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우리들의 일그러진 가치관 (딤후 3:1~5)

  • 잡초 잡초
  • 207
  • 0

첨부 1


우리들의 일그러진 가치관 (딤후 3:1~5)
 
어떤 남자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신 교회 목사님의 눈은 무슨 색입니까?"
이 남자분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기도할 때는 목사님이 눈을 감으시고,
설교할 때는 제가 눈을 감아서 한번도 목사님의 눈을 본적이 없는데요."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을 집중하십시오.  생각이 산만한 사람, 생각이 복잡한 사람, 생각이 방황하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단순한 사람일수록 행복하고, 그 얼굴에 은혜의 살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은 모든 얽매이기 쉬운 것은 다 벗어버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을 복잡하게 하지 마십시오.
 
오늘 이 시간 주의 말씀을 들을 때에도 산만하고 복잡한 생각으로 들으시면 안됩니다.  구질구질하고 잡다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다 떨쳐버리고 오직 예수님만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마음이 여러 갈래로 흩어지면 죄가 됩니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만 생각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에게로 집중해서 하나로 모으면 기적을 낳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야 물이 나옵니다.  사실 열 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 치고 변변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직장을 다녀도, 교회를 다녀도, 교회의 직분자가 되어도 그 일에 생각을 걸어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은 무서운 속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보다도 빠른 것이 생각입니다.  그래서 생각은 빛보다도 빠르게 사람들을 전염시킵니다.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 적극적인 생각을 가진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생각이 공동체 전체에 확산을 시킵니다.  그러나 나쁜 생각, 부정적인 생각, 소극적인 생각을 가진 한 사람으로 인하여 공동체 전체가 나쁜 생각으로 물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좋은 생각의 전염자가 되셔야 합니다.  아름다운 생각의 전염자가 되셔야 합니다.  바른 가치관의 전염자가 되셔야 합니다.

몇 년 전에 SBS에서 매주 토요일에 방송했던 '고향에서 온 편지'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시골의 노부부가 단어 맞추기 연상 게임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주어진 단어에 대해 설명을 하면 할머니가 그 단어를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할아버지가 설명을 합니다.
"임자,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고 그래?"
할머니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을 했습니다.
"웬수!"
당황한 할아버지가 급히 말을 막으며 재차 설명을 합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네 글자로 된 말인데 잘 생각해 봐"
그랬더니 할머니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평생 웬수!"

이 이야기는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신부된 그리스도인과 신랑되신 예수님과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묘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부된 우리 그리스도인은 신랑되신 예수님과 천생연분의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맞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부정하고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세상과는 "평생 웬수"가 되셔야 합니다.  적어도 가치관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예수님과는 평생 웬수가 된 것처럼, 세상과는 천생연분처럼 사는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치를 버리고 잘못된 가치를 자기도 모르게 수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이 어떤 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이 세상이 어떤 전제하에서 움직이며 어떤 생각과 행동을 우대하는지 아십니까?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아십니까?
이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잘못된 가치관에 빠져들지 않고 하나님과 코드를 맞추면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멋모르고 세상의 가치 체계에 빠져들게 되면 우리 인생은 피폐하게 됩니다.  그것은 결국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간증이 빛을 잃게 되고 맙니다.

작가 이문열씨가 쓴 책 가운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그 책 속에서 주인공 '영웅'은 같은 반 학생들을 지배하면서 그들의 삶을 괴롭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대의 잘못된 가치관도 사람들을 지배하고 그 삶을 망하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제목을 생각하
면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가치관]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일그러진 영웅"과 "일그러진 가치관" 사이에 그런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의 일그러진 가치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 시대의 풍조와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면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1940년 전쯤에 쓰였습니다.  바울은 말세에 사회가 타락하고 악화되면서 나타날 일반적 특징 19가지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말세'라는 용어는 1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부터 그분의 재림 때까지를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당시 이 편지를 쓸 때에 수신지인 에베소에는 이런 현상들이 나타났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에베소 교회 내에 있던 거짓교사들에게서 그는 이것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경향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화되어 왔을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갈수록 악해진다고 탄식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봉독한 본문에 포함된 19가지 특징은 다 주의를 요하지만 특별히 오늘은 우리 시대에 팽배한 3가지 경향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공교롭게도 그것들은 다 '사랑한다'는 동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가치의 언어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으로 묘사된 3가지는 바울 당시의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잘못된 가치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지배적인 가치관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는 이 일그러진 가치관의 추한 얼굴을 하나씩 대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가치관 그 첫째는 이기주의적인 가치관입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의 사랑의 대상이라고 밝힌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바울은 말세에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먼저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은 이기주의적 가치관에 대한 것이지 건강한 자존감을 비난하기 위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  건강한 자존감은 우리의 건강한 삶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자기를 무가치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기의 삶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실 자기를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은 자기를 만들어주신 하나님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으며 우리 각자의 인생을 향한 기대를 가지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시며 나의 편이시며 나를 후원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열등감이나 자기 연민은 겸손과 다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생각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자기 연민은 마귀의 작업장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이 여기서 책망하고 있는 것은 건강한 자존감이 아니라 자기 중심적이고 나르시스적인 가치관입니다.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며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삶의 태도를 일컫습니다.
 
