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세 가지 시험 (마 4:1-11)

  • 잡초 잡초
  • 274
  • 0

첨부 1


세 가지 시험 (마 4:1-11) 
  
눈망울 초롱초롱한 아이들도 살아가면서 많은 유혹을 받을 것이고 그 유혹들을 잘 이겨내야만 참으로 하나님 백성다운 모습으로 장성할 수 있겠지요.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이 사단의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자녀로 바르게 자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이 어린이 주일을 의미 있게 하리라 생각됩니다. 예수께서 받으신 시험들을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숙에 큰 유익이 있습니다. 사단이 시험하는 핵심을 정확하게 꿰뚫어 그것을 물리치는 방안을 계시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유혹하는 사단의 전술들이 다양하게 많이 있겠지만 핵심 전략은 이 세 가지 시험 속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 받으신 첫 시험은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2) 상황에서 발생했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3).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4). 사단은 현재 당면한 상황 해결을 중심으로 살도록 유혹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은 아무리 극한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기 위해 ‘기록된 말씀’을 생각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당면한 현실 상황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말씀 자체가 현재 떡이 필요함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현재 상황에 근거해서만’ 결정을 내리려는 태도를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행동을 위한 최종 결정은 기록된 말씀에 근거해서 내려야 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삶에서 언제나 큰 유혹입니다. 기록된 말씀으로 무엇이 옳은지 가르쳐 줘도, ‘누가 그걸 모르느냐? 상황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고 반박하면 단호하게 거절하기 어려워집니다. 말씀은 그렇지만 현실을 좀 생각해보라고 조목조목 따지면 ‘그래 이번에는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며 타협하기 쉽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시험했던 사단의 첫 시험과 똑같음을 깨닫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상황’을 핑계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그분의 뜻과 상관없이 쓰기로 결정 하려는 유혹이 오늘날도 우리에게 던져집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다른 재능을 주셨습니다. 남보다 시간을 넉넉히 주시기도 하고 소유를 더 주시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두신 뜻을 잘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내게 두신 하나님의 뜻’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하나님께서 주신 그러한 것들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다면 이미 사단의 유혹에 빠져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상황 잘 판단해서 적절하게 행하도록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그것만 가르친다면 영악한 요령꾼만 될 것입니다.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한 후에 최종 결정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록된 말씀 속에서 발견하도록 또한 가르쳐야겠지요. 진로 문제, 배우자 선택 문제, 시간의 활용 문제, 재능과 재정의 사용 문제 등 모두를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 중심으로 판단하며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마귀의 두 번째 시험은 말씀을 이용해서 행해졌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6) 예수께서는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7)고 답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완벽히 보호하실 것을 신뢰하셨습니다. 신뢰하셨기 때문에 말씀을 이용하여 무언가 해보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 중심으로 살려고 결단한 사람에게 다가오는 가장 강력한 사단의 유혹은 ‘말씀을 이용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사단은 말씀을 인용하되 적당하게 빼거나 더해서 원래 의미를 왜곡했습니다. 말씀의 의미도 정확히 모른 채 ‘하나님 이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믿고 무조건 따를 테니까 하나님이 책임지세요!’라고 다그친다면, 말씀에 신뢰하는 것일까요 말씀을 이용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으로 내 뜻에 순종케 하려고 유혹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원하기만 하면 다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저는 제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컴퓨터 오락하기를 무척 원하지만 원하는 만큼 다 들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눈동자처럼 보호해주신다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일부러 위험에 뛰어드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입니다. 말씀의 가르침을 벗어나 신비한 기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행하셨지만 한 번도 기적을 전도의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병 고침을 위해, 기적을 보기 위해 몰려오는 무리들을 피하셨고 말씀을 전하기 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느리고 힘들지만 십자가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기적을 이용해 편하게 사역하려는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사람의 환호성을 받으며 그 세력을 등에 업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대신에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놀라운 인물로 환영받는 길 대신에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아야 하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방법에 순종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른 교회로 성장해 간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사람들의 구미에 맞춰주고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으면서 폼 나게 사역해보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때로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서 기적들을 행하며 혹은 멋진 마케팅 전략으로 사람들을 신속히 모으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느릴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방식이기를 더 원합니다. 

아이들이 하나님 백성다운 인격으로 바르게 자라는데 교육의 목표를 두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자기 아이만큼은 세상에서도 멋있고 폼 나게 살게 하고 싶은 마음에 유혹될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 말씀을 이용해서 기도와 예배를 이용해서 그들보다 더 멋지게 살도록 돕고 싶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방식으로 양육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는 훈련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은 지극히 높은 산에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진행되었습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가 주리라”(9)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10). 첫 번째 시험이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삶의 기준과 관계된 시험이었다면, 두 번째 시험은 삶의 방법과 관계된 시험이었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삶의 소망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꿈에도 소원인 것을 ‘단 한번 절함으로써 얻게 해주겠다는 말’은 대단한 유혹이 될 수 있습니다. 영어 정복이 소원인 사람에게는 ‘100일 완성’과 같은 영어 정복의 비결을 가르쳐준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지겠지요. 부자 되는 것이 소원이라면 ‘10만원으로 단숨에 10억 만들기’ 같은 부자 되는 비법에 분명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천하만국의 영광을 한번 거머쥐어 보는 것이 삶의 소망이라면 그것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도 그러한 소망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한 번 부귀영화를 누려보려고 온갖 욕심을 냅니다.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고 명예를 얻고 좋은 집에 좋은 지위를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밤낮 골몰할 때 ‘딱 한 번 절하면’이라는 사단의 유혹은 매우 매력적일 것입니다. ‘이번 한 번만 불순종하면’ ‘이번 한번만 거짓말 하면’ ‘이번 한번만 눈감고 넘어가면’ 온갖 원하던 것들을 누릴 수 있을 때 누가 과연 그 유혹 앞에서 태연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태는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마귀에게 한 순간 절함으로써 하나님처럼 높아져보고자 하는 헛된 야망을 가졌던 순간입니다. 그 순간에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셨던 모든 낙원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반면 인간에게 있어서 최상의 상태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완성된 천국에 있는 모습이겠지요. 그 때에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그분께만 영광 돌리는 상태로 살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우리 삶의 소망 또한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그분을 바르게 섬기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삶의 소망이 바로 이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께만 경배하며 그분을 바르게 섬기는 것이 참으로 천상에서 누리는 최상의 삶이라면, 그것은 또한 이 땅에서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삶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교육하는 교육의 목표 또한 이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목표 또한 이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소망이 다른 것으로 대치될 때, 그 때가 교회가 타락하는 때입니다. 그 때가 내 가정이 시험 드는 때입니다. 그 때가 내 아이가 사단의 유혹에 빠진 때입니다. 다른 그 소망 때문에 하나님도 한 순간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즉시 최악의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성도란 어떤 사람입니까? 내 영광을 위해서라면 한 순간 하나님을 저버릴 수도 있는 사람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 순간의 내 욕망을 버리는 사람일까요? 

예수님도 언제나 기록된 말씀으로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성경을 잘 배워서 하나님의 뜻을 잘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하나님의 방법대로 장성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