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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부모와 자녀 사이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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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녀 사이 (엡 6:1~4)

“가는 세월 그 누구가 막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하고 어느 가수가 노래합니다. 그 노랫말처럼 가는 세월을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세월은 잠간 사이에 흘러갑니다. 어릴 때는 시간이 그토록 더디게만 느껴지더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월의 흐름이 얼마나 빠르게 느껴지는지요? 문득 내 나이가 지금 몇이지 하고 헤아리다가 아니 벌써 그렇게 됐나 하는 나이가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웃 목회자들과 함께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언제든지 그들은 한참 젊은 듯 느껴집니다. 그래서 “아직 젊은데 뭘 그러냐?” 그러면 “목사님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저도 벌써 나이가 오십이 넘었습니다.” 그러는 겁니다. 그 누구의 말처럼 아니 벌써 입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지만 그러나 세월의 흐름 속에 부모는 자녀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그런 때가 오고 맙니다. 그래 뒤늦게 자녀들이 흐느끼면서 하는 말이 조금만 더 기다리시지 조금만 더 살아계시지 하고 탄식해도 그때는 이미 늦은 겁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을 맞아 부모와 자녀 사이에 서로가 지켜야 될 도리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자녀들로서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자녀들에게 효도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기독교는 효도와는 거리가 먼 그런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모도 공경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비난을 퍼부어댑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부모 공경은 단순히 공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이는 오히려 성경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반드시 지켜야 될 열 가지 계명을 주셨는데 첫 번째 계명부터 네 번째 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라면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 가운데 첫 번째가 다시 말해서 다섯 번째 계명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전통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따라서 이는 반드시 지켜야 됩니다. 거기다가 더해서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곧 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토록 효도를 강조하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부모 공경은 곧 하나님 공경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도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온전하게 공경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부모는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부모는 온 정성을 다 기울여 자녀를 키웁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녀를 키우는 목적이 단순히 내가 이렇게 자녀를 잘 키웠노라고 하는 만족감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 생명을 나눈 자녀이기에 그 자녀가 잘 되도록 키우고 싶은 마음이 부모들에게는 누구나 다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그렇지 못한 부모들도 있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런 예외적인 사람들에게 우리가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바르게 자녀들을 양육해 나가고 있는 부모들을 우리는 항상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에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하지만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렇다면 부모가 자녀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면 싫다고 하다가도 그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 옳다고 단순히 이야기하는 겁니까? 아니죠. 오히려 더 좋은 것은 처음부터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부모가 자녀들에게 이런 저런 것을 하라고 말을 하겠습니까? 그것이 자녀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다 자라면서 겪어 보았지만 사실 공부만큼 하기 싫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반드시 해야 될 일인데도 왜 그때는 그렇게 공부하기가 지겹기만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부모들은 그저 공부하라 공부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럼 그것이 자녀들을 힘들게 만들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자녀들의 앞날이 보다 좋은 길로 열려지기를 바라서입니다. 그런데 자녀들로서는 그런 부모가 싫습니다. 왜 우리 부모님은 다른 말은 안 하면서도 공부하라 공부하라고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나는 정말 싫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부모가 말하기 전에 먼저 나서서 공부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녀들이 할 부모 공경의 첫째는 순종입니다. 하지만 부모가 무어라고 하면 그저 입이 이만큼 나와 가지고 투덜대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야단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 자녀를 키우다 보면 아이들마다 다 다릅니다. 어떤 아이는 처음부터 예 하고 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에 어떤 아이는 싫어요 부터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꼭 예수님 말씀대로입니다. 또 하기는 하는데 입이 쑥 내밀고 하는 아이들 볼 때 어찌 부모의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오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살피시고 이끌어주시겠다고 하시는데 그런데도 그런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려고 하기보다는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차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하지 말라는 것과 하라는 것으로 크게 나누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굳이 하지 않으려고 하고 하라는 것은 안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다시 하나로 줄인다면 하나님은 모든 것이 되도록 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분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직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쉽게 말하면 모든 것을 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을 보십시오. 동산 중앙에 두 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생명나무요 또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이 두 나무 중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생명나무입니다. 그런데 하와는 생명나무가 아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습니다. 그래 얼른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 남편에게도 그 열매를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왜 먹으면 자기나 먹지 그것을 남편에게 주어 먹게 합니까? 결국 그들 모두가 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안 되는 방향으로 나갔던 것입니다. 그게 바로 불순종의 모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광야를 통해 이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입니다. 그때 사람들이 무어라고 합니까? 그 땅을 우리가 직접 가서 확인해 보아야 되겠다. 그래 작 지파에 대표 한 사람씩 해서 모두 열두 명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확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녀와서 열 명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곳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것은 분명한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어냐?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와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보입니다. 마치 그들 앞에 우리는 메뚜기와 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땅에는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겠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니다 그냥 객관적으로만 보면 열 사람의 말이 맞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느냐? 그렇기에 오히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어찌 밥을 무서워하겠느냐? 그냥 가서 퍼먹으면 되지. 

