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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작은 인물로 살지말고 큰 인물이 되자(골3:1-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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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작은 인물로 살지말고 큰 인물이 되자(골3:1-15)

작은 인물(사람)이 누구인가? 돈을 작게 가진 사람인가? 집이 작은 사람인가? 차가 작은 사람인가?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 많음을 자랑하는 사람이 작은 인물이다. 집이 크다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 작은 인물이 아닌가요. 차가 크다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이 작은 인물이 아닙니까?

애들은 어른이 볼 때 정말 시시한 것 장난감 가지고 싸우고, 먹는 것 가지고 서로 먼저 먹겠다고 싸우고, 놀이기구 먼저 타겠다고 싸우고, 자기한테 까분다고 싸우고 삐지고 한다.
그런데 작은 인물의 사람을 보면 애들처럼 시시한 것 가지고 싸우고 삐지고 합니다.
그러나 큰 인물은 보십시오.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받아 주고 그들의 칭얼댐을 받아 주고 그들의 욕심을 받아 주고, 그들의 마음이 먼저 먹고 싶은 마음을 알아 주고, 먼저 대접받고자 하는 것을 알고 받아 줍니다. 이게 큰 인물입니다. 그러나 작은 인물을 보십시오, 같이 싸우고 삐지고 하는 것은 도토리 키재기 같이 거기서 거기이고 고만고만한 사람들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성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제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매일 가서 위로해 주고, 매사에 설명해 주고 오해를 풀어 주어야 되고, 매사에 부딪치고 살고, 매사에 불만이 많은 작은 인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작은 인물로 살기 보다는 큰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큰 인물이 필요합니다. 큰 사람이 필요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필요합니다. 작은 인물로 사는 사람이 큰 인물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말씀 속에서 생각할 때 큰 은혜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첫째, 위의 것을 찾는 사람 즉 하나님을 찾는 사람.

이어령 전 문교부 장관은 지금 76세입니다. 75세가 되는 지난해 7월 온누리교회에서 하용조 목사님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허위, 미신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 미신과 허위에 기초를 두고 있는 신앙을 따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게 된 사연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어령박사의 딸이 있었는데 젊어서 결혼에 실패하고 이혼을 한 뒤에,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늦게 법학공부를 해서 미국 검사가 됐습니다.  특별한 성공사례이므로 지방 신문에도 성공사례로 소개됐습니다. 그랬는데 그 딸이 암에 걸렸습니다. 세 번이나 수술을 하고 고통을 겪었는데, 딸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암 걸린 것보다 더 자신을 절망케 하고 좌절하게 한 것은, 자기 아들이 학교에 들어가서 자폐증 중에서도 심한 특수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라고 했습니다. 
아버지 없이 기르는 아들이 그냥 착하고 말 없는 아이로만 알았는데 막상 초등학교에 가서 자폐증으로 밝혀지니 너무나 캄캄하더랍니다. 자기는 암에 걸리고 아들은 자폐증이고 그 뒤 10년 동안 하루도 울지 않고 잔 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매일 밤마다 눈물 흘리다가 잠들면서 눈이 망가졌습니다. 망막이 망가져서 실명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그 아버지(이어령 박사)가 미국으로 딸을 찾아갔었는데, 딸이 아버지한테 저녁식사를 차려드리고 나서 설거지를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눈이 망가져서 그릇이 보이질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아버지가 가슴이 아파서 “네 신세가 왜 이렇게 됐냐? 너 수술을 해야겠다. 미국의사들은 손이 커서 눈같이 민감한 부분은 수술을 잘 못할 것 아니냐. 한국의사들이 손이 작고 눈 수술은 잘할 것이다. 한국에 가서 수술하자.”며 한국으로 딸을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딸이 한국에 와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더니 눈이 아주 정상적이라는 것이지요.  의사선생님이 “눈이 아주 정상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니 선생님, 미국에서 실명 직전이라고 판정을 받아서 한국에 수술하려고 왔는데요?” 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이 “혹시 영어를 잘 못해서 잘못 알아들은 게 아닐까요? 눈이 정상입니다.”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딸이 그동안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한 것을 들으시고 눈을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아들의 자폐증이 회복된 겁니다. 이런 것을 곁에서 본 이어령 박사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아버지가 못해주는 것을 해주신 하나님이라면 내가 믿어야 안 되겠냐?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아버지가 못해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해주셨다. 그러니 내가 하나님을 믿어야 되겠다.’ 
그렇게 결심한 후에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스타 교수로서 기독교는 미신이고 허구에 서 있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냐 했던 사람이 75세에 그 따님과 손자에게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존귀하신 하나님을 대하고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해주고 싶어도 못해줬는데 그 딸을 이렇게 도와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나도 믿겠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제 그는 땅에 지식과 명예만 찾던 작은 인물로 살던 사람이 이제 하나님을 찾는 큰인물이 되었습니다. 

