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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끝까지 사랑하는 법 (요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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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사랑하는 법 (요 13:1~7)  
                                                                                     
지금 이 시대는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모두가 다 ‘끝까지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 시대와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명을 받은 교회입니다.
그것이 ‘높은 뜻’입니다.
그 높은 뜻은 계속되어져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사랑하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분명 우리는 몇 번 도와 주는데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돈 보태주고, 필요한 것 사 주고, 건물 지어주는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끝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부부 간에, 가족 간에, 직장에서, 교회에서, 이 나라에서, 다른 열방에서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오늘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시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도대체 말길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르치고 말씀하셔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잘 몰라서 자꾸 딴 짓을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자주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셨고, 때로는 제자들을 향하여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는 직책을 자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기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영 못 알아 먹고는 제자들은 “우리 선생님이 언제 왕이 되시나?”를 바라봅니다.
그 때 한 자리라도 해 먹으려고 때론 어머님을 동원해서 청탁을 하기도 했고, 때론 “누가 크냐?”를 가지고 서로 싸웁니다. 제자들은 “늘 누가 크냐?”, “누가 먼저냐?”, “재는 어떻게 되나?” 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많은 제자들 중 12명을 따로 뽑으셨는데 중요한 ‘회계’인 유다는 공금도 횡령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결국 자기의 주인이며 선생님인 예수님을 팔아 먹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칭 타칭 선임제자인 베드로도 영 그렇습니다.
꺼떡하면 나서고, 꺼떡하면 소리치고, 꺼떡하면 칼 휘둘르고 합니다.
예수님 잡혀가실 때는 예수님을 부인까지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시자 제일 먼저 고기 잡으러 돌아가겠다고 한 사람입니다.
그때 거의 다른 제자들도 별 반응 없이 되돌아 가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된 제자들이 없으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러한 오합지졸 제자들을 삼 년 동안 데리고 다니셨는데도 큰 변화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자들을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1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저는 이 한 구절만 가지고도 우리 예수님이 정말 좋습니다.
돌아가실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도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비법은 무엇일까요?
사람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 우리도 그것을 배우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첫 번째로는 ‘나의 부르심’을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심령을 감찰하시고 사람의 뜻과 생각을 하시는 예수님께서 그것을 감지 못하셨을까요? 저는 감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3년 동안이나 같이 먹고 자고 다녔던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의 말투나 눈 짓만으로도 예수님은 왠만한 것들을 다 눈치 채실 수 있으십니다.
더군다나 영성이 뛰어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셨을리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그것이 우리가 사람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비법 One"입니다.  3절입니다.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신 것과 때를 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는지 그것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나요?
그것을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친히 아들에게 감당시켜 해결하시고 우리와 하나님을 화목케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사람으로 오신 성자 예수님께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사랑하려면 먼저 우리의 ‘부르심’을 알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높은뜻 숭의교회’로 부르셨는지를 알면 우리가 끝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이 사람과 결혼시키셨는지를 알면 끝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부부와 가족의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알면 끝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가 그런 못된 생각을 하든 말든 하나님의 부르심을 아셨습니다.
그 부르심을 생각하고 푯대로 되어서 당신이 하셔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순종하시는 겁니다. ‘부르심’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게 만듭니다.


그 다음의 비법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4절에 나와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두 번째로,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비법 Two"는 ‘결단’, ‘자리에서 일어나기’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식사를 하시고 계시던 중이었습니다.
식사를 하실 때 유대인들은 한 팔을 받치고 거의 누워서 식사를 합니다.
가장 편안하고 소화도 잘 되는 그 자세에서 예수님은 지금 일어나셨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상징적인 의미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데 지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식사 중입니다. 
그 일을 행하기 위해서는 식사하는 자세에서 발을 씻는 자세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자리를 일어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누구나가 다 겪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대개 ‘몰라서 못하는 것’보다는 ‘알면서도 안 하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 자리를 일어나는 결단이 정말 필요한 일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높이고 그 분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 왠만하면 다 압니다. 그러나 누워서 일어나기가 정말 힘이듭니다.
저도 그러한 경험이 정말 많습니다.
눈을 뜨고 일어나서 성경을 잡아 들고 앉는 것이 정말 힘이듭니다.

