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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좁은 문 (눅 13: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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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눅 13:22~30) 

신앙 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 성숙해져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좀 더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것, 성숙"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성숙은 이것과 반대입니다. 

헨리 나우웬이라는 분은 "하나님께 더 의존하게 되고 종속되어져 가는 것" 이라고 합니다. 
성숙을 위해서 우리는

1. 고독을 체험해야 합니다. 

영적인 성숙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고독입니다. 그러나 이 고독은 혼자 있는 외로움이 아니라 하나님과만 함께 있는 시간입니다. 
고독을 시간을 많이 가질수록 우리가 인간의 소리를 적게 듣게 되고 그럴수록 하나님의 소리에 더욱 더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고독은 외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2. 죽음을 묵상해야 합니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억울한 것은 내가 없어져도 세상은 변함없이 잘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태양도 여전히 떠오를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갈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묵상은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자기만 중요하다는 생각을 반성하게 합니다.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해도 우리가 얼마나 유한하고 가치가 없는 존재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미있는 존재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도록 회복시켜줍니다. 

3. 유순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유순한 기도란 하나님의 손에 완전히 포기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나를 위대한 토기장이이신 하나님의 손길에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약하고 무르고 공격받기 쉬운 위치에 서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손이 우리의 손을 잡고 우리를 친히 인도하실 것입니다. 

▶ 성숙의 길, 믿음의 길은 분명 좁은 길입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을 생각하며 그것을 행해야 합니다. 
앞장 서 나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 바랍니다. 

◈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정말 멋있고 감동적입니다. 
바쁜 중에도 한 영혼 한 영혼을 지극히 귀하게 여기는 모습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누가는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고 계신 주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향해, 십자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중이십니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진한 외로움과 아픔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마을이 나올 때마다 그 마을에 들어가셔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기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시며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23절) 
얼마나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구원 얻을 사람이 이렇게 적을 수가 있습니까?' 
긍정적인 해석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고 전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여긴 제자가 이렇게 물은 것입니다. 
부정적인 해석
예수님이 제자들이 처음 예수님을 따를 때 청운의 꿈을 품었습니다. 행복을 생각했습니다. 성공의 희망을 가지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교훈을 잘 들어보니까 그게 아닙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 재물을 다 포기하고 따라야 한다. 
이런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아 이게 아무래도 어렵겠는데' 생각해서 물어본 겁니다.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이 말은 '세상에 구원받을 수 있는 자가 몇 명이나 될까요?' 
예수님께서 뭐 10%다 20%다 그렇게 퍼센트를 말씀하지 않고 딱 한마디 대답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시는 대화를 보면, 주님의 말씀이 엉뚱할 때가 많이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제자는 구원받는 사람이 너무 적은 것 같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화의 주제를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제자들의 문제로 돌리십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희들이 구원을 받느냐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남의 문제를 가지고 대화의 주제로 삼는 법이 별로 없으십니다.
성전에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을 죽인 문제를 가지고 와서 사람들이 이야기 주제로 삼으려 했을 때,󰡒너희도 회개치 아니하면 이처럼 망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눈 앞에 있는 사람들이 문제였습니다. 
만약 사랑하는 두 연인이 만나서 자기들의 대화는 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을 
한다면 짜증이 날 것입니다. 