그가 세례를 받고 나서 처음 쓴 시가 이것입니다.

이어령의 ‘2008년 소원시’ 

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덕담 대신 날개를 주소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험난한 기아의 고개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 없고 
아무리 위험한 전란의 들판이라도 
등에 업은 자식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앉아 있을 때 걷고 
그들이 걸으면 우리는 뛰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눈앞인데 
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다가 `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놀라지 않고 
수출액이 3000억 달러를 넘어서도 웃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습니까. 
거짓 선지자들을 믿은 죄입니까. 
남의 눈치 보다 길을 잘못 든 탓입니까. 
비상(非常)은 비상(飛翔)이기도 합니다. 
싸움밖에 모르는 정치인들에게는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에 지친 서민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주십시오. 
날게 하소서. 
뒤처진 자에게는 제비의 날개를 
설빔을 입지 못한 사람에게는 공작의 날개를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학과 같은 날개를 주소서. 
그리고 남남처럼 되어 가는 가족에는 
원앙새의 깃털을 내려 주소서.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어느 소설의 마지막 대목처럼 
지금 우리가 외치는 이 소원을 들어 주소서. 
은빛 날개를 펴고 새해의 눈부신 하늘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경쾌한 비상의 시작! 벼랑 끝에서 날게 하소서. 아 멘 

이런 내용으로 된 시입니다. 
나는 이 시 중에서 중간에 나오는 ‘비상은 비상이기도 합니다.’ 비상은 ‘비상상태’라고 할 때 비상이죠. 우리나라 안팎의 처지가 비상이죠. 근데 비상이라는 것은 나쁜 것만이 아니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상이기도 하다 이거죠. 비상(非常)은 비상(飛翔)입니다. 

“살기에 지친 서민들에게 독수리의 날개를 주시옵소서.” 
서민들은 살아가기 빠듯해서 정말 힘겹게 불경기를 견뎌 나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살기에 지친 우리 서민들에게 독수리의 날개를 주시옵소서. 

독수리의 날개 이것은 독수리의 생태를 이해해야 우리가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날짐승 중에 왕이라는 독수리는 자기 집을 지을 때에 좋은 나뭇가지로 집을 짓지 않습니다. 가시나무로 짓습니다. 틈틈이 가시가 나 있는 가시나무 줄기로 집을 짓습니다. 거기에 알을 놓고 새끼를 부화합니다. 새끼가 자라면서 그 나무가시에 몸이 찔립니다. 몸이 찔리면 새끼들이 자꾸 아프니까 밖으로 밖으로 몸이 밀려 나갑니다. 가시를 피해서 밖으로 밖으로 나가다가 끝내는 떨어집니다. 그때 어미 독수리가, 떨어지는 새끼가 땅에 닿기 전에, 땅에 닿으면 죽게 됩니다, 먼저 내려가서 날개를 펴 새끼를 받아줍니다. 이것이 독수리의 날갭니다. 
다시 가서 자기 둥우리에 새끼를 넣습니다. 또 자꾸 자꾸 찔리니까 밖으로 나가다가 떨어집니다. 떨어지면 땅에 닿기 전에 다시 어미 독수리가 날개를 펴서 받아 줍니다. 그렇게 하면서 독수리가 나는 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어떤 짐승보다 가장 높이 날수 있는 훈련을 이렇게 시키는 겁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시련이 있고 아픔이 있고 우리 삶을 찔러 주는 가시가 있습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께서 독수리 날개로 우리를 붙드셨습니다.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순탄하고 모든 것이 다 잘되어 가는 그런 상황 속에서만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게 아니라 
가시밭길 인생 속에서 좌절이 있고, 아픔이 있고, 안팎으로 시련을 거치면서 우리가 낙심할 때, 좌절할 때, 독수리 날개를 펴서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하늘을 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세워 주십니다. 

