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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라는(2) (눅 1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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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2) (눅 13:18~21) 

우리는 지난 시간에 겨자씨 비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아주 작지만, 나중에는 크게 자라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안식과 평안을 제공해 주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재미있는 우화가 있습니다. 생쥐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생쥐는 항상 두려워 떨며 살았습니다. 
고양이가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 가도 고양이가 나타나고 저기가도 고양이가 나타나는 것 같고 눈을 감아도 고양이 꿈을 꿉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떨다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난 고양이가 무서워 못살겠어요, 어떻게 나도 좀 고양이로 만들어 주세요" 
하나님께서 이 쥐를 긍휼히 여기셔서 고양이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생쥐는 이제 기뻐하고 당당해야 되겠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떱니다.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또 왜 이렇게 두려워하느냐?"했더니 "개가 무서워서 못살겠습니다. 어딜 가나 개가 멍멍거리고 따라다녀서 못살겠어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너를 개로 만들어주마." 그래 개가 되었지만 이 생쥐는 또 무서워서 
벌벌 떨고 도대체 구멍에서 나오지를 못합니다. 
"너, 개가 됐는데도 왜 이렇게 무서워하느냐?"했더니 이번에는 "호랑이가 무서워서 못살겠어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얘야, 내가 아무리 애써도 네 마음이 생쥐라면 아무 소용도 없겠구나. 
그렇게 벌벌 떨 바에야 다시 생쥐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그래 다시 생쥐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마음에 변화가 없으면 외적 조건이 아무리 달라진다고 해도 또 다른 똑같은 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천국은 마치 한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누룩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요점은 누룩이 가루 서 말 속에 들어가서 가루 전체를 부풀게 하듯이 
우리가 이 시대의 누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변화된 모습이 이웃에게 감화를 주며, 좋은 영향을 주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본문을 보겠습니다. 
어디에 누룩을 갖다 넣었습니까? "가루 서말 속에." 
누룩을 어떻게 했다고 했습니까? "갖다 넣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부 부풀게 한." 

◈ 가루의 양이 서 말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서말은 가루의 양이 많다는 뜻입니까? 적다는 뜻입니까? 많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떡을 충분히 많이 한다고 할 때, 그 양을 가루 서 말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루는 아브라함이 자기 장막 문밖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서 보니까 맞은 편에 세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뛰어가서 그 분들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장막에 들어가서 자기 아내 사라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창18:6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여기서 "세 스아"라는 말은 서말을 뜻합니다.
귀한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충분한 떡이 필요합니다. 먹다가 모자라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인이 최대한 빚을 수 있는 반죽의 양이 가루 서말입니다.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떡이 많다는 표현으로 "한 다라이"나 된다고 했습니다. 
"한 다라이"와 "가루 서말"은 똑같은 용법입니다. 

아무튼 많은 양의 가루 서말 속에 적은 양의 누룩을 집어넣었습니다.
그 결과가 중요합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루가 변했습니까? 누룩이 변했습니다. 
가루가 변했습니다. 
누룩이 가루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누룩이 가루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의 특성입니다. 복음의 능력입니다. 믿음의 감화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천국은 작게 시작했습니다. 온갖 핍박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은 점점 확대되어 나갔습니다. 

◈ 올해는 3․1 운동이 일어난 지 84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3․1 운동이 일어난 때 우리나라의 인구수가 약 2000만 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기독교인들의 수는 30만명이었습니다. 퍼센트로 따지면 불과 1.5%정도였습니다. 
작은 누룩과 같았습니다. 
이와 같은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민족 전체를 움직여 3․1 운동을 성공적으로 주도했습니다. 
지도를 펴놓고 우리 나라에서 3․1 운동이 일어난 곳을 점찍어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교회가 중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3․1운동의 기초가 되는 독립 선언문에 서명을 한 민족지도자 33명 가운데 절반에 이르는 
16명이 기독교의 목사님들이고 장로님들이었습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읽는 가운데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예수님의 정신인 무저항주의에 입각해서 독립선언문을 기초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3․1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적은 누룩이 가루 서말 전체를 부풀게 한 것입니다. 

누룩이 가루 서말 전부를 부풀게 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문자 그대로 성취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천국은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작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룩인 복음이 가루 서말인 이 세상 전체를 거의 부풀게 했습니다. 

기독교가 세계 최대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의 수가 11억이 넘습니다. 
두 번째로 큰 종교는 이슬람입니다. 7억 5천만명입니다. 
물론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기독교에 대한 핍박과 탄압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계속해서 확장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가루 서말 전부를 부풀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누룩이 되어야 합니다. 영원한 그 나라를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이 귀한 사명을 충성스럽게 잘 감당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 가루 서말 속에 누룩을 갖다 넣었다고 했습니다. 
누룩은 반죽된 밀가루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누룩의 영향력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누룩은 가루 속에 집어넣어야 합니다. 
아마도 본문에 등장하는 여자는 가루 서말 속에 누룩을 깊숙이 집어넣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할렐루야 아멘” 하고 외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 세상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부딪치고 만나고 깨지고 부비고 나누어져야 합니다. 어려움과 손해와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높고 높은 보좌에 가만히 앉으셔서 우리를 쳐다보기만 하시면서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낮고 낮은 이 땅에 예수님은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누룩이 되셔서 가루 서말 속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누룩을 갖다 넣은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누룩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누룩의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제는 그 사명을 우리가 감당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가루 서말 속에 들어가서 부풀게 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come(오라)”이고 다른 한 단어는 “go(가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고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 앞으로 다 와야 합니다. 
와서 생수를 마시고 생명의 떡을 먹고 회복되면 "가라(go)"라는 두 번째 명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십니다. 

