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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어인가 목적어인가? (삼상 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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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인가 목적어인가? (삼상 4:5~11)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자기 자신이 주어인 사람'과 '자기 자신이 목적어인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자기 자신이 주어인 사람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입니다.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해 존재하기에 사고의 잣대는 언제나 '자기'이며 늘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이 목적어인 사람은 자기보다는 타인을 먼저 배려합니다. 희생과 봉사에 보람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내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서 찾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주어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주어'였고 내가 나를 컨트롤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주어였던 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갈2:20; 5:24). 그리고 그 주어의 자리에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를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이요, 믿음입니다.

♬'내가 주인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되신 주 앞에 나와 /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정말로 주어의 자리에서 내려와 있습니까? 예수님을 주어의 자리에 모셔놓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고 있습니까? 혹시 그분이 목적어가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란 존재가 나의 꿈, 목표, 욕심을 만족시켜주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내 야망과 축복을 위한 도구정도로 취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여 전쟁의 패인을 분석했습니다. 저들은 전쟁에 패한 원인을 하나님에게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실로 성막에 있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오자는 처방을 내렸습니다(삼상4:3). 언약궤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이르렀을 당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실 때에 돌판에 십계명을 친히 쓰셔서 주신 것을 말합니다(출31;18). 후에 이 돌비를 모세가 금송아지사건으로 깨뜨렸지만 하나님은 또 친히 쓰셔서 주셨습니다(출343:1).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돌비를 담을 상자를 만들어서 성막의 지성소에 안치하도록 하셨습니다(출40:2,21). 돌비에 십계명 즉,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말씀이 새겨져 있기에 이 상자를 언약궤, 증거궤, 법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궤가 놓이는 장소를 엄격히 구분하셨습니다(출40:2-3, 21). 그리고 언약궤에 대해 엄히 명령하셨습니다(레16:1-2).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불이 아닌 다른 불로 제사를 드리다가 언약궤 앞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레10:1-3).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궤 앞에 일 년에 한 차례씩, 7월 10일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와야 하며, 이것은 너희들이 영원히 지킬 규례라고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레16:34). 모세가 이 말씀대로 다 행했을 때 하나님은 그곳에서 모세를 만나주셨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가득했습니다(레1:1). 그러므로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시는 현장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장소이며 하나님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로부터 이 말씀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법궤를 지성소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쟁터로 끌고 갔습니다. 그 결과는 이스라엘의 처참한 패배로 나타났습니다(삼상4:10). 1차전에서는 4,000명이 전사했는데 언약궤를 전쟁터에 가지고간 2차전에서는 홉니와 비느하스 등 무려 30,000명이 전사하고 하나님의 궤까지 빼앗겨버렸습니다. 이 비극의 원인은 언약궤가 무용지물이거나 그 효능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는 블레셋 사람들의 신인 '다곤'을 심판했고(삼상5:1-4), 언약궤를 옮겨간 아스돗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렸습니다(삼상5:6, 9). 그런데 후일 다윗은 언약궤를 옮김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왕이 되고 난 뒤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30,000명을 선별하여 법궤를 전쟁터가 아니라 다윗성으로 모셔왔습니다(삼하6:1). 법궤를 모셔올 때에 다윗과 온 족속은 그 앞에서 각종 악기로 연주하고(삼하6:5) 다윗 자신은 여호와 앞에서 있는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습니다(삼하6:13-14). 이렇게 언약궤를 옮긴 다윗은 크게 축복을 받았습니다. 똑같은 법궤를 옮겼는데 본문의 이스라엘은 벌을 받고, 다윗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언약궤를 대하는 자세에 따른 차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는 자기 자신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언약궤를 이용하고 하나님을 저들의 목적어로 삼아버렸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언약궤를 옮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어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목적어로 대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어인지 목적어인지는 예배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배에는 시간, 찬송, 기도, 말씀, 예물의 다섯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면서 보면 여러 형태의 예배자들을 보게 됩니다. 찬양을 할 때도 전심으로 찬양하고, 말씀을 들을 때에도 사모하는 눈빛이 역력하고, 기도할 때도 온 맘으로 기도하고, 예물을 드릴 때도 정성이 담겨져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주어입니다. 그러나 찬양에도, 눈빛에도 아무런 힘이 없이 그저 자리만 지키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분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을 높여 드리며 존중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존중히 여겨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 하나님은 주어입니까 아니면 목적어입니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며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인생의 주어로 삼아 그분이 우리와 동행해주시는 복을 마음껏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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