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이 좋아하신 세상 (창 1:24~31)

  • 잡초 잡초
  • 312
  • 0

첨부 1


하나님이 좋아하신 세상 (창 1:24~31)
 
지구가 점점 온난화 되는 것이 지구의 문제라고 모두 걱정하면서도 그것을 막기 위한 대책은 특별히 하고 있지 않는 것이 오늘의 세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얼마 안가서는 사막성 기후인 아열대 기후로 변한다고 합니다. 금년과 내년 북한은 최대의 식량난을 겪게 된다고 합니다. 지난해 극심한 홍수로 말미암아 농경지 25퍼센트가 물에 쓸려 곡식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왜 북한은 이렇게 해마다 홍수 피해가 심한가? 북한은 지금 산에 나무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두만강, 압록강 700리 길을 돌아봤지만 북한의 산에 나무가 있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땔감이 없어서 밤에 모조리 베어 때웠기 때문에 그렇고, 또 하나는 김정일의 ‘새밭 찾기 운동’에 실적을 올리려고 온 나라가 산을 개간한다고 파헤쳐놨기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가 되어 홍수재해를 계속 가져오는 것인데, 그것이 원상회복되려면 앞으로 20년에서 3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갈 길은 아주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좋아하신 세상을 계속 좋아하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 중 특별히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 사역의 속성은 두 가지입니다. 창조 사역으로 두 가지로 나눠 하나는 일회적 창조로, 이것은 하나님이 혼자 하시고 영원한 것입니다. 계속적인 창조는 인간과 함께 하시고 지금도 창조하고 계신 사역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즘 시대를 가르쳐 첨단 과학 시대라고 말합니다. 지구 밖에 있는 천체에 손이 닿는 시대를 말합니다. 달과 화성에 인간이 보낸 기계가 움직일 수 있는 시대로 인간의 힘도 위대하다고 평가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소꿉장난입니다. 우리 우주의 넓이가 현대 과학으로 200억 광년이라고 밝혔습니다. 빛의 속도로 200억년을 간다면 그 넓이가 얼마나 넓은 것인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인간이 밝혀낸 것이 200억 광년이지 하나님의 우주 창조물은 그보다 더 클지도 모릅니다. 200억년을 가야되는 이 우주 안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달에 한번 갔다 온 것이 인간 편에서는 놀랍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소꿉장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를 깨달으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은 크시도다. 광대하시도다.” 이 이상의 표현은 없습니다. 첨단 과학 시대라고 하는데도 한 가지 아주 쉬운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제일 먼저 어떻게 생겼습니까? 현대 과학이 답변합니까? 학설만 있을 뿐이지 답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주 간단하게 답변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 27절의 글자 36자로 완전하게 결론을 내버리고 맙니다. 인간은 이 문제에 대해서 수천, 수만 페이지의 논문을 써도 밝혀내지 못하는 것을 36글자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끝냈습니다. 인간이 믿든지 말든지 아무 상관없습니다. 

창세기는 인간 기원에 대해 이렇게 확실하게 “하나님의 사역 성격이 창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유에서 유를 창조해나가는 사역을 계속 하고 계시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의 속성은 심판입니다. 우리 인간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죄와 저주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 바벨탑 사건, 소돔과 고모라 등등 줄줄이 하나님의 심판 역사가 성경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심판의 사역도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이 세상에서의 심판 사역으로, 이것은 개인적으로도 체험하고 국가적 혹은 인류사건 안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심판 사역의 성격입니다. 

