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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기억하라 (신 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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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기억하라 (신 8:11~20)

5년 전 쯤 저는 연구학기를 얻어서 유럽 배낭여행을 했습니다. 맨 처음 영국의 하숙집에서 시작했습니다, 영국 런던에 하숙집을 얻어놓고 여기저기 다녔습니다. 북쪽 스코틀랜드를 들렀다가 다시 남쪽 프랑스에 와서 거기서 하숙을 정한 후 여러 군데 다녔습니다. 

여행이 다 그렇듯이 시작할 때는 좋았지만 길어지자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제대로 하지도 못했지만 고행을 위한 여행을 작정하고 다니다 보니 어느덧 몸이 많이 지쳤습니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당시 이미 쉰을 훌쩍 넘은 나이에 그렇게 튼튼하지도 못한 체력으로 한 달 넘게 그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다녔으므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목사는 늘 말을 하는 사람이라 말하지 않는 여행길이 처음에는 좋았지만 말하지 아니하는 것, 말할 때가 전혀 없는 것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마음도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북으로 기차를 타고 올라가서 독일 북부를 건너 네덜란드에 갔습니다. 거기서 별별 일을 다 겪었습니다. 몸도 많이 지쳤고 마음도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북유럽은 마저 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스웨덴으로 올라갔다가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이번 여행은 여기서 끝내고 귀국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그렇게 느긋하던 마음이 갑자기 급해지기 시작해서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가장 빠른 시간에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곳을 찾으니 독일 프랑크 프루트였습니다. 조금 늦게 출발해도 괜찮다고 마음먹기만 하면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공항이 가까이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일찍 출발하겠다고 밤새 기차를 타고 프랑크 프루트까지 갔습니다. 새벽에 도착하여 여러 시간을 기다렸다가 마침내 비행기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내나라 내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흥분되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나이였지만 그 나이에 부끄럽게도 얼마나 흥분하고 감격했던가 라는 것이 5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기억이 그대로입니다. 사실 그 흥분하고 기분이 좋았던 것은 비행기를 출발하기 전부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탑승 수속개시를 하지 않다 전광판에 개시한다는 문자가 나오자 그때부터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흥분과 감격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싫지 않은 흥분이었습니다. 한 달 여 정도 되었는데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십년 동안 광야를 방황했습니다. 그러다 광야생활을 끝내고 드디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작은 요단강 하나만 건너면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모세의 감정을 생각해보십시오. 백성들을 다 인도해야하는 상황인데 그 수가 이백만이었습니다. 장정이 육십만 정도였고, 여성들도 있었을 것이고 어린아이들, 연세 드신 어른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혼자서는 덜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 불평이 많고 말이 많은 것이 인생들입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제대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일들도 많았을 것이고 여러모로 참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감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또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두 달만 하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땅을 사십년간이나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많이 돌아가셨을 것이고 어머니, 아버지 중에서도 돌아가신 분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병들어서 혹은 변을 당한 사람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내 집, 내 고향에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게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중간 중간 불평하고 말이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가시려고 중간에 화를 내신 적도 여러분 있었습니다. 드디어 다 왔습니다. 이백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가나안 입구까지 왔습니다. 이제 조그마한 강 하나만 건너면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참으로 감격스럽지만 그 하나님의 감격 뒤에 감출 수 없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본질적인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살만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떠났습니다. 일이 조금만 잘 되었다 싶으면 제가 잘나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얼마나 문제를 일으키고 큰 소리를 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습니까? 심지어 반역을 일으키는 일들도 있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우리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하고 열 개 잘해주다 하나만 잘못해도 말이 많은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살길을 주시면서 이렇게 하면 살 길이라고 말씀하심에도 순종하지 아니하는 백성들입니다. 떼쓰는 어린아이들과 똑같이 순종하지 아니하는 백성들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똑같은 모습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되면 지난 사십년 동안 어쩔 수 없이 시키셨던 그 혹독한 훈련을 다시 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훈련을 다시 받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하는 훈련처럼 일주일 정도가 아니라 사십년간 또 다시 시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19-20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훈련정도가 아니라 이제 다 왔는데, 이제는 정말 누릴 수 있는데 누리지 못하고 멸망시킬 일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식들도 한 번 돌아보면 나름대로 잘 길렀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가정이 잘못되고 삶이 잘못된다면 다시 훈련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훈련시키고 가르치셔서 절대로 그런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놓고 가르치셨습니다. 방황하지 않아도 되는 40년 동안 왜 그렇게 혹독한 훈련을 받았는지 그 까닭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막에서 뱀이 가득하고 전갈이 득실거리는 광야를 까닭을 알겠는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런 훈련을 시키는지 아는가? 어떻게 하든 간에 잘살고 행복하게 살라고 그렇게 하셨는데 그 까닭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돈이 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인을 알고 인생을 알아야합니다. 마실 물이 없는 사막을 걷게 하고, 40일도 아닌 40년을 광야에서 헤매게 한 까닭을 알라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훈련이니까 차라리 덜하지만 실제 인생에 있어서는 어떻습니까? 군대에서 그렇게 혹독하게 훈련하는 까닭이 바로 그것입니다. 훈련이니까 괜찮지만 실제에 가면 총 하나 제대로 쏘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군대생활 할 때 철책선 근무하기 전에 훈련을 시키는데 얼마나 혹독하게 시키는지 모릅니다. 철책선에 들어가면 실탄이 있기 때문에 군기를 잡지 않으면 사고가 많이 나기 때문에 윗사람이 웬만한 것은 눈을 감아줍니다. 똑같은 원리입니다.

