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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건강한 가정의 건축가들 (골 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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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정의 건축가들 (골 3:18~21)

얼마 전에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 된 밀레의 '만종' 그림 한 점이 1조원이 넘는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어떻게 1조원을 넘을 수 있겠습니까? 1천억 한다는 말은 들어본 일이 있지만 값어치가 비싸도 너무 비쌉니다. 그런데 해설을 그렇게 달았습니다. ‘이것은 값어치가 1조가 넘는다는 것이지 실제로 팔면 얼마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밀레의 그림 ‘만종’이 왜 이렇게 귀합니까?

밀레의 그림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영적인 거룩한 아름다움이 그림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하루 종일 일을 합니다. 피곤하고 지칩니다. 집에 돌아가지 않고 늦도록 일을 하다가 교회로부터 종소리가 들립니다. 그때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남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심지어 들에 있는 농부의 신발이 실내화입니다. 실내화, 실외화가 따로 없는 이런 신발을 신고 가진 것은 없습니다. 바구니에는 감자 몇 개 밖에 없습니다. 얼굴은 씻지도 못했고, 머리는 다듬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감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불평과 불만, 괴로움, 고민, 욕심이 전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부부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깊은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밀레는 이 그림을 그리는데 종이와 물감 다 합하여 75달러밖에 안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그림의 값은 계산할 수가 없는 역사적인 유물이 되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이처럼 값지고 귀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산업화 사회에서 우리가 편리함 속에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너무 비싼 값을 치루는데 그 중의 하나가 가정의 붕괴입니다. 행복해야 할 가정들이 많은 위기 속에서 불행의 아픔을 겪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해 나라가 상당히 불안한 현실을 맞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가 돌출 되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가정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클린턴 가드너'라고 하는 사회학자는 정말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가정이 있으면 아직 다 잃은 것이 아니지만 모든 것을 다 가져도 가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기반이 무너지고, 삶의 의미도 무너지고, 삶의 의욕도 무너집니다. 

지금은 작고했습니다만 테레사 수녀가 노벨 평화상을 받는 날 한 기자가 물었답니다. "세계 평화를 위하여 가장 긴급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테레사 수녀가 웃으면서 답했답니다. "기자 선생께서 빨리 집에 돌아가셔서 가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의 가정이 건강하기 위해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아내에 대하여, 또 남편의 역할에 대해, 그리고 부부에 대해 또 부모에 대해 더 나아가 자녀가 가정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행복한 가정은 부부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자! 본문은 먼저 아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18절을 보시면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 이 말씀은 남존여비 사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다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동등한 인격과 권리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세상엔 남자보다 뛰어 난 여자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남자보다 훌륭한 지성과 덕을 갖춘 여자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정의 질서를 위하여 남자를 세우셨습니다. 주안에서 마땅한 질서의 원칙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엡5:22 이하에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 시니라" 벧전3:1 이하에 보면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 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함이라"이처럼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이고도 영구적인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결혼 이후 우리의 아내의 역할은 "남편 기세우기"입니다. 이것을 아내의 전공과목이어야 합니다. 몇 년 전에 미국 사회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도 앞을 다투어 이 책을 소개했습니다. 바로 '아내여 항복하라'라는 책입니다. 무척이나 자극적인 제목이어서 그 제목부터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책은 열렬한 페미티스트였던 로라 도일이라는 분이 썼는데, 이 분은 자신의 가정 생활의 체험과 자신이 운영한 '항복한 아내들'이라는 인터넷 싸이트에 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아내들이 해야 할 일들을 나름대로 제시했습니다.