한 고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나르시시즘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나르시시즘이란 자기 중심적이며 자기 도취자, 자기 사랑에 빠진 증상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한 학생이 와서 자기가 나르시시즘에 빠진 것 같다고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이 학생은 거울을 보면 자기 모습이 너무 멋져서 눈을 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 학생의 고민을 듣고서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얘야, 그건 나르시시즘이 아니고 착각이란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기심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십시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우리 나라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다음의 노래는 그들의 나르시스적인 생각과 태도를 더욱 자극합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모습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안 그래도 이기적인데 요즘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것을 보면 정말 걱정이 됩니다.  아이가 왕이고 우상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들로 가득 찬 사회를 상상해보십시오.  아이들만 그렇겠습니까?  어른들도 별 다를 바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하던 그 순간부터 인간은 이기적이었지만 특별히 이 세대의 자기 사랑은 더 심하고 그 표현은 더 노골적입니다.  나만 잘되면 되고 나만 좋으면 괜찮다는 풍조가 팽배해 있습니다.  최고의 가치는 자아실현이요 자기 정체성의 완성입니다.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부도덕한 일도 개의치 않고 자기 정체성의 완성이라면 어떤 대가든 지불합니다.  가족도 뒷전이고 종교는 악세사리에 불과합니다.  충성이나 헌신이나 희생과 같은 단어는 퇴출 대상의 단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 가운데는 아기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어간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아기가 삶을 즐겁게 하고 자아를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밤에 자다가 몇 번씩이나 깨고 똥 기저귀 가는 것이 싫다는 이야기입니다.  '쿨'하게 살고 싶은데 아이 키우는 것만큼 자기 생활스타일을 방해하는 것도 없습니다.  헌신하는 것이 싫어서 아예 결혼하지 않고 그냥 동거하면서 삶을 즐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고 제정구 씨가 주례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하여 결혼하는 것이다"
자기실현이나 자아의 완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나를 버리고 나를 녹임으로써 하나 되기 위해, 나를 비워서 그 빈자리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결혼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철저히 이기적인 이 세대에 그 말은 얼마나 필요한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자기 중심적인 가치로부터 면제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의 권면처럼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 보기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찾고 자기 안건을 관철시키려 하며 자기를 높이기가 너무 쉬움을 자주 발견하곤 합니다.
 
특별히 교회 지도자들은 조심하지 않으면 자기가 마치 모든 것의 중심인 듯한 착각에 빠지기가 더욱 쉽습니다.  자기중심적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도 하나의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교회도, 동료 그리스도인도, 하나님도 다 자기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 존재할 따름입니다.