▶ 예수님은 질문한 사람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은 우선 공간적인 의미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좁은 문은 짐을 지고는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베들레헴에는 예수 탄생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문은 아주 작은 좁은 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이 교회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짐을 밖에 맡겨두고 
한 사람씩 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문지방이 낮아 겸손히 고개를 숙이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교만의 짐, 자존심, 탐욕의 짐, 죄의 짐을 다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시간적인 의미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 갈 수 있는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열려 있지만 조금 있으면 닫힙니다. 문이 닫힌 후에 아무리 두드려도 들어 갈 수 
없습니다. 봉사도 할 수 있을 때가 있습니다. 헌신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것도 기회가 있습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회입니다. 그러나 무한정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택적인 의미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좁은 문은 모두가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들어가기를 힘쓰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좁은 문-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천국에 관한 여러 가지의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① 24- 천국에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다는 것
② 25- 천국 문은 한번 닫히고 나면 다시 기회가 없다는 것
③ 26-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주 앞에서 먹고 마셨다는 것은 성찬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성경공부도 했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더 심각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④ 28-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의 슬픔과 고통이 몹시 크다는 것
⑤ 29- 전 세계도처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잔치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
⑥ 30- 이곳에서는 꼴지 되었던 자가. 천국에서는 첫째가 되기도 하고. 지금은 첫째 된 자가 그곳에서는 꼴지 될 자도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요점은 천국에 들어가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 좁은 문은 고통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다 보면 좁은 길에서는 조심하고 정신을 바싹 차리는 데에 비해서 넒은 길에서는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운전을 합니다. 
그런데 사고는 좁은 길보다 넓은 길에서 더 자주 일어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좁은 길이 힘들어도 안전한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의 문은, 좁은 문은 처음에 들어가기가 어렵지만, 일단 결심하고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좁은 문에 들어가서 익숙하게 될 때까지가 힘들지, 일단 몸에 배게 
되면 그 때부터는 좁은 문이 자유롭고 편하고 안전합니다. 

오늘 날 들어가고 싶어도 열등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문들이 많습니다. 
진학의 문이 좁다고 합니다. 대학교, 여기는 고등학교도 좁습니다. 
취직의 문이 좁다고 합니다. 지금은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결혼의 문이 좁다고 합니다. 
그러나 역시 좁은 문의 원조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좁은 문'은 구원과 영생에 이르는 문입니다. 
이 구원과 생명에 이르는 좁은 문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열린 문이 아닙니다. 
또 잘 난 사람이나 능력 있는 사람이 들어가는 문도 아닙니다. 
세상 만민들에게 열린 문입니다. 그러나 힘쓰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 좁은 문은 끊임없는 신앙 훈련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힘쓰라는 말은 투쟁하라는 말입니다. (아고니조마이)
투기장이나 경기장에서 이기기 위해서 전력투구를 하는 모습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요 성서학인 매튜헨리는 힘쓰라는 말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 상을 바라고 뛰는 자들처럼 힘쓰라. 끝까지 자신을 채찍질하고 노력해야 한다.' 

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신앙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군인다운 군인은 훈련소에서의 훈련기간을 잘 채웠느냐에 달려 있지 않고, 얼마나 훈련을 
잘 받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훈련소에서 총을 쏘는 연습을 할 때에 총을 쏘는 훈련을 받고, 총기를 닦는 훈련을 할 때에 훈련을 받고, 행군을 할 때에 행군하는 훈련을 잘 받아야 군인다운 군인이 될 수가 있고, 
실전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훈련기간 동안 이러한 연습을 할 때에 요령부리고 눈치나 보고 게으름피우다가 훈련기간을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면 쓸모 없는 군인이 됩니다. 이런 군인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훈련소입니다. 
교회에서 영적인 훈련을 받을 때에 마치 군인이 훈련기간을 채우는 식으로, 일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는 것으로만 만족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나중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탄과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하고 맙니다. 
먼저 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중 되고 맙니다. 
성도 여러분
명륜 교회라는 좋은 교회의 성도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이 믿음의 훈련소에서 신앙의 훈련을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말씀 훈련을 받을 때에 말씀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섬김 훈련을 받을 때에 섬김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기도 훈련을 받을 때에 기도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헌금 훈련을 받을 때에 헌금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훈련이 때로는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잘 받아야 합니다. 

훈련을 받을 때에는 두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지도자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지도하시는 목사님과 따르는 성도들의 마음이 서로 맞아야 합니다. 마음이 맞지 않으면 서로가 힘들고 피곤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열정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고, 뜨겁게 찬양하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은혜가 있고 건강하고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훈련받은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잘 써먹어야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수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아는 것 자체로는 힘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힘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힘이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많이 알지 못해도, 들은 말씀을 기도하며 하나 
하나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가 아니라 내 몸으로 알아가는 사람입니다. 

