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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폭풍 위에 계신 나의 주 (시 2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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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위에 계신 나의 주 (시 29:1~11)

‘(다윗의 시)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지난 주에 다락방을 통해서 ‘다윗의 찬양대’를 공부하였을 것이고 이번 주 주일 다락방은 오늘 이 내용을 배울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의 high-light는 그가 찬양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man of praise였다. 시편의 많은 저자들 중에서도 단연 그가 가장 많은 시편을 기록하였다. 그는 personally 찬양의 은사를 발휘하여 많은 찬양을 하였고, 온 나라에 찬양대를 조직하여 보다 조직적이고 보다 수준 높은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은 그의 이런 면을 사랑하셨고 기뻐하셨다.

오늘은 시편29편을 보고 싶다. 시편29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찬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찬양과 간구, 그리고 찬양과 권면의 형식으로 지어진 시편은 많지만 이렇게 첫 장부터 끝 장까지 온전히 주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되어진 시편은 그리 많지 않다. 오늘 다윗을 다시 한번 더 조명하여 보면서 우리가 찬양하는 백성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교회가 20주년을 맞는 이 때에 우리는  여러면에서 upgrade되어야 하겠지만 특히 찬양에서 upgrade되어야 한다. 우리 교회의 은사 중에 찬양의 은사는 참으로 독특하다. 이것은 우리의 찬양의 강점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라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은 우리의 간절한 소망이 되어야 한다. 더욱 더 성숙하고, 더욱 더 귀한 찬양을 올려드리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29장1-2절을 보자.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여기서 다윗은 권능 있는 자들에게 여호와를 찬양하고 영광을 올려드리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하늘의 천군천사들에게 하는 말이다. 이 말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들은 원래 하늘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그들에게 온 맘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다윗의 벅찬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자신과 함께 찬양하라고 명령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가장 강력한 왕으로서 곳곳에 자신의 사람들을 보내어 각국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하나님은 존귀한 분이시기 때문이었다. 그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너무도 존귀하여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동원하여 찬양을 드려도 not enough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늘의 천군천사들까지도 동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자. 나 혼자만은 충분하지 않으니 나와 함께 찬양하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하나님이셨기에, 그리고 그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 어떤 은총이었기에 이토록 열정적으로 그 분을 찬양하고 있는가?

(1)폭풍 가운데 들려진 여호와의 소리 때문이었다.

3절을 보자.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그는 온 땅을 휩쓰는 폭풍 중에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있다. 허리케인 force가 막 시작되고 있는데 그 중에 온 자연을 이끌고 계신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말씀으로 온 천지가 창조되었다. 그 분은 말씀으로 온 우주를 만드시고 흙과 생기와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 인간을 지으신 분이다. 엄청난 허리케인 force 일어나도 그 분에게 그것은 단순한 자연 현상의 하나일 뿐이다. 

3절에서 ‘물’은 지금의 지중해를 의미한다. 기온과 기압의 차이로 인해서 바다 위에 허리케인 force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미국은 세상에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이다. 그러나 지난 번 허리케인 force가 뉴올리언즈를 공격했을 때에 미국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뉴올리언즈는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그 force가 Houston으로 이동할 때에 Houston 시민들은 너무도 두려워서 수일 내에 모두 그곳을 떠나고 말았다. Houston은 수일 내에 유령도시가 되었다. Houston은 미국의 5대 도시 중에 하나인데도 그들은 이 자연 현상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마지막 시점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허리케인 force의 방향을 변경하셨고 그 피해는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의 힘 앞에서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자연 앞에서 우리는 이와같은 약한 존재인데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도 어떠할까? 그의 심판 앞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다윗은 지금 이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지중해에서 일어나고 있는 허리케인 force를 보면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이다. 그 허리케인은 이제 레바논에 landing하고 있다. 백향목은 엄청난 나무이다. 대단히 큰 나무이다. 이 엄청난 백향목들이 단번에 부수어지고 있다. 

5-6절을 보자.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헤르몬 산이 깜짝 놀라서 송아지 같이 뛰게 되였고 레바논의 전체가 흔들게 되었다. 백향목은 그 나라의 힘이었고 헤르몬 산은 그 나라의 웅장함을 대표하였다. 그러나 허리케인 force는 가데스 사막까지 이르고 남쪽의 숲을 완전히 벗겨버리고 말았다. 그 누구도 그 앞에서 자신의 힘과 영광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엄청난 힘 앞에서, 그 위에 임하시고 말씀으로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였다. 