여러분, 독수리가 위대한 짐승인 이유는 이렇습니다. 
매년 몇 번씩 태풍이 오면 다른 짐승들은 다 피해버립니다. 꿩이고 참새고 까마귀고 태풍이 오면 안전한 곳을 찾아서 숨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다릅니다. 독수리는 태풍이 밀려오면 태풍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태풍이 오는 한가운데로 정면으로 돌파합니다. 태풍의 중심으로 치고 들어가서 태풍을 넘어 서서 태풍위의 평화로운 하늘, 거기에서 태풍이 끝날 때까지 날고 있습니다. 태풍이 땅에서 다 지나간 뒤에 다시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의 삶의 방식이 돼야 됩니다. 
우리에게 시험이 있고, 환난이 있고, 태풍이 있을 때에, 환난을 피해 도망가거나 숨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독수리의 날개로 품어 주실 것을 믿고, 우리의 산성이시요, 피난처이시요, 우리에게 독수리의 날개가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시험과 태풍에 마주서서 그걸 뚫고 나가는 큰 인물이 됩시다. 

큰 인물은 누구입니까?  위엣것을 찾는 자가 큰 인물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니 이제는 언제나 하나님을 찾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자가 됩시다.

오늘 본문말씀 골로새서 3장1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했습니다.  왜 위를 찾습니까? 거기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5장4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했습니다. 6절에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했습니다.
역대하 15장15절에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시련과 아픔과 고통과 시험과 근심과 문제가 있어도 작은 인물로 사는 사람은 포기하고 낙심해도 큰 인물로 사는 자는 위에 계심 하나님을 찾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고 승리하며 삽니다. 위에계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찾으면 반드시 나는 다시 살 수 있고 회복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아멘. 


둘째, 위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 즉 하나님처럼 생각을 하는 사람.

과거에 현대건설 회장이 소망교회에 다니는데 교회와서 무엇으로 봉사했습니까?
그는 교회에서 차량 안내자가 되었습니다. 찬바람을 맞으며 호각을 불어가면서 밖에서 차량안내를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현재 청와대 주인인 이명박대통령입니다. 
그는 장로지만 차량안내자로 봉사했습니다. 이것이 섬김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크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너희 중에 큰 인물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그러면 너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43절에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인물이 되려면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합니까? 내가 섬기는 그 사람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왜 남편이 아내를 섬기며, 왜 아내가 남편을 섬깁니까? 왜 부모가 자식을 섬깁니까?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소중하게 대하는 겁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작품이요, 예수님이 친히 피흘려 구원하신 사람이요,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어서 한 말이 국민을 섬기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5년 동안 국민을 잘 섬기는 대통령이 되면 그는 역대 대통령중 아니 역사에 가장 큰 인물의 대통령으로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통령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 골로새서 3장2-4절에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했습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라는 것은 위에 계신 하나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인간의 생각만 하는 사람들 처럼 육신의 것만 생각하며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영광스러운 사람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땅에 있는 영광, 땅에 있는 권세, 땅에 있는 물질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님 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같은 생각과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어서 나중에 영광과 칭찬과 상급을 받고 사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시시하게 땅에 있는 것 가지고 서로 싸우거나 서로 자랑하거나 서로 사느니 죽느니 하지 말고 하나님과 같은 큰 생각과 큰 마음을 가지고 살아 하늘의 상급과 축복과 칭찬을 받는 큰 인물이 됩시다.  
잠언23장7절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  그가 말로는 '먹고
마셔라' 하여도, 그 속마음은 너를 떠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마음이 넓고 생각이 큰 사람이 되어야 큰 인물이 됩니다. 생각하는 것이 작고 마음이 좁으면 시시한 것 가지고 싸우고 투털대며 불평하며 사는 작은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큰 지혜와 넓은 마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열왕기상 4장30절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지혜와 넓은 마음을 바다의 모래같이 많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해는 사랑입니다> 라는 제목의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이해와 오해는 행복과 불행을 낳게 하고 이 차이는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엄청난 차이를 가져옵니다. 이해가 있는 곳은 그 자리가 바로 천국이요, 오해가 있는 곳은 그 자리가 바로 지옥입니다.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가? 
이해는 내 입장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 주는 것이고 
오해는 타인의 입장보다 내 입장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해는 도무지 상대를 생각해 주지 않습니다. 오해는 서로를 등을 돌리게 하고 싸우며 결국은 단체는 분쟁으로 국가는 전쟁으로 내몰리게 되고 이 엄연한 현실이 내 중심으로 가득 찬 오해 때문이 아닌가?
당신은 그래도 이 오해를 계속 고집하며 살아갈 것인가? 
오해는 50% 이상 사실이 아니며  설령 사실이라 해도 묵묵히 모른 채하며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으면 화가 복이 되고 불신이 신뢰가 되며 어느덧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고 맙니다.
그래도 당신은 오해의 주인공이 되어 지옥 생활을 하며 살겠는가?  아니면 서로 용서하며 
서로 용납하고 서로 이해하여 당신이 서 있는 그곳을 천국으로 만들며 살겠는가?