이처럼 먹을 것이 없어서 그렇게 절절 매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는지 그 까닭을 설명하십니다. 철책선에 들어가면, 가나안에 들어가서 받은 복까지도 제대로 누리지 못해서 인생을 망치면 어떻게 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자식을 잘못 길러 자식을 망치는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그 훈련을 시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랫동안 누리고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7-9절).. 그 좋은 곳에서 오랫동안 이 행복과 풍요함을 누리도록 하나님께서 훈련시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또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12-13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이것을 오래 누리라는 것입니다. 16절에서는 또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1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생도 어릴 때 편안하게 사는 것이 절대로 좋지 않습니다. 이때 좀 열심히 훈련해서 부모님이 계시지 않을 때에도 행복하게 사는 것, 그의 아들, 딸도 행복하게 사는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하나님도 같습니다. 받은 복을 오래 누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인생을 보면 건강을 그렇게 오래 쥐고 가는 분들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넉넉한 재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가운데서도 그 재물 때문에 행복을 계속해서 누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재물 때문에 어려운 사람을 상당히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 때문에, 그렇게 가까이 지내던 사람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도, 건강도, 재물도 오래 누리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오래 누리는 비결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혼도 마찬가지로 결혼 초기에는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런데 그 행복을 오래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결혼 주례할 때 여러 가지 말을 많이 하는데 몇 가지를 짚는 게 있습니다. 말할 때 조심하고, 함부로 말하지 말고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하라고 이야기하고 아내 앞에서 자존심 운운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못난 남편이라는 말도 합니다. 또 사람이란 개성이 다 달라서 서로 각자의 개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는 등 여러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은 약간의 참고가 될 뿐 완전하고 충분한 비결이 아닙니다. 주례를 하면서 절대로 빼놓지 않고 말하는 진정한 비결이 있습니다. 행복하려면 사랑이 있어야하는데 이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아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 이 선물을 가장 많이 주실까요?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 즉 주일날 예배당에서 예배드릴 때 그 사랑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바쁜 일이 있어도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을 빠뜨리지 말아야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습니다. 이것은 내 가정의 행복은 전부 다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11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14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18절),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19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의 사무엘상에 엘가냐 라는 분이 나옵니다. 그 가정은 두 사람의 아내가 틈만 나면 싸워 상당히 시끄러웠습니다. 또 한 가정은 엘리의 가정인데 상당히 좋은 집안이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엘리의 가정은 위에서 자꾸 내려와 기울기가 밑으로 기울어져 나중에 망했고, 엘가냐의 가정은 처음에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가정이었는데 자꾸 위로 올라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이전에는 시내버스나 택시에 조그마한 아이가 기도하는 사진이나 그림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 아이가 사무엘입니다. 그 사무엘을 만드는 위대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두 집의 결정적인 차이는 망한 엘리의 가정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엘가냐의 가정이 그렇게 귀한 가정이 되고 위대한 사무엘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예배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배드리는 날이 다가오면 늘 싸우는 두 아내도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가장이 그렇게 예배를 귀하게 생각하니 늘 싸우던 두 아내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예배란 우리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밖에 고백하지 않지만 그것은 결국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늘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래도록 받은 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입니다. 건강을, 재산을, 사람을 누릴 수 있는 비결입니다. 

