이 된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삼하18:9절 [ 압살롬이 다윗의 신복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털이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저가 공중에 달리고 
         그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
결국 그는 자신이 자랑했던 아름다운 머리털 때문에 나무에 달리고 
아버지 다윗의 장군 요압에 의해 창에 찔려 죽임을 당하게 됐습니다. 
자신의 큰 강점 머리털은 파멸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고전10:12절 [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우리가 가지는 외적인 자랑거리들이 겸손함으로 옷입지 않을때 
       오히려 나를 망하게 하고 실패케 함을 교훈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교훈합니다.
당신이 어떤 장점이 있다 하더라도 
       날카롭고 예리한 지성, 또는 아름다운 외모,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탁월한 재능, 언변과 친화력 등 
       그 어떤 장점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며 자신을 높이지  마십시오. 
오직 그것을 주신 주님께 경배 하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그리할 때 당신의 장점과 재능은 아름답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압살롬의 경우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삶에 대한 살아있는 교훈인 것입니다. 

그럼 이런 자랑스러운 아들, 압살롬이 어떻게 반역을 하게 되었으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2. 압살롬의 반역이 어떻게 이뤄졌으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참조/14:24절, 28절)

직접적인 원인은 압살롬이 아버지의 분노를 사게 된 사건이 일어납니다.

삼하13: 에 보면 
다윗의 장남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좋아한 나머지 병을 핑계로 
     그를 자기 방으로 끌어들여 여동생을 욕보였습니다. 
다말과 같은 어머니의 혈육이었던 셋째 아들 압살롬은 
       여동생의 수모를 듣고서 `시방은 조용히 하자...`하며 
      때를 기다리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2년을 기다린 후에 
       자신의 양털을 깎는 축제에 모든 왕자들을 초대하였고, 
결국 암논은 그 자리에서 
     압살롬이 미리 대기시킨 군사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압살롬은 
         3년 동안 어머니의 친정인 그술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

다윗은 이 소식을 듣고는 분노하지만
그래도 아버지 다윗이 마음에 둔 아들 압살롬을 잊지 못해 하는 줄 알고 
왕의 심복 요압 장군이 한 여인을 시켜 왕에게 청원하여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불러오게 하는데
그러나 다윗은 압살롬을 가택연금 시키고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 온 압살롬이 오래 동안 아버지 다윗을 보지 못하다가 
    2년 만에 아버지 다윗과 해후를 하게 됩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데려오기는 했지만 
         아직 압살롬에 대해서 자신의 감정적 벽을 허물고 
          가까이 끌어안기에는 큰 부담이 있었습니다. 
요압의 중재로 만나게 된 압살롬과의 재회는 표면적인 화해에 불과했습니다.
아버지와 대화가 단절된 압살롬의 마음에 
         그때부터 반역의 싹이 터기 시작하면서 
          군사들을 모으게 되고 백성들의 마음을 사려고 궤계를 꾸밉니다.
그리고 4년 만에 헤브론에서 반역의 기치를 들게 됩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나 목사님의 설교에는
     압살롬의 반역을 압살롬의 야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의 부자 관계에서 접근해보면
다윗도 아버지로서 아들을 잊지 못해 하면서
       선듯 끌어앉지 못했다는 것과
압살롬은 아들로서 아버지에 대한 정이 그리워 얼굴보기를 원했지마는
         너무 오랫동안 단절된 대화가 
         아들로 하여금 그 마음에 반역을 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2008년 4월27일자의 신문과 방송은 
        일제히 배우 최 민수 씨의 노인 폭행사건을 다루었습니다. 
하얏트 호텔에서 일을 보던 최 민수 씨가 차를 댈 곳이 없어 욕을 해대자 
70대의 식당주인이 “젊은 사람이 왠 욕을 그렇게 하느냐?”고 하였고 
최 민수 씨는 다짜고짜 차에서 내려 그 노인을 폭행하였는데 
죽음의 위협을 느낀 노인은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서에 신고를 하였습니다. 
최 민수 씨는 그냥 노인을 매 단채 
         500미터를 차를 몰아 도주하려다가 체포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최 민수 에 대해 상당한 욕과 질책을 퍼 부어댔습니다. 
사건 후에 최 민수 씨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고백을 하며 사죄하고,           
 노인의 식당에서도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우리가 단편적으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공인이며, 인기배우였던 그가 많은 사람 앞에서 절제하지 못한 채 
          노인을 폭행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사화악입니다. 
그러나 그의 뒷면을 보면 
       그의 마음에는 어른에 대한 많은 분노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최 무룡 씨의 잦은 이혼과 얼마 전 작고한 친모 강 효실씨 때문에 
최 민수 씨의 마음은 아마도 무너진 경험을 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노나 아픔의 상태에서는 
어떤 위기상황이나 한계상황이 오면 견디지 못하는 결과가 성인아이의 현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최민수를 범죄자로 몰아낸 당사자는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최 민수는 노인을 폭행한 것도 있지만 
   자신의 분노로 인해 아버지를 폭행한 것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증상은 반드시 치유 받아야 할 인격 장애인 것입니다.
아무리 자식이 잘못해도 자식과의 대화가 단절되면 
      모든 불화의 원인이 된다는 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이 예루살렘 성을 떠나게 됩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3.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을 떠나게 된 배경에는 
          어떤 영적 교훈이 있습니까?(참조/15:13-16절)
상상도 못했던 압살롬의 반역에 다윗과 그의 신하들은 
             성을 버리고 피난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다윗은 가슴 아프게 왕궁을 급히 빠져나가면서 정말 모든 모습이 초라했습니다. 
초라하게 피난 가는 다윗의 일행을 
        백성들은 돌을 던지고, 다윗을 향해서 욕을 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스스로 왕이 되고 왕궁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모사 아히도벨의 말을 듣고 
            대낮에 아버지의 후궁들과 동침을 하므로
                 다윗에게 치명적인 충격을 주게 됩니다. 
사실 이 사건은 다윗의 자업자득입니다.