또 하나는 종말론적 심판 사역입니다. 예수 재림시에 이루어질 마지막 심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세상을 심판하시는가? 하나님의 소원이 잘못 가는 것을 수정하기 위해 하나님은 심판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창세기 1장에서부터 성경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진리는 뭐냐 하면 인간의 심판과 재앙적 사건의 시초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불순종한 것이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의 사역은 이렇게 심판이 있는 가운데서 하나의 빛으로 이끄는 구원 사역입니다. 인간이 죄 아래로 떨어졌으나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해두지 않으시고 아담과 하와가 살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또 그들의 손을 잡고 새로운 회복의 인간 역사를 해나가고 계시는 구원의 사역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 사역의 모습을 우리가 보면 오늘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방향 제시가 나타납니다. 그 방향은 한 마디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아하신 이 세상을 지금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 인간 삶의 목표가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세기에 나타난 인간 삶의 방향이 어떠해야 되겠는가? 오늘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있습니다. 1장에서 2장까지 하나님의 질서에 똑같은 말이 반복되는데 첫째 날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날까지 똑같은 문장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몇째 날이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그때 창조하신 질서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우주 질서 법칙을 하나님이 만드심으로 바로 그 질서를 지켜가는 것이 인간 행복이 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질서를 깨뜨려 가는 것이 인간 재앙의 시작이라고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물질의 근본이 되는 빛을 제일 먼저 창조하시고 그 빛을 기초로 모든 물질의 세계가 형성되도록 하셨기 때문에 빛보다도 더 밝은 것이 없고 빛보다 더 빠른 것도 없게 모든 물질의 기초가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빛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눈을 가졌지만 빛이 있어줄 때에만 눈이 필요한 것이지 빛이 없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의 질서입니다. 여기에 모든 동물과 식물, 이것을 창조하실 때에도 제일 많이 나오는 1장의 단어가 뭐냐 하면 “종류대로”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우리가 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생태계라고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생태계가 파괴가 되면 인간도 살 수 없는 질서를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여기 보니까 바다의 고기까지, 날아다니는 새까지, 지렁이 같이 징그러운 곤충까지 왜 만들어놓으셨는가? 그것들이 있음으로 땅이 보호를 받아서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에, 날아다니는 새 한 마리도, 물고기 한 마리도, 혹은 곤충 하나도 그것들이 다 종류대로 있어야만, 꽃가루를 날려서 꽃이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데 도움을 주어서 그것을 통해 인간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이 종류대로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그 질서가 유지되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인간이 생태계를 파괴시켰기 때문에 엄청난 재앙 앞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기상청인 하드리 연구센터에서 벌써 오래전에 발표했습니다. 앞으로 이 지구가 어떻게 될 것인가? 색깔로 구별했을 때 1860년대까지는 지구가 파란 색깔이었는데 1990년도 이후 지금까지는 노란색깔이고 2060년이 가면 새빨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뜨거워서 살 수가 없는 지구가 되어 어떤 종교인은 그것이 바로 불심판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왜 이렇게 되는가? 인간들이 너무 욕심을 부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자연 질서를 파괴하기 시작하는 것이 재앙적 사건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 몸의 질서를 처음부터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 질서를 따라 살면 인간은 오래 살 수 있고,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세요. 옛날 사람들은 몇 백 년까지 살았잖아요? 하나님의 질서가 파괴되지 않고 유지되었기 때문에 살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런 것들이 다 파괴가 되었고 우리 몸에도 정해주신 몸의 분량이 분명하게 질서가 조직화되어 있잖아요? 이것을 우리가 파괴할 때 건강에 손해를 받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동물학자들이 발표하는 것을 보면 모든 동물이 자기 위에 80퍼센트를 채우면서 살기 때문에 건강하게 수명을 다해서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동물 가운데 오직 하나의 동물이 100퍼센트를 채우고 사는데 돼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돼지보다 더 먹는 존재가 하나 있는데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물은 위 확장이 안 걸리는데 인간은 위 확장이 생긴다는 겁니다. 거기다가 우리 몸의 질서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데 이 질서를 깨뜨리는 독한 음식들을 만들어서 먹기 때문에 우리 몸의 질서가 깨어져서 그렇게 인간의 수명이 단축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맞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우리가 밤에도 일을 많이 하고 밤문화가 이렇게 발달했지만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것이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질서입니다. 그런데 세계는 거의 이것을 다 파괴했습니다. 낮이고 밤이고 없습니다. 이러한 자연 질서 파괴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질병으로 다가와서 인간을 고난스럽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본래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흙과 더불어서 살면 건강하게 삽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우리 손으로 흙을 만져보고 발바닥으로 흙을 밟습니까? 콘크리트 안에서 항상 사니까 병만 점점 더 악성적으로 발전해서 인간을 괴롭히고 있는 그런 생활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 모든 것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주노라.” 그런데 한 가지 책임을 주셨습니다. “잘 다스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잘못 다스리면 하나님의 질서가 깨어져서 인간이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에 바다의 고기 한 마리도 하늘의 그 많은 새 한 마리도 잘 다스리는 책임은 너희 몫이다.” 우리 인간은 산소 공급이 생명이 되는데 바다에서 플랑크톤이라고 하는 해초가 지구 산소의 50퍼센트 정도를 산출해 줍니다. 