오늘 우리는 땅과 하늘의 것을 다 품을 수 있는 하나님과 같은 넒은 마음과 큰 생각을 가진 큰 인물이 됩시다. 이런 인물은 오해하고 살지 않고 이해하며 사는 사람이 됩니다.

바다는 넓고 깊이를 알 수 없어서 모든 강물을 다 받아 주고 모든 더러운 물을 다 받아 주고 그것을 다 정화시켜 줍니다. 돌을 아무리 던져도 다 받아 줍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 생각이 크고 넓은 사람이고 맘이 넓고 큰 사람입니다.
강은 돌을 던지고 또 던져도 흔들림 없이 유유히 흘러 감니다. 그냥 받아 줍니다. 
그러나 얕은 시냇가에나 얕은 그릇에 돈을 하나 던지고 금방 표가 나고 그 돌이 훤히 다 보이듯이 그런 사람은 금방 반응이 나타나고 금방 얼굴에 표정이 변화되는 것이 보입니다.

성도 여러분 금생도 생각하고 내생까지 생각하고 살아가는 큰 인물이 되고, 
땅에 복과 하늘의 복까지 다 생각하고 그것을 받고 사는 큰 인물이 됩시다. 
바다같은 넓은 마음과 큰 생각의 사람이 되어 모든 사람을 다 이해하고 모든 사람을 다 받아 주고 모든 사람을 다 키워 주고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해 주는 큰 인물이 됩시다. 

오늘 본문말씀에서 작은 인물로 사는 자와 큰 인물로 사는 사람을 비교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 작은 인물이 되어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 사람인가? 

1) 작은 인물은 땅의 있는 지체(육체)를 죽이지 못하고 사는 자입니다.
골로새서 3장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죽이고 삽시다.

2) 작은 인물은 죄의 옷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입고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3장8절에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고 했습니다. 이런 옷을 훌훌 다 벗어 버리자.

2. 큰 인물로 사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 사람인가?

1) 큰 인물의 사람은 이런 옷을 입고 사는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3장12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산다고 했고,
골로새서 3장13-14절에는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 

2) 큰 인물의 사람은 마음에 평강이 넘치고 감사가 넘치는 사람입니다. 
이런 옷을 입고 살면 우리 마음이 평강이 넘치는 사람이 되고 감사하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15절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작은 인물로 사는 자처럼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과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부끄러운 말을 하고 살지 말고 이런 것은 다 죽여 버리고 이런 옷은 다 벗어 버리고 살자.
오직 큰 인물의 사람이 되어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불만을 버리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우리주님교회 강봉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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