그 때에 성전에서 들리는 찬양이 있었다. 9절 뒷부분을 보자.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성전에서 ‘영광이라’라는 찬양이 있었다.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주목하는 곳이다. 엄청난 태풍이 불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권능의 하나님을 목도하며 영광의 찬양을 올려드렸다. 이 무시무시한 장면에서 모든 자연을 말씀으로 control하고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폭풍 위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영광의 찬양을 드리고 있었다. 계시록에는 하나님의 심판 때에 땅이 진동하고 산과 산들이 옮겨진다고 했다. 그 때에 모든 지상의 왕들이 바위 틈과 동굴 속에 숨는다고 했다. 

계시록6:15-16을 보자.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은 자신들을 숨겨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5장과 7장을 보면, 똑같은 상황 속에서 믿는 성도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모든 민족의 방언과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누가 설 수 있을 것인가? 같은 장면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 심판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이 내용을 표현한 찬송가가 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하에 모든 것 망하겠네
만유주 여호와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세상에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의 창검이 쓸데 없네
높으신 여호와 우리를 도우니 할렐루야 
괴롬이 심하고 환난이 극하나 피난처 있으니 여호와요

같은 상황 속에서 밖에 들리는 공포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우리들에게 피난처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다윗은 이것을 보고 있다. 온 나라를 삼키는 폭풍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2)폭풍이 지난 후에 보이시는 영광 때문이었다.

10절에는 홍수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있다.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두번째 홍수에 대한 기록이다. 노아 시대에 엄청난 홍수가 세상을 삼키지만, 그 홍수 위에서 무지개를 통해서 우리에게 언약을 세우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다윗은 폭풍과 홍수 위에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였다. 다윗은 처음부터 폭풍 속에 계신 하나님을 알았지만 폭풍이 지나간 후 홍수 속에서도 더욱 주님을 붙잡았던 것이다. 

열왕기상19장에는 이사벨의 협박을 듣고 도망하는 엘리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두려움에 빠진 엘리야 앞을 지나가신다. 19장11-12절을 보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하나님의 소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역경과 환난과 지진과 불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소리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면 그 후에 미세한 음성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사의 주관가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폭풍이 지나 간 후에 더욱 구체적으로 이를 알려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의 인생 중에서 가장 큰 폭풍은 압살롬의 반역이었을 것이다. 그는 맨발로 도망하였다. 적들에게 쫓겨서 도망한다면 그나마 이해가 되겠지만 다윗은 아들에게 쫓기도 있었다. 그의 인생 가운데 그 때의 모습만큼 처절한 때도 없었을 것이다. 

시편63:1을 보자. ‘(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그는 유대 광야로 쫓기고 있었다. 그는 배고픔과 갈증에 지쳐 있었지만 그보다 더욱 힘든 것은 영혼의 배고픔과 갈증이었다. 그리고 3절을 보자.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주의 인자가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이다. 그는 인생의 폭풍 중에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주의 인자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4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이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두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주를 찬양하겠다는 고백이다. 그리고 5절을 보자.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내가 배 고프고 굶주린 광야에서 내 생명보다 귀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고백이다. 

그 분은 내 영혼을 채우시는 하나님이며, 나의 food, 나의 soul이라고 고백하고 있다.그 전에도 사랑했지만 폭풍 가운데서 더욱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폭풍을 주셨다면 우리는 그 폭풍 속의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굶주림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의 기업되심을 알게 된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앞에서 왜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주셨는가? 하나님 자신을 주시기 위해서 그리 하신 것이다. 그들은 우상이 있는 가나안을 그리워 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들은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의 만나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었다. 인생은 나그네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지가 하나님이심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 그가 영원한 기업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흔히 gift만을 보면서 giver를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는 우리의 가나안에서 우리의 영혼을 빼앗갈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폭풍을 주신다. 이 세상에서 찾을 분이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모든 어려움이 위장된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리 하시는 것이다. 

폭풍 위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려는 것을 알게된 다윗은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나와 함께 찬양하자. 나와 함께 그 분께 영광을 올려드리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11절에서 이 찬양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신다. 폭풍을 감당할 힘을 주신다. 우리는 아무도 폭풍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안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세상은 놀라고 뛰지만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평강과 찬양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 폭풍 위에 계신 하나님을 보라. 그리고 그 안에 우리의 영원한 기업과 분깃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기쁠 때에 찬양하고 슬플 때에도 찬양하자. 건강할 때에 찬양하고 약할 때에도 찬양하자. 왕궁에 있을 때에 찬양하고 광야에 있을 때에도 찬양하자. 우리 모두 찬양의 공동체가 되고, 오직 우리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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