삼하12:에 보면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나단 선지자가 찾아와 책망 할 때에 그 자리에 엎드려 회개를 합니다만
그 때 나단 선지자가 하는 말이

10절 [ 칼이 네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 
12절에 [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 

바로 압살롬의 반란과 
    다윗의 후궁들이 압살롬에게 당한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 사건을 
       단순히 반란 사건으로만 보지 아니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이 피난을 갈 때
사울왕의 친척 시므이라는 자가 나아와 다윗을 돌을 던지며 저주를 하니
심복 아비새 장군이 [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내가 가서 머리를 베리이가? ]  하니
[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헤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
아비 다윗의 입장에서 본 압살롬의 반역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은 
아들의 반역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반성의 계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결국 압살롬은 전쟁에서 죽고 맙니다.
압살롬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4. 압살롬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은 무엇입니까?(참조/18: 9-10절)

반란군의 진압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요압, 아비새, 잇대 장군은 반란군 압살롬의 군대를 추격합니다. 
압살롬이 나귀를 타고 있다가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치는데 
유대인들은 평생토록 머리를 자르지 않는 그 전통에 따라 
그 머리가 길게 묶여져 있는데 달아나다가 나뭇가지에 머리가 끼었어요. 
머리가 끼면서 나귀는 달아나고 
       압살롬은 나무에 대롱,  대롱 매달린 격이 되었어요. 
그 모습을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신21:23절에 보면 [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음이라 ] 
압살롬이 나무에 걸린 것이 우연한 일입니까? 
   압살롬이 죽은 것이 요압 때문입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압살롬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미 다윗에게 선언했던 그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가 얼마나 정확하게, 
    얼마나 분명하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압의 군사가 그 장면을 보고서 칼로 찔러서 죽여야 되는데 
       찔러 죽이려는 순간 생각이 난 것이 있습니다. 
왕이 그들을 반란군 진압에 앞서서 
내 아들 압살롬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하는 부탁한 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 군사는 죽이기를 주저하고서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요압 장군이 들이닥쳤는데 보니까 
   군사가 그 압살롬을 죽이지 않고 쳐다만 보고 있는 거지요. 
너는 왜 저 압살롬을 죽이지 않느냐? 
만약 네 손으로 압살롬을 죽였다면 
     내가 은이라도 너에게 풍성하게 상으로 내렸을 터인데, 
그런데 그 군사가 대답하는 말이 재미있어요.
“은 1000개를 나에게 준다 하더라도 나는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왕이 누구든지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요압 장군은 자기 손으로 압살롬의 심장을 칼로 찔렀어요. 
압살롬이 죽음으로써 반란은 끝난 것입니다.

