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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을 위한 배팅 투자 (막 10:17~22, 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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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위한 배팅 투자 (막 10:17~22, 28~30)

  두 명의 며느리를 둔 시아버지가 있습니다. 큰 며느리는 아들이 잘 벌어서 넉넉하게 사는데, 둘째 며느리는 아들이 잘 벌지 못해서 늘 가난합니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 가정의 어려운 생활 때문에 늘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큰 며느리가 남모르게 동서를 돕습니다. 때로는 위로해 주고, 음식을 나누며, 자녀들 학비까지 보태는 등 필요하면 돈도 아끼지 않습니다. 시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모른 체하였습니다. 다만 큰 며느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자리에서 큰 며느리를 부릅니다. 
“여기 한 번 앉아보렴. 네가 하는 일을 내가 다 알고 있단다. 네게 너무 감사하구나. 우리 집에 너 같은 며느리가 와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래야지. 네 하는 일이 너무 고마워서 내가 조금씩 준비하여 숨겨놓은 게 있는데, 오늘 그것을 너한테 주려고 한다.”
  시 아버지는 호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서 며느리에게 줍니다. 며느리는 자기가 말하지도 않은 사실을 시아버지가 알고 계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자기에게 준 봉투를 집에 와서 열어보니 천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돈의 액수를 떠나서, 자신의 모든 행위를 은밀히 지켜보신 시아버지의 사랑에 감동하였습니다. 

참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정말 멋있게 투자한 큰 며느리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게까지 수고하고 애쓰는 모든 노력은 보다 행복해지기 위함입니다. 

본문 말씀은 행복을 위한 베팅투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한 사람은 실패했고 다른 사람은 성공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길을 나서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 사람은 부자이고,(막10:22) 관원(지도자0이면서,(눅18:18) 아직도 젊었습니다.(마19:22) 
젊은 사람이 상당히 실력도 있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제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계명을 알고 있으시지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남을 속이지 말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이 사람 자신 있게 말합니다.  
“선생님, 이런 것들은 제가 어릴 때부터 다 지켜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유심히 바라보시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하십니다. 
“당신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게 있으시군요. 
지금 돌아가서 당신의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십시오. 
그러면 하늘에 재물이 쌓일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나를 따르십시오.”

이 사람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크게 실망합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슬퍼하며 근심하는 모습으로  예수님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고는 예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처분해야 할 재산이 너무 많아서 아직도 처분 중에 있을까요?
아니면 영생에 대한 문제보다 재산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하여튼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
그 젊은이가 떠난 다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재물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논이나, 밭을 나와 복음 때문에 버린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백배나 더한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논밭을 핍박과 함께 받지 않을 사람이 없으며, 내세에서 영생도 받을 것이다.’”

오늘 성서에 등장하는 사람은 돈 많고 권력까지 가진 젊은이입니다. 
1.그런데 이 사람, 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영생의 문제를 물었을까요?
이 사람은 어릴 때부터 계명을 다 지켜 살면서, 열심히 노력해서 돈 벌었고, 원하는 권력도 가진 일찍 출세를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이 젊은이는 이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배고픔과 갈증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 없는 인생은 배고픕니다. 목마릅니다. 그래서 영생 얻는 길을 묻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때 아주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당신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가진 재산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그리하면 하늘에 상급에 클 것입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십시오.
이 시간 이 말씀이 혹시 여러분에게 고민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5천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일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었습니다.”(요6:26) 그 엄청난 기적을 경험하고서 여전히 육신의 배부름을 추구하여 따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6:27)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다.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요6:51,54) 
이 말씀을 듣고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요6:61)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요6:60, 66) 
이 때 예수님이열 두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겠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는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겠습니까?”(요6:68)  

이 문제는 우리가 반드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영생과 돈의 문제가 정리되지 않으면 언젠가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이 젊은 부자 관원은 이 말씀을 듣고 몹시 고민합니다. 
다른 것이라면 좋겠는데 왜 하필이면 돈 문제를 말씀하신단 말인가? 정말 진지하게 영생의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하는데 돈 문제를 얘기하다니! 
그것도 전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니,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예수님은 대단히 중대한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돈과 하나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합니다. 
먼저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돈 필요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돈은 분명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삶의 소중자원입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름다운 세상을 먼저 만드시고 그 다음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모든 세상의 풍요로움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세상에서 구질구질하게 가난하여 날마다 먹을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하루하루 하나님께 매달려 사는 궁색한 인생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까지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 분의 가난하심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고린도후서8:9)
그렇습니다. 
부요함에 행복이 있습니다. 부요함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최근까지 약 30년 이상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해 온 하나의 이론이 있습니다. 
“행복의 역설” “이스털린의 역설”(Esterlin Paradox)입니다.   
1974년 미국 남가주대학의 ‘리차드 이스털린’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국가와 낮은 국가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을 조사 비교하였습니다. 그 결과 ‘행복하다’는 응답률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국민 소득과 행복수준이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이론에 근거하여 일부 국가에서는 성장보다는 분배를 강조하는 경제정책의 논거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하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이 이론을 뒤집는 새로운 주장이 경제학계에서 나와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스쿨’의 ‘벳시 스티븐슨’ 교수와 ‘저스틴 울퍼스’ 교수는 전 세계 132개국의 과거 50년간 자료를 분석하였습니다. 그 결과 국가가 부유할수록 국민들 역시 행복해지는 경향을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부유한 국가일수록 의료, 교육, 등 복지 인프라가 발달해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도 함께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마음도 중요하지만 부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돈 많이 벌수록 행복 더 느낀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국민소득증가를 정책의 목표로 삼는 것은 국민소득과 사람들의 삶의 질(행복)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축복하신 그 귀한 재산을 모두 포기하라 하신 것일까요?
여기는 대단히 소중한 뜻이 있습니다. 
마태복음6:24의 말씀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여기서 예수님이 이 젊은이에게 결단을 촉구하시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인생에 주인이 누구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돈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이 둘 중의 선택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당신의 최고의 가치의 기준이 돈인가 하나님인가 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에서 돈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을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서 돈을 사용하실 것입니까? 