특별히 보수적인 성향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 신앙의 공동체성을 무시하고 본인에게 집중된 개인 경건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예 노골적인 기복신앙에 빠진 신자들도 많습니다.  종교적 수사와 용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종종 그것은 기독교 버전의 자기실현이나 자기개발에 다름 아닙니다.  개개의 그리스도인은 물론이거니와 교회 전체도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이기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회야 어찌되던 다른 교회야 어찌되던 자기 교회만 살찌우겠다는 '개교회 이기주의'라는 용어는 한국교회에 덧붙여진 부끄러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기적인 가치관은 파괴적인 가치관입니다.  그것은 자기 유익을 꾀하지만 사실 자신의 삶을 강등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선한 영향력을 현저히 축소시키고 가능성을 제한하며 참된 행복을 맛보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기만 생각하는 것은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기주의적인 생활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의 삶을 주며 이타적으로 섬길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우리는 주님이 옳았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가치관 두 번째는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할 뿐 아니라 또한 돈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물질주의 또는 배금주의적 가치관을 말합니다.  물론 돈이나 물질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돈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용하라고 맡겨주신 것입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은 물질을 거부하고 거지처럼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성경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과 같은 믿음의 영웅들은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돈이 아닌 하나님을 신뢰하며 많은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이 문제 삼는 것은 돈의 소유 그 자체가 아닙니다.  돈에 대한 태도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에서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돈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2장에서 물질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가 예기치 않은 때에 영적 거지로 죽은 한 부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를 바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그는 누구보다도 똑똑하다고 스스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돈도 많이 벌었고 경영도 잘 했을 것입니다.  유능한 농업 경영인으로서 공로를 인정받아 상도 받았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물질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그의 삶에서 제쳐두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바보가 오늘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가 얼마나 돈을 숭배하며 얼마나 물질주의에 깊숙이 빠져있는가를 아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서점에는 돈 버는 것과 관련된 서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은 이 시대 최고의 덕담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된다면 거의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음식에 납을 넣기도 하고 쓰레기로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합니다.  자기 자식 같은 아이들에게 음란물을 팔기도 하고 일부 연예인들은 경쟁적으로 만인들이 볼 수 있게 옷을 벗습니다.  돈을 받고 전혀 연고도 없는 사람을 폭행하거나 죽이기까지 하는 업종이 심부름센터라는 기가 막힌 이름으로 존재하기도 합니다.

돈을 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특별히 젊은이들의 인생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열심히 공부를 해서 일류대학에 가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따지고 보면 돈 때문이 아닙니까?  내 자식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돈을 벌어서 편하게 살라는 욕구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돈 때문에 공부하고, 돈 때문에 직장을 선택하고, 돈을 위해 산다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게 될 뿐 아니라 결국 자신과 사회를 파괴시키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 참되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큰 인물 치고 돈을 사랑하거나 돈에 큰 가치를 둔 사람은 없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화재로 불타는 자기의 집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관리해야 할 짐이 하나 덜어졌군요"
우리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돈 버는 일에 인생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소중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우리는 돈을 사랑하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셔야 합니다.  배금사상과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의 풍조에 물들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 알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주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물질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가치관 세 번째는 쾌락주의적인 가치관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또 쾌락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우리는 좀 설명을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즐거움을 죄악시하거나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이 잔뜩 인상 쓰고,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언제나 짊어진 양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미국에 건너갔던 청교도들을 일컬어 "다른 사람들이 밤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까봐 걱정스러워 잠을 못 자는 사람들"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그런 금욕주의적 청교도가 아니십니다.  필립 얀시가 지적한 것처럼, 남녀간의 성적 사랑을 다룬 이야기가 포함된 성경을 신봉하는 기독교가 즐거움을 반대하는 종교로 비춰지는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묘사하면서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은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면서 나타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있었다는 것이라고 증언합니다.  엄숙주의에 빠져 설교할 때 유머 한마디 안하고 언제나 근엄하고 심각한 표정만 짓고 있는 목회자와 성도는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천국에서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이 말하는 것은 즐거움의 반대가 아니라 쾌락 지상주의적 태도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한다고 말함으로써 이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이나 또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쾌락주의적 가치관을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상이 쾌락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그리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닐 포스트만이 쓴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죽음에 이르도록 우리를 즐겁게"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두려워함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죄라고 하든 말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이 내 인생을 파괴시키든 말든 상관이 없습니다.  내게 즐거움만 가져다주면 됩니다.

사실 한국만큼 향락산업이 발달한 나라가 또 있겠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소위 '방 문화'로 인한 타락은 연령과 성별을 가리지 않습니다.  도우미라는 이름의 접대부를 사용하는 노래방에서부터 시작해서 전화방, PC방, 게임방, 비디오방, 테크노방까지 온갖 종류와 온갖 이름의 '방'에서 은밀하고 위험한 쾌락 추구의 실험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술집과 나이트클럽은 경기와 상관없이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러브호텔은 주택가와 학교주변까지 파고들고 있습니다.  인터넷 음란사이트는 우후죽순처럼 늘어나서 익명성과 접근의 용이함과 싼 가격으로 남녀노소를 유혹합니다.