◈ 밀림의 성자였던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훌륭한 오르간 연주자였습니다. 철학 박사였습니다. 신학 박사였습니다. 의학 박사였습니다. 박사 학위를 세 개나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말씀 가운데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았습니다. 
"이 시대의 부자는 누구인가? 이 시대의 거지 나사로는 누구인가?" 
부자는 바로 자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거지 나사로는 누구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에게 깨달음이 왔습니다.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불쌍한 흑인들이다. 만일 내가 그들을 도와주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예수님의 말씀 속에 나오는 부자처럼 이것은 나 스스로를 죽이는 길이요, 내 가족을 죽이는 길이다." 
그는 즉시 결단했습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프리카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밀림 속에 있는 불쌍한 흑인들을 돌보면서 자기의 여생을 다 바쳤습니다.

예수님이 누룩으로서 가루 서말인 이 세상 속으로 자신을 던지신 것처럼, 슈바이처 박사도 한 줌의 누룩이 되어서 아프리카 밀림 속으로 자신을 던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세상으로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해야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루 서말인 이 세상 속, 내가 처해있는 그 자리에서 누룩처럼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 가루 서말 속에 누룩을 갖다 넣은 결과 가루 전체가 부풀었다고 했습니다. 
누룩은 좋은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누룩이 가루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가루 전체를 부풀게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누룩이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뜻으로 쓰일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인새인들의 외식, 위선 등이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누룩은 좋은 영향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유월절이 되면 한 주간 동안 무교병을 먹습니다. 
누룩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떡입니다. 맛이 없습니다. 돌멩이처럼 딱딱해서 먹기가 힘듭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조상들의 고생을 몸소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유월절 한 주간의 기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금 누룩이 들어간 떡을 먹습니다. 부드럽습니다. 맛도 좋습니다. 한결 먹기가 좋습니다. 

누룩이 가루 서말 속에 들어가 전부 부풀게 해서 맛좋은 떡을 만들 듯이 우리도 있는 처소에서 누룩처럼 살맛 나는 분위기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 누룩은 복음의 생명력입니다. 
누룩이 가루 속에서 나타내는 능력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복음의 생명력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누룩이 만약 가루 속에 넣었지만 그 가루를 부풀게 하지 못한다면 누룩은 이미 누룩일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만약 복음이 누룩처럼 그의 생명력이 없었다면 벌써 이 땅위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복음의 누룩은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듭니다. 아무리 악한 마음이라도 이 누룩이 들어가면 그의 생명력이 그의 인격을 지배하게 됨으로 새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예수 믿고 성격이 변하지 않으면 다 가짜입니다. 옛날 모습이 그래도 있다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반드시 성품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가치관이 변합니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돈을 보는 시각, 성공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달라집니다. 

이제 우리는 복음의 생명력인 누룩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최대한 발효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들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참된 능력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 고백이 사도 바울 속에 있었던 누룩의 발효성입니다. 

◈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과 친구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자네, 그리스도인이 됐다지?"
"그렇다네."
"그럼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이 알겠군. 어디 좀 들어보세.
삼위일체라는 말은 무엇인가? 설명을 좀 해보게."
"글쎄, 잘 모르겠는걸."
"그리스도는 설교를 몇번이나 했지?"
"잘 모르겠는데..."
"그럼, 수많은 사이비 종파들은 어떻게 된 거지?"
"글쎄, 나도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잘 모르겠는걸."
"아니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고선 그리스도에 관해 아는 것이 없잖아!" 

"자네 말이 맞아. 아닌게 아니라 나는 별로 아는 것이 없네. 부끄러워. 하지만 이 사실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지. 3년전, 내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을 때는 난 주정뱅이였고 빚도 많았고 내 가정은 산산조각이 되어가고 있었지. 
저녁마다 처자식들은 내가 집에 오는 것을 무서워했지.
그러나 이젠 술도 끊었고 빚도 갚았고 우리 가정은 참으로 화목해졌지.
저녁마다 아이들은 목이 빠져라 나를 기다리고 있게 되었거든.
이게 모두 그리스도가 나에게 이루어주신 것일세.
또한 나는 지독한 죄인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신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지."

"이 만큼은 나도 그리스도를 알고 있네!" 라는 고백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과 자신의 가정에 일어난 생명의 변화, 축복의 변화, 행복의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인 복음이 겨자씨와 같이 그 안에 생명력이 있으려면 그 씨앗이 좋은 땅에 심겨져야 합니다. 
좋은 땅이란 말씀을 듣고 깨닫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면 그 말씀의 씨앗이 겨자씨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밀가루가 누룩으로 말미암아 부풀려면 그 누룩을 내 마음에 맞이해야 합니다. 
누룩이 번지도록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 누룩이 구석구석에 미치도록 육신에 속한 나는 죽어야 합니다. 내 마음이 누룩으로 부풀어오르도록 성령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겨자씨와 누룩의 역사를 통하여 나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화시키고 
나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도록 힘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어지고 이 세상을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에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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