사실 로라 도일은 결혼 초에 남편을 자기 뜻대로 바꿔보려고 애를 썼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남편이 자기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남편도 자기에게 요구하는 것이 더 많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로라 도일은 재미있는 표현을 썼는데 남편도 아내도 자꾸 몸에 '가시'가 돋더라는 것입니다. 서로 그 가시로 찌르고 그 가시는 더 커져만 가고... 이것이 악순환이 되는데 그 가정 속에서는 계속 가시에 찔린 비명소리만 들리더랍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답니다. 먼저 자기 몸에 있는 가시부터 없애려 했답니다. 그랬더니 남편도 가시가 줄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들에게 항복하는 것이 이기는 길이라고 외치게 된 것입니다. 잠12:4에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라 했습니다. 현숙한 아내, 어진 아내는 그 남편과 함께 존영을 얻고 면류관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그리고 이어서 남편들에게 이야기합니다. 19절에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여기 아내를 사랑하라는 이 사랑은 아카페의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내 기준에 따라 내 요구에 따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랑은 자신을 부정하고 보상을 원하지 않는 철저한 희생적 사랑입니다. 남편의 참된 권위는 아내를 사랑함에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과 표준 새 번역성경에서는 ‘아내에게 모질게 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아내를 까닭 없이 괴롭게 하지 마시오, 하나님께서는 아내들의 눈물 방울을 세고 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괴롭게 하는 사람은 거기에 대한 값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잘 못하면 결국 손해보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남자의 집은 아내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여자를 학대하고 귀한 줄 모르고 괴롭게 하는 사람은 마치 자기 집을 뜯어먹는 소와 같이 자기 집을 깨뜨리고 있는 남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벧전3:7절에 보면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고 하십니다. 여기 "귀히 여기라"는 뜻은 "값을 알아 주라"는 뜻입니다. "아내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스코트 월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이혼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몇 번 이혼을 했을 것 같습니까? 무려 스물 여섯 번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한번도 결혼 못한 노총각들이 들으면 속된 말로 환장할 얘기입니다. 한번은 이 스코트 월프의 친구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의 인생에 후회스러운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스코트 월프의 대답이 참 인상적입니다. "내가 처음부터 다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나는 한 아내와 더불어 살고 싶네. 내 인생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가정이 없었네." 스코트 월프가 자녀를 얼마나 두었는지는 모르지만, 얼마나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가정생활이 제대로 되었겠습니까? 엉망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살고 있는 아내에게 감사하십시오! 바꿔봐야 별 수 없지 않습니다.


두번째로 건강한 가정의 건축은 부모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이 부모의 역할은 뭐, 몇 달을 두고도 다 못할 정도로 할 말이 많습니다. 21절에 보십시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여기서 '격노한다'는 말은 '배가 항해를 하는데 바람을 없앤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입니다. 바람이 없으면 배는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녀를 노엽게 하고 격노케 하는 것은 더 이상 배가 항해할 수 있는 힘을 없애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기를 꺾어버리고 용기를 꺾어버리는 것입니다.

한국 부모들의 자녀 교육열은 아마 세계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난해 미국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 수가 10만 명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 이민 세관국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자국 내 외국인 유학생 중 한국 출신이 9만3728명으로 1위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다음으로 인도, 중국, 일본, 대만, 캐나다, 멕시코 등의 순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대단한 교육 열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 열풍이 가져 온 폐해도 심각해서 이미 사회문제화 된지 오래입니다. 지난해에는 수년간 딸의 해외 유학생활을 뒷바라지하던 기러기 아빠가 아내와 딸에게 느낀 배신감과 박탈감을 이유로 딸을 상습 성폭행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역할이 점점 감소되고 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어머니들이 가족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어머니의 역할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작가 헤밍웨이가 엽총 자살한 이유는 어머니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합니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등 불후의 명작들을 탄생시킨 20세기의 대표적 작가 헤밍웨이는 네 번 결혼하는 등 불행한 결혼생활을 거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그의 어머니 그레이스였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집안 일을 싫어하여 아이들을 직접 돌보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편집증적으로 욕심이 지나쳐 매일같이 아이들을 엄격하게 닦달했다고도 합니다. 헤밍웨이는 그러한 어머니를 극도로 증오했으며 어머니에게 반항하여 가출을 시도하였다고 하며, 그의 아버지도 그의 어머니의 이러한 성격을 견디지 못하여 권총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헤밍웨이는 성격이 강한 여자를 제일 싫어했고, 부인이 조금이라도 간섭하면 이혼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너무 강한 어머니의 성격이 아들에게는 콤플렉스가 되어 매사에 균형감각을 잃고 반항 일변도로 빠지는 성품을 빚어냈고, 결국엔 자살이라는 비극까지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 줄 가장 위대한 유산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세상 교육에 투자하는 것의 10분의 1이라도 마음과 정성을 들여서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복 주신다고 했습니까?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지식도 필요합니다. 학벌도 필요합니다. 건강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 되고, 소망이 되고, 힘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고, 노인보다 지혜롭게 하며, 모든 스승보다 지혜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함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고, 소망을 얻고, 힘있는 자녀로, 힘있는 인생으로 살게 해야 합니다. 유대인은 비록 작은 민족이었지만,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두뇌가 가장 뛰어난 민족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전 세계에 흩어진 사람 다 합쳐봐야 불과 1,500만 명밖에 안됩니다. 그들이 70-80%의 미국의 경제권을 가지고 있고 세계 노벨상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며 상급이 아닙니까? 우리 부모 모두 어떻게 길러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나라와 민족 앞에 쓰임 받는 존재가 되게 할 것인가 하는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건강한 가정의 건축은 자녀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20절에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이 세상에서 자기 배우자 없이 사는 사람은 있어도, 또 자녀 없이 사는 사람은 있어도 부모가 없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비록 부모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남겨주시지 못했다 할지라도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다는 한 가지 사실만 생각하더라도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노년기를 지내면서 새삼스럽게 깨달은 내용을 그의 글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노년은 상실의 삶이다. 건강, 돈, 일, 친구 그리고 꿈을 잃어버리는 삶이다.' 노년은 그동안 소중하게 생각해 온 것들을 하나씩 잃어버리는 시기입니다. 어찌 보면 자기 삶을 지탱해 준 것들 하나씩 잃어버리기 때문에 인생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시기입니다.