여기 열 명은 아주 냉정하게 정세 판단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정확합니다. 우리의 입장과 상대방의 입장을 철저하게 비교합니다. 그랬더니 현실적으로 그건 아니다 하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서 안 된다고 한 겁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현실이 아닌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믿음이 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되는 길로 나가는 것이요 그것이 힘들다 싶을 때는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현실은 이렇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함께 해 주세요. 이게 바로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믿음의 사람의 고백대로 하나님은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잠언 11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그렇게 축복하는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바울 사도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꼭 안 된다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누가 그러느냐 하면 아주 현실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기의 뜻에 따르는 사람들을 모읍니다. 너도 그렇지? 역시 그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더 비겁한 것은 그런 사람들이 그걸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뒤에서만 수군거립니다. 그러다가 꼭 그런 불편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도록 시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들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서 불평을 전하는 사람을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불평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건 불평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하겠습니까? 여러분 거기에 속지 마세요.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 그 열매가 어떻게 보였다고 했습니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정말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보기에 때깔도 아주 좋습니다. 그것 먹으면 지혜가 더해질 것이라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참 지혜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생각에 그런 마음이 드니까 날름 따먹고는 그걸 또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지 않습니까? 결국 남편이 앞서서 망하고 말았지 않습니까? 자녀들도 그래요. 꼭 안 좋은 이야기는 다른 형제들에게 시켜요. 그래 그 말을 전하다가 먼저 두들겨 맞게 만들어요. 하지만 아닙니다. 부모 앞에서 불평하지 않고 반발하지 않고 순종하는 자녀가 미련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까? 우리도 다 자녀를 키워보니까 알잖아요? 언제든지 예 하고 따르는 그 자녀가 더 예쁩니다. 그러면 그 자녀에게 무어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어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부모님 앞에서 또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순종하며 항상 일이 되도록 앞장 서야 될 줄 압니다. 그런데 초록은 동색이라고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불평하는 사람은 또 그런 사람끼리 모입니다. 하지만 그것처럼 불행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안 되고 함께 동조하는 사람 역시 화가 미치기 때문입니다. 말썽장이 자녀 옆에 있다가 다른 자녀도 같이 혼찌검이 나지 않던가요? 

