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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몬아, 시몬아 (눅 22: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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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아, 시몬아 (눅 22:31~34)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3년 동안 훈련시키신 다음, 지상에 세워질 자기의 교회를 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세적 현상을 설명하신 다음 수제자 베드로를 부르시고 의미 있는 말씀으로 당부하였습니다. 본문말씀 31절에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이 말씀은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당부하시는 주님의 분부입니다.

1. 사탄의 집요한 시험이 있습니다.

“사탄이 너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고 했습니다. 사탄은 공중권세 잡은 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흔들며 넘어뜨리려고 시험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세력을 “음부의 권세”라고 표현하였습니다(마 16:18). 인간은 사탄의 흔듦에 놀아날 수밖에 없는 연약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육체를 흔듭니다.

인간의 육체는 강한 것 같으나 한없이 나약합니다. 질병이나 사고나 재난이 닥칠 때 쉽게 무너지곤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도 이런 약한 인간을 도우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4:24에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체격이 튼튼하고 건강한 자라도 질병이나 사고를 당하면 사정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사탄은 이와 같은 인간의 약점을 알기 때문에 집요하게 흔들며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사람마다 첫 번째로 꼽는 기도제목이 건강문제라는 것도 이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2) 영혼을 흔듭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뜨리려 할 때는 항상 그 영혼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깨어있는 성도는 영혼의 눈을 하나님께 맞추고 살아가지만 거기에 사탄이 끼어들어 흔들면 그 초점이 흐려져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맙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사탄에게 흔들리게 되자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울왕은 사탄에게 흔들리면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결국 악신에게 휘둘리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삼상 16:14). 성경은 사탄이 때때로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택한백성을 유혹하고 우리 영혼의 약한 부분을 치고 들어온다고 하였습니다(고후 11:15).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나이다”고 하였습니다(시 25:1).

3) 환경을 통하여 흔듭니다. 

여간 은혜를 받은 사람도 환경이 달라지거나 상황이 바뀌게 되면 영혼의 상태도 돌변하곤 합니다. 베드로의 경우 예수님께 바른 신앙고백을 하여 크게 칭찬을 받았으나 곧 이어 사탄에게 흔들림을 당했습니다. 그는 인정을 틈타 파고드는 사탄에게 흔들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을 막으려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마 16:16-23). 그는 또 모든 사람이 다 달아날지라도 저는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장담했으나 얼마 후 소녀 앞에서도 주님을 부인하며 달아나고 말았습니다(마 26:33-34, 69-75).


2. 주님의 기도가 있습니다.

32절에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라고 하였습니다.

1) 붙들어 주십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음 직전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바다위로 걸어오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님의 분부대로 물위로 걸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바람을 보고 물속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즉시 예수님께서 팔을 내밀어 건져 주셨습니다(마14:25-31). 성도는 그리스도의 손에 붙들린 사람입니다. 사탄이 흔들고 어려운 시험이 닥쳐올 때도 주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주저앉지 않게 됩니다. 이사야 41:10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의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였습니다.

2) 기도로 도와주십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仲保者)라고 합니다. 디모데전서 2:5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항상 우리편에 서서 하나님께 아뢰며 우리를 위하여 기도로 도와주십니다. 로마서 8:34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기도 명단에 이름이 있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7:25에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3) 보존해 주십니다.

개혁 신앙의 5대 요목(要目) 가운데 “끝까지 보호하심”(聖徒堅忍)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한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주님께서 끝까지 지키시고 책임져 주신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3:1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도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마 28:20).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으로 우리를 지키시며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요 14:16).


3. 부여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사탄의 흔들림에서 구해 주시고 그가 마땅히 하여야 할 사명을 부여 하였습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하라”는 말씀입니다(32절).

1) 회복의 약속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아시면서도 우리에게 존귀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특히 베드로의 경우 3년 동안 측근에서 행동하였기에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말과 행동이 빠른 편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주님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주님의 뜻과 다른 길을 가곤 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갔다가  잠만 자고 있은 것이나(마 26:40) “모든 사람이 다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큰소리 쳤지만 소녀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을 버려두고 물고기 잡으러 간다고 갈릴리 바다로 되돌아가기까지 하였습니다(요 21:3). 그래도 베드로는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크게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마 26:75).

2) 권능을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사명을 맡기실 때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그 능력은 성령의 권능을 힘입혀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가운데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행 1:8). 이 말씀대로 오순절날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셨고 거기 모인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큰 권능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도 이때 성령의 능력으로 설교를 하여 하루에 3천명이나 회개시키고 세례를 받게 하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 2:41). 주님의 능력을 체험한 그는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벧전 4:11).

3) 섬기는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거기에 보답하는 삶으로 형제를 섬기며 봉사하는 사역을 해야 됩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여러 종류의 일꾼을 세우신 것도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엡 4:12).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로 달아난 베드로를 다시 찾아가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하고 대답하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하였습니다(요 21:15-17). 이 역시 형제를 굳게 하는 사역을 강조한 것입니다. 젊어서는 자기 몸을 자기 원하는 대로 하며 살았더라도 늙어서는 자기의 원하는 것보다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고 당부하였습니다.(요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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