② 좁은 문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길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저버릴 수도 있습니다. 
선을 선택할 수도 있고 악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을 선택할 수도 있고 불신앙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순종을 선택할 수도 있고 불순종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다 자유입니다. 그러나 이 자유가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멸망의 기회가 됩니다. 
좁은 문은 항상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길입니다. 

◈ 1994년 말 34살의 한 젊은 남자가 차를 몰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차가 휴지처럼 다 구겨졌습니다. 그런데도 운전을 한 사람은 찰과상만 입고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살아났다는 기쁨보다는 하나님이 두렵다는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회개를 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어려서부터 하고 싶어했던 화장품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하나님의 뜻을 선택했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이 회사의 이름은 소망 화장품입니다. 
잘 모르시죠...? “꽃을 든 남자”로 한 참 뜨고 있는 화장품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최근에 남자 축구선수 안정환을 광고모델로 기용하면서 대단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2001년 소망 화장품은 6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습니다. 
강석창 사장은 매일 오전 전직원과 함께 기도회를 열고 월요일마다 예배를 드립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투명하게 회사를 경영하고 정직하게 돈을 벌고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선한 일을 마음껏 하고자 합니다. 
1995년부터 매월 매출액의 1%를 구제비와 시각장애인 수술비로 내놓고 있고 
1999년부터는 매월 매출액의 1%를 북한 어린이 돕기를 위해 적립해 오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사회사업을 위해 매출액의 5%까지 내놓을 계획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선택이 바른 선택입니다. 형통과 성공의 길입니다.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서 기도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이 좁은 길입니다. 

◈ 어느 날 세계적인 설교자 스펄전 목사가 화단을 가꾸고 있었다. 그런데 옆집의 강아지 
한 마리가 울타리를 넘어 들어와 화단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꽃을 무척 좋아했던 스펄전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강아지를 향해 고함을 치며 강아지에게 
나무 토막을 집어던졌다. 
얼마 후 그 강아지가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나무 토막을 물고 와 스펄전의 발 앞에 내려놓는 것이었다. 스펄전은 자신을 좋아하고 다가온 강아지를 향해 더 이상 고함을 지를 수가 없었다. 그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강아지야, 화단에 들어오고 싶으면 언제라도 들어오렴. 내가 네게 졌다.󰡓
하나님 앞에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염치없는 강아지처럼 하나님께 계속 매달리는 사람이 결국 큰 사랑을 얻는다. 
신앙 생활에는 눈치나 분석보다 순종과 간구가 더 필요하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적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넓은 길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좁은 문이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용기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셨습니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어린이는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울고 불고 합니다. 매달립니다. 
엄마 떨어지면 마치 죽는 것으로 생각하고 엄마만 떨어지면 못살겠다고 우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없으면 못살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날마다 주님 앞에 간구하고 붙잡고 늘어지는 것입니다. 
좁은 문은 하나님 없이는 못살겠다고 고백하는 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못살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문입니다. 

3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눅 13: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어떤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와서 헤롯이 죽이고자 하니 이 지역을 떠나 피하도록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목숨이 위태롭다고 해서 그 곳에서 도피하시거나 사람을 살리는 일, 복음 사역을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갈 길을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묵묵히 가셨습니다. 좁은 길은 예수님이 가신 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는 여전히 좁은 문과 넓은 문이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여전히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 쉬운 길이 아닐 것입니다. 

◈ 산을 오르다보면 처음에는 길이 넓게 느껴집니다. 정상에 가뿐히 오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양팔을 신나게 흔들며 쉽게 올라갑니다.
그러나 정상에 가까이 올라갈수록 길은 점점 좁아지고, 다리는 무거워지며 극복하기 힘든 
장애물도 만나게 됩니다. 포기하고 싶은 맘이 굴뚝까지 차게 됩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산을 올라가는가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고생과 수고를 극복하고 정상에서 맛보는 풍경은 그간의 고통과 수고를 모두 
씻어줍니다. 그것은 정상에 오른 자 만에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정상에 오르기 전에는 절대로 그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더 넓게, 더 멀리 바라보면서 정상에 오르기 전의 조급한 생각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들이었는가를 알게 됩니다. 

좁은 길의 끝에는 구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잔치자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며 끊임없는 믿음의 훈련을 통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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