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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실패보다 더 큰 실패 (삼상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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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보다 더 큰 실패 (삼상 4:1~4)

지난 주, 어떤 집사님이 왼쪽 손을 붕대로 칭칭 감고 있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갑자기 멈추자 본넷을 열고 살펴보다가 혹시 냉각수가 모자란 것은 아닐까하고선 냉각수뚜껑을 여는 순간 뜨거운 공기가 쏟아져 나와 손을 댔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장이 났을 때 원인을 바로 진단하면 수리는 간단하지만 바로 진단하지 못하면 이같이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습니다.

병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이 걸렸을 때 그 원인을 정확이 진단하지 못하면 상황은 더 악화될 뿐입니다. 인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의 길을 걸어가며 가능하면 넘어지지 않고 싶지만,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예외 없이 넘어지고 자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인 우리가 실패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패의 원인을 하나님 앞에서 바로 규명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도리어 양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말합니다(시119:71). 그러나 실패의 원인을 바로 해석하지 못하면 그 인생은 소망이 없고 더 큰 실패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문제 앞에 직면해있습니까? 어떤 쓴잔을 마시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습니까? 삼상 4장, 이 본문은 가나안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국을 세우기까지의 과도기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블레셋은 본래 지중해에 위치한 싸이프로스섬을 기반으로 해적생활을 하던 자들로 가나안 땅에 들어와 세력을 확장하면서 이스라엘과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는 족속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중 한 전투입니다.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삼상4:1)" 이스라엘이 왜 블레셋에 먼저 전쟁을 걸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블레셋은 흑암의 세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에 이스라엘이 먼저 전쟁을 일으킨 것 자체는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하고 4,000여명의 전사자가 생겼습니다(삼상4:2). 그러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한 자리에 모여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며, 처방을 내렸습니다(삼상4:3). 먼저, 그들은 패인의 원인에 대해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게 하셨는고?" 이 전쟁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패배의 책임을 하나님께로 돌려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책임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나 특히 하나님께로 돌려버리는 이러한 태도는 아담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창3:12).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의식이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자식이 대학에 실패하고 사업이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시키며, 신앙으로부터 떠납니다. 이것이 바른 진단입니까? 아무 일에나 하나님의 이름을 거명하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은 망령되이 부를 수 없는 거룩한 이름입니다(출20:7).

이스라엘 장로들은 이 전쟁에 대한 원인 규명을 잘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처방 또한 올바를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가자는 처방을 내렸습니다(3절下). 그리고 블레셋과 다시 맞붙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려 30,000명이 전사를 하게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궤까지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까지 죽임을 당하는 참극이 빚어졌습니다(삼상4:10-11). 이것은 패전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처방의 잘못 때문입니다. 장로들은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오진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실패보다 더 큰 실패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구나 실패를 겪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니라 그 실패의 원인과 처방을 어떻게 내놓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따라 그 인생의 명암, 승패가 결정됩니다. 실패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조용히 나아가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원인과 처방을 알려주실 것입니다. 7장에서는 여리고성을 점령한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아이성에 도착합니다. 아이성은 여리고성과 비교할 수 없는 작은 성이었지만 그들은 그 아이성 전투에서 패하고 맙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합니다(수7:6-7). 그때에 하나님께서 패전의 원인을 보여주시고(수7:10-12) 그 해결방법까지 제시해 주셨습니다(수7:13-15).

하나님 앞에서 패전의 원인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신 방법대로 나아갔더니, 너무나 쉽게 아이성을 점령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브온 거민들이 마치 멀리서 온 것처럼 위장하고 나타났을 때, 아이성 승리의 기쁨에 도취된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물어보지 않고 자신의 판단만으로 저들과 덜컥 화친을 해버렸습니다(수9:14-15). 이 사건은 두고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올무가 되었습니다.

다윗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상23장에서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기고 있는 와중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에 쳐들어와 주민들을 괴롭히자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치고 그일라 백성들을 구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를 따르는 동지들이 반대하자(삼상23:3) 다윗은 다시 한 번 여호와께 묻고는(삼상23:4). 자기의 군사들의 말보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그 결과는 두말할 필요 없는 승리였습니다. 이후 승승장구하던 다윗에게 밧세바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때 다윗이 '여호와께 물었다'라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는 자기 판단으로 행동했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참패로 나타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실패 속에 축복의 씨앗을 숨겨 놓으셨습니다. 이 '축복'이라는 이름의 씨앗을 어떻게 싹틔우시겠습니까? 실패의 원인을 하나님께 전가시키면서 스스로 판단하며, 처방을 내린다면 그 결과는 더 큰 실패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실패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갈 때 그 실패는 놀랍고 풍성한 축복을 안겨주는 축복의 씨앗이 될 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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