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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마땅히 행할 길 (잠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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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행할 길 (잠 22:1~6) 

  5월은 흔히 [가정의 달]이라 합니다. 그런데 막 [가정의 달]을 맞은 우리 국민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 터져서 지금 전국이 떠들썩합니다. 중·고등학생도 아닌 초등학교 어린이들 사이에서 상습적인 집단성폭행행위가 자행되어온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TV나 인터넷을 통해 음란물을 접한 아이들이 동영상에서 본대로 모방행위를 하거나 다른 남여아이들에게 동성간의 혹은 이성간의 성행위를 강요해온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교사나 학교당국이 쉬쉬하고 있다가 그 사실이 밝혀지자 수사당국에서 부랴부랴 중학생 몇 명을 구속하기에 이르렀지만 이 사태의 일차적인 원인은 돈에 눈이 어두워진 어른들의 무분별한 향락사업과 이를 방치방관해온 감독기관의 무책임하고 안이한 대처에 있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을 바르게 교육하며 그러기 위해 제도적으로 깨끗한 교육환경을 조성해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결여된 우리 사회 전체의 일반적인 도덕적 해이와 불감증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 어른들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어린이주일을 앞두고 터진 이 사건은 다시 한 번 우리 기성세대로 하여금 자녀교육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단지 성교육이나 음란문화대처방안을 넘어서서 자녀교육 일반에 관해 근본적인 숙고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에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일생 걸어가며 지켜야 할 마땅한 길이 있는데 그 길을 한 평생 바르게 걸어가기 위해서는 어릴 때의 교육이 중요함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그 마땅히 행할 길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잠언 전체가 이에 대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우리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한 6절 말씀과 가장 가까이 있는 1-5절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1절에서는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합니다. 금은보화보다 명예와 은총을 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은총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듣는 것을 뜻합니다. 이 말은 결코 재물의 중요성을 부정하거나 돈 버는 일 자체를 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을 혐오하라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정당하게 취득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불명예스럽게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많은 재물을 모으기보다는 적더라도 명예스러운 재물을 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 있음을 상기시키는 말씀입니다. 무조건 [부자 되세요!] 하거나 그 말을 가장 듣기 좋은 덕담으로 여기는 오늘날 우리의 배금주의적 의식과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2절 말씀은 1절 말씀의 의미를 보충해줄 뿐 아니라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이 말씀은 일단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모두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질적 부의 소유여부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경향이 강한 이 세상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해주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물질적 빈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은 근본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지 부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존중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인도주의적인 차원의 훈시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보다 본질적인 의미는 가난한 자의 삶이든 부한 자의 삶이든 다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하다고 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려서도 안 되며 가난하다고 해서 하나님을 등져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모두 창조주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 앞에서 모든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멸시를 당해서도 안 되지만 부하다는 이유로 무조건 적대시되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곧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됩니다. 

  잠14:31에 보면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없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 또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됩니다. 있는 사람 또한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서로를 하나님 앞에서 대하듯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복은 겸손하여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재앙과 화는 하나님께 순복하지 않는 교만에서 오는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 곧 지혜이고, 그 앞에서의 교만이 곧 어리석음이라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의 요점은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물질적 부입니다. 부유한 사람은 부족한 것이 없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먹고 살기 바빠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하든 가난하든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구절의 요점입니다. 자녀들에게도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돈보다 더 귀한 것이 하나님 사랑하기임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 있고 하나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계시고 그 다음에 돈이 있는 것임을 분명히 깨닫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계심을 보여주는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자녀들 보기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인지 안 계시는 것인지 회의하게 만드는 삶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엡6:4에서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했는데 과연 나의 삶이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곰곰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3-5절은 2절의 요지를 조금 더 풀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잠14:16에서는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했습니다. 자녀들로 하여금 악과 그로 말미암은 재앙을 예방하고 인생길의 가시와 올무를 미리 피할 줄 아는 지혜를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 지혜란 하나님 앞의 겸손이고 그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것이 가장 큰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게 행동하다가는 해를 당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그를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온갖 재물의 복을 주시며 사람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하시고 또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4절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부자 되고 출세하여 영광을 얻으며 무병장수한다는 기계적인 주장이 아닙니다. 재물과 영광과 생명은 누구나 다 바라는 것이고 그래서 얻으려고 수고하며 애쓰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모든 문제의 책임을 져주셔서 근심걱정으로부터 자유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각 사람이 얼마나 부해지고 얼마나 영광을 누리며 얼마나 오래 살지는 전적으로 하나님 손에 달려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께 그저 감사할 것뿐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들은 훗날 자녀들이 그 모든 좋은 것을 누리게 하려고 끝없이 과중한 공부를 시킵니다. 과외니 야간자율학습이니 학원수업이니 하는 데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으며 공부를 시킵니다. 그것이 다 잘못 되었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런 공부의 결과가 확실히 재물과 영광과 생명으로 우리 자녀들에게 주어진다는 보장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하여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치는 것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확실하게 해결해주는 참 교육인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1:7)이라 했듯이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면 모든 지식 쌓는 노력이 헛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지 않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지 않으며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지 않는 모든 사교육은 부모들의 엄청난 투자와 희생이 다 허사임을 곧 드러내줄 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을 바로 뒤따르는 7절에 보면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도 눈여겨 볼 말씀입니다. 이 말은 부자에게 가난한 자를 주관할 권리가 있다거나 채주에게 빚진 자를 종으로 부려먹을 권리가 허용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은 단지 세상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가진 자들이 가난하거나 빚진 자들을 지배하고 착취하기 쉬운 구조로 되어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가난해지지 않고 빚을 지지 않으며 채주의 종이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하고, 그러려면 더욱 더 겸손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와 영광과 생명의 복을 누리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참으로 부요한 삶이 무엇이며 정말로 영광스러움 삶이 어떤 것이고 진정 고귀한 생명을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자녀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그를 경외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참 지혜이고 가장 큰 지식임을 먼저 깨닫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바르게 실천함으로써 자녀들이 마땅히 행할 길을 배울 수 있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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