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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것이 아닌 생명 (요 12: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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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것이 아닌 생명 (요 12:24~25)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지켜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생존이라고 한다. 

생존은 항상 생물적 차원과 목숨 또는 혼을 의미할 뿐 아니라 영생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통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 모형이 하나님나라이며 그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본 받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말하면 주신생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을 말함이다. 한 생명은 영생을 얻는 수단이며 영생에 비추어 생명을 분토와 같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생명들은 세상과 관계된 것이며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지속되며 거저 줄 수 있는 생명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생명이 단순히 생명을 단순히 지키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도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은 어떤 사람이 예수와의 나누는 대화에서 밝혀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살도록 운명 지어진 것으로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하나님은 직접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건을 갖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인간의 역사 속으로 오시고 생명의 역사를 통하여 사건을 나타냈으며 인간을 구원하신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한 사건으로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로 생명이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 죽음으로 부활의 생명을 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관이며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닌 생명’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한결같이 삶의 현장에서 현실로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우리 삶에서 살아 움직이고 일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인 것을 믿어야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심을 알게 한다. 역사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의 중심에 계신다. 그리하여 예수는 ‘주는 그리스도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을 알게 한다. 이 신앙고백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 고백으로 ‘나의 나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고백함도 보는 것이다. 

교회는 이 신앙고백의 반석 위에 세워진 역사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몸인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은 변화하는 조건의 유동성 속에서 정체성을 보존 한다. 그러므로 생명은 정체성의 힘이며 호흡하는 것이며 인간의 구체적인 실존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기에 생명은 다른 개인들과 공존하며 협동과 상호의존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생명은 자유와 정의와 평화가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공생하는 생존 양태로 나타나 지탱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마땅히 보존 되어야 할 고귀한 것으로 영원토록 지탱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닌 생명’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세계는 인간 중심의 생명관이 자연을 포함한 생명 중심의 세계관으로 전환되면서 교회의 창조 신앙도 새롭게 이해되고 있다. 이것은 인간 중심의 창조 신앙이 하나님중심의 창조신앙으로 전환함을 알게 한다. 하나님의 세계창조를 하나님중심으로 생각하면 인간이나 자연은 모두 하나님의 생명의 은총으로 창조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는 다양한 것들과의 조화이다. 하나님은 우주적 유기체를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자연의 질서, 무의 상태에서 온갖 피조물의 창조 그리고 그 모든 실체들 사이의 관계창조라고 말한 것이다. 

생명공동체의 회복은 관계의 회복과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이 생명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명은 하나님의 뜻에 중심으로 맞추어야 한다.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고려되어야 한다. 또 하나는 ‘나의 것이 아닌 생명’은 생명의 윤리라는 주지(主旨)를 분명하게 밝히고 그것에 전제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중심의 노력이 하나님의 뜻을 대치할 가능성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로는 생명을 지탱하기 위해서 그 생명윤리가 그 영역을 확정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마지막 생명윤리는 결단에 까지 이르는 것 즉 행위로 인도되는 것을 전제로 함에 유의해야 한다. 

이 생명이 생존 공동체로서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임을 알게 한다. 교회는 말씀 선포를 통하여 긍정적 성격을 나타내며 생동하는 새로운 모습을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교회의 성격을 규정하시고 성령을 통해 교회를 형성하시며 발전하게 하신 것을 우리는 안다. 이것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며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제는 생명이며 그것을 어떻게 보존 할 것인가 고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를 생명공동체라 한다. 이 생명공동체가 ‘나의 것이 아닌 생명’의 의미를 알게 되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을 회복하고 지탱하게 하는 것이다. 그 삶은 한 사람이 생명을 받아 가지고 생명을 찾는 자에게 생명을 전하거나 주는 역할이라고 한다. 사람이 낮아지지 않고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생명을 가진 사람이면 관계하는 사람과 함께 산다. 더불어 사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나의 것이 아닌 생명’을 아는 자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섬기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예수 안에서 보여 주었다. 예수의 삶 자체가 섬기는 것이었음을 아는 것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청지기의 삶으로 표현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것은 자기가 가진 것, 즉 시간, 돈, 다른 물질적인 것 등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가진 것을 나누며 살아야 할 삶이 예수의 삶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또한 ‘나의 것이 아닌 생명’을 아는 자는 사람들을 위해 죽는 것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대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는 것이다. 이것은 고난의 극치이며 낮아짐과 섬김의 극치인 것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또한 ‘나의 것이 아닌 생명’을 아는 자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부정적이 아니며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생각으로 실천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낮아지고 섬기며 죽고 결국에는 부활로서 승리하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믿음, 사랑, 희망의 의미를 알게 한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사랑의 열매를 맺고 믿음을 완성하는 행위를 보여 행함으로 생명을 얻게 함인 것을 알게 한다. 여기에 생명을 통해 알아야 할 인간의 한계가 있음에 유의한다. 인간은 인간이고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생명의 관리인이요 창조자는 아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주이시오 섭리주이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고 인간이 할 일은 인간이 해야 한다. 인간 생명의 미래는 영원 할 수 있는데 그 길을 택하지 않는 것은 영원히 보존할 수 없게 된다. 생명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 뿐 임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닌 생명’을 가지고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함인 것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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