압살롬의 머리카락이 주는 교훈을 우리는 마음에 깊이 새겨야 겠습니다.
부모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자식의 특출함이
       되려 자신과 부모에게 올무가 되고 가시가 될 수 있다는 점
    꼭 마음에 깊이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전장에서 돌아온 구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압살롬의 전사 소식을 전할 때에 다윗이 마음이 아파 통곡을 하며 웁니다.


5. 아들 압살롬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애통하는 다윗의 통곡 속에서 
        우리는 부모의 마음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33절)

 33절 [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 하였더라.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왕의 체면도 없이 성루에 올라가 통곡하며 웁니다.
오늘 압살롬의 죽음을 생각하며 통곡하는 아비 다윗을 울음 속에서
             부모의 마음을 헤라여 보는 어버이 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사랑할 가치가 없는 자식인데 사랑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입니다.
살인과 반역으로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압살롬이지만 
       다윗은 내 아들 압살롬아 하고 통곡을 합니다.
부모는 이렇게 도저히 사랑할 가치가 없는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내 아들아 내가 대신하여 죽었더면 하고 애통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자신을 꾸짖는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흉기로 찌른 인면수심의 아들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경찰에 붙잡힐 것을 걱정해 
        강도사건으로 위장하는 모정을 보여 안타까움을 줍니다.
경기 안양경찰서는 20일 공익근무요원 복무 중인 윤모씨(23)에 대해 
      존속 살인 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윤씨는 지난 19일 밤 11시20분께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 자신의 집에서 
어머니 하모씨(49)가 자신을 꾸짖자 배와 등을 4차례 찌른 혐의입니다.
경찰 조사 결과 안양 만안구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윤씨는  
     한 달 반이 넘도록 출근을 하지 않자 
어머니 하씨가 이를 나무라며 용돈을 주지 않는 것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하씨는 아들이 흉기로 자신을 찔렀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경찰에 붙잡힐 것을 걱정, 강도 사건으로 위장하고는
       아들을 도주하도록 시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사랑인 것입니다.

2) 자식의 불행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괴로워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대신하여 죽었더면 ” 
          자식의 불행을 대신하고 싶은 마음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전쟁터에 내보낸 어머니가 
          아들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 비탄에 잠겼습니다.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애끊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 아들을 단 5분만 만나보게 해주세요. 단 5분만…”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듣고 천사가 말했습니다. 
“아들을 5분 동안만 만나게 해드리죠. 아들의 언제 모습을 보고 싶으세요.           
어머니의 품에서 재롱 피우던 모습인가요, 
        전장에서 용감하게 싸우는 모습인가요.” 
어머니는 한참 생각한 뒤 천사에게 말했다.
 “아들이 잘못을 저질러 제게 용서를 빌던 모습입니다. 
  눈물 흘리던 그 모습이 제 마음 속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집니다.”
어머니는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자녀에게 많은 사랑을 주면서도 더 못해준 것을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어머니는 지우개가 되길 원하는 사람입니다. 
자녀들의 아픔과 슬픔을 모두 지워주고 싶은 것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3) 자식을 자기 생명과 나라와 왕관보다 더 앞세우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비록 반역하다가 죽은 자식이지만
        다윗은 자신의 생명보다 왕관보다 
               압살롬의 생명을 더 귀중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
미국의 중·고등학교에서 부모 공경을 가리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인물이 조지 위싱턴 대통령입니다. 
위싱턴은 바다를 벗삼아 세계를 향해하는 멋진 선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선원으로 취직해 먼 뱃길을 떠날 작별인사를 드렸습니다. 
아들과의 이별이 아쉬워 우는 어머니를 보고 워싱턴은 마음을 돌렸습니다. 
`어머니의 눈물과 내 꿈을 바꿀 수는 없다.` 위싱턴은 항해를 포기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이렇게 축복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의 앞길이 평탄하리라.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실 것이다.` 
결국 효자 위싱턴은 `선장`대신 `대통령`이 라는 복을 받았다.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 
          `장수`와 `명예`라는 이름의  복을 주십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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