그런데 바다를 전부 인간들이 오염시켰기 때문에 핵폐기물을 그곳에 다 내버리기 때문에 앞으로 바다가 파괴가 돼 갑니다.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개발이 자꾸 이루어지니까 산소의 절대량 부족으로 앞으로 인간은 숨도 못 쉬고 살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세계는 너희 나라, 내 나라 핵무기 만들어서 침략하는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지구 전체가 지구 살리기에 온갖 힘을 기울여야 되는 그런 시대를 지금 살고 있습니다. 제가 먼저 있던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하며 설교 준비를 하고 있는데 비서가 뛰어 올라와서 “목사님, 큰일 났습니다. 빨리 내려와 보세요.” “무슨 일인가요? 불이 났나요?” “아닙니다. 야단났습니다.” “사람이 죽었냐?” “아닙니다. 빨리 내려오세요.”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그렇게 급하게?” 내려가 보니까 정말 큰일 난 겁니다. 교회 주차장 주변을 경찰차, 소방차 할 것 없이 몇 개의 기관에서 불을 켜고 번쩍이는 자동차만 26대가 왔습니다. 

내가 나가니까 “당신이 이 교회 책임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곳으로 오십시오.” 나를 데리고 행길로 나갔습니다. 그때 무엇을 했느냐 하면 교회가 크니까 에어컨 시스템이 어마어마합니다. 부동액을 빼내고 갈아 끼는 일을 업체에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 업체에서 그것을 좀 부주의해서 펌프가 액체를 끄집어내서 바깥으로 내뿜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행길로 내려가니까 누가 보고 이 건물에서 이상한 액체가 흘러나온다고 신고를 한 것입니다. 30분 안에 윙윙거리면서 온 차들로 그 일대의 교통이 마비가 될 정도였습니다. “이게 지금 흘러서 하수도로 들어갑니다.”, 나더러 “당신 건물에서 흘러나온 이 액체 때문에 바다의 고기가 얼마나 많이 죽고 바다 오염이 이루어질지 아십니까? 왜 이렇게 한 겁니까?” 

사실 그 업체에서 잘못 한 겁니다. 업체가 맡아서 작업을 잘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저는 경찰관, 소방관, 해양 수상처 할 것 없이 모두 와서 나만 보고 책망을 하는데 나는 그때 순간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죽는구나!’ 결국 다행히 그 액체가 하수도까지 가기 전에 막았습니다. 그래서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벌금을 좀 무는 것으로 일이 잘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관심을 가지고 미국의 자연 보호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완벽하게 잘 이루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온 세계가 핵무기나 만들어서 지구를 멸망시킬 그러한 치졸한 생각에서 벗어나서 모든 산업이 생명 보존의 우선을 선택하는 것으로 그렇게 변화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그런 시급한 시대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온 세상을 죄로 인해 파괴하고 있는 인간을 구원하는 길은 내가 직접 가야 되겠다.’ 그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하나님이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 구원을 말씀하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구의 문제는 가난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가난에서 해방을 가져올 것인가? 그런데 풍요해지니 풍요가 더 문제입니다. 온 세상의 풍요가 지구를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신학교에서도 가장 큰 신학의 초점이 지구 구원의 신학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 바로 창세기 1장에서 인간 재앙은 하나님 말씀의 불순종한 것이 재앙의 시초라고 하는 것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느냐? 이것이 재앙의 시초다.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고 살아라.” 결국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무엇인가를 알아보면서 그 창조 질서에 맞는 정책과 실천을 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세상을 구원해야 된다는 겁니다. 

지금 사람들은 마치 내 세대만 살고 그만 둘 것 같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 손자들도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세계를 하나님과 똑같이 잘 다스리고 살아야 그 아래 인간 행복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핵무기는 도대체 왜 만드는 겁니까? 결국 그것은 세상을 다 망가뜨리고 인간을 망가뜨리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미련한 인간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이 ‘내가 가서 인간들을 구원해야 되겠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지나친 계발은 인간을 죽게 만든다는 진리를 창세기에서부터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그 자연 법칙에 철저하게 순종할 때 “내가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라.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 하나님 명령의 순종이 인간의 복이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지 말라는 것을 인간이 파렴치하게 손을 내밀어서 했을 때 오게 된 재앙의 결과를 창세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주일마다 교인이 수천 명씩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오니까 목사는 설교를 은혜 있게 준비하기 위해서 금요일에 아무도 안 만나고 설교 준비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해서 연구하고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목사의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누구십니까?” “목사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보니까 환자입니다. 그 사람을 도와주려면 우선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되고 병원비를 마련해 주어야 되고 그 후속 처리를 잘 해야 줘야 되는데 문제가 ‘오늘 이 설교 준비를 못하면 주일날 많은 교인들이 찾아오는데 이것을 어떡해야 되나?’ 그래서 그를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오늘은 내가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설교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신가요?” 그 사람은 슬프게 나갔습니다. 그 다음 주일 수천 명의 교인들은 목사의 영감 있는 은혜의 설교를 듣고 다 만족하고 목사 자신도 만족했습니다. 