몇 해 전에 어떤 보험회사에서 생명보험을 판촉하기 위해서 이러한 광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스물 아홉… 열네 시간을 기다려서야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서른 일곱…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액자를 만들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방에는 누렇게 바랜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마흔 셋… 일요일 아침, 모처럼 자식과 뒷산 약수터로 올라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흔 여덟… 자식이 대학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쉰 셋…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내의를 사 왔습니다. 당신은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그 내의를 입어 보고 또 입어봤습니다.

예순 하나…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나이 들고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하지만, 이제는 희끗희끗한 머리로 남으신 당신…./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곧 이어지는 어머니에 대한 광고는 또 이러했습니다.

스물 하나… 당신은 고개를 두 개 넘어 얼굴도 본 적이 없는 김씨 댁의 큰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스물 여섯… 시집온 지 오 년 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야 시댁 어른들한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서른 둘… 자식이 밤늦게 급체를 앓았습니다. 당신은 자식을 업고 읍내 병원까지 밤길 이십 리를 달렸습니다.

마흔…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자식의 외투를 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당신의 체온으로 데워진 외투를 입혀 주었습니다.

쉰둘… 자식이 결혼할 여자라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당신은, 분칠한 얼굴이 싫었지만 자식이 좋다니까 당신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예순… 환갑이라고 자식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의 보약을 지었습니다.

예순다섯 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하지만,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눈시울을 적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제5계명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공경하라'는 히브리어 'k bad'는 '무겁다'는 뜻입니다. 즉, '공경한다'는 것은 '무게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신 부모님께는 우리가 도저히 흉내내거나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무게, 경륜의 무게, 인식의 무게가 있는 법입니다. 바로 그 무게를 인정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 무게를 인정하면 귀히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무게'란 '긍지'와 동의어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님 인생의 무게를 존중한다는 것은 자식으로써 부모님에 대한 긍지를 품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요, 만약 이 긍지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부모님의 무게를 인정하기는커녕 깃털보다 더 가벼이 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효도란 함께 모시고 사느냐 아니냐, 용돈을 얼마나 드리느냐, 얼마나 호강을 시켜 드리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참된 효도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에 대한 긍지 여부에 따라 판가름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1852년 4월 10일 미국의 한 소박한 시민이 알제리에서 사망했습니다. 31년이 지난 후 미국 정부는 그의 유해를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뉴욕 항에 유해를 실은 군함이 도착할 때 사람들은 그의 유해를 보기 위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환영예포는 뉴욕시가 진동하도록 울려 퍼졌습니다. 그 주인공은 전공을 세운 위대한 장군도 아니요, 노벨상을 받은 인물도 아닙니다. 세계적인 정치가나 예술가나 발명가도 아닙니다. 그는 단지 온 세상 사람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지은 사람일뿐입니다.

그는 ‘Home, Sweet Home’이라는 유명한 노래를 지은 '존 하워드 패인'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 우는 내 집뿐이리” 우리가 진정 쉴 곳은 오직 가정뿐입니다. 우리나라는 퇴근이 너무 늦어요. (명랑 운동회)

일찍 퇴근하여 가정에서 쉼을 얻도록 합시다. 우리 가정들은 너무나 대화가 없어요. 대화가 꽃피는 곳이 가정이 되게 합시다. 가정을 세운 사람이 칭찬을 듣습니다. 가정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 받습니다. 좋은 가정을 건축해서 모든 가정이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루는 가정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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