내 아이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같이 놀아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내 아내에게 이렇게 하면 그녀가 큰 위로와 격려와 사랑을 느낀다는 압니다 그러나 실지로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려면 내 부르심, 하나님의 뜻을 안 후에 실지로 일어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자세나 체질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결단하고 일어나야 합니다. 


세 번째는 ‘권리포기’ 즉,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둘러’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겉옷’은 신분을 상징합니다.
우리 나라도 옛날에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시대에 정1품에서 정3품까지는 홍색, 종3품에서 6품까지는 청색, 7품에서 9품까지는 녹색입니다.
예수님이 입으신 옷은 ‘자색’입니다.
그 색깔의 옷은 부자들이나 고관들이 입는 색깔입니다.
그 겉옷을 벗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선생님으로서의 신분과 지위를 내려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는 것은 그 당시 종이 손님의 발을 씻길 때 하는 의상입니다. 
그 당시 종들 중에도 계급과 서열이 있는데 발을 씻기는 종은 가장 하발이 종입니다.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둘렀다는 것은 당신의 지위를 내려놓고 그 종 위치로 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려면 이와 같이 자신의 위치를 내려놓을 때가 필요합니다.
명심하세요 예수님이 늘 어디서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때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발을 씻기라고 명하시면 우리는 우리의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둘러야 합니다.
끝까지 사랑하려면 때로는 내 신분을 내려놓고 그 일에 합당한 위치로 탈바꿈을 할 수 있어야합니다. 

늘 왕으로만 대접받고 군림하시려는 아버지에게 그 가족들이 끝까지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요? 가끔은 왕이 아니라  ‘종’의 위치를 가질 때가 필요합니다.
그때 가족은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라고 느끼고 감격합니다.

우리가 쪽방을 섬길 때도 드레스 입고, 명품 옷을 입고 가서 도배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또한, “당신들은 가난한 사람들이고 우리는 여유가 있어 도와주는 사람이다”라는 생각도 틀렸습니다. 정말 전문 도배업체 못지 않은 서비스 정신을 가지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새터민들을 섬기고 도울 때도 우리는 고자세나 주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섬기는 종의 모습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선교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것을 내려놓고 그들의 모양으로 섬길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는 미개하고 못살고, 우리는 현대화되고 고도화 되었으니 우리를 따르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섬기라고 하시면 담대히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는 것이 끝까지 사랑하는   ‘비법 Three’입니다.


네 번째로, 끝까지 사랑하는 "비법 Four"는 ‘수고’입니다.

5절입니다.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비법 four는 물을 떠서 발을 씻고 닦는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르심을 아시고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두르시고 거기서 끝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웃깁니까?
그것은 사랑이 아니고 ‘Fashion Show"입니다.
끝까지 사랑하기 위해서는 실지 수고를 해야 합니다.
물을 떠오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발을 씻기고 발가락 사이사이를 씻기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물기를 물 한 방울 없도록 닦아 내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실지로 하지 않으면 끝까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여명학교를 도와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실지로 수고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저녁봉사에 줄을 이었다는 말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수고도 해야 합니다.


가족들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론 아이와 같이 목욕을 간다든지, 설거지를 한다든지 하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아내를 위해 피곤할 때 같이 빨래를 걸어 준다든지 화장실 청소를 하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서로 수고할 때 우리는 끝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 시대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없는 때가 아니라 ‘끝까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 교회는 사랑하는 사명이 있는데 그 사랑은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에게서 배워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비법은, 

첫 번째로,  ‘부르심을 아는 것’입니다. 나와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 우리 민족을 하나님이 왜 부르셨는지 그 사명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결단’, 즉,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로만 머리 속으로만 아니라 실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로, ‘권리포기’, 즉,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는 것’입니다.
  내 위치나 지위를 내려놓고 ‘종의 위치’로 가서 실지로 섬길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수고 하는 것’입니다.
 물 떠오는 수고, 발을 씻는 수고, 씻은 발을 닦는 수고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구체적을 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끝까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끝까지 사랑하는 부부가 될 것입니다.
우리 가정을 끝까지 서로를 사랑하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끝까지 사람을 사랑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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