그날 설교의 제목이 “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 예배가 끝났는데 그 사람이 왔습니다. “목사님, 오늘 설교 참 훌륭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에 제가 고난스럽게 찾아갔을 때 왜 목사님은 오늘 목사님이 설교하신 이웃 사랑의 실천을 안 하셨습니까?” 그때 그 목사는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또 현실적으로 오늘 여러분들이 이렇게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제가 “지난 일주일 동안에는 제 주변의 불쌍한 사람을 돌봐야 되는 일이 너무나도 제가 많이 있어서 그분들을 열심히 돌아보느라 설교 준비할 시간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선한 일을 위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으니 그런 줄 아십시오. 여러분, 설교는 제가 다음 주일에 하겠습니다. 오늘은 본문만 읽으시고 끝냅시다.” 그런 것이 잘한 것인가? 바로 그 목사님의 생각했다는 그 초점! 예수 그리스도라면 이럴 때 어떻게 선택하셨을까? 이것이 우리의 갈 길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우리나라가 핵무기를 만들 것인가? 정책의 우선권이 강대국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이 세상에 핵무기를 찬성하실 것인가? 핵무기 만들려고 200~300만 명이라는 사람을 굶어죽이면서 만드는 북한의 핵무기 하나가 그렇게 큰 소리를 치고 있잖아요? 그러면 다 그 길을 가야 할 것인가? 어디에 쓸 것인가? 사람들을 다 무시하면서 만들어놓은 이 세상의 그 많은 핵무기는 지구를 열 번을 깨뜨리고도 남는 분량이 지금 만들어져 있습니다. 잘 한 것인가?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다스리는 것은 너희들의 몫이다.” 잘 다스리고 있는 것인가? 인간은 끝없이, 끝없이 미련한 길을 선택하는 바보입니다. 

이제 세계는 지구 보존, 인류 보존이 가장 큰 숙제입니다. 지금 지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느 날 갑자기 하루 저녁에 다 멸망할지도 모릅니다. 제 친구는 골프를 잘 칩니다. 캘리포니아에 세계에서 제일 좋은 골프장이 얼마나 많은데요? 캘리포니아는 골프 치는데 돈도 많이 안 듭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죽었습니다. 왜 죽었느냐? 피부암 때문에 죽었습니다. 오존층 파괴로 인해 일 년에도 수천 명의 피부암 환자들이 생깁니다. 절대 햇볕 쏘이지 말라고 늘 방송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항상 골프를 즐겨서 피부암이 생겨서 죽었습니다. 자신도 그렇게 말하고 죽었고 우리 주변에서도 “그 친구는 골프칠 때 너무 피부 노출을 많이 해서 피부암이 생겨서 죽은 거다.” 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망가져 가고 있습니다. 다 쓰레기장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망가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더 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보세요. 아담에서부터 요셉까지 인간 역사를 창세기가 조명하고 있는데 결국 죄 아래로 떨어지고 망가졌지만 하나님은 그 망가진 세상 속에서 인간을 다시 회복하고 구원시키기 위해서 지극한 관심의 보호를 하면서 또 사역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맞이하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을 끝까지 보호하시고 찾아가시고 그들의 손을 놓지 않으시고 에서의 손에 죽을 야곱을 건져주시고 라반의 손에 죽을 야곱을 보호하시고 세겜족에게 죽을 야곱 가족을 살려내시고 구덩이에 빠진 요셉을 끌어내시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요셉을 총리의 자리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누가 세상을 이렇게 망가뜨렸느냐? 그러면 다시 회복시키자.” 바로 교회라든가 성도들이라든가 성직자라든가 혹은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과학자들이나 모두는 이 회복의 사역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관리는 너희 책임이야. 내가 만들어 너희들에게 다 줄 테니 잘 다스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 그런데 우리가 관리를 잘 못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다 깨뜨려버립니다. 이것을 말해주는 진리가 창세기라고 하는 성경입니다. 내가 창조한 세상과 인간은 처음에 하나님의 감탄사 “심히 좋았더라.” 그 좋음이 계속 좋음이 되도록 모든 정책의 초점과 사역의 초점을 거기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회복으로 갈 때 인간은 행복하게 세상에서 살고 천년만대 후손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큰 사명감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나 하나의 힘은 미약하지만 이 세상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대통령을 하고 어떤 사람은 저같이 목사를 하고 어떤 사람은 농사를 짓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우리 모두 그런 사역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창세기에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왜 이렇게 고난을 받으며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 이 창세기가 가르쳐주는 진리를 저희들이 잘 깨닫고 오늘날과 같이 망가진 이 세상을 다시 회복하는데 우리들의 사역과 삶이 도움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개인의 삶도, 교회와 인류의 삶도 회복의 역사를 찾아가는 기쁨과 은혜가 있게 하여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필재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