이것은 둘 중에 하나를 얻기 위하여 다른 하나를 버려야한다는 강요가 결코 아닙니다. 우선순위에 대한 결단입니다. 
돈을 하나님께 굴복시킬 것이냐, 돈을 위해 하나님을 활용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인생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는 중요한 가르침이 여기에 있습니다. 
29,30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29절과 30절을 비교하면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밭과 논-그리고 아비나 어미나 형제나 자매나 자식
-->밭과 논-그리고 어미나 형제나 자매나 자식
1)아비가 빠졌다.-->모든 것을 바친 자에게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이다. 
2)아내가 빠졌다.-->아내까지 바치기는 어렵다. 100배를 주면 대단히 곤란하다. 
그리고 100배, 핍박, 영생을 주신다. 
  
예수님과 그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드리는 사람에게는 이 땅에서 백배나 받습니다. 현재 가진 것의 백배를 더 얻는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은 지금보다 백배는 더 부자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단지 지금 내가 가진 모든 소유가 내 삶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이 내 생명과 모든 소유의 주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자에게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확인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십일조생활입니다. 내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십일조헌금은 내 삶에 하나님의 주권, 주인도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광주보병학교에서 유격훈련을 받을 때에 가슴을 가장 조마조마하게 한 훈련이 있었습니다. 수중 낙하 훈련입니다. 깊은 물이 흐르고 있는 계곡 수면으로부터 11미터의 높이에 굵은 밧줄을 연결해 두었습니다. 그 밧줄을 잡고 수면 한 가운데 지점까지 손으로 이동을 하고 훈련조교의 지시에 따라 두 손을 놓고 수중으로 낙하하는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11미터이냐면 사람이 가장 공포를 많이 느끼는 높이가 11미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깊은 물속으로 두 손을 다 놓고 떨어져야하는 훈련입니다. 물론 아래에서는 조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서워하고 두 손을 잘 놓지 않는 사람들은 물에 떨어지는 순간 깊이 물속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면 일부러 다시 물속으로 밀어 넣어 물 실컷 먹게 하고 끌어 내기도합니다. 
훈련이니 절대로 죽을 이유도 없고 다칠 이유도 없으니 두 눈 꼭 감고 두 손을 놓으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헌금을 11미터 상공에서 낙하하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이것만 할 수 있으면 어디서든지 뛰어내릴 수 있듯이 십일조 하는 것은 돈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십일조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말리기3:10-12입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놓아 내 집에 먹을거리가 넉넉하게 하여라. 이렇게 바치는 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서 너희가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아니하나 보아라. 나 만군의 주의 말이다. 
나는 너희 땅의 소산을 해로운 벌레가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포도밭의 열매가 채 익기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 땅이 이처럼 비옥하여지므로, 모든 민족이 너희를 복되다고 할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돈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주인을 바꾸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저는 오랫동안 불교를 신봉하는 가정에서 태어났고 불교의 도성 경주에서 자라면서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승려가 되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를 통해 예수님을 소개 받고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를 오늘 여러분 앞에 서게 한 것은 제 인생에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내 모든 것은 날 구원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있습니다. 저는 길을 가면서도 찬송하고 기도하고 온 종일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살아도 죽어도 예수님을 위해서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내 인생을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 권세 가진 돈 많은 젊은이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는 그 때까지 자신이 가졌던 것보다 백배는 더 가졌을 것입니다. 물론 영생도 얻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것은 생의 주인을 바꾸는 일입니다. 
십자가에 생명을 바쳐 새 생명을 주신 예수그리스도에게 내 자신과 내 모든 소유를 굴복시키는 것은 하늘과 땅의 축복을 위한 배팅투자입니다. 
예수님께 올인 하십시오. 
당신의 투자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수익금을 배당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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