우리 교회가 창립 1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보기에는 모자라는 것밖에 없고, 우리보다 더 좋은 교회를 볼라치면 한이 없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한국에서 최고로 복받은 교회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제 노회, 총회를 시작하는 계절인데 저는 교계에서 그런 인사를 참으로 많이 받습니다. 우리는 효자촌 상가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일을 아시는 분은 기억하실 텐데 우리는 그래도 감사했지만 새벽에 올라가면 침이나 가래를 여기저기 뱉어놓고 쓰레기는 뒹굴어져 있으며, 화장실은 아무리 청소해도 냄새가 진동하고 곳곳에는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었으며 아래층에서는 온갖 음식물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교육관도 모자랐고 그 외 여러 가지로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채 1년도 되지 않아 5달 만에 분당에서 최고의 자리에 임시건물이지만 예배당 건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교회를 창립하고 나서 2년도 채 안된 때였습니다. 

그런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지금의 이 자리에 예배를 드리도록 허락해주셨습니다. 이 예배당은 건축하는데 7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가 건축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번 교회가 7년 동안 짓고 한 번도 여기에서 제대로 된 예배 즉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그냥 있었던 시기를 제외하고 5년 동안 지은 후 웬만한 집기들을 다 사서 챙겨두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지으라고 하면 이렇게 잘 짓지 못할 것 같았기에 이렇게 다 완성한 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지난 번 교회에서 저의 가장 큰 걱정은 아이들 문제였습니다. 도로변이라 차들이 위험했기 때문에 늘 걱정이었습니다. 예배드릴 때 들리는 소음이나 비오는 소리가 들리는 정도는 낭만이었지만 아이들이 혹시라도 다칠까봐 늘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리고 본당이 연세 드신 분들이 올라오시기에 힘든 곳에 위치했습니다. 아래층에 TV로 예배드릴 것을 권했지만 그렇게 하시는 것을 꺼려하셨고, 바깥계단도 잘 이용하시지 않고 좀 힘들어도 안쪽 계단을 이용하셨으므로 사실 불편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얼마든지 뛰어놀 수 있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연세드신 어른들도 편안하게 본당에 오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주차장도 초대형교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 교회처럼 멋진 주차장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한국 전체에 몇 교회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현역에서 차로 5분이면 오는 이런 도심 가운데서 이렇게 온갖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은혜와 감격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밖에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도 이 예배당을 우리들에게 주시면서도 걱정이 많으셨을 것입니다. 지금도 아마 걱정하시고 계실 것입니다. 무언가 시원찮으면 하나님 얼굴이 무거워지고 어두워질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있을 수 있는 하나님의 걱정 앞에 서 있는 우리교회는 창립 10주년을 맞아서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답은 분명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교인들 그리고 합한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셨고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특별히 이 일에 있어서 우리가 조심해야할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이 드러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사람의 이름이나 사람의 얼굴이 떠올려지지 아니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17절에서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잊는다는 것입니다. 인간만 생각하고 인간이 기억되고 인간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만 말하고 하나님의 얼굴 예수의 십자가만 생각합니다. 이것이 비결입니다. 

10년 되는 오늘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구체적인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당회는 조만간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공표하고 시행할 것입니다. 그것은 근래 여러 경로를 통해서 보신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요즘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 당회로부터 시작해서 해아할 일이 무엇일까요? 핵심 요지는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담임목사입니다. 특히 담임목사가 교회를 개척하고 설립한 사람일 때는 더욱 더 담임목사가 문제가 됩니다. 당사자도 그러하고 우리 함께 기억해야할 것은 사람에게는 기대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부끄러운 모습을 연출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게 보이는 사람이나 다 똑같다는 것을 알고 나가야합니다. 사람들을 절대로 믿으면 아니 됩니다. 똑같은 부끄러운 모습을 연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사자는 자신할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믿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가 대비해야합니다. 

목사에게는 항상 준비해야할 보따리가 세 개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설교보따리입니다. 항상 설교할 말씀보따리가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떠날 보따리입니다. 항상 교회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서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명하시면 언제든지 가방 들고 떠나는 보따리가 있어야합니다. 세 번째는 죽을 보따리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만 살라고 말씀하시면 언제든지 떠날 보따리가 준비되어 있어야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종이 먼저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져야할 십자가가 있으면 그 누구에게가 아니라, 그 누구가 아니라 먼저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종이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낮아질 십자가를 져야할 일이 있으면 낮아지는 십자가를 져야하고 하나님의 종 이름 그대로 종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종이 너무 높아져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떠날 때가 되면 떠나야합니다. 떠날 때가 있습니다. 필요하면 죽어야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먼저 그리할 때 하나님의 교회는 참된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힘을 합해서 이 일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목사와 여러분이 함께 힘을 합쳐 이 일을 이루어나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반이라도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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