이제 다시 돌아갑니다. 부모 공경이라는 것이 언제나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다 때가 있습니다. 아직 부모님이 계실 때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의 문이 닫히기 전에 생명의 길로 나아가야 하고요 은혜 받을만한 때에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같이 나아가도 기쁨으로 순종하며 예 하고 따르는 사람이 그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부자인 록펠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실업가 존 록펠러는 어릴 때부터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는 것, 교회에 일찍 나가 앞자리에 앉는 것, 목사님께 순종하는 것을 지켰습니다.
그는 33세에 1백만 달러를 가지고 43세에 미국 정유 산업을 장악하여 미국 최대의 회사를 만들고 53세에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머리털과 눈썹까지 빠지고 소화가 안 되고 무기력해지는 알로페시아(Alopecia)라는 병에 걸려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자 그에게는 악착같이 모았던 재산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버는 돈의 6%를 선교사와 가난한 아이들의 학비를 보조하며, 후원금을 10%까지 올렸습니다. 그러자 그의 건강은 회복되었습니다.
그는 재벌의 반열에 오르자 정확한 십일조를 위해 십일조 전담부서를 두었습니다.
그런 놀라운 복을 경험한 후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고 어느 날 갑자기 교회를 짓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지은 교회가 리버사이드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헌당할 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꼭 이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큰 예배당을 지을 필요가 있습니까?”
록펠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옷이 비록 아버지의 몸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아버지의 몸을 담는 옷을 잘 지어 드리는 것이 자식 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가 복 받은 비결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나누는 것에 있었습니다.
오늘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 바로 이래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모두가 다 록펠러처럼 복된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입니다.  
부모로서는 자녀를 키울 때 자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화를 돋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하도록 할 때도 강압적으로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이해하도록 먼저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코 서로 비교하지 마십시오. 제일 마음 상하는 것이 바로 비교하는 것입니다. 누구는 이런데 너는 왜 그러냐고 하면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아도 먼저 마음이 상해버리게 되니 그 말대로 따르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하나는 자녀들에게 하라고만 하지 말고 부모가 먼저 앞장서서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기쁨으로 따르도록 하려면 제일 좋은 것이 바로 칭찬입니다. 그리고 너도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보같이 그것도 못하느냐고 하면 자녀들이 더욱 기가 죽어버리고 맙니다. 기를 다 죽여 놓고 무엇을 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안 되면 되기까지 다시 하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더 좋은 방법이 있지를 않습니까? 그건 자녀들을 날마다 축복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하나님이 너와 함께 있어서 너를 복되게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격려해 주십시오. 좀 부족하다 싶으면 그 부족한 부분을 하나님께서 채우시도록 하나님 앞에 간구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녀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니 부모 된 입장에서 먼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앞장서서 걸어가는 그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우게 됩니다. 그 부모를 그대로 따르게 됩니다. 결코 비난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자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고 먼저 노력하십시오. 그중의 제일이 바로 하나님 말씀입니다. 

라이언 화이트는 열세 살 때 혈우병을 앓아서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수술할 때 수혈이 잘 못 되어서 후천성 면역결핍증인 에이즈에 걸렸습니다. 병원 측의 실수로 에이즈에 걸려서 죽음만을 가다리고 있는데 이 아이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부모도 원망하지 않고, 형제도 원망하지 않고, 자기를 수술하기 위해서 잘 못된 혈액을 사용했던 의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항상 웃음을 보였습니다.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염려하는 부모를 위로하며 날마다 기쁘게 살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방송매체를 통해서 전국에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많은 사람이 이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유명 인사들이 앞 다투어서 이 아이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도 친히 이 소년을 찾아서 방문하고 위로했습니다. 유명한 팝 가수인 마이클 잭슨도 이 소년을 찾아와서 위로했습니다. 

결국 5년을 더 살다가 18살에 죽었습니다. 그가 마지막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기독교 잡지에 실려서 더욱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아버지는 죽어가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나는 네게 아무 것도 해 줄 것이 없구나. 아빠가 어떤 선물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 다오.” 
“아버지!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많은 선물을 받고 살아왔지만 아무도 아빠가 주신 선물보다 귀한 선물을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빠는 제게 천국열쇠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소개해 주셨고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영생을 얻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위대한 선물은 다시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도록, 천국갈 수 있도록,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가장 큰 책임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부모에게 라이언 화이트처럼 이렇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잘 믿는데 여러분의 자녀는 이 신앙을 갖지 못하고 멸망을 향해서 달려가는 자녀는 없습니까? 감사할 수 있도록 교육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입니다. 이런 부모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레미야 42장 5절로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또한 예레미야 29장 11절로 13절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되시고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기도함으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다 하나님 앞에 복된 인생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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