지난 주간에 대구의 모 초등학교에서의 집단성폭행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합니다.  교육계에서는 패닉상태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과 상담기관에서는 이번에 대구에서 일어난 초등학교의 성폭행 사건은 방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말합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버젓이 인터넷으로 음란 사이트에 접촉합니다.  그러나 상담기관에서의 통계를 보게 되면 아이들이 음란 영화를 보는 것은 인터넷이 아니라 가정에서의 텔레비전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60여개가 넘는 채널을 아무런 장애물이나 제재도 없이 너무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음란과 폭력을 부추기며 전통적 가치의 파괴를 선동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요즘처럼 인터넷과 영화의 영향력이 큰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경계하지 않으면 쉽게 넘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쾌락을 좇아 사는 삶은 허망한 삶입니다.  솔로몬은 부인 700명, 첩 300명 등 도합 1,000명의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상의 삶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누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그 모든 것들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라고 실토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악된 쾌락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망하게 할 것입니다.  지혜자는 잠언에서 경고합니다.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잠 7:24-27)

이솝의 우화 가운데 파리와 불나비의 우화가 있습니다.  배가 고픈 파리가 날아다니다 맛있는 꿀을 발견했습니다.  꿀단지의 주변을 돌면서 조심조심 꿀을 맛보다가, 먹는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조심성을 잃어버리고 한복판에 뛰어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그만 날개 한쪽이 젖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힘을 쓰면 쓸수록 파리는 더 깊이 그 꿀 속에 파묻혀 갑니다.  그때 불나비가 한 마리 날아와서 조롱하듯 말했습니다.
"야, 이 바보야.  음식을 그렇게 탐욕스럽게 먹으면 안돼.  네가 너무 돼지처럼 먹기를 좋아하니까 그렇게 빠져서 죽지 않니?"
비난하는 불나비 앞에서 파리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자기 몸이 점점 꿀에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밤이 되었습니다.  촛불이 켜졌습니다.  불나비가 촛불 주변을 빙빙 돌다가 그 색의 아름다움에 취해 가까이 갑니다.  더 잘 보려고 다가가다가 날개에 불이 붙어 그만 타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아직도 죽지 않고 있었던 파리가 최후의 한마디를 내뱉었습니다.
"나보고 바보라고 하더니 저는 더 바보구만 한 번에 타죽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초적인 쾌락을 좇는 삶은 결국 우리를 죽일 것입니다.  한 번에 죽을 수도 있고 천천히 죽을 수도 있겠지만 결과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한 여인이 파티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가난했던 그녀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한 것 같아 부자인 친구에게 진주목걸이를 빌렸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여인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파티장에서 진주목걸이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여인과 남편은 잃어버린 친구의 진주목걸이를 되돌려주기 위해 전 인생을 투자해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부부는 엄청난 가격의 진주목걸이를 사기 위해 불철주야 일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맛있는 음식도 한 번 못 먹고 아름다운 옷도 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마침내 잃어버린 것과 비슷한 진주목걸이를 사서 친구에게 찾아갔습니다.  친구는 이 여인을 보고 왜 이렇게 얼굴이 안되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여인은 친구의 말에 서러운 마음이 복받쳐 눈물이 나왔습니다.  여인은 울먹이면서 진주목걸이를 내밀며 이렇게 늦게 목걸이를 가지고 와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목걸이를 돌려 받아서 가만히 보던 그 부자 친구는 놀라면서 이건 진짜 같은데 왜 이걸 주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빌려준 목걸이는 가짜였기 때문에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 말을 들은 이 부부는 너무 충격을 받아 몸을 가누지 못하고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의 잘못된 가치관을 좇아 살면 우리는 언젠가 이 부부처럼 인생을 허비했음에 경악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다 한다고 그냥 좇아가지 마십시오.  자기를 사랑하는 이기주의와 돈을 사랑하는 물질주의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쾌락주의에 빠져서 살면 우리는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랑은 위험하고 어리석은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삶을 파괴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이 바보 같은 사랑노름에 말려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잘못된 가치들에 속지 말고 이 가치들의 허구를 노출시키며 이 가치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이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가치 있고 의미 있으며 영원히 남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